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2005~2020]/정기산행기(2017)
2017-01-09 16:16:44
제 629차 인왕산 정기산행기
1. 일시 : 2017. 1. 9.(일) 10시 30분. 경복궁역 1번
2. 참가 : 또3공, 상국, 재일, 진수, 일기, 병욱, 민영, 효용, 길래, 뽈, 경호(11명)
며칠 전, 또 3공의 은밀한 전화, 대포폰? 산우회 실세니까 대포폰을 개통했는지도 모른다.
새해 복 많이 받으란 덕담은 수사에 불과하고 뒷끝이 맵다. 2017년 또 3공시대의 첫 산행이자 신년 산행의 산행대장을 맡아달란다. 이런 중차대한 첫 산행의 대장으로 임명된 것을 영광으로 여겨야하고, 또 가기 싫은 교회 사역을 안가도 되는 핑계거리가 될 꺼라며 슬슬 구슬리다가, 십자가를 들고 오금을 박는다.
“얌마! 시키몬 시키는 대로 해야지, 니 솔직하게 말 해봐라, 교회 끌려가고 싶나?”
억지로 맡은 산행대장, 인왕산이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진 한 장. 10년도 더 된 그 옛날, 2005년 8월 무더운 날씨, 부종이 넋 나간 얼굴. 순간포착 사진을 찾아보니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모두들, 특히 옆에 있는 민영이 참 젊었다.
진수랑 오리역에서 만나기로 하고 시간 맞춰 집을 나갔는데 저 위에서 마을버스 오는 걸 보고 교통카드가 든 폰을 꺼내는데, ‘앗! 왜 폰 색깔이··· 이게 뭐야?···’
아이구... 충전시킨다고 폰을 나란히 놓아뒀었는데 그만 와이프 폰을 들고 와버렸다. 아까 조그만 부엌창문으로 얼굴을 내밀고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어주던 딸아이도 들어가버린 상태, 마을버스를 보내고 전화를 했다. 안 봐도 비디오다. 자기 폰 소리와 다르니 안 받다가 제법 몇 번 울리고 난 다음에야 전화기를 들고 사태를 파악한 와이프의 생뚱맞은 표정. ‘이 양반이 아침부터 또 고질적인 실수를 하는구나.’
“아이구, 이 아저씨야... 폰을 바꿔가면 나는 또 우야라고요? 초아한테 들고 내려가라 할 게요. 조심히 댕기오소~”
엘리베이터 앞에서 폰을 건네받고는 “초아, 니 얼굴 한 번 더 볼라꼬 아빠가 실수한 모양이다, 허허~”
종로 2가에서 내려 종3으로 가는데 뭐가 허전하다. 폰은 있고... 뭐지? 앗, 맨 머리다. 모자가 어디 갔나? 아까 버스에서 안전벨트가 잘 안 빠져서 몸을 옆으로 돌려 낑낑대며 벨트를 끌렀는데, 그 때 옆에 벗어둔 모자를 두고 내린 모양이다. 아직 목이 제대로 안 돌아간다. 이 아픈 목 때문에 안전벨트도 제대로 못 끌렀고 그게 모자를 분실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다행히 지하철에 모자 파는 가게가 있었다. 효용이 말대로 만주 개장사 모자를 하나 샀다. 한눈에 딱 고른 게 5천원. 싸다.
목을 자꾸 주무르게 된다. 목이 왜 아프냐구? 목요일 무슨 모임에 갔다가 술이 좀 과해서 늦게 온 날, 들어가 자라고 해도 말 안 듣고 소파에서 졸고 있더니 나중에 결국 바닥에 떨어진 모양이란다. 쿵! 소리가 나서 와이프가 잠을 깨보니 새벽 1시 반, 내가 목을 잡고 들어와 밤새 아프다고 꿍꿍 앓아누워 엄청 불안했다는 아내. 결국 금요일 한의원에 가서 침과 뜸, 부항에 사혈 등등. 그 몸으로 산에 갈 수 있냐며 걱정하던데 또3공의 영광 운운하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교회 대신 산을 택한 하루.
분명 (경복궁역 1번 출구, 10시 30분)이라 했는데, 모르고 10시에 와서는 아무도 안 보인다고 전화를 하며, 경복궁역 맞느냐며 재차 확인을 하던 이제 늙은(?) 민영이를 필두로 하나, 둘 모인 것이 갑자기 합류하기로 한 경호까지 총 11명. 대군이다.
천천히 걷는다. 바쁠 것도 없고, 오늘은 도시락도 없고, 막걸리 사장 일기가 왔는데도 막걸리 한 병 없는 참 신기한 산행이다.
혼자 캔-맥주 하나 들고 온 병욱이는 행여 누가 한 모금 달라고 할까봐 불안한 표정으로 자꾸 집에서 부쳐온 전(煎)을 권한다. 그래도 먹을 것이 제법 있다. 재일이 과일을 많이 가져왔고 차도 뜨겁다. 뽈도 요즘 신접살림이라 뭘 많이 가져왔다, 군고구마 등등, 길래 떡과 사탕, 일기는 아침에 밭 갈고 나니 땅콩을 구워 주더라던데 믿거나 말거나~ 효용이는 유자차 맛보라며 권하고.
인왕산, 예전보다 등산객 편의를 위해 뭘 많이 설치해뒀네? 꼭대기에 올라 요즘 한참 말 많은 청와대를 바라보며 마음이 씁쓸하다.
내려오는 길은 부암동쪽으로 내려오다가 버스를 타고 경복궁역에 하차, 시장통을 돌아 해물탕집 2층에서 우리끼리 신나게 한 잔, 해물탕 중자를 3개 시켜 먹고 있는데 가오리가 가오리찜을 또 시킨다. 나뿐 놈, 동족을 묵다니...
신년 첫 산행, 맛있게, 신나게 먹고 마셨다. 당구파들은 당구에 노래방 거쳐 간단한 2차 술자리까지 갔더구먼. 취하면 계란 한 판 사가야 하는데 요즘 달걀값이 비싸서 못 사고 있던 일기를 달랜다고 효용이가 빵을 돌린 모양, 크크.
양재에서 내려 뽈은 아직 감기 기운이 남아 포천으로 올라가고, 병욱이 소원인 치맥 한잔 하고 헤어져 진수랑 죽전까지 같이 왔다. 경호는 보령에 안착했다고 카톡이 왔다.
다들 다음에 볼 때까지 건강하게 잘 지냅시다~
* 12년 전 2005년 8월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