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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검미사 원문보기 글쓴이: ymir
케코에서는 손목을 내지 않는다, 그것이 암묵의 양해
이와타테 사부로(岩立三郞) 범사 8단, 67세, 치바 현경 봉직, 松戶市 검도연맹회장.
아사미 유타카(淺見裕) 교사 8단, 59세, 이와테 대학 교육학부 체육과 교수
머리치기에 집착하고 나의 검도를 높힌다. 추구하는 점은 같은 것이다. 그렇게 느낀 두 사람은, 아사미 교사가 모리오카로부터 치바현ㆍ마츠도의 이와타테 범사의 도장으로 통근하는 형태로 월 1회 검을 나누게 되었다. 내용이 짙은 연습이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 후 12년이 되었다. 그런 두 사람에게, 왜 머리치기 인가, 어떤 머리치기를 이상으로 하고 있는가 등을 테마로 곰곰이 이야기해 보았다.
철저히 머리치기에 구애된다
두 사람의 최초의 만남은, 1994년, 사이타마현 키타모토의 해탈연심관에서 행하여진 중견검사 강습회에서, 이와타테 범사는 강사를 맡고 있었다. 그때의 케코가 연이 되어, 다음해부터 아사미 교사는 이와테로부터 치바에 있는 이와타테 범사의 송풍관 도장으로 통근하게 되었다. 송풍관에서의 처음의 케코는 40분에 달했다고 한다.
아사미 그때(송풍관에서의 최초의 케코)는 이거구나 하는 머리치기라고 하는 머리를 상당히 받았습니다. 하나 하나가 마음 속 깊이 울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와타테 아니, 나의 기술은 거의가 돌려 허리였던 것은 아니었던가......
아사미 몇 번인가 돌려쳐졌지만, 여기다라고 하는 순간에 머리로 당하고 말았습니다. 보통이었으면「졌습니다」하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공격연습으로 끝내는 것이었습니다만, 나 자신 머리치기에 강한 집착을 갖고 있어서 나로서도 절대로 머리를 성공시킨다고 하는 의지가 되어 기술을 걸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치지 못하고 그대로 40분이 지나가 버렸습니다(웃음).
이와타테 머리는, 내었다고 해도 수차례였다고 생각한다.
아사미 그 몇 번이 오랜 공세로부터의 타격으로, 저로서는 맞았다고 마음 속 깊이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와타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때는 허리로 돌려치는 케이스가 많았다고 생각한다. 그때마다, 나로서는「해버렸다」라고 하는 느낌이었다. 확실히 상대를 보지 않았다는 의미로의「해버렸다」이다. 케코를 하고 곧, 자네가 머리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도 머리에 대해 집착하고 있다. 당연히 머리와 머리의 승부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무의식 중에 허리로 바뀌어 버렸다. 머리로 온다고 알기 때문에 허리로 돌려치는 것은 간단한 것이다. 그래서는 자네가 추구하는 검도에는 되지 않는 것이다. 멀리서 온 사람에 대해, 도장 주인으로서 대단히 실례를 했다고 반성할 일이다(웃음).
아시미 저로서는 충분히 만족하였습니다(웃음). 그렇기 때문에, 그 후에도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머리에 집착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이와타테 고교시절에 치바 현경(縣警)의 糸賀憲一 선생님의 머리치기를 보고, 무언가 멋있는 타격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계기이다. 솜씨가 좋다든가, 강하다는 것이 아니고, 어쨌든 멋있었다. 저런 머리치기를 치고 싶다고 동경하고, 쭉 흉내를 내어왔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찰에 들어가니, 모범으로 하고 있는 糸賀 선생님이 항상 눈앞에 계셨다. 무언가 몸에 익히고 싶은 머리치기에 몰두하였다. 매일이 그런 식이었다. 연습에서는 손목이나 찌름은 내지 않고, 오로지 그 머리만 내었다. 따라서 시합에서는, 머리가 성공되지 않으면 이기지 못하는 것이 실제였다. 나는 검도를 52년간 수행해왔지만, 돌려 허리치기는 물론이고(あっても) 손목과 찌름으로 성공하여 이긴다고 하는 것은 없지 않나 한다(웃음).
아사미 그 정도로 철저히 머리치기에 구애받은 것이군요.
이와타테 그런 것이지. 머리의 치고 들어가기는 상당히 하였다. 젊었을 때는 물론이고, 받아주게 되었을 때도 (머리치기를) 하였다. 경찰학교로 옮겼을 때는, 학생 상대에게 머리 몸받음과 머리의 치고 들어가기를 매일처럼 반복하는 연습이었다. 머리에 구애받으면, 역시 이것이 기본이 된다.
아사미 그렇습니다.
이와타테 糸賀 선생님을 흉내낸 머리치기는 8단에 합격하고서도 흔히 사용하고 또 자주 성공하고 있지만, 어느 때 고고시절의 은사인 타키구치 마사요시 선생님에게서 이런 주의를 받았다. 「쿄토 대회에서 자네의 시합을 보았지만, 좋지 않은 점이 두 가지 있었다. 자신이친 기술이 성공한데도 불구하고, 다시 상대에 대해 머리다라고 독촉하는 것은 검도인이 하는 것이 아니다. 고치게. 또 하나는 그 머리치기인데, 죽도는 칼이고, 너의 머리치기는 칼로서는 도대체 사용할 것이 아니다. 공세하는 기분을 칼끝에 얹고, 위에서부터 상대의 중심으로 위로부터 덮치고, 곧바로 저쪽까지 뻗어서 가는 듯한 타격방법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한번 머리치기를 고쳐야 한다」고 말하였다. 요컨대 찌르는 마음으로 강하게 공세하여 들어가고, 상대의 반응을 보아 재빨리 손목을 돌리면서 머리로 치러 들어가는 것이지만, 그 작게 죽도를 돌리는 동작이 쓸데없는 동작이고, 그래서는 타격에 기분이 올라타기 어렵고, 그것을 타키구치 선생님이 지적하여 주었다. 그런가...... 하고 나는 그때 깊이 생각하였다. 糸賀 선생님을 모범으로 하여 몸에 익힌 기술이었지만, 은사님이 말씀하신대로 일어남이 없는, 곧바른 한판치기의 머리를 추구하게 되었다. 그러한 머리는 糸賀 선생님도 쳤었지만, 손목을 돌려서 치는 머리가 상당히 선명하게 성공하였다. 그래서 내가 흉내내게 되었지만, 완전히 자신의 것이 된 것뿐으로, 잠깐 동안은 어떤가 하면, 그 머리가 무의식 중에 나왔다. 지금은 전혀 나오는 일은 없다.
아사미 치고 들어가기를 상당히 하였지요.
이와타테 응, 하였지. 내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아사미 선생의 경우는 어떠했지?
아사미 저는 20대 전반 3년간은 상단을 취하였습니다. 상단이면, 상대가 익숙하지 않다는 것도 있어 머리는 비교적 편안히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즉, 상대의 무지에 묻혀서 치는 것만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좋은가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중단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로부터 수 년간 하여, 상위의 선생님에게는 나의 검도가 통용되지 않은 것을 알았습니다. 최초의 큰 벽이었습니다. 거기서 하마마츠에서 행하여진 츠쿠바 대학의 여름 합숙에 OB로서 참가할 때, 당시 조교수를 하고 있는 中林信二 선생님에게 상담하였습니다. 「아사미의 타격방법은 팔꿈치로부터 앞을 사용한 타격방법이 되고 있다. 더욱 상완(上腕)의 하측(下側)을 사용해서 치도록 하면 어떨까」라고 하는 조언을 하여 주었습니다. 그로부터입니다, 날이면 날마다 머리치기 한판에 초점을 모아 치고 들어가기 연습을 하였습니다. 머리치기의 어려움과 동시에, 검도의 대본이야말로 머리치기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머리치기에 대한 구애(집착)는 이 무렵부터입니다.
이와타테 전일본선수권에 출장한 것은 그때인가?
아사미 그렇습니다. 29세 때였습니다.
이와타테 머리의 치고 들어가기 연습이 주효했다는 말이군.
아사미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무렵 이와테 현의 대표는 明石和巳씨의 지정석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대회전에는 학생을 상대로 매일 백번의 머리치기를 했다고 듣고, 그렇다면 나는 머리치기를 백번, 손목머리치기를 백번, 계 2백번을 대회전의 1개월간, 매일 하자고 결심하고, 실제로 하였습니다. 전일본 출장과는 별도의 의미로 큰 달성감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이와테 대학에서 매년 11월을 「치고 들어가기의 달」이라고 칭하여 행하여지고 있는 항례의 케코의 효시가 되었습니다.
이와타테 그래 그래, 그것은 들은 적이 있어.
아사미 그런 이유 때문에, 30대가 되어서부터 연습에서는 나오는 머리밖에 치지 않게 되었습니다. 10년 정도는 계속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40대 때에 전검련으로부터 파견되어 프랑스에서 반 년간 지도하였습니다만, 거기서도 모두 나오는 머리였습니다. 대단한 것이었지만, 좋은 케코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와타테 머리에 대한 집착은 나 이상이네(웃음).
아사미 아니, 서로 지지않으려고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요(웃음). 머리에 집착하여 보아 온 것은 진정한 의미의 검도의 어려움과 깊이입니다. 그것은 그대로 머리치기의 어려움이고, 머리치기의 깊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머리치기는 자신으로부터 제일 멀고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큰 동작으로 치지 않으면 도달하지 않습니다. 또 자신의 신체 능력을 풀로 발휘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이나믹한 움직임입니다. 그런데 큰 움직임은 일어남이 나오기 쉬운 것입니다. 그것을, 일어남을 알 수 없도록 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당연한 것으로, 기분의 주고 받음이나, 그 때의 정신면이 큰 무게를 점하고 있습니다. 머리치기는 당연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를 고양시키는 것에 연결되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부터도 머리에 철저히 해서, 어디까지나 집착해 갈 요량입니다.
이와타테 그런 각오가 되지 않으면 집착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으로 좋다고 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아사미 그렇습니다.
이와타테 이것으로 좋다고 하는 머리는 영원히 없지만, 자신의 마음에 일생 남기고 싶다고 생각하는 타격은, 언젠가 치고 싶은 것이다.
아사미 선생님에게는 몇 번인가 있지 않습니까?
이와타테 응, 한번만 있은 적이 있다. 같은 8단 선생님과 케코한 때인데, 치고 나서 어떻게 친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요컨대, 마음에 아무 구애받음이 없는 상태에서 친 머리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항상 머리치기 중에 나의 기분을 놓도록 하고 있지만, 그 때는 상대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딱 하나로 되었던 것이다. 벌써 상당히 옛날이 되었지만,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아사미 부럽습니다.
송풍관에서의 구체적인 지적
송풍관에는 도장주인 이와타테 범사 외에, 아사미 교사의 대학 동창이 되는 岡村忠典 교사, 柳生의 중견지도자 강습회에서 함께 강습을 받은 倉澤正 교사, 또 국제무도대학장을 퇴임한 岡憲次郞 범사도 지도에 임하고 있다. 「여러 선생님으로부터 엄한 지적을 받았습니다」라고 아사미 교사는 말한다.
아사미 송풍관에 오게 되어, 매회, 선생님으로부터 엄한 지적을 받기 때문입니다만, 지금 내가 있는 것은, 그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타테 그렇게 엄했던가.
아사미 선생님들께서는 어떻다는 것이 아닐지 몰라도, 저로서는 혹독한 것이었습니다(웃음). 그것도 여러 가지 점에서, 여러 선생님으로부터 주의받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면 순천당 대학의 小林義雄 선생님으로부터는 「치고 들어갈 때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는 것이 보이고, 발이 나가지 않는 인상이 있다」는 말씀을 듣고, 柳生의 강습회에서는 賀來俊彦 선생님으로부터「자네 검도에는 공세가 느껴지지 않아」라고 하는 지적을 들었습니다. 같은 것을「선을 잡은 케코로 되지 않고 있다」라고 堀籠敬藏 선생님에게서 몇 번이고 주의를 받았습니다. 楢崎正彦 선생님으로부터는「머리 뒤까지 작용하는 머리치기가 이상적이다」라고, 또 佐藤成明 선생님으로부터는「그 다음 반보를 좁히는 것이 좋다」라고 지적받았습니다. 그것과 같은 것을 여기서도 주의 받고, 모리오카로 돌아와서 연습을 합니다. 그리고 고쳐졌나 어떤가를 다음 기회에 같은 선생님에게 보입니다. 고쳐져 있지 않으면 몇 번이고 같은 주의를 받습니다. 필사적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타테 내가 최초로 주의를 받은 것은 발이 향하는 것에 대해서였다고 생각하는데.....
아사미 그렇습니다. 「왼발이 밖으로 향해서, 발바닥의 외측으로 힘이 걸리는 것이다. 엄지발가락이 붙은 뿌리의 발바닥의 움푹 패인곳(土踏まず)의 경계 부근에 힘을 느끼도록 해보면 어떨까. 앞으로 나가는 기세가 틀린다」라는 그런 설명이었습니다. 그것을 한달 걸려서 모리오카에서 고치고 오면, 다음은「오른발이 밖으로 향하고 있다」고 주의를 받았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이것도 저것도 나쁘다고 전부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한번마다 숙제를 하나씩 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발의 방향의 다음은 왼발의 뛰어드는 방법이었습니다. 「단지 버티는 뛰어들기 방법은 오른쪽 전방으로 밀어내는 움직임이 된다. 오늘 케코에서 친 머리에서도 몸이 오른쪽으로 흐르고 있다든지, 죽도는 정중선을 잡고 있지 않았다. 더욱더 왼발의 허벅지의 내측을 사용해서 뛰어드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손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우선 왼손을 「겨눔자세를 전방으로 내고 있지만, 낼수록 옆으로부터의 쥐기가 되고 있다. 어디까지나 위에서부터 쥐도록, 앞으로 내는 정도를 생각해야 한다」고 주의하고, 다음은「오른손의 위치가 움직이지 않고, 왼주먹이 움직이기 때문에 오른 팔 중심의 사용방법이 되고 있다. 따라서 오른팔ㆍ오른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우상반신우로부터 나가는 듯이 보인다」라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와타테 잘 기억하고 있네.
아사미 그것은 그렇습니다. 나를 위한 주의이고, 설명이니까요(웃음). 그러나 그것을 한 달간 생각해서 연습을 했습니다. 머리에 착 달라 붙는 것입니다.
이와타테 오카(岡)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여러 가지 지적도, 물론 기억하고 있겠지.
아사미 물론입니다. 자세한 것까지 확실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발로부터 움직여라, 손은 마지막에서도 좋다」「스쳐 올려진 후, 멋있게 타돌을 당하는 팔의 위치에 놓고, 팔을 머리 위로 올려서 피하도록 해서는 안된다」「치려고 할 때 오른 팔ㆍ어깨가 조금 앞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알아차리게 된다」「타돌을 낼 때 몸이 가라앉고 있다」「칠 때 왼 주먹은 명치 부근의 높이에 놓여 있지 않으면 안된다」..... 아직도 있습니다. 지금도 때때로 주의를 받고 있기 때문에, 이제부터도 점점 늘어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倉澤 선생님의 지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특히 「신장이 있기 때문에 검선이 밑으로 빠져 나가는 일이 있다. 검선은 항상 상대의 위에 놓고, 상대가 움직이려고 하면 위에서부터 올라타서 치도록 하면 어떨까」라든가「오른발을 내어 오지만, 그것을 한번 멈춰서 치려고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오른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그대로 일기에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하는 어드바이스는 과연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와타테 그들의 관찰하는 눈이 좋으니까.
아사미 그렇다고 하더라도「대각선 전방을 향해서 머리를 치고 있다고 느낌이다, 정면으로부터 탕하고 부딪쳐 오지 않는다」고 모두에게 지적당했을 때는 깜짝 놀랐습니다. 열려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방향이 곧바르지 않았다. 따라서 치러 가면 선생님들에게 반드시 머리로 당하는 것입니다. 대각선과 곧바로와의 싸움에서는 당연한 것이 됩니다. 젊었을 때의 치고 들어가기 연습은 무엇이었던가, 그렇게 무의식 중에 들어가지지 않게 되었습니다(웃음).
이와타테 내가 제일 신경쓴 것은 오른 팔꿈치였다. 뻗는 것이다. 뻗고 있으면, 그것을 한번 느슨하게 하지 않고서는 동작을 일으킬 수가 없다. 그리고 그것이 일어남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언제인가부터, (오른 팔꿈치의) 뻗음이 없어지게 되고, 부드럽게 되어 왼손이 쓱 한가운데 들어왔다. 그로부터 머리치기가 몇 단계 좋게 되었다. 이제까지와는 전연 다른 머리치기가 되었다. 그 후 나도 자주 맞게 되었다.
아사미 선생님으로부터는, 케코 후에 이런 비평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손잡이가 높기 때문에 치러 나가는 일이 많다. 그래서는 간단히 허리로 돌려치기 당한다. 내가 네 번이나 계속해서 돌려치기 한 것이 그것이다. 그 후 밑으로 놓게 되었다면 돌려치기를 하도록 못하게 된다. 나의 경험에서도, 예를 들어 명치촌 대회에서 손잡이를 밑으로 놓고 있도록 하면 상대는 무엇도 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이와타테 아아, 그랬었나.
아사미 계속할 때마다 돌려치기를 당한 후에야 인상이 깊게 남는 것입니다.
정신이 새하얀 상태에서 친 머리(面)
1999년, 아사미 교사는 전립선 암이라는 것을 알고, 그해 7월에 적출술을 받았다. 케코를 재개하고서부터는 검도를 할 수 있게 된 기쁨을 곰곰이 생각했다고 한다. 동시에 「케코는 스스로를 단련시키기 위해 있고, 상대를 하여 주는 선생님에 대해서는 마음으로부터 감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다시 자각하였다.
아사미 처음으로 저의 머리치기가 선생님에게 도달했던 것은 50세가 된 해의 가을이었습니다. 48세의 여름부터 다닌 것이 되니까, 약 2년 걸린 것이 됩니다. 저는 두텁고 무거운 죽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겨눔자세를 하면 할수록, 묵직한(ずっしり) 무게를 느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가볍게 가질까, 여러 가지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때에, 이건가 하고 번쩍하였습니다. 죽도를 평행으로 위로 내던지고, 그 뜬 죽도를 잡습니다. 이러면 가볍게 잡는 느낌이 된다고. 그 어간부터 무거운 죽도를 그 정도로 무겁게 느끼지 않고 사용하게 되어, 머리도 스므스하게 내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와타테 그것이다. 내가 신경을 쓰고 있던 팔의 뻗음이 사라지고, 큰 일어남이 없어지게 된 것은.
아사미 아마 그렇습니다. 머리도, 치기까지는 안되었지만, 서서히 타격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언가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그때 마침, 암의 선고를 받았습니다. 쇼크였습니다.
이와타테 우리도 쇼크였지.
아사미 수술하고, 케코를 할 수 있게 되었을 때에는 어쨌든 기뻤습니다. 그래도, 수술후 1년 4개월 후 재발하여, 지금은 약으로 누르고 있습니다만, 언제 탈이 날지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이렇게 되어, 케코도 변했습니다. 이 상대와의 케코는 금생에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식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기분의 충실함이 있습니다. 일회일회의 케코를 귀중히하고, 한번의 머리치기를 소중히 하도록 되었습니다. 공세의 기분도 자기 나름으로 확실히 내고 있다든지, 갑자기 강하게 되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웃음). 케코는 본래 이런 것입니다. 이런 기분으로 단련을 쌓아서, 스스로 고양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병에 걸려서, 그것이 신경이 쓰입니다. 인간의 약함과, 죽음과 인접해 있는 인간이 가지는 강함을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이와타테 케코를 하고 있어, 치려고 한다든가 돌려치기를 당하지 않겠다고 하는 나의 욕심, 즉 마음이 집착이 없어지게 되었다고 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아사미 선생과는 이것이 마지막 케코가 될지도 모른다고 하는 기분이 있기 때문에, 후회를 남기는 케코는 하고 싶지 않다. 기세있고 열심하게 된다. 진지함이 다른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것을 서로 전하는 케코가 된다고 생각한다. 나로서도 매회 좋은 케코가 되고 있다.
아사미 치려고 하기 보다 어떻게 마음의 틈으로 들어갈까, 그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와타테 요컨대,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는 것이지.
아사미 그렇습니다.
이와타테 마음이 움직이면 호흡이 혼란해지고, 기가 움직이고, 겨눔자세가 무너지고 동작의 틈으로 나타납니다. 그곳을 치는 것도 좋고, 치지 않는 것도 좋다.
아사미 아니, 저는 여기다하고 하는 곳만 칩니다(웃음). 어려운 병에 걸렸다고 하지만, 아직 체력도 있기 때문에 칠 수 있는 순간은 치고 싶습니다(웃음).
이와타테 그것도 그렇구나(웃음). 그렇다고 하더라도, 8단에 합격한 해였던가, 멋있게 머리를 맞은 일이 있다. 두 번, 그 두 번도 일어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대개 머리라고 해도 손목이라고 해도 치려고 하면 반드시 무언가의 징조가 있다. 발이 앞으로 나온다, 혹은 손잡이가 올라간다든지 내려간다든지 한다. 그것을 보고 나는, 자아 어서 오십시오가 된다. 하물며 상대가 강하게 공세해 온다면 대응을 생각하고, 준비에 만전을 기하도록 한다. 간합을 끊는다든지, 검선을 누른다든지, 혹은 온다면 찌르러 간다고 하는 의식이 순식간에 작동한다는 것이지만, 그 때는 징조도 없고, 몸이 쓱하고 나간다고 생각하면 타돌을 당했다. 몸의 어디에도 무리가 없었다. 나로서는 오면 간다고 하는 기분으로 있었다. 거기에 징조도 없이, 일어남도 보이지 않고 팍 곧바로 와진다면 어쩔 수가 없다.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 말하자면 무심의 타격이었다. 이로써 8단을 합격하였다고 생각하였다.
아사미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십니다만, 저는 그 때 정신이 새하얀 상태로, 아무리 생각하려고 해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머리를 잡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은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상태에서, 어떻게 해서 쳤는지는 전혀 기억이 없습니다.
이와타테 같은 경험은 실은 나도 있어. 역시 8단에 합격하기 조금 전이었다고 생각한다. 케코에서 머리를 치고 있으면 「좋은 곳이야, 지금 그 타격이다!」라고 두 사람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한 분은 松和芳郞 선생님으로, 勝浦의 케코카이(稽古會)에서 였다. 또 한 분은 市川市에 계시는 澤井岩吉 선생님이었다. 이 선생님의 검도는 세밀하게 공세해 오고, 물러나는 것이 우선 없었다. 물론 머리는 절대로 맞지 않는다. 그 澤井 선생님에게도 머리를 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머리다」라고 말씀하셔도, 나로서는 어떻게 쳤는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런 느낌이었다(웃음).
아사미 선생님의 경우는「잘 알 수 없다」입니다만, 저는 「전혀 기억이 없어서 생각할 수 없다」고 하는 상태입니다. 큰 차이입니다
이와타테 아니, 마찬가지야. 그렇게 말하는 나 자신도 훌륭한 머리를 칠 수 있다고 하는 실감은, 8단에 합격한 사람은 누구라도 갖고 있지 않을까.
아사미 저의 머리 속이 하얗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와타테 치려고 한다든지 맞지 않겠다고 하는 의식으로부터 떠나서, 케코를 하는 때에 열심히 했다는 것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야 말로, 마음에 구애가 없는 자연스런 머리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나도 열심히다. 그 마음과 마음이 꽉 맞붙은 자세, 그 함께 진심을 서로 낸다고 하는 것, 그렇게 되지 않으면 그런 머리는 절대로 나오는 것이 아니야.
아사미 의식으로부터 떠나는 것의 중요함은, 지금은 잘 이해합니다. 젊었을 때의 일을 이야기 하면, 저는, 이렇게 공세하여 이렇게 머리를 친다든가, 상대가 오면 이렇게 한다, 이런 기술로 온다면 이런 머리치기로 대응한다는 등 머리로 검도를 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런 검도는, 잘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가 소용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이렇게 친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읽혀서 돌려치기를 당하는 것입니다.
이와타테 나도 젊었을 때는 그랬다. 요컨대, 수행의 어느 시점에서 “떠난다”는 것의 중요성에 눈이 뜨는가 하는 것이다.
아사미 승부를 경쟁하는 시기는 무리지만, 그 후의 검도에 대한 수행자세의 본연의 자세이고, 검도관에 따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와타테 자연히 검도관이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검도관이 변하면 여러 가지가 변한다.
아사미 저의 경험으로부터도 그것은 틀림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공세에 대한 생각이 변해 왔습니다.
이와타테 그렇지. 공세를 의식하는 무렵이라고 하는 것은, 검선으로 누르고 들어간다든지 일보 앞으로 나간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때다. 그러나 그것은, 상대에게 전하여진다고 하는 형태로서 나타날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근본이 되는 기분이고, 기분이 높은 레벨에 있으면 저절로 중심을 빼앗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두 사람이 서로 공세를 하면, 서로 중심 빼앗기는 죽도의 몸의 폭만큼 올라탄다든지, 돌린다든지의 승부가 되고, 그 이상의 움직임은 필요가 없다. 거기서 상대의 기분을 꺾고, 그대로 오른발을 중심으로 곧바로 뛰어들어 머리로 간다. 탕 하고, 머리의 저편까지 쳐서 뻗는 듯한 기세가 있으면, 그것이 그대로 잔심이라고 말해도 좋다. 그러한 머리는 상대의 마음에 울리기 마련이어서, 거기에 케코의 의미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사미 선생이 정신이 새하얀 상태로 쳤다고 하는 머리도, 그런 머리였다.
아사미 그런 것입니까.
이와타테 나도 열심이였기 때문에 확실히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대체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최고의 머리였다. 공세에 대해서도 조금 이야기를 한다면, 높은 경지의 선생님에게는 겨눔자세만으로 전신으로부터 자연히 배어나오는 것을 느낀다. 그것이 그 선생님의 공세가 아닐까. 옛날 내가 경시청에 다닐 무렵은, 오가와츄타로 선생님을 비롯해서 쟁쟁한 선생님들이 나란히 받아주었다. 케코에서는, 선생님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데 이쪽은 한 번도 치지 못하고, 곧 숨이 차올랐다. 鶴海岩夫 선생님은 공포감이 앞에 서 있어 위축되어버려 칠 곳이 없었다.
아사미 배어 나오는 것...... 공세가 극도에 도달한다면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와타테 타키구치 선생님도 그것이 있었다. 물론, 은사라고 하는 의식과는 별도이지만.
아사미 그 타키구치 선생님입니다만, 이와타테 선생님은 타키구치 선생님이 계실 때에는 반드시 기술을 걸었습니다. 머리치기에 나가, 모두 허리로 돌려치기 당하였지만, 그 케코에서 저는 「사제(師弟)」를 느꼈습니다.
이와타테 사제지간인 것은 틀림없다. 내가 첫 번째 8단 심사에 떨어졌을 때 「뭐하고 있는 거지」하고, 여기(송풍관)까지 오실 정도의 스승님이었으니까(웃음)
아사미 최근에는 「사제(師弟)」라고 하는 말을 듣는 것이 적게 되었습니다. 또 사제관계를 가지고 있는 케이스도 거의 들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의 나이가 되어, 스승님에게 과감히 기술을 걸어간다. 뭔가 부러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에게는 이제부터라도 매회 반드시 기술을 걸어가겠습니다.
이와타테 오, 시끄럽게 와주게.
치고 들어가기, 월간 할당량은 3천번
1970년 4월, 아사미 교사는 이와테 대학 교육학부 체육과 근무를 하게 되고, 그 후 동 대학의 검도부를 지도해 왔다. 매년 11월을 「치고 들어가기 달」로 한 것은 1977년부터의 일로서, 바로 아사미 교사가 머리치기에 집착한 무렵이기도 하다. 검도의 본질은 머리치기에 있고, 머리치기의 기초는 발허리라고 하는 지론의 실천이었다.
이와타테 이와테 대학의 아침 케코에 갔을 때 놀랐다. 학생들 전원이 나에 대해서 머리밖에 치러 오지 않았다. 어쨌든 다음 다음 해서 머리만 쳤다. 나도 될 수 있는 한 머리로 가도록 했지만, 역시 지쳤다(웃음).
아사미 감사합니다. 학생들로서는, 필시 좋은 케코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웃음).
이와타테 케코 전의 분위기는 모두 따뜻하여 긴장감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케코가 되자, 과감하게 머리로 뛰어 들어온다. 게다가 각자의 필사적인 것이 잘 전하여 온다. 아사미 선생의 지도가 확실히 도달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아사미 아니, 기쁩니다.
이와타테 그 치고 들어가기는 현재도 하고 있나?
아사미 11월에 행하는 「치고 들어가기 달」의 3천번입니까. 예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와타테 그래, 할당량이 3천번이라. 전일본출장을 달성했을 때 자신에게 부과된 것은 더 많았던가?
아사미 1일 2백번을 한달간이기 때문에, 대략 배라고 하는 계산이 됩니다. 학생 상대에게 서로 20번씩 10셋트를 매일 하였습니다. 그 때는 나 자신의 과제로서 했던 것입니다만, 다음해도 「스케쥴도 비어 있어서 또 해볼까」하는 것으로 학생들과 시작하였습니다. 할당량을 3천번으로 한 것은 그 해부터입니다. 머리치기를 중심으로 시작하여, 점점 바라이어티랄까, 메뉴에 손목ㆍ머리 등도 넣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1일의 상한을 2백번으로 하고, 4주간 하는 가운데 최후의 1주간은 상한을 262본으로 결정하고 있습니다. 이치로 선수가 연간 최다 힛트를 기록한 때의 숫자입니다(웃음).
이와타테 유모어가 있군(웃음)
아사미 그렇습니다. 3천번이라고 하는 것은, 1일 2백번씩이라고 해도 15회의 케코에서 끝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아무래도 부주의해서, 치고 들어가기를 하지 않는 날도 있습니다. 결국, 일이 밀려 임박하여 하루에 5백번하지 않으면 3천번에 도달하지 않는 학생도 나옵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도 날을 빠지지 말고 해라, 262에는 그런 멧세지가 들어가 있습니다. 한편, 너무 열심히 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1만번을 넘습니다. 아침에 2백번 하고, 방과 후 케코에서 또 2백번의 치도 들어가기를 합니다. 1일 4백번, 그것을 매일 합니다. 그 학생은 오후의 표에는 적어 놓지 않습니다만, 확실히 1만번은 넘고 있습니다. 인간은 거기까지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새삼 생각했습니다.
이와타테 1만번이라...... 확실히 대단하네. 그런데 2백번은 어떤 식으로 하나.
아사미 라인과 라인 사이의 10미터를 큰 머리를 치고 빠져 나갑니다. 이것을 10왕복으로 20번, 그것을 상대를 상대를 바꾸어 다섯 사람과 하면 백번입니다. 다음에 손목ㆍ머리를 역시 크케 5왕복 10번, 계속해서 연속치기의 몰아넣기를 5왕복 10번입니다. 그것도 다섯 사람과 합니다. 이래서 합계 200번이 됩니다. 저도 함께 합니다만, 벌써 힘이 빠집니다.
이와타테 그래도 대단하다. 자신의 체력의 한계까지 끝까지 사용한다고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체력과 동시에 정신력도 길러지는 것은 틀림없다.
아사미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와타테 우리 송풍관에서는 여성만의 케코도 개설되어 있어, 기본치기의 연습을 주안으로 하고 있지만, 이와테 대학의 학생과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그녀들은 그녀들 나름으로 자신의 체력을 힘껏 사용하여 케코에 분발하고 있다. 물론 몸에 익히기 위해서 하고 있지만, 수년간 하면 다분히 열매를 맺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건 그렇고 금요일의 기본연습의 참가가 최근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마을의 애호가가 그러한 연습에 굶주렸다나 할까.
아사미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여하튼 여기서는 8단의 倉澤 선생님 등도 함께 하고 있을 정도이기 때문에, 그러한 모범을 보는 것만으로도 참가할 가치가 큰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와타테 과연, 그것은 그럴 것 같다. 8단의 기본케코 등은, 우선 더군다나 본 적이 없을테니까.
아사미 제2 토요일의 10시부터 행하여지는 고단자의 케코 모임, 이것은 받아 주는 사람으로서는 혹독함이 있습니다. 참가하는 것이 6단 이상으로, 8단을 목표로 하는 7단도 많습니다. 그것을 받아 주는 사람은 계속해서 2시간 받아 주니까. 체력의 문제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와타테 그래, 어떻게 선의 기분을 지속시킬 수 있느냐는 것. 받아 주는 사람이라고 해서 기다려서는 안된다. 자신으로부터 선을 취하고 앞으로 나오는 검도를 계속한다. 그렇지 않으면 2시간 지속하지 못한다.
아사미 그렇습니다. 따라서 그 케코 모임은 우리들로서는 좋은 케코가 되고 있습니다.
경남검도회의 김명서님께서 올리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