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2005~2020]/정기산행기(2005)
2005-11-28 16:23:49
[38차] 제천 동산 산행
2005. 3. 9. / 최신림
산행일 : 2005. 3. 6. (일)
코 스 : 무암사-남근석-성봉(825)-동산(896.5)-새목재-무암사
참가자 : 신림, 광용, 민영, 병효, 효용, 길수, 진운 + 구덕산우회 6명 (총 13명)
[편집자 주 : 대장이 쓰라 했으니 써야지 별 수 있나. 구덕산우회 홈피에서 효용이가 올린 글을 보고 쓰다 보니 전혀 본의 아니게 글이 길어져 버렸다. 30회 홈피에 글을 올리는 것은 대장이 결정해서 처리해라. 그라고.. 멋진 남근석 사진을 첨부한다. (최신림)]
오늘은 축령산 산행 계획을 뒤로 미루는 대신 구덕산우회 번개 산행에 끼여서 제천 동산에 가기로 한 날이다. 송파팀이 모여 수서역 6번 출구로 가니 7시5분전이다. 아침 잠을 10분 더 자느라고 놓친 끼니를 김밥 1줄로 때우는 사이에 삼공산우회 멤버들이 다 모였다. 6번 출구 뒤편에 주차를 하고 집결지인 1번 출구 쪽으로 간다. 길가에 승합차가 2대 서 있다. 구덕산우회 회원인 선배, 후배들과 인사를 나누며 잠시 시간을 보낸 다음 서울을 출발(7:30).
참석한 삼공 멤버는 한효용 회장 및 박광용 대장 외 김길수, 우진운, 이민영, 정병효, 최신림 등 모두 7명이다. 구덕에서는 효용이를 빼면 모두 6명. 7+7-1=13명에 이른다.
문막 휴게소에 들러 몇 사람은 간단하게 요기하고 몇 사람은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휴게소엔 등산복 차림으로 길을 나선 사람들이 꽤 많이 보인다. 중앙고속도로로 진입한 다음 남제천 IC에서 597번 지방도로로 접어들어 남쪽으로 7.5km. 제천시 금성면 성내리에 도착한다. ‘태조 왕건’에서 벽란도 포구 장면을 찍었다고 하는 KBS 촬영장 바로 옆이다. 무암사 방향으로 눈 덮인 시멘트 포장도로를 올라가는데, 아니나 다를까 무암저수지 옆 비탈길을 LPG 승합차가 오르질 못 한다.
차를 주차하고 전 대원 집합. 산행대장인 석용환 선배(23회)로부터 산행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듣는다. 산행 개시의 공식적인 세레머니라 할까. 삼공에서도 산행을 시작할 때 이런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배낭 끈을 조여 놓고 무암사로 출발한 시각은 10시5분.
산채(山寨)처럼 생긴 SBS 부속촬영장을 지나 포장도로를 계속 오르니 무암사 신도들인지, 마을 주민들인지 모를 사람들이 10명가량 모여 눈을 쓸고 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지나치면서 훈훈한 정감을 느낀다. 10시 30분에 무암사에 도착. 원래는 차로 오기로 한 곳을 걸어왔으니, 눈길 덕분에 워밍업을 제대로 한 셈이다. 안개가 낀 날이면 바위가 더욱 선명히 보인다고 해서 무암(霧巖)이라던가?
무암사에서 식수를 준비하는데, ‘물조’는 모두 구덕 멤버다. 물조에 끼어볼까 하고 잠시 망설였지만, 하수 주제에 짐 진다고 만용을 부렸다가 잘못되면 더 큰 민폐가 된다고 순식간에 자기합리화를 한다. 남근석 방향으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단체사진을 한 장 찰칵.
주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상당히 가파르다. 호흡이 가빠지면서 힘에 부치려 할 때, 다행스럽게도 선두가 멈춰서 있다. 아이젠을 착용해야 하는 구간이다. 한 사람씩 로프를 잡고 매끄러운 바위 위를 오른다. 경사가 급해 아이젠을 찬 신발은 바위 위에 위태하기만 한데, 로프를 잡은 손은 그냥 주르륵 흘러내린다. 두어 번 실패한 끝에 간신히 매듭 위를 잡고 통과한다. 때로는 로프를 잡은 손으로, 때로는 네 발로 급경사 암릉 길을 기어 올라가며 남근석에 도착(11:35), 한 숨을 돌린다.
남근석은 높이 3m, 둘레 4m의 아주 잘 생긴 물건이다. 주능선 건너편 계곡에는 여근석도 있다 하는데, 어떻든 이렇게 잘 생긴 물건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아니 찍을 수 있겠는가! 사진을 찍는 사이에 아이젠을 찰 때 만난 산행 팀이 도착한다. 원주에서 온 혼성 6인조인데, 그 쪽은 아이젠을 찬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다.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걱정된다고 해야 할지... 길수가 남근석을 화제로 찐한 농담을 건네기 시작하였지만, 진도를 다 끝내지는 못하고 출발한다. 다시 바위 길을 계속 오르니 마침내 주능선이다 (12:15).
후미를 맡은 효용이가 올라오면서 배가 고파 힘을 못 쓸 정도라 한다. 아침 6시에 김밥 조금 먹은 것이 전부고, 후미를 맡느라 간식도 챙겨 먹지 못 했다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 적당한 자리가 나타나면 점심을 먹기로 하고 발길을 옮긴다. 이제껏 올라온 길에 비하면 주능선은 한결 수월하다. 저 멀리 남쪽으로 월악산을 바라보기도 하고, 뒤 돌아서서 충주호를 내려보기도 하면서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길을 올라 성봉(825m)에 도착한다 (12:45).
성봉, 위가 그런대로 평탄해서 자리를 깔고 점심 준비를 시작. 가스 버너의 화력이 시원찮은지 물이 끓는 데 시간이 제법 걸린다. 잠시 어수선한 사이 삼공산우회 몇 사람은 벌써 점심을 먹기 시작하였는데, 효용이는 ‘라면을 12개 끓이고 있다’는 말로 약간의 주의성 발언을 하다 그냥 내버려둔다. 이미 판은 벌어졌는데 어쩌겠는가. 점심은 팀별로 나뉘어 먹는 것으로 알고 있는 모양이네 하고 생각하고선 나도 재빨리 점심 대열에 합류한다. 얼떨결에 이번 산행 삼공 팀 연락책이 되어 버렸지만 이런 일을 사전에 명확히 해 두지 못한 것은 내 잘못도 있다. 산이 그렇듯 산행의 고수들도 세속에서 따지는 격식은 별 문제 삼지 않으니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배불리 점심을 먹고 자리를 정돈하여 출발한다(14:00).
성봉을 지나 북행하는 길은 고요하고 평탄하다. 바위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발목이 덮일 정도로 쌓인 눈밭 위에 사람 발자국이 고즈넉이 이어진 오솔길에서 산행의 즐거움을 느낀다. 햇살은 따사로운데 바람도 없다. 악전고투 끝에 찾아온 안식과도 같다고나 할까. 민영이는‘닥터 지바고’가 생각난다고 한다. 그 말에서 나는 시베리아횡단철도와 바이칼 호를 떠올린다. 언젠가는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다. 여유가 생겨서 일까. 자칭 ‘쫄 중의 고수’ 민영이는 남근석까지도 겨우 올랐다고 하며 이번 산행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한편으로는 엄살을 떤다 싶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쉴 틈 없이 해외출장을 다니느라고 컨디션이 조금 망가졌으리라 짐작도 해 본다.
아닌 게 아니라 민영이는 며칠 내로 또 출장이어서 제천 오는 차 안에서도 출장 준비를 위해 서류를 뒤적인 바 있다. 걷는 데는 도사급인 진운이도 바위를 기어오르며 로프와 씨름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은 모양. 전례 없이 힘이 들었다 하는데, ‘쫄 중의 하수’인 나는 특별히 그렇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왜냐고? 어떤 산이건 다 힘이 들고 어려우니까. 오히려 나에겐 차례를 기다리는 척하며 은근 슬쩍 쉬어가는 암릉 구간이 더 낫다. 자, 보라! 내가 힘이 부칠 만하니까 선두가 또 멈추어 서서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후미를 맡은 효용이는 단박에 눈치를 채고 사진 찍을 준비를 한다. ‘찍사’가 필요한 장면인 것이다. 비탈진 너른 언덕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고, 그 위엔 신갈나무 군락이 제법 광활하게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언덕 위에 오르니 소나무 가지에 ‘중봉 885.6m'라는자그마한 나무 팻말이 매달려 있다. 정상은 이제 지척지간. 새목재로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조금 올라가니 동산 정상(896m)이다 (14:45).
정상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분주히 찍은 후 하산길로 접어든다. 조금 전 통과한 갈림길에서 새목재로 내려가는데, 북사면에다 경사가 급해 잘못 디디면 무릎까지 발이 빠지면서 신발 속에 눈이 들어온다. 구덕산우회의 선배들이 진작부터 차고 있는 스패츠가 생각나는 순간이다. 바지 위에 예의 ’빤쯔‘를 챙겨 입은 효용이가 글리세이딩을 시도하는데, 눈이 퍼석퍼석한 데다 선두 그룹에서 한두 차례 밀고 내려 가버린 탓에 별 재미를 보지는 못한다.
정신없이 나무를 붙들며 급경사를 한동안 내려가니 새목재다(15:24). 새목재는 새의 목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옛날 한양에서 배를 타고 내려온 보부상들이 단양으로 넘어가던 고개라 한다. 새목재에서 북쪽으로 오르면 작성산이고 서쪽으로 내려가면 무암사다. 서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아이젠을 벗는다. 길은 비교적 평탄하고 눈도 별로 쌓여 있지 않다. 그렇지만 눈이 녹아 축축한 길에 낙엽이 적당히 덮여 있는 곳은 상당히 미끄럽다. 아이젠을 벗으며 스틱을 쥐지 않았으면 엉덩이에 큰 자국이 생겼으리라. 병효가 하산 완료 시까지 아이젠을 벗지 않는 까닭이 여기 있구나 생각해 본다. 앞 사람을 부지런히 따라 내려가니 무암사에 도착한다(16:00).
잠시 절 구경을 하고 내려가면서 올라올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부도 2개를 본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중 하나가 소의 부도다. 전설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절을 짓는데 어디선가 소 한 마리가 나타나 짐을 날라다 주었다고 하며, 소가 죽자 그 불심을 기려 장례를 치러주니 사리가 많이 나왔다 한다. 무암저수지까지 내려가는 길은 제법 지겨웠는데, 지난 번 용마산악회의 백마산 산행에서 구덕산우회 정영조 후배(35회)의 철인3종 경기 경력을 들은 바 있어 그 이야기를 꺼내 길수의 마라톤 경력을 별 볼일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 재미는 맛볼 수 있었다.
목욕탕을 찾아 제천 시내까지 진입하고서는 ‘궁전25시 사우나’라는 곳에 들어간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 정말 좋다. 그렇지만 효용이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다리 근육을 충분히 풀지 못해 약간의 후환을 남긴다. 내 머리 속에 남겨진 효용 고수의 가르침은 오직 하나 뿐으로, 목이 마르더라도 식당에서 찬 맥주 한 잔 마실 때까지 참으라는 것.
저녁을 먹으러 간 곳은 제천역 근처 복개천변 ‘천명삼겹살’집인데, 선배들에겐 물어물어 찾아간 집이라 둘러댔지만 실은 대충 찾아간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동 출신의 주인아줌마가 친절하고 고기 맛도 있어 모두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찬 맥주 한 잔에 막걸리 두 잔. 그 다음엔 소주다. 22회와 23회, 산행의 ‘도사’들 사이에 앉은 광용이가 내공을 증진시키느라 여념이 없다. 광용이는 무슨 일이든 열심이지만 산행에 대해선 더욱 그렇다. 그 동안 나는 길수와 영조를 상대로 소주잔을 주고받느라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보법’과 ‘호흡’의 묘리가 전수되기도 한다. 원래 궁극의 도리는 연자에게만 전수되는 것. 나 같은 하수는 그런 게 있다는 걸 안 것만으로도 족하다.
이전에는 이름조차 몰랐지만, 개인적인 소감으로 제천 동산은 웬만한 국립공원 못지않은 산이다. 오히려 아는 사람이 적어 붐비지 않으니 더 낫다 할 것이다. 그런 산을 오를 기회를 준 효용이와 구덕산우회 선배들에게 감사 드린다. 프로들이 아마추어들을 데리고 산을 오르는 것은 재미가 반감되는 일임에 분명할 터인데, 조금도 성가셔 하지 않고 삼공 멤버들을 이끌어준 데 대해서도 이 자리를 빌려 다시금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이번 산행을 특별히 여겨 산행기를 길게 썼다는 사실을 밝혀 두는데, 이것은 오로지 ‘민폐’의 혐의로 기소되는 걸 피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