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문화회복운동본부 발대식의 취지
문화 환경의 결여가 너무 심하게 망가졌기 때문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나서게되었고
10여년전 정신문화 바르게 살리기 범 국민운동을 추진하려고 했었다.
정신이란 막연히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 현상으로 사회에서는 보더라
그러나 정신이란 어렵게 개념을 정리 해서 풀어 가는 모습보다는
쉽게 이해 할 방법을 찾아 범 시민운동으로 승하 시켜 나갈 때 그에 따른 지지는
남다른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신이란- 영혼이나 마음(사전)
옛말에 정신나간 사람
정신없다. 정신없이 살았다. 이런 말들을 쓰는데 잘못된 마음 상태 즉 죽은 시체를 뜻한다
100년 전에 우리나라의 역사는 이씨조선 말기입니다.
조선 역사의 모습은 양반이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현실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갖은 부패 현상속에서 사회에 나쁜 영향을 보여 주고 있었는데 이 시점에 일어난 국가적 현상은
민비 살해사건이라던가 이완용 나라를 일본에게
1856 경기 광주~ 1926.
한말의 문신·친일민족반역자(→ 색인 : 을사오적).
민족반역자
이완용
처음에는 친러파로 아관파천을 주도했으나 이후 일본이 세력을 확장하자 을사조약·한일합병의 주역으로 민족을 배반했다. 일제강점기에도 중추원의원·고문을 역임하면서 각종 단체에 참가하여 친일행적으로 일관했다.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경덕(敬德), 호는 일당(一堂). 아버지는 석준(奭俊)이며, 10세 때 판중추부사 호준(鎬俊)에게 입양되었다. 1882년(고종 19) 증광별시에 합격하여 주서가 되었다. 이어 대교가 되고 그후 수찬·검상·해방영군사마(海防營軍司馬)를 거쳐 1886년 육영공원에서 영어와 신학문을 배웠다. 1887년 참찬관으로 미국에 갔다가 이듬해 5월 병으로 소환되어 동부승지·이조참의·외무참의 등을 지냈다. 같은 해 주차미국참찬관(駐箚美國參贊官)으로 미국에 갔다가 12월에 대리공사(代理公使)로 승진하여 약 2년간 있다가 돌아왔다. 대사성·형조참판·동지의금부사·동지성균관사·동지춘추관사·전환국총판·육영공원판리·교환서총판 등을 역임했다. 1895년 학부대신이 되고 중추원의관이 되었으나, 8월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형인 이윤용(李允用)과 함께 미국공사관 서기관으로 있던 앨런의 알선으로 미국공사관으로 피신했다. 임최수(林最洙)·이도철(李道澈)·이재순(李載純) 등과 더불어 춘생문사건(春生門事件)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자, 다시 1896년 아관파천을 주동하고 친러내각의 외부대신·학부대신·농상공부대신서리를 겸직했다. 이 시기 독립협회에 참가하여 위원장·회장을 지냈다. 1897년 고종이 환궁하자 세력을 잃고 평안남도관찰사·전라북도관찰사 등 지방관으로 전전하다가 1901년 궁내부특진관이 되었다.
1905년 학부대신이 되어 을사조약 체결에 앞장서 의정대신임시서리 및 외부대신서리까지 겸했다. 1907년 의정부참정대신으로 농상공부대신서리·광산사무국총재를 겸했고, 6월 내각총리대신으로 궁내부대신서리를 겸했다. 1907년 7월 헤이그 밀사사건이 일어나자 고종의 책임을 추궁하며 고종의 양위를 주장하여, 궁내부대신을 겸하면서 고종의 퇴위를 성사시켰으며 한일신협약을 체결했다. 8월 매국친일의 대가로 일본으로부터 욱일동화대수장(旭日桐花大綬章)을 받았다. 1909년 12월 이재명(李在明)의 습격을 받아 중상을 입었으나 회생했다. 1910년 8월 총리대신으로 내각회의를 소집하여 합병에 관한 건을 상정하고, 어전회의를 소집하여 합병안을 가결시키는 동시에 스스로 한일양국병합전권위원이 되어 데라우치[寺內正毅]의 관사로 찾아가 합병조약을 체결했다. 한일합병의 주역으로 훈1등 백작과 잔무처리수당 60여 원, 퇴직금 1,458원 33전, 총독부의 은사공채 15만 원을 받았다. 같은 해 중추원고문이 되고 1912년에는 중추원부의장이 되었으며 일선융화(日鮮融化)를 주장했다. 1919년 3·1운동을 비난하는 경고문과 담화를 3차례에 걸쳐 〈매일신보〉·〈경성일보〉에 발표했으며 1920년 12월 후작으로 승급했다. 1921년 중추원이 개편된 후에도 계속 중추원부의장을 지냈다. 그외에 조선귀족원 회원, 농사장려회 회장, 조선물산공진협찬회 명예회원, 일본제국군인후원회 조선지부 평의원, 조선귀족회 부회장, 농림주식회사고문, 교육조사위원, 총독부산업조사위원, 조선미술전람회 심사원, 조선사편찬위원회 고문, 조선농업교육연구회 고문, 선만노몽연구협회 고문 등의 많은 명예직을 겸하며 친일행적으로 일관했다.
민족의 근간을 흔들었던 시기가 있었고
그후에 일제 강쟁기로 인하여 민족의 혼 역사 고유한 문화가 뿌리째 파괴되는 현실이 있었다. 이때 가장 두드러진 사건은
창씨개명 우리말을 쓰지 못하도록 했고
우리문화재 약탈(미국.영국.일본)
일본의 문화가 이나라 전 국토에 들어와 우리의 고유한 정신을 파괴 시킨 역사다.
이후 제2차 세계전쟁이 일어 났고
연합군과 미국의 승리로 인하여
민족의 수난사가 이루 말없이 일어났던 시절에 반민족의 정신을 가진 일본놈의 앞잡들이 남과북의 갈라진 현상으로 이어졌으며 이싯점에 미군의 신탁통치가 시작되는 남한은 미군 관활
북한은 소련관활로 그 순간부터 분단의 아픔은 우리의 의지가 아닌 국력이 쇄진한 조선반도의 기구한 운명으로 나타났을 즘
미군의 군정아래 있던 조선 반도의 문화는 일제의 잔재의 정신과 통치 방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었던 것인데
한국은 그때 아무런 준비없이 문화수탈을 당하여 민족의 근간이 흔들게 된 시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순간
우리가 가진 고유한 정신
삼강오륜과 인의예충효사상은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고 난후
군사정권으로 이어진 가운데 계속 쇄진된 것이 사실입니다.
이후 정치는 급물살을 타고 우왕좌왕 하는 시절이되었고
그 안에 우리의 정신은 급기야
이승만 박정희 최규화 전두환.노태우.YS정권.
DJ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권까지 내려오는 고정에 가장 심각하게 파괴는 우리말 한글에 대한 어문정책으로 이 민족의 혼을 길러주고 민족 정신의 근간을 살려줄 민족의 문화의 정신
우리말글 문학이 죽어 갔던 시절이 얼마안된 시점인 불과 20여전부터 시작 된다는 사실을 잊고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너무 빠른 변화
산업사회가 급속도로 변화된 가운데 초가집은 없애고 알뜰살뜰 모아서 지어낸 집이 스레트집이요, 그 이후 고층 빌딩이 여기저기 지어지는 시대에 정국 혼란은 각처에서 일어나 맨날 대모가 끈이지 않았던 시간을 기억 하실 겁니다.
이때 대학에서는 국어를 가르치는 구문학과와 문창과가 비 인기 과목으로 전락되어 사라지던 시절에
중국은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반환받을 시간이였으며
중국의 등소평총리가 말한바에 의하면
88올림픽 준비를 하고 있을 시기에 1988년 9월 17일 ~ 10월 2
아시아의 4룡인 한국은 꼬리를 감추게 되어 중국에게까지 추월 당하는 시간이 바로 홍콩은 문학을 정신으로 여겨 부흥 시켰는데 한국은 문학을 배제하는 즉 글로벌 시대를 준비하게 돠었습니다.
이후 나타난 것은
세계 범법자들이 한국에 들어와 영어 원어민 교수 교사 강사등으로 전국 각처에서 문제를 일으켰고 급기야 영어로 국어국사까지 가르쳐야만이 세계 인류국가속에 들어 갈 자격을 얻게 된다고 말한 적이 불과 7년전에 있었던 이여기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나타난 사회적 현상은 어떻게 되었습니다.
유학바람
영어과외 수업
한글 펌하로 이어진 우리 정신문화인
질서 예의가 파괴되어 갔고
급기야 사회 공동화 현상으로 이어져
빈익빈 부익부 현상과 질서가 무너진 곳에서는 편가름 싸움
납치 자살 살인등 그야말로 지옥이나 다름없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준비없는 교육이 우리 나라전체를 덮었기 때문이며
일제 강정기에 교육을 받은 사람들과 토호 세력들이 정권을 잡았기 때문이고
우리의 고유한 문화예절의 풍습을 거치장스러운 것으로 펌하하여 근대사에서 민족의 정기를 흔드는 교육과정이 일어 났기에 이런 현상이 일었으며
이로 인하여 행피아 ,관피아 법피아,마피아,해피아 여의도피아 등으로 어어지는 고리가 발생하여 정국불안의 요소로 이어지는 사태로 왔던 것입니다.
급기야
이번 세월호 사건이 터진 후 박근혜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중
국정개조를 해야 한다.
그럼 국정개조는 대통령 혼자 할 일인가?
국민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참여가 있어야 하는데
이 시점에서 국민인 우리가 바로 국가를 위해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 해서 오늘 이렇게 모인 자리가 된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방향
1.
우리 문화의 정수(精髓)를 체계적으로 보급하고 전파
주체적 역사관(歷史觀)과 건전한 가치관(價値觀)을 정립
국민정신 교육(敎育)을 체계적으로 계발하고 진흥
민족 문화를 창달(暢達)하는 데 이바지하기 위함
한민족의 정서함양과 건강한 사회구조 조성
상식적인 교육으로 상식(常識)이 통하는 지역사회 조성
나눔과 배려의 지역 공동체 정신문화의 조성
통일한국의 정신문화의 기반 조성
인문 정신문화진흥법 제정 지원
정신문화 보급을 위한 현대식 정신문화운동 개발
상식사회(常識社會) 캠페인
주민과 주민 사이의 주체적인 참여협력시스템 개발
국민의 신체 건강과 정신 치유를 연계한 치유프로그램 운영
비젼
인류국가 정신문화가 대한민국 동방예의지국에서 출발했기에 전세계적으로 우리문화를 알려 지적 재산권을 확보 로얄티를 얻게 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 수출
1광복절 하늘에서 주는 복을 받을 수 있는 나라로 거듭나기 위하여 우리문화회복만이 세계사의 주역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