그러나 약자에게는 길이 피침(被侵)과 고난을 불러 들이는 것이기도 했다. 우리 나라만해도 옛날에는 ‘무도측안전(無道則安全)’ 즉 길이 없는 것이 안전하다는 인식이 팽배했던 때도 있었다. 일제식민지 수탈시대의 ‘신작로(新作路)’는 우리 민족에게 침략과 추방, 그리고 민족 정기를 가르는 상징물이었다.
길은 활용하는 주인공에 따라 이처럼 상반된 기능을 한다. 어찌되었든, 길은 인간이 창조한 가장 빛나는 유산이라는 말도 있다. 길은 인류와 함께 발달하고 지역과 지역, 사람과 사람을 교류시키고 문명을 발전시키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해왔다. 길이 우리에게 번영과 발전의 상징으로 변한 건 70년대에 들어서였다고 볼 수 있다. 1970년 7월7일 서울_부산을 잇는 고속도로의 개통을 계기로 우리나라는 도로선진국 반열에 들어섰고 경제는 괄목하게 발전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전국에 걸쳐 많은 고속도로가 뚫리고 대도시에는 지하철이 건설되었지만 아직까지 ‘길 부족’ 현상은 여전하다.
고대 주(周)나라 법전을 기록한 주례상에 따르면, ‘경(徑)’은 우마차가 다닐만한 길, ‘진(畛)’은 큰 수레가 갈 수 있는 길, ‘여(여)’는 말 4필이 끄는 병차(兵車)가 갈 수 있는 길, ‘도(道)’는 병차 2승(乘)이 동시에 갈 수 있는 길, 로(路)는 병차 3승이 병행할 수 있는 길, 또 경·진·도·로는 다 차마(車馬)와 군졸(軍卒)이 국도까지 통행할 수 있는 길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땅이름에 길(道)과 걸림이 있는 곳이 꽤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도림동과 신도림동. 도림동(道林洞)은 본디 경기도 시흥군 북면 도림리였다. 도림리의 원래 이름은 도야미리(道也味里). 산이 마을 뒤로 성곽처럼 둘러싸여 마을은 국도에서 돌아 앉은 것 같다하여 ‘길 빼미’라 부르던 것을 한자로 뜻빌림 한 것이 도야미(道夜味→ 道也味)가 되었다는 얘기다. 그 뒤, ‘도야미→ 도림이’로 발음되면서 오늘의 도림(道林)이 된 것.
다시 도림리가 1949년 8월5일, 서울에 편입하고 도시가 팽창하면서 신도림동이 파생됐다. 신도림(新道林)! 글 뜻대로 라면 ‘새로운 길이 밀림(숲)을 이룬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신도림역에 이르면, 경부선, 경인선 철도와 경인, 경수 전철위로 고가도로가 지나가고 땅속으로는 지하철(순환2호선과 까치산 방면 2호선)이 얽히고 설켜 그야말로 신도림(新道林)을 이루고 있으니 땅이름과 무관하지 않는 것 같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매일 다니는 길도 언제나 새롭다는 윤동주의 ‘새로운 길’을 음미해보자.
이홍환 국학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