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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최춘해의 연보
1932년 경북 상주군 사벌면 덕가리(하덕골)에서 아버지 崔鍾壽 어머니 金順女의 장남으로 태어나 (임신 음력 7월 8일) 이곳
에서 자람. 아호 혜암 (兮巖)
1951년 상주중학교 부설 초등 교원 양성소 수료.
사벌동부국민학교 교사로 발령 (10월 31일)
1952년 덕골에서 張順子와 결혼(음 10월 10일)
1956년 사벌국민학교로 전근
1957년 장녀 貞仙 출생 (2월 10일)
1958년 육군 입대
1959년 장남 秉昌 출생 (9월 18일)
1960년 12월 1일육군 제9638부대에서 제대
1961년 5월 1일 사벌국민학교로 복직
1962년 차남 秉成 출생 (10월 24일)
1964년 교단아동문학 동인회 간사. 동인지 『은방울』26호, 27호 (형설출판사 발행) 전국 회 원 21명 (고문: 윤석중 이원수)
신현득, 김종상, 이오덕, 권태문, 이천규, 이무일, 강세 준 등과 상주에서 활동.
1965년 아버지 최종수 별세 (음 10월 19일)
1966년 10월 1일 대구신천국민학교로 옮김. 신현득, 권기환 등과 3인 문학 동인으로 창작 활동 . 1967년 매일 신문 신춘문예 동시 입선 (작품: 겨울 땅속). 11월 10일 『한글문학』에 추천 완료(작품:시계, 산 위에서, 이른봄
1회 심사: 조유로. 마지막 심사: 이원수)
6월 30일 첫 동시집 『시계가 셈을 세면』(한글문학사) 출간.
대구아동문학회, 한국문인협회 가입.
1968년 12월 14일 최근유 『한굴문학』 신인상 받음. 신현득, 권기환 함께 부산 시상식에 참 석. 부산에서 1박함. 11월 1일
대구종로국민학교로 전근.
1972년 대구교대 교육원 2년 수료. 3월 10일 한국아동문학 60년 선집에 ‘산 위에서’ 외 1편 뽑힘. 3월 20일 한국문학 대표작
가 동시 동극집에 ‘아침 햇살’ 외 1편 뽑힘.
1974년 3월 1일 대구아양국민학교로 전근
1975년 2월 10일 <신한국문학선집Ⅱ>에 ‘새해의 꿈’ 외 5편 뽑힘. 3월 1일 상주 회상국민학 교로 전근.
1976년 5월 27일 동아일보 <이 달의 시> 난에 신동욱의 최춘해의 ‘아침 숲속’이 뽑힘. 8월 31일 아동문학 평론 제2호에 평론
‘설문을 통해 본 동시의 문제점’ 발표.
1977년 5월 1일 제2 동시집 『생각이 열리는 나무』(시문학사) 출간.
1월 상주아동문학회 창립. 초대회장 피선. 매월 회보 발간. 권태문, 김재수, 박두순, 이칠우, 박찬선, 이계명, 홍 기 등과 활동.
1978년 3월 1일 상주초등학교로 전근
1979년 6월 19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우수문화 작품집 발간 지원대상자로 뽑힘. 8월 15일 제3동시집 『젖줄을 물린 흙』
(그루사) 발간. 문예진흥원에서 우수 창작집 지원금 받 음.
1980년 1월 19일 제6히 한국아동문학상 (한국아동문학가협회 이원수 제정) 받음,
3월 1일 상주 은척국민학교 교감으로 승진.
5월 15일 ‘세계 아동의 해’ 기념 교사 작품 모집에서 동시 부문 금상 (작품: 흙 연작) (문교부장관상) (심사위원: 윤석중, 어효
선)
3인 동시집 『마을 이야기』(교학사) 김재수, 박두순과 함께 발간.
1981년 상주아동문학회 동인지 『앞들』 발간 9월 1일 상주활룡초등학교 교감으로 전근
1982년 7월 31일 한국아동문학 제6집에 평론 ‘동시 동요에 대한 아동들의 반응’ (P.52-60)발 표.
1983년 4월 15일 <온 가족 애송시집>(예림당 발행) 동서양 시인 48인선에 최춘해의 동시 ‘시계가 셈을 세면’이 뽑힘. 5월 5일
동시집 『흙처럼 나무처럼』(그루사) 발간
‘푸른 기장’ (대한교육연합회 주최 현장교육 발표대회-논문: 부분적 접근법에서 종합 적 접근법으로 이어 주는 글짓기 교육)
으로 문교부 장관상 수상.
1984년 3월 1일 상주함창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전근. 경북아동문학회 창립. 이오덕, 김녹촌, 김상문 등과 활동. 6월 30일
『아동문학평론』31호에 계간 평 ‘절실한 내용이 감동을 준다’ 발표.
7월 10일 동시집 『나무가 되고 싶은 아이들』(인간사) 발간. 9월 30일 아동문학 평 론 32호에 계간평 ‘감각적 시와 이야기
시’ 발표.
10월 9일 제17회 『세종아동문학상』(한국일보 제정) 받음. (수상 작품: 빈 새둥지 외 3편)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부문 심사 (홍 기 당선). 12월 31일 아동문학 평론 33호에 평 론 ‘표현은 쉽되 뜻이 깊은 시’ 발표.
1985년 3월 31일 아동문학 평론 34호에 계간평 ‘이해와 감성이 조화로운 시’ 발표.
11월 1일 <한국대표 동시집 ‘누군가 그리우면>(예림당 발행)에 최춘해 동시 ’새소리‘ ’이른봄‘이 선정됨.
1986년 3월 1일 청송군 광덕국민학교 교장으로 승진. 6월 30일 아동문학평론 39호에 계간평 ‘성실한 창작 태도’ 발표. 9월 30
일 아동문학평론 40호에 계간평 ‘누구를 위해 동시를 쓰는가?’ 발표. 아동문학평론 41호에 계간평 ‘어린이의 편에 서서 써야
어린이의 가 슴을 울린다.’ 발표. 외손녀 장정은 출생.
1987년 6월 15일 아동문학평론 43호에 계간평 ‘사랑이 진한 시’ 발표. 9월 15일 아동문학평 론 44호에 계간평 ‘쓰지 않고는
못 배길 내용’ 발표. 12월 15일 아동문학평론 45호에 계간평 ‘주소가 분명한 아동문학’ 발표.
1988년 2월 25일 동시집 『운동선수가 된 동원이』(대교출판) 발간
3월 1일 의성군 구계국민학교로 전근. 외손녀 장정아 출생.
198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심사 (김영은의 ‘꽃집 아주머니 당선). 9월 20일 세종아동문학상 심사 (수상자: 권영상). 『의성문
학』에 작품 발표.
9월 1일 선산군 구봉국민학교로 옮김.
1990년 3월 1일 제5차 교육과정 국민학교 5학년 국어 교과서에 동시 ‘이른봄’ 수록.
4월 15일 홍기 동시집 <하늘 꽃>에 최춘해의 작품 해설(P. 126-137). 8월 10일 유길 시집 <봄 할머니>에 머리말 ‘건전한 말과
건전한 사상’ 집필. 12월 22일 경북문단 창간 특집 좌담 <어제와 오늘> 동참.
1991년 2월 25일 동시집 『언제 나도 어른이 되나』(그루 출판사) 발간. 4월 30일 ‘1991년 한국아동문학 작품선(한국문화예
술진흥원 간)에 동시 ’동일된 뒤‘ 뽑힘.
9월 1일 선산군 고아국민학교로 옮김.
1992년 5월 15일 ‘1992 한국아동문학 작품선 (한국문화예술진흥원 간)에 동시 ’학교 갈 때‘ 뽑힘. 10월 20일 아동문학평론가
최지훈 저 <동시란 무엇인가>에 최춘해의 작품론 게재. 12월 5일 동시집 『뿌리 내리는 나무』(그루출판사) 발간. 회갑을 겸
한 출판기 념회. 경북아동문학회 회장 피선.
1993년 3월 1일 구미시 금포국민학교로 옮김. 3월 31일 ‘1993년 한국아동문학 작품선(한국문 화예술진흥원 간)’에 동시 ‘아
버지와 딸’ 뽑힘. 5월 28일 제3회 방정환 문학상 (아동 문학 평론사 제정) 받음. 11월 20일 한국문협 선산지부장 추대. 12월 9
일 제37회 경상북도 문화상 문학부문 (경상북도지사) 받음. 12월 10일 한국문협 선산 지 부장 피선. 세종아동문학상 심사 (수
상자: 노원호)
1994년 경북아동문학회지 『떠돌이 할아버지』(그루사) 발행. 6월 30일 <아동문학평론> ‘이 시대의 아동문학가’ 특집. 12월
11일<1995 한국문학 작품선>(한국문화예술진흥원 발 행)에 최춘해의 동시 ‘흙 39’가 뽑힘.
손자 光烈 출생. 한국문협 구미지부 회장에 피선. 9월 1일 구미인동초등학교로 옮김.
1995년 6월 30일 <아동문학 평론> 여름호 통권 제75호)에 최명표의 ‘최춘해론’ 게재. 10월 25일 동시집 『나도 한 그루의 나
무』(그루사) 발간
1997년 4월 25일 <1996 한국문학 작품선>(한국문화예술진흥원 발행)에 최춘해의 동시 ‘흙 7’ 뽑힘. 제9회 『한글문학상』(회
장 안장현) 본상 수상.
대구아동문학회장에 피선. 대구아동문학회 창립 40주년 기념호 『정다운 고향』(아 동문예사) 발간.
1998년 10월 9일 동시집 『아기 곰을 기르는 들개』(그루사) 발간. 2월 28일 인동초등학교 교장에서 정년퇴임. 국민훈장 동
백장 받음. 대구아동문학 40호 기념 『정다운 마을』 (그루사) 발간.
1999년 3월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문화센터 발간(No.6 Fukuromachi, Shinjuku-ku, Tokyo,,Japan) <THE EARTH>에 최
춘해의 동시 ‘흙’ (The Soil)이 한국 대표작으 로 뽑혀서 실림, 대구아동문학회 연간집 41호 『정다운 이웃』(그루사) 발간.
2000년 3월 20일 동시집 『흙의 향기』(아동문예사) 발간. 문예진흥원에서 우수 창작집 지원 금 받음. 9월 25일 <저학년 고
학년 좋은 동시>(글동산 발행)에 최춘해의 동시 ‘아빠 돌아올 시간’과 ‘나무가 되고 싶은 아이들’ 뽑힘. 대구아동문학회 연간
집 42호 『정다 운 목소리』(그루사) 발간. 대구아동문학회 홈페이지 설치. 매월 『대구아동문학회 회보』발간.
2001년 3월 5일 <참 좋은 동시 60>(문공사 발행)에 최춘해의 동시 ‘시계가 셈을 세면’과 ‘흙 1’, ‘흙 2’ 등이 뽑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20명의 작가들의 60편의 동시가 실려 있 다. <시와 동화>(강정규 발행)에 <신현득, 그의 면모(인간과 문학) ‘하나에
서 열까지 동심, 그 자체’ 발표. 8월 25일 산문집 『동시와 동화를 보는 눈』(그루사) 발간. 고 희를 겸한 출판 기념회. 대구아
동문학회 연간집 43호 『아름다운 길』(그루사) 발간.
한국아동문학인협회 부회장 피선.
2002년 12월 10일 기행 동시집 『연오랑과 세오녀』(북랜드) 발간.
대구아동문학회 연간집 44호 『아름다운 뜰』(그루사) 발간.
<대구문학>52호 (대구문인협회 발행)에 ‘의인화는 동심 그 자체, 순수성 의미’ 발표.
<생각과 느낌>(생각과 느낌사 발행)에 ‘영어 교육과 우리말 교육’ 발표.
<여백집(餘白集)>(북랜드 발행)에 ‘윤운강의 인간과 작품 세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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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내용, 직장 소개
196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 (겨울 땅속) (심사: 김성도 이재철)
1967년 <한글문학>지 (심사 : 조유로 이원수)
1980년 한국아동문학상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회장 이원수)
1984년 세종아동문학상 (한국일보사)
1993년 방정환 문학상 (아동문학평론사 주간 이재철)
1993년 경북문화상(문학부문) (경상북도 도지사 이의근)
1951년~1980년 초등학교 교사 상주군, 대구시
1980년~1986년 초등학교 교감 상주군
1986년~1998년 초등학교 교장 청송군, 의성군, 선산군, 구미시
1998년 2월 28일 구미인동초등학교에서 정년퇴임
Ⅲ. 문학을 하게 된 동기 :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글짓기 지도를 하다가 나도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신현득 김종상 같은 동호인을 만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상주에서는 글짓기회가 있었는데, 회원들이 글짓기 지도를 활발히 해서 상주 아이들의 글이 신문이나 잡지에 쉼없이 발표되었고 백일장이나 현상모집에서도 두드러지게 많이 입상되었다. 그리고 윤석중 선생의 안내로 상주 아이들의 작품을 서울에서 시화전을 열기도 했다. 그 작품으로 <동시의 마을>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윤석중 선생은 상주를 ‘동시의 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기도 했다. 이때 글짓기 지도 교사들은 글짓기 지도를 하는 목적이 단순히 글을 잘 쓰게 하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생활을 지도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스스로 글짓기 지도에 열성을 다 했다. 아이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글짓기 지도를 하기도 하고 자비로 아이들을 대구 서울 등 외지의 백일장에 인솔해 가기도 했다.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 노는 날에도 아이들 작품을 싣는 어린이 신문을 등사판으로 만들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상주읍에서 글짓기 회원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나는 상주읍에서 8km 떨어진 사벌에서 한 번도 빠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주일이 멀어서 중간에도 만나야 될 만큼 회원들이 보고 싶었다. 글짓기회에서는 글짓기 지도 방법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각자의 작품에 대한 합평도 했다. 당시에 전국 아동문학 교단 동인회가 있었는데, 내가 간사를 맡았다. 이 회에는 회장도 없고 간사가 모든 일을 맡아서 했다. 전국의 교단에서 아동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자기의 작품을 회원 수만큼 등사르 해서 간사한테 보내면 간사는 회원 수만큼 <은방울>이라는 작품집을 만들어 회원에게 우송을 했다. 전 달의 작품에 대한 평을 함께 실었다. 21호(1965년 7월 1일 발행)와 28호(1965년 12월 1일 발행)는 인쇄판으로 내었다. 서문은 이원수 고문님이 썼다. 이 소문이 널리 퍼지자 중앙일보사에서 최종률 기자가 취재하러 내가 근무하는 사벌초등학교에 왔었다. 중앙일보 문화면에 전면 특집 기사(1966년)로 실었다. 최종률 기자는 내가 거처하는 사벌초등학교 사택에서 하루 밤을 묵어서 갔다. 상주 글짓기 회원과 교단아동문학 동인회 회원을 만난 것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
Ⅳ. 기억 나는 등단 당시 향토 문단 상황(분위기) : 1967년에는 대구시가 경상북도에 합쳐져 있을 때였다. 매일신문 신춘문예 심사를 이재철, 김성도, 김진태 세 분이 해마다 심사를 했다. 전 도에서 아동문학에 등단을 한 사람은 손꼽을 정도의 숫자밖에 되지 않았다. 신현득, 김종상, 허동인, 강청삼, 권태문, 김한규 등이다. 문학 단체로는 1957년에 창립된 대구아동문학회 하나뿐이었다. 이응창, 김성도, 김진태, 윤운강, 여영택, 이민영, 신송민, 정휘창, 서월파, 윤혜승, 서광민, 박인술 등이 창립회원이었다. 대구아동문학회에서는 동인지를 발간했다. 창간호<달뜨는 언덕>을 1958년에, 2호<꽃과 언덕>을 1959년에, 3호<오손도손>을 1966년에, 4호 <나무는 자라서>를 같은 해에 발간했다. 이 회에 들어가서 동인지에 작품을 발표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했다. 회원은 원화여중고 교원과 계성고등학교 교원이 많았고, 신송민, 신현득, 김선주, 허동인 등 초등학교 교원들이 함께 활동했다. 김태문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회에 들어오려고 했으나 거절당했다. 등단을 해야 입회 자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김태문은 김정일 등과 별도의 문학 단체를 결성했다. 그것이 오늘의 영남아동문학회이다.
Ⅴ. 문인들과의 교류기 : 한 주일에도 몇 차례씩 만난 사람은 신현득이다. 신현득이 칠성초등학교 근무할 때 칠성초등학교 근처 어느 오두막집 셋집에 찾아갔다. 저녁 식사 시간이다. 식량이 없어서 콩나물이 더 많게 섞인 보리밥을 대접 받았다. 아마 불청객이 갔기 때문에 부인은 굶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양식이 모자라 허덕이던 때에 내가 왜 찾아가서 꼽사리를 끼었는지 후회가 된다. 신현득이 칠성초등학교에 근무할 때는 칠성학교 근처 막걸리 집에서, 대구초등학교에서 근무할 때는 근처에 옥이 집이 있었는데 늘 술집에서 만나 막걸리를 먹으며 문학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주일에도 수 차례 만났었다. 우리가 만나면 가는 집이 정해져 있다. 염매 시장 안에 돼지 국물 집, 학원서점 옆의 가보세 등이다. 권기환, 이천규, 김선주 등 우리 또래끼리 만날 때는 <가보세>는 안 간다. 가보세는 맥주 양주를 파는 집이라서 술 값이 비싸다. 그래서 김성도, 이재철 등 귀한 분을 모실 때만 가보세에 갔다. 김진태 윤운강 정휘창 이응창 박인술 등 선배들이 있었지만 대접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서로 가난하게 살면서도 술값은 서로 내려고 다투었다. 신현득의 고집을 못 이겨서 내가 질 때가 많다. 평소에도 정의감이 강해서 비뚤어진 것을 그대로 두고 못 본다. 향촌동 어느 술집에서 행패를 부리는 두 청년을 봤다. 우리 둘은 거기에 끼어들었다. 신현득이 경우에 어긋난 사실을 따질 때 나도 신현득을 두둔했다. 그랬더니 그 건장한 청년 둘은 우리들 목을 졸랐다. 숨이 막혀서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런 뒤에 오래 목이 아팠었다. 뒤에 알고 보니 그 청년은 향촌동의 유명한 깡패라고 했다. 그만하기를 다행이라고 했다.
상주에 있을 때 이야기다. 이무일, 김종상, 이천규, 강세준 권태문 등이 글짓기 지도와 작품 쓰기에 대한 연구를 하기 위해 자주 모였는데, 다 친하게 지냈지만 그 중에서도 이무일과 나는 가장 가까운 사이었다. 이무일은 나보다 나이가 7살 아래이지만 격의 없이 지낸다. 남녀 사이에 연애를 할 때 만나도 자꾸 만나고 싶은 것처럼 동성간인데도 자꾸만 곁에서 보고 싶었다. 이무일은 상주초등학교에 근무하고 나는 사벌초등학교에 근무할 때다. 우리 집에서 마음 턱 놓고 허리띠를 풀어 놓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아무 거리낌없이 속에 품은 이야기를 털어 놓으며 술을 마셨다. 아마 너댓시간은 흘렀을 것이다. 막걸리도 한 말쯤 먹었을 것이다. 드디어 속에 들어갔던 술이 되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동안 먹었던 술이 속에서 새끼를 쳐서 배가 되는 양을 토해냈다. 온 방에 술이 그득했다. 술을 입에도 못 대는 처가 방에 그득한 술을 처리하느라 땀을 뺐다. 우리 둘은 그런 뒤에 더 가까워져서 이무일이 작고하기 전까지 사뭇 가까운 사이로 지냈었다.
Ⅵ. 신현득이 말하는 최춘해 1. 혜암 최춘해는 시인이며 덕인이다. 세상은 兮巖 崔春海 시인을 詩人이며 德人이라 한다. 그의 시와 인격의 무게를 양편에 놓고 하는 말이다. 훌륭한 시인이며 덕을 갖춘 인격자라는 말이기도 하다. 문학 선배인 소설가 東里 金始鍾 선생이 그를 듬직한 바위에 견주어 兮巖이라 작호하였다. 호적 명은 춘매이다. 춘해의 조부 基淳 공이 장손으로 태어난 바다같이 넓고 봄처럼 온후한 사람이 되라는 뜻과 생명을 불러오는 봄 바다의 뜻을 기곁들여 춘해라 이름 지어 집에서도 부르고, 면 사무소 호적 서기에게 적어 주어 출생 신고를 부탁하였다. 그런제 적년이 되어 국민학교에 들어가려고 호적을 보니 이름이 春梅로 되어 있었다. 무식한 면서기가 海를 梅로 착각하였던 것이다. 항의를 하였으나 민의가 통하지 않던 일제여서 어쩔수없었다. 여자 이름 같기는 하나 남자의 아호로도 쓰이는 이름이니 그 이름으로 학교 생활과 교직 생활 30여 년을 마쳤다. 그러나 습작기부터 작품에는 본 이름 춘해를 사용하였고 그이름으로 데뷔하여 춘해를 필명으로 삼았다. 나에게 밭겨진 글제가 춘해의 인물론이다.그래서 작품론은 두고 나와의 교우 50년에 얽힌 이야기와 내가 생각하는 혜암 최춘해를 논해 보기로 한다. 춘해를 두고 그를 원망하는 이는 없다. 그런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 작은 체구여서 첫 인상에는 그리 넉넉한 이로 보이지 않을 테지만, 몇 번 춘해를 대하고 보면 그의 바위 같은 태도에 감화를 받는다. 그래서 兮巖이다. 아동문학 선후배들은 물론, 일반 문학인들도 그에게 감동해서 그를 높인다. “춘해 그분은 덕이 있는 사람입디다.” “진실된 분입디다.” 춘해가 속해 있는 대구의 여백문학, 이후문학 회원들이 나를 대하면 묻지고 않은 춘해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하는 걸 봐도 그렇다. 상주에서나 대구에서 또래들과 같이 지낼 때도 그러했다. 모두가 그를 앉을 자리에 앉고 설 자리에 서는 사람이라 한다. 그의 거동과 대화에서 그것이 나타난다. 문학인들 중에는 못난이 필자처럼 충동에 들뜨는 이들이 꽤 있다. 감정에 격하면 앞뒤,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공부를 하지 않는 이가 꽤 있다는 말을 듣는다. 분수에 맞지 않게 문단 지위를 노리는 정치꾼도 있다. 춘해는 이와는 전혀 다르다. 무슨 일에나 들뜨지 않고 차근차근 연구하고 공부한다. 서둘지도 않는다. 자세는 바위요, 걸음은 소 걸음이다. 쉬지 않는다. 2. 사벌의 흙을 노래한 춘해의 문학 춘해의 고향은 감나무와 곶감의 고장 상주다. 상주에서도 농촌인 사벌면 덕가리 덕골이다. 상주는 신라 12대 침례왕 때까지 사벅국이라는 독림 왕국이었고 그 뒤 신라 9주의 하나가 되었으며, 경주와 함께 고려 때부터 경상도 이름이 돼 준 영남의 중신지였다. 임난 때는 이일, 정기룡 장군 등 구국의 영웅들이 피 흘려 지킨 충절의 고장이기도 하다. 웅군 상주의 생산품을 흰 쌀, 흰 고치, 흰 목화를 뜻하는 三白이라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하얀 분을 쓴 곶감을 앞세원 四白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 상주에는 감과 감나무가 많고 사벌면 덕가리는 더욱 그렇다. 그것이 춘해의 노래에 잘 나타나 있다. 꼭지 달린 감이/손수레를 타고 온다.//아스팔트에 덮여서/흙이 숨을 못 쉬는/대구 한복판에//상주군 사벌면 덕골, 황새골/우리 밭 우리 감나무 가지를/붙잡고 있던/엄마 젖꼭지만큼이나/손에 익었던 감//할매 쪽진 머리처럼/꾸미지 않은 감꼭지//아버지 목소리만큼 /떫덜 구수한 맛(후략) 최춘해의 ‘꼭지 달린 감’ 일부 혜암 최춘해에게는 사벌 흙이 키운 감나무, 그리고 꼭지 달린 감이 어머니의 젖꼭지마치나 입에 익은 성장의 영양소였다. 사벌면은 사벌왕국의 터전이었다.이 고장의 유적으로 사벌왕릉이 있고, 임란의 용장 정기룡 장군의 사당이 있다. 낙동강 본류가 이 고장의 명소 경천대를 돌아 흐른다. 상주 사벌의 흙은 한 사람 시인을 기르기 위해 흙이 생명을 가꾸어 가는 모든 것을 보여 준다. 춘해는 사벌의 흙을 노래하다가 흙의 시인이 되었다. 최춘해의 문학은 무엇이거나 사벌의 흙과 연관이 된다. 3. 춘해는 가정적인 사람이다. 춘해는 1932(임신생)년 7월 8일에 경주최씨 29대손으로 부친 鍾壽공과 모친 金順女 씨 사이에 장자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생존하신 중시하였다. 어려서부터 말썽부리지 않고 착하다는 말만 들으며 자랐다. 할머니 이씨는 일찍 둔 손자를 당신 손으로만 기르셨다. 춘해는 할머니를 어머니로 알고 자랐다. 학교 교원으로 출발했을 때는 할머니 별세 이후였다. 춘해는 할머니 빈소에 월급 봉투를 놓고 울었다. 길러 주신 할머니가 계셨으면 첫 월급으로 대접을 해 드릴 텐데 하는 마음 아픔 때문이었다. 그 뒤 여러 형제와 삼남매의 자녀를 거느린 가장이 되었고, 문중 일을 돌보는 문장이 되었다. 춘해의 깨끗한 글은, 깨끗하고 단합된 가정과 가정생활에서 연유된 일면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喜壽인 그는 白壽를 바라보는 모친을 모시고 있다. 그 동안의 효도를 여기에 다 기록할 수 없다. 참된 아동문학은 참된 가정생활에서 시작된다. 가정 생활이 화목하고 깨끗해야 자녀 사랑이 가능하며, 자녀 사랑을 넓혀서 나라와 세계의 어린이를 사랑할 수 있다. 전날 어느 때에 참으로 가정생활이 지저분하여 세 번째 부인과도 별거를 하고, 자기 자녀들은 버려 둔 채 나라 어린이를 걱정한다며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라는 위서를 내놓은 매스컴 조작의 아동문학 위인이 있었다. 위인이 아니라 흔하지 않은 위선자다. 이 사람의 밑바닥을 아는 이들은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가 아니라 ‘내 아이를 어찌할 것인가’로 제목을 바꾸어야겠군. 하고 웃었다. 춘해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은 그 주인공이 너무도 춘해와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아동문학인은 다른 아이를 사랑하기에 앞서 자기 아이부터 사랑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가정을 화목하게 할 의무가 있다. 이 점에서도 춘해는 본보기다. 4. 고향에서 문학을 가꾸던 시절 문학의 또래와 최춘해와의 만남은 상주에서 시작되었다. 춘해의 또래는 아동문학 운동과 글짓기 운동으로 뭉쳐 있었다. 휴전 후인 1950년대 중후반에 전국에서 글짓기 운동이 일어났는데, 열성 교사들은 불고가사하고 힘을 쏟았다. 상주에서도 같이 손잡은 글짓기 교사들이 있었다. 기억되는 분들은 현재 수필가로 활동중인 박노익 선생을 중심으로, 김동극, 이철하, 정상묵, 이무일, 이천규, 강세준, 조만률, 이대섭, 권태문, 김재수 최춘해, 김종상, 필자 신현득 등이었다. 이들의 연구 주제는 ‘어린이들에게 시 창작이 가능한가?’였다. 당시까지 교육계에서는, 줄글은 어린이 누구나 쓰지만 시는 특수한 어린이만 쓸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상주글짓기회에서 ‘어린이들은 누구나 시를 쓸 수 있다는 것과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이것이 상주 글짓기회의 성과였다. 그러자 대구아동문학의 대부 김성도 선생과 새싹회회장 윤석중 선생이 상주를 ‘동시의 마을’로 이름 지어 주었다. 최춘해는 이 글짓기 우등 멤버로 같이 활동하였는데, 상주읍에서 열리는 월례회마다 사벌 20여 리에서 자전거를 타고 와 개근을 했다. 5. 대구의 또래들 그 뒤 춘해와 필자인 나는 대구에서 만났다. 춘해‧권기환‧김선주와 필자, 이렇게 넷이서 대구아동문학의 멤버가 되었는데 넷이서 뭉쳐 다녔다. 나이로 따지면 최춘해가 장형으로 권기화‧신현득보다 한 살 위였고, 김선주는 권과 신보다 하나 아래였다. 우리는 주로 막걸리 집에서 자리를 같이 하였는데 쪽샘, 옥이네집 등이 기억에 남아 있다. 대화는 문학 이야기에서 분단 민족에 대한 걱정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넷은 성격이 비슷해서 우스개를 할 줄 몰랐다. 남자 셋만 어울릴 때가 있었지만 잡스런 말은 흥미가 없어서 하지 않았고, 의논할 일이 앞에 놓였을 때는 역시 춘해가 형 몫을 하였다. 춘해의 판단과 의견이 가장 정확하고 옳았던 것이다. 생각이 격하면 춘해는 취한 기분에 전봇대를 잡고 우는 때도 있었다. 6. 공부하고 가르치고 공부를 하지 않는 문학인은 남의 추종자밖에 되지 않는다. 춘해는 끊임없이 공부를 한다. 그래서 주변학이 넉넉하다. 그의 문학에 대한 지식은 대화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런 면에서도 춘해는 황소 걸음이다. 그는 재치로 사는 작가가 아니라 공부로써 자기 문학을 다스린다. 그것이 그를 믿음성 있는 문인으로 인정 받게 한다. 그의 논지 <동시와 동화를 보는 눈>(2001. 그루)은 국판 400여 쪽의 것으로 53개 소항목에 걸쳐 아동문학을 논하였다. 이 논저에서 저자는, 어린이편에서 창작하는 문학, 동심의 문학, 사랑의 문학, 주소가 분명한 문학, 만인이 즐기는 문학, 성실한 삶에서 창작되는 문학이 아동문학이라는 지론을 펴고 있다. 그는 이렇게 공부한 자신의 창작법을 쌓아 두기만 하지 않고 후배들에게 전하기 위해 무료로 운영하는 ‘최춘해 아동문학 교실’을 열었다. 최춘해 아동문학 교실은 혜암 선생 최춘해가 정년으로 교직에서 나온 뒤, 2003년 7월에 신문의 1단 기사로 세상에 알려졌다. 면접으로 수강생을 뽑아 자택에서 강의를 시작하였는데, 최춘해 필생의 문학 운동 사업이다. 지금까지 4회의 수료생을 내었고, 졸업생이 106명 등단 작가 38명을 배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개강 이듬해인 2004년 7월에 첫 수료생들이 자치적으로 조직한 것이 춘해의 아호를 딴 ‘혜암아동문학회’이다. 이 모임에서 내는 기관지 <헤암아동문학> 창간호의 머리말에서 혜암 선생 춘해는 어린이편에서 작품을 써라. 서정을 중요시하라. 의인화 자체를 동심으로 여기라. 어린이의 삶이 있는 작품을 써라. 문학성과 교육성의 조화를 이루게 하라는 등 그의 아동문학관을 재차 강조한다. 7. 혜암 최춘해, 우람한 나무 흙의 시인 혜암은 첫 시집 <시계가 셈을 세면>(1967)에서 시작하여 모두 13권 시집을 엮었다. 그 중에는 <젖줄을 물린 흙>(1979), <흙처럼 나무처럼>(1983), <흙의 향기>(2000)와 같은 많은 흙 연작이 있고, <나무가 되고 싶은 아이들>(1984), <뿌리 내리는 나무>(1992), <나도 한 그루의 나무>(1995) 등 자신을 비유한 많은 나무 역작을 발표해 왔다. 나무는 흙을 의지해 열매를 익히는 것이므로 나무의 주제는 곧 흙 연작의 연장이다. 어둠 속에서도/폭풍우 속에서도/가물면 가문 대로/꾀부리지 않고 산다.//-내가 겪어야 할 일.//추위도 참고/더위도 참고 목이 말라도/배가 고파도/혀를 깨물며/입 떼지 않고/참고 산다.//내가 찾아가지 않아도/참새가 와서/아침 인사를 해 주고//햇볕은 날마다/길을 잃지 않고 찾아들고/바람은 산 넘고 물 건너/쉴 새 없이 모여들고//하늘엔 밤마다/열매 맺을 날을/가늠해주는/별이 와서 박힌다.//별만큼이나 많이 달린 열매/참으면서 살아도/마음은 부자다. - 최춘해 ‘나무’ 전문 최춘해의 역작 ‘나무’를 읽으면 작품에서 풍기는 그의 인생 철학을 또 한 번 접하게 된다. 혜암 최춘해의 삶이 이 시편 그대로이다. 주제의 나무는 사벌의 흙이 키운 시인 최춘해다. 춘해는 세월이 주는 대로 자기 열매를 익혀 온 우람한 나무다. 춘해의 문학도 그의 인격도 모두 사벌의 흙이 키웠다. (2007년 12월 31일 발행 <한국아동문학 24호)에 실린 글)
Ⅶ. 최춘해의 대표작 시계가 셈을 세면
아이들이 잠든 밤에도 셈을 셉니다. 똑딱똑딱 똑딱이는 수만큼 키가 자라고 꿈이 자라납니다. 지구가 돌지 않곤 배겨나질 못합니다. 씨앗도 땅속에서 꿈을 꾸어야 합니다. 매운 추위에 떠는 나무도 잎피고 꽃필, 그리고 열매 맺을 꿈을 꾸어야 합니다. 시계가 셈을 세면 구름도 냇물도 흘러갑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 바위도 자리를 뜰 꿈을 꿉니다. 시계가 셈을 세면 모두모두 움직이고 자라납니다. 흙 ․ 4
흙의 입김으로 저리도 많은 생명이 태어난다. 남에게는 많아 보여도 어느 것 하나라도 많다고 생각되지 않는 흙. 흙의 따슨 입김이 배어들면 그것이 곧 힘이 된다. 그래서 호박 덩굴이 죽- 죽- 벋어 가고 미루나무 키가 저렇게 잘도 큰다. 싱싱한 푸른 잎에서 나무들의 즐거운 목소리를 듣는다. 앞으로 앞으로 척척 나아가는 나무들의 발자국 소리. 저마다 피운 꽃은 흙에서 배운 고운 마음의 표시다. 꽃이 풍기는 향기도 흙에서 배운 마음이다.
흙의 입김이 고여서 귀여운 감이 된다. 불어가는 풋감의 무게를 흙이 받아 안고 있다. 나무가 되고 싶은 아이들
너희들은 나무다 하늘이 있어 쳐다볼 수 있고 땅이 있어 딛고 설 수 있는 걸 고맙게 여긴다. 어루만져 주는 해님의 따슨 손길도 돌아오는 몫 더는 바라지 않는다. 늦꽃을 피울지라도 덜 되고 어설픈 채로 서둘지는 않는다. 꾀부릴 줄 모르는 걸 자랑으로 여긴다. 혜성학교 어린이들은 나무가 되고 싶어 오솔길 따라 걸으며 나뭇잎과 이야기하고 진달래꽃도 만나고 패랭이꽃도 만난다. 겨울 강물
나룻배는 얼어붙었어도 얼음장 밑으론 물이 흐른다. 왜놈들이 총칼을 휘둘렀어도 겨레의 가슴 깊은 곳엔 살수대첩 때 을지문덕의 피가 줄기차게 흘렀었다. 얼음이 두꺼울수록 얼음장 밑 물살은 거세듯 임진왜란, 6․25……. 한 고비씩 추위가 휩쓸고 가면 겨레의 가슴 속 물살도 그만큼 거세진다. 나는 지금 낙동강 얼음판 위에 서서 가슴 속 물살을 짚어 본다. 아침 숲 속
솔잎에서 나온 싱싱한 바람으로 마음의 티를 닦아낸 산새들. 맑게 닦인 목소리가 굴러 나온다. 높은 산 숲속을 지나온 햇볕은 더 밝고 더 따스하다. 솔숲 바람에 닦인 하늘은 더 맑다. 숲속 아침 공기는 코가 찡한 박하 냄새. 어둠이 걷히면 하룻밤 못 본 사이가 서로 반가워서 눈짓으로 몸짓으로 숲속 식구들 인사를 나눈다. 차 소리,기계 소리가 없는 여기서는 목소리가 부드럽다. 산새가 지저귀어서 더 고요하다. 낮 닭이 울어서 더 고요하다. 송아지 울어서 공기가 더 부드럽다. 굽이치는 낙동강 꼬부랑 오솔길. 높았다 낮았다 한 산봉우리. 가지런하지 않아서 더 어울린다. 나무는 가지를 뻗고 싶은 대로 뻗고 칡 넝쿨은 가고 싶은 대로 산을 긴다. 생각이 열리는 나무
안테나는 지붕 꼭대기에 높이 솟아 공중에 떠도는 말들을 잡고, 감나무도 떠도는 말들을 잡으려고 키가 자란다. 손바닥을 펴서 빗방울을 받아도 보고 햇살을 받아 들고 주물러도 보고 바람을 감아 쥐고 작게 크게 흔들어도 보고 달빛 강물 속에 멱을 감아도 보고 ......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아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하느님께 기도를. 생각이 떠돌다가 키가 자란 감나무에 잡혔다. 주렁주렁 생각이 열리는 나무 생각이 익어 간다. 감이 붉어 간다. 나무가 어찌 생각이 없나
옆자리에 누가 있으면 거기로는 가지를 벋지 않는다. 손을 벋으려다 모무린다. 남에게 해될까 봐 다른 쪽으로만 손을 벋는다. 남이 받을 햇볕을 가로채지 않기 위해서다. 나무가 어찌 생각이 없나. 바람이 세차게 불면 몸을 굽혀 주고 날씨가 맑은 날엔 기분이 좋아서 푸른 하늘로 팔을 치켜든다. 목마를 때 비라도 한 줄기 내리면 좋아서 반가워서 우쭐거린다. 틀림없이 노래도 부를 게다. 꽃봉오리가 탐이 나서 가지를 꺾으면 '뚝'하고 소리를 지른다. 눈물도 흘렸을 게다. 내 손가락 하나 부러진 것만큼 아팠을 게다. 산꼭대기에 올라와서
비슬산을 오른다. 우거진 숲속 오솔길 땀을 닦으며 숨을 몰아쉬며 산꼭대기까지 올랐다. 해발 천 미터 산꼭대기에는 큰키나무는 없다. 바람에 몸이 날릴 것 같다. 서릿발이 하얗다. 바위에 기대서서 올라오던 길을 되돌아본다 나무가 바람을 막아 주었다는 걸 나무가 없는 곳에 와서야 깨달았다. 내가 살아가는 데도 내 가까이 있는 분이 바람을 막아 준다는 걸 모를 번했다. 겨울 풀
목숨을 다한 마른 풀잎이 한겨울에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씨앗에서 새 생명이 태어나기까지,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나기까지 걱정이 돼서 자리를 못 뜬다. 내가 잠잘 때 내가 이불을 차 던지고 감기나 걸리지 않을까 배탈이나 나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 내 곁을 못 떠나는 우리 엄마처럼. 묵은 풀은 제 허리를 꺾어서 온 몸으로 덮어 주고 있다. 바람 막이가 되고 싶어 자리를 지키고 있다.
Ⅷ. ‘흙’을 소재로 쓴 작품 1. 흙을 소재로 다루게 된 이유 나는 농촌에서 태어나 농촌에서 자랐으며 흙과 더불어 살았다. 나도 흙의 한 부분이다. 봄에 새싹이 돋고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보고 흙이 신비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동심의 원초적 생각인 물활론의 눈으로 흙을 보게 되었다. 흙을 소재로 동시를 썼다. 연작으로 썼다. 그때가 1979년 세계 아동의 해이다. 문교부와 한국일보사 공동 주최로 세계 아동의 해를 기념하여 동시 동화 현상모집을 하였다. 시․도 대회를 거쳐 전국 대회로 이어졌다. 흙 연작 동시 8편을 투고하여 전국 대회에서 동시 부문에 금상을 받았다. (동화부문에는 김종상) 그 뒤부터 흙을 연작으로 쓰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연작을 쓰면서 지구를 살리는 데도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온 지구가 오염 또는 파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작품을 쓰는 사람이 당면한 절실한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 흙이란 것은 ‘암석이 부스러져 된 분말’이라는 사전적인 뜻의 흙이 아니다. 토양(土壤), 대지(大地), 자연(하늘, 바다, 강, 동식물) 등을 모두 포함시킨 것이다. 그뿐 아니라 흙은 뿌리, 어머니, 고향 등 여러 가지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런 넓은 의미의 흙을 작품으로 승화시키자는 것이다. 흙을 사랑하는 것은 고향을 지키는 것이요, 전통을 살리는 것이다. 순수해지는 것이요, 이웃끼리 정다워지는 것이다.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요, 베푸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느긋하게 참고 순리에 따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욕심을 내거나 억지스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문명의 발달로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모여들고 있다. 농산물 개방으로 앞으로는 농촌을 더 많이 떠날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흙과 점점 멀어지고 인심도 각박해지고 있다. 흙을 멀리하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간접으로라도 흙을 겪게 하기 위해서 흙을 소재로 쓴 문학 작품이 절실히 필요하다. 더 늦기 전에 흙을 소재로 한 작품을 앞장서서 써 보겠다는 다짐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2. 흙이란? 흙을 한자로는 토양(土壤)이라고도 쓴다. 土자는 초목이 땅 위로 나올 때 싹에 흙이 묻어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壤자는 土변에 襄(도울 양)자를 붙인 글자이다. 곡식을 길러 주고 농사짓기에 도움이 되는 부드럽고 고운 흙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흙은 모든 생물이 태어나서 잘 자라도록 도와주는 사랑과 봉사의 뜻이 있다. 목숨을 가진 모든 것들이 태어나서 살아가도록 해 준다. 봄에 밖에 나가보면 흙이 있는 데는 어디든지 목숨의 싹이 돋아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온갖 벌레와 동물들이 기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겨울 동안에 품안에 안고 있다가 따뜻한 봄이 돼서 제대로 살아갈 만할 때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어머니가 아들딸을 사랑하듯이 흙은 모든 생물을 감싸 안아 준다. 그 많은 생물들이 자라고 꽃을 피워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먹을 것을 다 대 준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그냥 주기만 한다. 또 흙은 정직하다.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는 콩이 나지 절대로 팥이 나지 않는다. 부지런한 농부한테는 풍성한 곡식을 거둬들이게 하고 게으른 사람한테는 절대로 곡식이 잘 되게 하지 않는다. 땀 흘려 일한 만큼만 보람을 느끼게 한다. 이 세상 모든 생물들이 흙의 한 부분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흙에서 나는 것을 먹고 살아간다. 하늘, 산과 들, 강, 바다, 동식물 등, 이런 자연을 숨 쉬며 그들이 주는 은혜를 입고 살아간다. 자연은 우리들에게 말없이 수많은 이치를 끝없이 가르쳐 준다.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배우고 슬기를 얻고 바르게 사는 방법을 배운다. 사랑을 배우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을 배운다. 여기서 흙이라고 한 것은 흙 한 가지만이 아니라, 자연 모두를 통틀어 말한 것인데, 그 가운데 대표되는 것이 흙이란 뜻이다. 그러면 세계의 철학자, 시인, 작가들은 흙에 대해서 어떤 명언을 남겼는지 알아보자. 1) 흙에 대한 명언(어록) ○ 만물은 흙에서 나고 흙으로 돌아간다. (크세노파네스/斷片) ○ 농부에게 있어서는 흙-땅은 그대로 희망이었고 기쁨이었다. 그것은 그대로 종교였다. (이무영李無影/ 흙에 눈에) ○ 너희에게 초자연의 희망을 말하는 자를 신뢰하지 마라. 그들은 생명의 경멸자일 뿐 아니라 빈사자 (瀕死者)들이다. 대지에 반역하는 것이 가장 무서운 죄를 짓는 것이다. (F.W.니이체) ○ 인간은 푸른 초목 속에서 맑은 창공을 바라다보면서 살아야 한다. 인간은 원래 그런 것 들의 반려(伴侶)로서 태어났으니까 대지 위에 설 때 그때야말로 인간이 전 인격으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F.라이트) ○ 대지는 책보다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A.생텍쥐페리/인간과 대지) ○ 착하게 산다는 것은 자연에 따라서 산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L.A.세네카) ○ 자연은 인간에게 소요되는 바를 공급해 준다. (L.A.세네카) ○ 자연에 강제성을 가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그것에 순종해야 할 일이다. (에피큐로서/斷片) ○ 자연은 신의 예술이다. (A. 단테) ○ 자연은 견고하다. 그 보조(輔助)는 정확하고 예외는 극히 드물고 법칙은 불변이다. (J.W.괴테) ○ 신과 자연은 완전히, 서로 똑같은 두 개의 위대한 힘이다. (J.C.F. 실러) ○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 (C.V. 린네) ○ 예술에는 오류가 있을지 모르지만, 자연에는 오류가 없다. (J.드라이든 / 우화) ○ 자연은 말이 없다. (노자 老子) 3. 최춘해의 연작시 ‘흙(1-82)’ 주제별 분류 ① 어머니(또는 할머니)를 상징한 작품- 1, 2, 3, 4, 5, 6, 25, 26, 28, 29, 34, 36, 40, 48, 73, 75 모두 16편 ② 신비, 순수성을 상징한 작품 - 7, 10, 18, 33, 38, 41, 44, 52, 54, 56, 58, 60, 64, 65, 67, 68, 69, 71.74, 78, 79, 80, 82 모두 23편 ③ 토속 신을 상징한 작품 - 8, 9, 11, 13, 16, 19 모두 6편 ④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상징한 작품 - 12, 45, 모두 2편 ⑤ 고통을 받아 안는 신을 상징한 작품 - 14, 53 모두 2편 ⑥ 한 가족임을 상징한 작품 - 15, 21, 35, 39, 42, 66, 70, 76, 77, 81 모두 10편 ⑦ 순리를 지키는 신을 상징한 작품 - 17, 46 모두 2편 ⑧ 안식처임을 상징한 작품 - 20, 42, 50, 51, 72 모두 5편 ⑨ 농부(또는 사람)를 상징한 작품 - 22, 23, 30, 31, 32, 35, 37, 47, 49, 55, 57, 59, 61 모두 13편 ⑩ 고향을 상징한 작품 - 24, 27, 43, 모두 3편 신비, 순수성을 상징한 작품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어머니를 상징한 작품과 농부를 상징한 작품이다. 네 번째가 한 가족임을 상징한 작품으로, 이상은 각각 10편이 넘었다. 그 다음이 토속 신을 상징한 작품, 안식처, 고향, 뿌리, 고통, 순리를 상징한 작품 순이다. 주제별로 작품 한 편씩만 들어보겠다. ① 어머니(또는 할머니)를 상징한 작품 흙(2) 흙은 너무 지쳐서/겨우내 잠을 잔다./북풍이 몰아쳐도/곤하게 잠을 잔다.//살갗은 얼어도/품속 개구리 씨앗들을/제 체온으로 다독인다./잠 속에서도 다독이는 건/흙의 버릇이다./풀뿌리 하나라도/감기 들까 걱정이다.//입춘 무렵 흙은/잠이 깨어도/자는 척 누워 있다./품속 어린것들/선잠 깰까 봐. * 농촌에 살다가 도시 대구로 처음 이사를 와서, 단칸방에 아이들 셋이 엄마와 함께, 곤하게 잠자고 있는 걸 보면서 흙과 연관을 지어 써 보았다. 흙도 어머니 같다는 생각을 했다. ② 순수성을 상징한 작품 흙 18 가까운 나무가 눈을 뜬다./산들이 일어나서 꿈틀거린다./산의 품에 안겼던/산짐승과 산새들/잠긴 목소리를 고른다./꿩은 어제보다/목청이 더 다듬어졌다./골짝 물은 제 갈 길을/찾아서 흐를 줄 안다.//산새소리, 산짐승 소리/골짝 물소리……./새벽마다 맑은 소리/들으며 사는 산은/언제나 싱싱하다./세월은 흘러도/새벽마다 젊어진다. * 산골짜기에서 살면서, 새벽에 일어나 산이 좋아 산을 오르며 산짐승 소리, 산새 소리, 물소리들이 순수함을 느꼈다. 산은 더욱 싱싱해 보였다. 세월이 흘러도 산이 더 젊어지는 것은 새벽마다 맑은 소리를 듣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어울려 있는 자연이 신비스럽다고 느꼈다. ③ 토속 신을 상징한 작품 흙 8 우리 할머니 살아 계실 때/눈 다래끼가 나면/땅속에 티를 찾아 빼 주셨다.//햇살이 맨 먼저 와 닿는 데서부터/해 뜨는 쪽으로/내 나이만큼 걸음을 세어 가서/땅속에 숨은 티를/용케도 찾아내셨다//땅속에 티가 빠지면/내 눈이 시원하다./내 눈 다래끼도 없어진다.//날을 받지 않고/매흙질이라도 하고 나면/누구든 한 사람은 앓았다./흙의 비위를 거슬렀기 때문이다.//이럴 때 할머니는/손이 닳도록 빌어 주셨다.//할머니는 지금/흙과 한 몸이 되어서/마음 편히 누워 계신다. * 내가 어릴 때 할머니가 나를 위해 정성을 다해 애쓰시던 모습이 머리에 박혀 있었다. 흙을 신으로 섬기며 흙과 더불어 살면서 가족의 건강을 위해 손이 닳도록 빌던 할머니 마음이 곧 흙의 마음이라 생각했다. ④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상징한 작품 흙 45 제 갈 길을 찾은 강물/저 바위가 저렇게 닳도록/오로지 한길로만 흐른다.//한 우물을 파라는/강물의 말씀//삼십 리 읍내장/나룻배를 건너/발이 부풀도록 걸어 다녀도//밤낮으로 흘러 주는/강물이 고마워/붙박이로 사는/낙동강변 횟골 주민들.//잉어, 뱀장어, 가물치, 은어……./갖가지 물고기를 품어서 키우는/엄마 같은 강물의 마음.//강물 같은 마음으로/인정을 나누며/대를 이어/강 마을 횟골에서만 산다. * 불편한 오지의 낙동강변 횟골 주민들이 대를 이어 붙박이로 사는 것은 갈 길을 찾은 낙동강 강물의 말씀 덕일 것이다. 한 우물을 파라는 강물의 말씀을 나도 들을 수 있었다. 인정을 나누며 사는 것도 갖가지 물고기를 품어서 키우는 엄마 같은 강물의 마음을 닮아서일 것이다. 자연은 흔들리지 않는 뿌리와 같은 마음을 가르쳐 준다고 느꼈다. ⑤ 고통을 받아 안는 신을 상징한 작품 흙14 가슴을 터놓고/궂은 일, 서러운 일/다 받아들인다.//밤이 오면/어두움을 받아 안고/날이 새면/햇빛을 받아 안는다.//봄날 새싹들의/발돋움하는 소리도 듣고/살을 에어내는 추위에/손끝이 아려 울부짖는/나무들의 소리도 듣는다.//서러운 달빛 이야기도/논 물 속으로 받아 안는다./즐거운 이야기보다/괴롭고 어두운 이야기들을/더 많이 품고 있는 흙/걱정이 쌓여서/땅속은 비좁다. * 고통을 받아 안는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수와 석가여래가 고통을 받아 안았기에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고 따르고 있다. 그보다는 못하지만 우리 둘레에도 온갖 허물과 원망을 도맡아 받아 안고 살아가는 맏며느리나 단체의 중역들이 있다. 남들이 보지 않는 데서 어렵게 사는 이들을 위해 궂은 일 험한 일을 도맡아 몸과 마음을 바쳐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흙도 그런 역할을 맡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⑥ 한 가족임을 상징한 작품 흙․15 마당에 나가면/산들이 빙 둘러선다.//내가 태어나던 날도/그랬을 것이다.//쓸쓸한 날이면/불러서 말벗이 돼 주고/어쩔까 망설이다가/마당에 나가면/용기를 북돋아 준다.//길을 가다가/등산을 하다가/어려운 고비에 이르면/엄숙한 자세로/굵직한 목소리로/끈기가 있어야 한다고/타일러 준다.//내가 상을 받은 날은/함박으로 웃어 주었다. * 산은 늘 내 둘레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우울할 때는 위로를 해 주고 기쁠 때는 함께 즐거워해 주는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⑦ 순리를 지키는 신을 상징한 작품 흙․17 동산에 먼동이 턴다./오늘도 새벽닭이 울어 준다.//오늘은 춘분/해마다 맞는 날이다.//올해도 어김없이/복숭아꽃, 살구꽃은 필 게고/개구리도 울어 줄 게다./흙은 사랑의 손길로/보리 싹을 보듬어 줄 게고/나무가 목이 마르면/하늘은 비를 내려 줄 게다.//올해도 물은/높은 데서 낮은 데로/흐를 것이다./병아리 귀여운 모습을/얼른 보고 싶어 해도/3 주일을 품고 있어야/껍질을 벗는다./장독간 난초 싹이 보고 싶어/마음을 서둘러도/제때가 돼야/밖으로 내보내는 흙. * 내 마음이 아무리 조급해도 자연은 내 뜻대로 따라 주지 않는다는 걸 발견했다. 자연은 절대로 순리를 어기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⑧ 안식처임을 상징한 작품 흙 20 해님이 하루 일을 마치고/서산 넘어 갈 때면/들에서 일하던 농부도/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간다.//하늘을 날던 새들도/둥지를 찾아들고/해를 향해 가지를 뻗쳤던/나무와 풀들도/흙으로 마음을 돌린다.//풀밭에 고삐 매인 염소도/집으로 돌아가고파/매해해-/소리를 지른다.//집으로 돌아가는 건/즐거운 일/지금은 모두가/집으로 돌아가는 시각//날마다 돌아가는 집은/잠시 머무는 여관/긴 여행을 마치면/마지막엔/흙으로 돌아간다. * 돌아갈 집이 있다는 건 행복하다. 하는 일이 고돼도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즐겁다. 흙은 안식처인 집이 된다. ⑨ 농부(또는 사람)를 상징한 작품 흙 22 햇볕 굶주려/속 살 못 채운 벼 이삭/핏기 잃은 얼굴로/하늘 향해 고개 꼿꼿이 들고/뜨거운 햇살 내리기를/목마르게 기다립니다./오늘도 구름이 덥혔습니다./온 여름 하늘을 가리고도/벗겨질 줄 모르는 구름.//제비들이 전봇줄에 모여 앉아/강남 갈 의논을 하고/성급한 코스모스가/풀죽은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가을 풀벌레 소리 들리면/조바심이 납니다.//하느님!/지금부터라도 구름을 거두시고/햇살을 내려주소서/무서리가 내리기 전에/속살을 채워 주소서/과일 알알이/단물이 들게 하소서. * 일조량이 모자라서 곡식이 제대로 익지 못했을 때가 있었다. 농부들은 애타게 햇볕을 기다렸다. 곡식을 안고 있는 흙도 농부 못지않게 곡식과 과일이 익게 해 달라고 빌었을 것이다. ⑩ 고향을 상징한 작품 흙 43 고향이 나를 손짓하여/되찾는 흙/어머니처럼/덥석 안아 주는 흙/더워 오는 가슴.//흙의 품안에 안긴/할아버지 할머니/편안하고 만족스러운 듯//이웃도 일가친척 인정도/엷어졌다 두터워졌다 하는데/한결같은 건 고향 흙뿐.//한낱 풀씨, 한낱 솔 씨도/뜨거운 사랑으로/안아 키웠구나./새로 태어난 빽빽한/소나무, 감나무, 밤나무들이/손을 흔들어 반겨 준다. * 객지에서 살다가 고향에 가니 낯익은 산과 들, 나무와 풀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고향 흙을 밟으니 가슴이 뜨거워졌다. 위에 들은 작품들은 좋은 작품이라고 든 것이 아니라, 주제별로 보기를 들었을 뿐이다. 4. 전망 흙을 소재로 한 작품은 흙이 있는 농촌이 배경이 되어야 하는데, 농촌 아이들은 별로 없고, 거의 도시 아이들이다. 도시 아이들은 흙과 더불어 살지 않기 때문에 흙을 소재로 쓴 작품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재미가 없어 외면당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또 지금은 농작물의 종류도 달라졌고 농사짓는 방법도 바뀌었다. 사는 방법도,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요즘 아이들은 자연(흙)을 소재로 쓴 것보다 일상생활 속에서 건져 올린 작품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단테가 자연은 신의 예술이라고 한 것처럼, 자연은 예술품이 생산될 수 있는 원천이라고 볼 때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은 앞으로도 계속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자연을 소재로 쓴 작품을 많이 읽게 되면 자연을 사랑하고 서정이 풍부한 사람이 되리라 믿는다. Ⅸ. 대표 작품 육필과 대표 작문 1. 육필 동시 1편 2. 2009년 월간문학 11월 평 <월간문학 11월 동시평> 작자가 감동이 안 되는 작품은 독자도 감동 안 한다
이번 달에는 절실한 내용이 담긴 작품을 골라 보았다. 글을 쓴 사람이 먼저 감동할 수 있는 작품이라야 독자들도 감동이 된다. 글을 쓴 사람에게 가장 절실한 내용이 독자들도 감동을 한다.
『새싹문학』박선미의 ‘소리 통로’ 전문 한자어에 이심전심(以心傳心)이란 말이 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다는 뜻이다. 절친한 친구나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꼭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그 마음이 전해진다고 한다. ‘바라만 봐도/콩닥콩닥 가슴 뛰는’ 사이니까, 편지를 쓰면서 생각하는 마음이 상대편에 들릴 것 같다. 고래가 짝을 찾을 때 통하는 길이 있듯이 우리도 마음속 깊은 곳에 마음이 통하는 길이 있다고 믿는다. 절실한 마음을 나타냈다. 엄마의 잔소리 때문에/귀에 박힌 못/어떻게 뽑지?//네 방 청소 좀 해라. 말씀하시기 1초 전/오락 좀 그만 해라. 말씀하시기 1초 전/제발 공부 좀 해라. 말씀하시기 1초 전//그래, 좀이면 돼 아주 조금/말씀하시기 1초 전/고 짧은 시간//재빨리 빗자루를 드는 거야/컴퓨터 전원을 꾹 누르는 거야/책상 앞에 다소곳 앉는 거야//어차피 해야 할 일/스스로 한다면/박힌 못 저절로 뽑히고 말 걸. 『아동문예』김소운의 ‘귀에 박힌 못’ 전문 엄마의 똑같은 잔소리를 하도 들어서 귀에 못이 박혔다. 잔소리를 어떻게 하면 안 들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절실한 문제이다. 청소, 공부는 어차피 해야 하고, 오락은 그만 하라고 하면 그만 해야 한다. 엄마의 잔소리가 나오기 1초 전에만 빗자루를 들고, 1초 전에만 책상 앞에 앉고, 1초 전에만 컴퓨터 전원을 누르면 엄마의 잔소리를 안 들어도 되겠다고 다짐을 한다. 절실한 문제가 해결되겠다. 엄마는 툭하면 나에게/위인을 본받으라 하지만/발명왕 에디슨/음악의 아버지 바흐/전쟁 영웅 나폴레옹/이런 위인 얘긴 정말 재미없어요//내가 좋아하는 진짜 영웅은 따로 있는 걸요/나보다 게임을 몇 배나 잘하는 도영이/장수풍뎅이를 잘 기르는 준혁이/태권도 잘하는 동현이//엄마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공부 못하는 애들과는 어울리지 말라지만/공부는 아니라도/한 가지 일 똑 부러지게 해내는/이런 친구들이 훨씬 멋져 보이는 걸요. 『시와 동화』민현숙의 ‘나의 영웅은 위인이 아니다’ 전문 엄마는 나에게 발명왕 에디슨, 음악의 아버지 바흐, 전쟁 영웅 나폴레옹과 같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이런 영웅들은 어릴 때부터 나와는 딴판이다. 그래서 관심이 적다. 그러나 늘 대하는, 게임 잘하는 동영이, 장수풍뎅이를 잘 기르는 준혁이, 태권도 잘하는 동현이와 같은 아이들이 부럽다. 나와 거리가 먼 것보다 내 앞에 닥친 절실한 문제를 풀고 싶어 한다.
우리 할머니는 요즘 마늘 밭에 가서/마늘 캐는 일을 하지요//하루 종일 마늘 캐 주고/삼만 오천 월 받지요.//순복이 할머니 덕규 할머니는/삼만 원을 받는데//우리 할머니는 일흔이 넘었어도/일 잘한다고 오천 원을 더 받지요//앞집 순희 언니도 신었고/뒷집 명자도 신은 유명 상표 운동화//오늘 할머니 따라 읍내 나갔다가/신발 가게에서 나도 꼭 사고 싶었으나//몇 번이나 신어 보기만 하고/그냥 나왔지요//할머니가 자꾸 사 주겠다고 해도/할머니 팔 잡아끌고 그냥 나왔지요//할머니가 뙤약볕 아래 허리도 펴지 못한 채/마늘 캐 주고 버신 돈으로 사 주려는 걸 알고. 『시와 동화』윤동재의 ‘유명 상표 운동화’ 전문 나는 유명 상표 운동화를 신고 싶다. 남들이 다 신는 유명 상표 운동화를 신는 것이 절실한 문제인데, ‘몇 번이나 신어 보기만 하고/그냥 나왔지요//할머니가 자꾸 사 주겠다고 해도/할머니 팔 잡아끌고 그냥 나왔지요//할머니가 뙤약볕 아래 허리도 펴지 못한 채/마늘 캐 주고 버신 돈으로 사 주려는 걸 알고.’ 자기만 아는 도시 아이들에 비해 얼마나 대견한가.
곱게 물든 단풍잎 하나/도시로 이사간 내 짝지 순이에게/편지 속에 담아 보내야겠다//다람쥐 팔딱팔딱 알밤 줍는 소리/냇물이 졸졸졸 노래 부르며/가을 소풍 가는 소리//가을빛 묻어 나오는/단풍잎 하나/선생님께 받은 시집 책갈피 속에/곱게 꽂아 두고/가을빛 느끼라고//가을이 온 줄 도시엔/아직 모르고 있을 거야//내일은 우체국에 가서 붙여 보내야겠다. 『아동문예』최만조의 ‘단풍잎 하나’ 전문 도시로 이사간 짝지 순이가 몹시 그립다. 도시에선 가을이 온 줄 모르고 있을 순이에게 단풍잎 하나만 보내면 단풍잎만 보고도 다람쥐 알밤 줍는 소리, 냇물이 흐르는 소리들을 느낄 것 같다. 계절이 바뀌는 것도 모르고 지낼 순이에게 가을의 아름다움을 전해 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담았다. 비둘기 가느다란 발목/발/발/발/불쌍하다//바알간 맨발로/딱딱하고 지저분한 데를/종/종/종/걸어 다닌다.//자전거에 치었는지/돌에 얻어밪았는지/잘금잘금 절며/걸어 다닌다. 『시와 동화』이상교의 ‘비둘기’ 전문 비둘기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고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생물에 애정이 없는 사람이면 눈에 띄지도 않을 것을 얼마나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봤는가. ‘비둘기 가느다란 발목/발/발/발’, ‘바알간 맨발로’, ‘자전거에 치었는지/돌에 얻어밪았는지/잘금잘금 절며’등의 표현에서 비둘기에 대한 간절한 애정을 담았다.
단독주택에 사는/할아버지 할머니//2층에도 달세/1층 옆방도 달세 놓았다.//2층엔 초등학생 남매 데리고/젊은 부부 들어왔다.//“나도 옛날엔 여섯 식구 달세 살았지./이 집에 살다 짐 한 채 사서 나가요.”/할아버지 말씀.//1층 옆방엔 밤에 잠만 자는/총각이 들어왔다.//“총각, 예쁜 색시 하나 데리고 와서/아들딸 낳고 집 한 채 사서 나가요.” 할머니 말씀. 『시와 동화』정용원의 ‘달세방’ 전문 단독주택에 달세로 사는 사람들의 절실한 문제는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다. “나도 옛날엔 여섯 식구 달세 살았지./이 집에 살다 짐 한 채 사서 나가요.”하고 할아버지가 젊은 부부에게 말씀하였다. 또 할머니는 “총각, 예쁜 색시 하나 데리고 와서/아들딸 낳고 집 한 채 사서 나가요.”하고 총각한테 말했다. 집 없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겠는가. 돋보기로 햇볕을 모으면/종이에 불도 붙일 수 있다는 선생님 말씀//쉬는 시간/우리 반 민우가/돋보기로 종이를 태우다/선생님께 혼쭐이 났다.//그런데 하늘나라에도/개구쟁이 민우가 있어/돋보기로 자꾸만 지구를 태운다.//지구는 펄펄 끓고/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무더위에 지쳐 가는데/하늘나라 선생님은/두 눈을 감고 졸고만 있다. 『월간문학』10월호 강현호의 ‘무더위’ 전문 올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모두가 더위에 지쳐 하늘을 원망했다. ‘지구는 펄펄 끓고/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무더위에 지쳐 가는데’ 좀처럼 더위는 물러갈 기미가 안 보인다. 하늘을, 위험한 불장난을 하는 민우에 비유했다. 더위에 지쳐 있는 사람들이 더위를 피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나타냈다. 지면 관계로 골라 놓은 두 작품을 다 언급하지 못해 아쉽다. 이번 달에는 자기에게 절실한 문제가 독자들에게 감동을 준다는 관점에서 논의했다. Ⅹ. 아동문학계에 남기고 싶은 말 모든 일은 기본이 중요하다. 피아노를 잘 연주하려면 기본인 운지법을 정확하게 익혀야 한다. 테니스도 기본자세가 중요하다. 문학도 예외가 아니다. 아동문학의 기본은 동심이 바탕이다. 물활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마음이다. 어린이가 아닌 어른이 동심을 가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혀짜래기소리를 내는 것이 동심이 아니다. 동심은 인간의 원초적인 마음이다. 동심은 천심이다. 순수한 마음이다. 순수한 마음의 표현은 의인법, 활유법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의인화함으로써 고정관념이 깨어져서 딴 세상으로 바뀌게 된다. 의인화가 원초적인 동심이란 뜻이지, 모든 아동문학 작품은 다 의인화해야 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말이 정확해야 한다. 보기를 들면 ‘안절부절’이란 말은 없다. ‘안절부절’에는 ‘못하다’가 붙어서 ‘안절부절못하다’가 한 낱말이다. 그런데 어느 작품에 ‘안절부절’이라고 써 놓은 것을 봤다. 맞춤법을 정확하게 쓰려면 늘 사전을 보고 확인하는 버릇을 가져야 한다. 일반 시에서는 의도적으로 띄어쓰기를 안 하고 글자를 모두 붙여 쓰기도 하지만, 동시에서는 그래서는 안 된다. 문장부호를 생략하는 것을 허용할 뿐이다. 문장부호 규정에 없는 기호는 써서는 안 된다. 보기를 들면 (^^ ???? !!!! ... … 척-) 동시에서는 이미지가 독자에게 그려져야 한다. 모호해서는 안 된다. 또 억지스럽거나 무리한 내용이어서는 안 된다. 아동문학에서는 예술성과 교육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예술성만 지향하는 일반문학과는 다르다. 다음은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마음가짐이다. 이것도 기본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동인회 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과 동인회에 참석을 안 하는 사람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자. 동인회에 참석을 잘 하는 사람은 꾸준히 작품을 쓰고 있고, 그 가운데는 작품이 우수해서 문단의 주목을 받는 사람도 있다. 동인회 참석을 안 하는 사람을 보면,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자신감이 없어서 용기를 잃은 사람이다. 작품을 잘 쓸 때도 있고 못 쓸 때도 있다. 잘 쓰일 때도 있고 안 쓰일 때도 있다. 잘 못 쓰고 안 쓰일 때라도 동인회에 참석해서 자극을 받아야 한다. 동인회 참석을 안 해서 작품을 못 쓰게 된 사람을 여러 사람 볼 수 있었다. 그런 사람이 안 되기 위해 용기를 잃지 않기를 바란다. 동인회에 참석을 안 하는 사람 중의 또 한 가지는 이기적인 생각 때문이다. 습작기나 초기에는 동인회에 나가서 배울 것이 있었지만 이제는 별로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니, 회비 내는 것도 아깝고 공연히 시간 낭비라고 생각된다. 겉으로는 바빠서 참석을 못 한다고 하지만 핑계이다. 이기적인 생각 때문이다. 내가 오늘이 있기까지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알게 모르게 동인회원들의 도움도 받았다. 내가 도움을 받은 만큼 나도 남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봉사 정신을 가진다면 더 좋은 작품이 쏟아져 나오지 않을까. 어렵고 불편하게 사는 사람이나 동식물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마음이 아려지는 것이 문학을 하는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후배를 배려해 주고 내 문학의 모태인 동인회의 발전에 힘을 보태 주고 싶은 마음도 문학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