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해서 '소득 주도 성장'을 경제정책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소득 주도 성장이란 정부가 중소 사업자와 자영업자 등 저소득층 소득 향상을 지원해 총수요를 키움으로써 경기를 활성화하겠다는 정책 구상이다. 저소득층 소득 향상이 소비 증대로 이어지면 기업 판매와 생산, 투자를 키우고 총수요를 늘려 경기를 활성화하리라고 기대한다. 저소득층 소비 증대가 경기 활성화로 확산되는 효과는, 물이 아래에서 위로 솟는 분수에 빗대 분수효과(trickle-up effect, fountain effect)로 불린다.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은 1960년대 이레 우리 정부의 경제정책이 전통적으로 지향해온 성장 방법론을 거꾸로 뒤집은 것이다.
역대 정부는 먼저 대기업이 수출을 주도해 이익을 내고 투자와 소비를 늘리면 중소기업과 자영업에도 경기 확대 효과가 확산된다는 논리로 대기업을 적극 밀어줬다. 처마에 고인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듯 경기 확산 효과가 고소득층에서 저소득층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해서, 낙수효과를 겨냥하는 정책 논리로 통한다.
낙수효과를 기대한 정책은 효과가 있어서, 20세기 우리 경제에 대기업이 이끈 고속 성장을 실현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서는 대기업으로 경제력과 수출 이익이 집중되는데도 고용 정체와 내수 침체가 계속됐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자산층과 빈공층 간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졌고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성장 정책은 더 이상 소용이 없어 보이는 상황이 됐다. 대안으로 나온 것이 소득 주도 성장론이다.
소득 주도 성장을 정책 노선으로 내건 문 정부는 임기 초반인 2018년 최저임금을 전년 대비 16.4% 올렸다. 2019년에도 10.9%로 대폭 올려 저소득층 실질소득 향상을 꾀했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저소득층 일자리와 소득이 오히려 줄어드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한계기업 수준에 있던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늘어난 인건비 부담 때문에 고용을 줄이거나 문을 닫은 탓이다. '준비가 부족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후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은 동력을 잃었다. 2020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2.9%, 2021년에는 1.5%에 그쳤다. 그렇다고 정부가 새로운 대안을 내놓지도 못했다. 2020년 들어서는 코로나 사태까지 닥쳐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저소득층의 경제난과 내수 불황이 더 심화했다. 정부는 이렇다 할 성장 대안을 내놓지 못한 채 단기 과제 대응에 급급했다.
문 정부는 출범 초기 '소득 주도 성장'에 더해 '공정경제'와 '혁신경제'를 경제정책의 큰 축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상대로 불공적한 거래를 일삼는 적폐를 바로잡고, 혁신적 서비스와 상품이 시장에 들어올 수 있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말 그대로 했다면 경제구조 개혁에 진전이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전속고발권 이슈가 대표적인 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격 담합 등 공정거래 분야 법 위반 행위로 피해를 본 피해자가 직접 가해 기업을 고소할 수 없다. 공정위가 고발권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고발해야 검찰이 기소할 수 있는데, 공정위가 피해 기업의 호소를 듣고 법 위반 기업을 고발하는 사례는 드물다. 그렇다 보니 대기업과 거래하다 불공정거래로 손해를 입은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시비를 가려 처벌과 보상을 받아내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2017년 대선과 2020년 총선 때 각기 공정위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는데, 결국 지키지 않았다.
정부 스스로 공언한 성장 정책이나 시장의 공정성 제고, 산업 혁신에 별다른 성과가 나오지 못하는 사이 경제성장세는 이전 정권과 마찬가지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문 정권 첫해인 2017년 성장률은 전년 대비 3.2%로 출발했는데, 2018년 2.9% -> 2019년 2.0% -> 2020년 -1.0%로 갈수록 낮아졌다.
자산양극화도 극적으로 확대됐다. 문 정부 들어 세종시, 부산 등 전국 곳곳에서 집값이 급등했다. 집값 상승에는 전 정권부터 이어진 저금리 여건과 과잉 유동성이 기본 동력으로 작용했고, 도심의 주택 수요에 비해 공급은 부족한 상황이 방아쇠 역할을 했다.
집값을 잡으려면 저금리와 과잉 유동성을 제어하고 수요가 몰리는 도심에 주택 공급을 늘려야 했다. 하지만 문 정부는 어느 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대출을 규제했지만 규제를 피한 대출 증가를 막지 못했다. 코로나 사태 뒤에는 경기 부양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유동성 공급을 늘려야 했다.
저금리와 과잉 유동성을 제어할 수 없다면 주택 공급이라도 늘려야 했다. 그런데 문 정부는 시장경제 원리를 무시하고 다주택자를 적으로 돌려 무주택자와 1주택자인 국민을 현혹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구사했다. 가구당 주택은 한 채면 되고, 가구당 주택 수로 볼 때 공급은 이미 충분한데 다주택자가 집 여러 채를 사들이며 값을 올리는 탓에 집값이 뛴다며, 다주택자를 집값 인상의 주범으로 몰았다. 공급은 외면하고 세금과 대출 규제를 앞세워 정체가 불분명한 '투기꾼' 단속과 수요 틀어막기에 몰두했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25회 이상 투기 단속 위주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지만 집값은 쉬지 않고 올랐고, 갈수록 공급 부족이 현실로 드러났다. 결국 정부도 공급 부족을 인정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집값은 사상 최고치로 폭등했고, 집값 등락과 주택 소유에 따른 지역별, 계층별 자산 격차도 기록적으로 벌어졌다. 전월세 값이 따라 뛰면서 서민과 중산층의 주거 안정성도 크게 취약해졌다. 임기 초반 문 정부는 서민과 중산층의 주거를 안정시키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