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말고도 최근에 테니스 영화 두 편을 봤는데요. 하나는 윌 스미스(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크리스 락의 아구창 을 날려 화제가 되었던)가 세계적인 여성테니스 스타 비너스 윌리엄스와 세레나 윌리엄스의 아버지로 나오는 <킹 리처드>와 넷플릭스 다코멘터리인 <브레이킹 포인트>입니다. 영화 <킹 리처드>에서는 백인위주의 스포츠인 테니스에서 살아남기 위해 흑인인 자신의 딸들을 성공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봅니다. 당시 미국 주니어 엘리트 테니스계에서는 성공 공식처럼 여겨지던 토너먼트 대회에 참가시키지 않습니다. 유명코치를 찾아 플로리다로 온 가족이 이사해서 본격적인 전문선 수 훈련을 받게 하면서도 동시에 딸들의 학교 과제와 성적에 집착합니다.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춘 비너스 윌리암스에게 시합 을 해야 실력이 늘고 그래야 큰 스폰서의 눈에 띈다며 설득하는 코치의 말을 단호한 거절하지요. 아직 이 아이들은 어리고 그 래서 그들을 이렇게 반교육적이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환경에 자신의 딸들으 둘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 다. 바로 토너먼트에 나가면 단번에 우승을 하고 세상의 주목을 끌 수 있는 실력을 가졌음에도 아버지 리처드는 끝까지 고집을 피웁니다. 심지어 비너스 윌리엄스가 아버지에게 시합에 나가게 해달라고 시위를 하기도 합니다. 한국의 14살 테니스 신동의 아버지와는 사뭇 다른 관점입니다(물론 현실 아빠 리처드 윌리엄스의 폭압적인 양육방식이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비슷한 시기 미국 남자테니스계의 어린 신동 마디 피시의 다큐멘터리 <브레이킹 포인트>는 윌리암스 자매와는 다른 방식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지미 코너스, 존 메켄로, 짐 쿠리어, 안드레 아가시, 그리고 피트 샘프라스까지 미국 남자 테니스는 꽤 오랫동안 세계 테니스계를 지배합니다. 미국의 대중이 열광했던 것은 물론이고요. 17세 앤디 라딕이 가공한 서비스를 앞세워 US 오픈에서 우승했을 때 사람들은 차세대 미국 테니스를 짊어지고 갈 스타가 탄생했다고 흥분합니다. 그 때 앤디 라딕의 훈 련 파트너 였던 선수가 마디 피시입니다. 꽤 잘 하는 선수였는데요. 15살(중 3입니다)에 자신의 부모를 떠나 플로리다에 사는 로딕 집안에 들어가 살게 됩니다. 서로에게 최고의 훈련 파트너로 군인 출신이었던 라딕의 아버지의 혹독한 훈련과 최고의 선 수를 길러내는 아카데미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당시 미국 주니어 테니스 랭킹 1, 2위로 성장합니다. 첫 프로 데뷔 토너먼트 결 승에서 라딕과 붙은 마디는 매치 포인트를 두 개나 따고도 너무 많은 생각 탓에 어처구니없게도 라딕에게 첫 번째 우승을 넘겨 줍니다. 그리고는 커리어 내내 프로선수가 된 것만으로 행복한 그저 그런 선수로 28살까지 살아갑니다. 앤디 라딕도 당시 등 장한 세계 테니스계의 빅 3,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에 눌려 미국민의 엄청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힘든 선수 생활을 이어 가지요. 마디가 28살이 되었을 때 이렇게 선수생활을 마감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독하게 훈련을 해 13킬로를 감량하고 그 해 세게랭킹 7위까지(그 과정에서 페더러, 나달, 라딕을 모두 이기는 기엄을 토합니다) 오릅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한 프 로테니스 선수의 인생역전 드라마인데요. 그리고 그 다음 해 마디는 US 오픈 8강전에서 페더러와의 경기를 앞두고 (그 대회 를 마지막으로 앤디 라딕이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에 그 때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미국 선수였습니다) 경기장으로 가던 길을 멈 추고 기권을 합니다. 그리고 약 2년간 은둔생활을 하지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던 마디 는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자신이 겪고 있는 불안증세가 일종의 질병임을 알게 되고 약물과 상담을 통해 서서히 회복합니다. 2 년 후 다시 2012년 US 오픈에 참가하면서 기자회견장에서 자신이 중증불안장애를 겪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당시 큰 충격이었는데요. 수많은 프로테니스 선수들이 자신들도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렇게 용기를 내줘서 너무 고맙다는 응 원을 받게 됩니다. 자신의 가족까지도 버리고 테니스계에서의 성공을 향해 인생을 불태우던 마디 피시는 결국 미국 테니스 랭 킹 1위가 되지만 정상이 주는 압박에 불안장애를 겪고 벼랑 끝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결국 용기있는 고백으로 세상에 다시 나왔지만 현재 세계 프로 스포츠계가 얼마나 잔인한 압박의 세계인지 그리고 그 환경이 얼마나 어린 선수들에게 해로운지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위의 두 영화를 보면서 다시 한국에 나타난 테니스 신동을 돌아봅니다. 앤디 라딕과 마디 피시는 경쟁을 하면서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가 되기 위해 젊은 시절을 불태웁니다. 그렇게 촉망받던 두 젊은이는 미국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이른 나이 에 은퇴를 결심하게 되지요. 그들이 가장 운동을 많이 하던 시절에도 사립 학교를 가 수업을 듣고 코트로 뛰어나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체육특기자제도, 학교운동부가 없는 나라에서는(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입니다) 출석인정 결석일수를 인정해달라 고, 현실과 괴리된 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아무도 하지 않습니다. 마침내, 헤어질 결심을 합니다. 정상이 아닌 것이 어른들에 의해 마치 최선의 방법인 것처럼 왜곡되고 그 허상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어린 선수들이 부서졌는지? 그 과정에서 그들이 온몸으로 감내해야 했던 불필요한 경쟁과 과도한 훈련들. 어린 선수들의 미래를 자기들끼리 미리 단정짓고 운동 아니면 뭘 하겠냐고 다그치면서 네가 다 잘되라고 그랬다는 변명을 언제까지 들어야 할까요? 과거의 대단한 선수들의 얼굴이 주르륵 떠오릅니다. 그들의 땀, 노력, 그리고 승리의 환희를 기억합니다. 하지 만 거기까지입니다. 더 이상의 학교운동부, 체육특기자제도는 이 땅에서 용납할 수 없습니다. 헤어지겠습니다. 단호히! 끝(2022. 08. 25, 정반 서강대학교 교수, 체육시민연대 집행위원 칼럼 (제5차 학교체육통합 세미나 발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