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갯벌은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갯벌의 약 42%를 차지하고 있으며, 무안군과 신안군 갯벌은 이 중에서 각각 14.1%, 33.3%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갯벌들로 인하여 벌교 꼬막과 목포 산낙지가 전라도에서 많이 먹는 음식들 중 하나다. 그리고 전라도는 한반도 최고의 곡창지대 이였기 때문에 많은 식문화가 발달하였다. 조선시대 세금의 3/2가 전라도에 나올 만큼 곡창 지대였고 전주 옆에 호남평야 나주 옆에 나주 평야로 전라북도와 전라남도가 나눠진다. 이런 평야에서 다양한 음식이 재배되면서 전주비빔밥이 나타났다. 전주비빔밥의 역사와 유래는 확실하지 않으나, 비빔밥의 유래에 관한 여러 가지 설 중에서 궁중음식에서 비롯되어 서민 음식화 되었다는 설이 가장 타당하다고 한다.
이렇게 벼농사를 위해 ‘두례’와 같은 농촌위주 문화가 전라도 논밭에에서 20세기까지 나타났다고 한다. ‘두레’란 농촌에서 농민들이 농사일이나 길쌈 등을 협력하여 함께 하기 위해 마을 단위로 만든 공동노동조직이다. 씨족공동사회에 기원을 둔 두레는 모내기나 김매기 등 일시적으로 많은 품이 요구되는 농경에 마을의 전원이 거의 의무적으로 참가하는 강제성을 띤 조직이었다. 우두머리인 행수를 비롯한 임원이 있어 조직과 일을 체계적으로 관리했고, 일의 시작과 진행에 농악이 동원되었으며 일을 마친 후에는 반드시 노고를 잊고 결속을 다짐하는 공동회연이 열렸다.
하지만 전라도는 곡창지대로 인해 수도권에서의 집중적인 수탈이 자행되기도 하였다. 1862년의 농민봉기에서 전라도 37개 군현, 충청도 12개 군현, 경기도와 황해도 10개 미만 인걸 보면 얼마나 많이 수탈을 당햇는지 알 수 있다.
전라도의 기업 활동은 서울 및 수도권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도 양과 질 모두 뒤떨어진 곳이다. 2019년 <기업활동조사>에 의하면 1만 2,900개의 기업 중 전라도에 본점을 둔 기업은 단 4.8%에 그쳤다. 지역내 기업 중 제조업체의 비중도 51.5%로 다른 지역에 비해 가장 낮은 곳이었다. 다른 곳은 63.7% 에서 74.9%가 제조 업체 였다. 원래는 삼성과 기아에서 전라도에 공장을 지었지만 대부분이 중국이나 베트남으로 이동하였다. 중권시장에 상장된 기업을 지역별로 분류한 자료도 호남 경제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전주상공회의소가 2019년 기준으로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 시장 사장사의 시도별 분표를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전라도의 소재사장 기업은 62개로 전체 상장사 2,211개의 2.8%에 불과했다. 그래도 전라도의 건설업은 좋다고 한다. 토계청 <전국사업체조사>에 따르면 광주에서 노동자나 사업체를 경영하는 사람 중 9.3%는 건설업에서 일한다고 한다. 건설업의 매출은 전체 사업체 매출의 12.1%를 차지한다. 그래서 전라도인의 연봉은 한국 평균 연봉보다 적은 돈을 번다. 2021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전라도 청년 취업자들의 첫 급여는 월 163만 3000원으로 전국 평균인 181만 6,000원 보다 10.1% 낮았다. 호남권 대졸 이상 취업자 초보은 전국 평균 보다 월 23만원 이상 적었다. 결국 전라도의 청년들은 다른 곳으로 일자리를 찾으러 간다. 2010년 광주의 경우 20대 30대 순유출은 200명에 불과했는데 2015년 6,400명으로 뛰고 이후 연평균 3,900며을 보이고 있다.
전라도의 산업화의 실패는 박정희 대통령과 연관되어 있다. 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세력의 핵심은 경부고등하교 출신들 이었다. 그들은 만주와 함경도 출신을 인맥을 대거 숙청하고 모든 힘을 경상도 출신으로 집중하고 전라도 출신은 힘을 잃게 되었다. 유보선 대통령 때 고위 관료 중 전라도 출신은 20.6% 였는데 박정희 시대때는 9.6%로 줄어들었다. 이렇게 대구와 경북 출신 엘리트들은 국가를 경영하면서 자신들의 기반인 영남을 중심으로 산업을 발저시켰다. 네트워크로 인하여 영남 출신 기업인들에게 자본이 우선적으로 공급되었고 영남을 중심으로 각종 사회간접자본을 건설하였다. 1960년대에 들어오면서 많은 호남 출신 이주민들은 직업을 구하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도시 하층민이 많이 사는 몇몇 지역에 모이는 양상이 나타났다. 이들은 토착민 또는 그 지역 농촌에서 도시로 오게 된 이들과 경쟁 관계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전라도는 산업화 과정에 올라타 성장시킬 기회 자체를 봉쇠당하였다. 남은 길은 자국적 산업자본이나 부동산을 기반으로 한 자산가가 되거나, 아니면 소지역 수준에서 가능한 사업을 하는 것밖에 없었다. 결국 산업화로부터 소외되면서 호남 사람들은 기업도, 기업가도, 근대적 기업 활동에 필요한 사회적 자본도 얻을 수 없었다
통계청에 따면 전라남도의 전체 출생 및 혼인 건수 중 다문화 비중이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22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국 다문화 혼인율의 평균은 8.3%인데 전남은 10.7%, 이였습니다. 호남통계청이 내놓은 통계에 의하면 다문화 혼인 비중은 전라도가 두번째로 높았다고 합니다. 2021년 연구에 의하면 전남 11.8%, 전북 11.2%, 광주 9.0%였다고 한다. 혼인 건수는 전남 886건, 전북 800건, 광주 577건이고 전국 대비 다문화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남 4.0%, 전북 3.5%, 광주 2.1%, 이었다고 합니다. 다문화 가구원은 전남 4만8천652명, 전북 4만2천377명, 광주 2만2천946명 등 모두 12만명쯤 이라고 합니다. 평균 가구원 수는 전남 3.5명, 전북 3.4명, 제주 3.3명, 이었다. 결혼이민자 국적은 베트남이 41.3% 이어 중국(13.7∼19.6%), 필리핀(9.3∼12.7%), 일본(3.6∼5.6%) 순이었다. 남편의 혼인 연령은 광주, 전북, 전남 모두 45세 이상이 가장 많았고 아내의 혼인 연령은 대부분 30대 초반, 이었다.
이처럼 전남의 다문화 혼인율 및 출생률이 높게 나타남에 따라 결혼이민자 및 다문화가족 부부와 자녀를 위한 지원정책 및 상담서비스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전라남도 여성 가족 정책관실 에서는 다문화자녀에게 부모나라 문화․언어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한 ‘다문화가족 자녀 엄마․아빠나라말 경연대회’를 2011년부터 매년 개최하고 있으며, 학교 부적응 다문화자녀를 대상으로 ‘다문화청소년 적응유연성향상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학교 및 사회 적응을 유도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그들이 우리나라의 문화에 동화되고 잘 적을 할 수 있도록 ‘역사문화탐방 프로그램’ 과 ‘한국문화이해교육’ 을 하기도 하였다.
동혈 정책에도 불구하고 이민자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사람들도 있다. 현제 광주에서 베트남인과 일하는 일꾼에게 같이 일하는 베트남 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쭈어 보자 그는.
‘외국에서 들어온 배트남에들 때매, 우리 월급이 도리어 못 올랐어. 글고 에들 목소리가 너무 시끄럽고, 글고 가끔식 뭐가 없어지는데 걔들이 좀 훔치는 거 같아.’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이렇게 광주인과 이주민들의 분쟁이 있기도 하지만 한국을 좋게 보는 사람들도 있다. 불구하고 광주 인텁
경제협력개발기구인 ‘OECD’는 이주배경인구가 총인구의 5%를 넘을 경우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분류한다. 한국의 현제 인구중 4.9%가 외국인 이기 때문에 다문화 국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문화 가족 인구 수만으로는 지금 23년도 추산으로 112만 명이고 10가구중에 1가구가 다문화 가족이다. 다문화 학생 수는 지금 매년 7.4%씩 증가갛고 23년 교육부 추산으로는 18만 천 몇백병 정도라고 합니다. 이렇게 지금 우리 사회에서 계속 다문화 가족 수는 늘고 학수는 더 느늘어갈거라고 생각한다
호남지방통계청이 발표한 호남·제주지역 아동가구 양육 환경 변화상에 따르면 2021년 11월 기준 아동인구는 광주는 23만3천명, 전남은 24만9천명이다. 2015년 대비 광주는 5만9천명이 감소했고, 전남은 5만7천명이 줄었다. 광주는 2015년 20%에서 2021년 17%로 떨어졌고, 전남은 2015년 17%에서 2021년 14%로 감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