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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편
하나님의 본성
. 신성한 조언자
. 1934년
2:0.1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최고 가능한 개념에서 최초이고 무한한 성격의 이상이 인간의 사상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과 같이, Deity의 특성을 구성하는 신성한 본질의 어떤 특징을 연구하는 것은 허용될 수 있고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의 본성은 네바돈의 미가엘이 준 다양한 가르침과 그의 육신 안에서의 훌륭한 필사 삶에서 펼쳐진 아버지에 대한 계시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 만일 인간이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로 여기고, 파라다이스 창조자를 진정한 영적 아버지로 우러러본다면, 신성한 본성 또한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하나님의 본성은 최고 개념의 계시에서 연구될 수 있고, 그 신성한 성품은 초자연적 이상을 묘사하는 것으로서 상상할 수 있지만, 신성한 본성에 대한 모든 계시들 중에서 가장 우리를 깨우치고 영적으로 교화시키는 것은 나사렛 예수(Jesus of Nazareth)가 자신의 신성에 대한 완전한 의식을 성취하기 전과 후에, 그가 보여준 모든 종교적 삶을 이해하는 데서 발견되어야 한다, 육신화된 미가엘(Michael)의 삶이 사람에게 하나님을 계시하는 배경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우리는 신성한 본성에 관계된 어떤 사상과 이상들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려고 시도할 수 있고, 이것은 personality이신 우주의 아버지의 성품과 본성에 관한 인간의 개념을 더욱 조명하고 통일하는 데 아마도 기여할 수 있다.
인간의 하나님 개념을 확대하고 영적으로 높이려는 우리의 모든 노력에서, 필사 mind의 제한된 능력으로 인해 엄청나게 지장을 받는다. 유한한 필사 mind에게 신성한 가치들을 표현하고 영적인 의미들을 제시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언어의 한계로 인하여, 실례를 들거나 비교할 목적으로 쓸 수 있는 자료가 빈곤하여, 과제를 수행하는 데 심각한 지장을 받고 있다. 우주의 아버지가 수여한 조절자가 필사 mind 속에 깃들고, Creator Son의 진리의 영이 그 mind에 스며든다는 사실이 아니라면,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개념을 키우려는 우리의 온갖 노력은 거의 무익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개념의 확장을 돕기 위해 인간의 마음 속에 신성한 이 영이 존재하는 것에 의존하여, 나는 하나님의 본성을 사람의 mind에 더 깊이 묘사하는 것을 시도하기 위한 나의 과제를 실행하는데 즐겁게 착수한다.
1. 무한한 하나님 (The Infinity of God)
2:1.1 우리는 “무한자(Infinite)와 접하지만, 그를 발견하지 못한다. 신성한 발자취는 알 수 없다.” “그의 이해력은 무한하고 그의 위대함은 헤아릴 수 없다.” 아버지(Father)의 계심에서 나오는 빛이 눈부시게 밝아서, 비천한 생명존재들에게는 아버지가 “짙은 어둠 속에서 사시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생각과 계획은 헤아릴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는 수없이 위대하고 놀라운 일을 하신다.” “하나님은 위대하시며, 우리는 그를 깨닫지 못하고, 그의 세월의 수(數)도 알아낼 수 없다.” “하나님이 땅 위에 거하시겠느냐? 보라 하늘 (우주)과 하늘들의 하늘이 (우주들의 우주) 그를 담을 수 없다.” “그의 판단은 헤아릴 수 없고, 지나간 그의 길은 찾을 길이 없다!”
“오직 한 분 하나님이 계시니, 무한하신 아버지, 또한 충실한 창조자이시다.” “신성한 창조자는 또한 우주의 결정자이시며, 혼들의 근원이요 운명이다. 그는 the Supreme Soul(혼), 근원적 Mind이며, 모든 창조의 제한 없는 영(Unlimited Spirit)이다.” “위대한 통제자는 실수가 없다. 그는 위엄과 영광 속에 찬란히 빛난다.” “창조자 하나님은 두려움과 증오가 전혀 없는 완전하신 분이다. 그는 불멸하고 영원하며, 스스로 존재하고, 신성하며, 너그럽다.” “순결하고 아름다우며, 만물의 지고한 조상은 깊고도 측량할 수 없도다!” “무한자(Infinite)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나누어주시니, 그 무한함이 가장 뛰어 나시다. 그는 시작과 끝이요, 모든 선함과 완전한 목적을 가지신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에게 모든 것이 가능하다; 영원한 창조자는 원인들의 원인이 되신다.”
영원한 우주의 personality이신 아버지가 엄청나고 무한히 표현될지라도, 아버지는 그의 무한함과 영원함을 무제한으로 의식한다;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그의 완전함과 능력을 충분히 아신다. 하나님은 우주에서 신성한 동위자들을 제외하고, 체험하는 완전한 분이며, 참되고, 스스로를 완전히 평가하는 유일한 존재이다.
아버지는 그의 master universe의 여러 부분에서 아버지에 대한 다른 요구가 때때로 변함에 따라 그러한 필요를 늘 어김없이 채운다. 위대한 하나님은 스스로를 알고 이해한다; 그의 모든 최초의 완전한 속성을 무한히 스스로 의식한다. 하나님은 우주에서 어쩌다가 생긴 분이 아니며, 또한 우주를 실험하는 분도 아니다. (지역)우주 주권자들은 모험할 수 있고, 별자리 아버지는 연구할 수 있고, 체계의 우두머리는 연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주의 아버지는 처음부터 끝을 보시며, 그의 신성한 계획과 영원한 목적은 그의 광대한 영토의 모든 우주들, 모든 세계들, 체계들, 별자리들에서 자신의 모든 하위 존재들이 겪는 모든 연구와 모든 모험을 실제로 받아들이고 이해한다.
하나님에게 새로운 것은 없으며 우주적 사건이 놀라움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는 영원의 궤도에서 거하신다. 그는 시작과 끝이 없다. 하나님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가 없다; 모든 시간이 주어진 순간에 존재한다. 하나님은 위대하고 유일하게 스스로 존재한다.
2:1.6 우주의 아버지는 그의 모든 속성에서 절대적이고 제한 없이 무한하다. 이 사실은, 그것 자체로, 유한한 물질적 존재와 기타 낮게 창조된 지적 존재들과의 모든 personal 소통을 바로 자동으로 차단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아버지의 다양한 생명존재들과의 접촉과 소통을 위해 그러한 준비가 필요한데, 첫째로는, 이 준비는 하나님의 파라다이스 아들들의 personality들 안에서, 그들의 신성은 완전하지만, 종종 행성 민족들의 바로 그 피와 살의 본성을 취하여, 너희 중 하나가 되어 너희와 함께 생활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아들로 불려왔던 미가엘(Michael)의 수여에서 일어났던 것처럼, 하나님이 사람이 된다. 둘째로는, 무한한 영의 성격자들, 곧 다양한 서열의 천사 무리와 기타 하늘의 지적 존재들이 있는데, 이들은 낮은 기원을 가진 물질 존재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을 보살피고 섬긴다. 그리고 셋째로는, impersonal 신비의 훈계자들인 생각 조절자들이 있다, 이들은 어떤 예고나 설명도 없이 보내지는, 유란시아의 인간과 같은 부류에 깃들기 위하여 위대한 하나님 자신이 실제로 보낸 선물이다. 그들은 영광스런 높은 곳에서 내려와 하나님을 의식하는 능력이나 그 잠재능력을 가진 겸손한 mind들에게 깃들어 은혜를 베푼다.
이러한 방법들과 많은 다른 방법들로, 너희에게 알려지지 않은 방법들 그리고 완전히 유한한 이해를 초월한 방법들로, 파라다이스 아버지는 사랑스럽게 기꺼이 내려와 자녀인 생명 존재의 유한한 mind들에게 할 수 있는 한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의 무한성을 수정하고, 묽게 하고, 약화시킨다. 그래서 절대성이 줄어들면서 일련의 personality 분산을 통하여, 무한의 아버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우주의 많은 영역에서 다양한 지적 존재들과 가깝게 접촉할 수 있게 된다.
그의 무한, 영원, 근원의 사실과 실체로부터 조금도 손상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이제까지 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할 것이다. 알아듣기 어렵고 신비 속에 가려 있더라도, 유란시아에 사는 부류의 생명 존재들이 충분히 이해하기가 불가능함에도, 이렇게 이루어지는 일들은 절대적으로 사실이다.
처음 아버지의 계획이 무한하고 그의 목적이 영원하기 때문에, 어떤 유한 존재도 이러한 신성한 계획과 목적을 언제라도 충분히 파악하거나 이해하기가 본래부터 불가능하다. 우주에서 진보하는 연속된 단계에서 생명존재의 상승 계획이 진행되는 것과 관련하여 아버지의 목적들이 드러남에 따라서 필사 인간은 그 목적을 이따금, 여기저기에서 얼핏 볼 수 있다. 사람은 무한의 의미를 알아들을 수 없지만, 무한한 아버지는 온 우주에 있는 모든 자녀의 유한함을 아주 확실히, 충분히 이해하고 사랑으로 감싼다.
2:1.11 신성과 영원에서 아버지는 상위 파라다이스 존재들과 공유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아버지가 동위에 있는 파라다이스 삼위일체 동료들을 제외하고, 무한성과 그에 따른 우주의 근원성을 누구와도 함께 가지는지 의문을 품는다. personality의 무한성은, 어쩔 수 없이, 모든 personality의 유한성을 수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우리의 존재를 가진다” 고 선언하는 가르침은 진실―글자 그대로 진리―이다. 필사 인간에게 깃드는, 우주의 아버지의 순전한 분신, 신의 그 분신은 위대한 첫째 근원 중심, 곧 가장 높은 아버지의 무한성의 한 부분이다.
2. 아버지의 영원한 완전성 (The Father's Eternal Perfection)
2:2.1 너희의 오래된 선지자들조차 우주 아버지의 영원하고, 결코 시작도 없고, 끝이 없는, 순환하는 본성을 이해했다. 하나님은 글자 그대로, 영원히 우주 전체에 계신다. 모든 절대적 위엄과 영원한 위대함을 가지고, 아버지는 현재의 순간에 거하신다. “아버지는 자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있으며 이 생명은 영생이다.” 영원한 세월 전체를 통해서, “모두에게 생명을 주시는”분은 아버지였다. 신성한 진실함 속에는 무한한 완전함이 있다. “나는 주(Lord)이다; 나는 변하지 않는다.” 우주 전체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그가 빛의 아버지일 뿐만 아니라 행성 간의 일을 집행하는 데 있어서 “변하는 그림자가 전혀 없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는 “처음부터 끝을 선언하신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나의 권고는 늘 유효하다; 내 아들(Son) 안에서 내가 뜻한 모든 영원한 목적에 따라, 나는 나의 기뻐하는 모든 일을 할 것이다.” 그러므로 첫째 근원 중심의 계획과 목적은 그 자신처럼 영원하고 완전하며, 언제까지나 변함이 없다.
아버지의 명령에는 충만한 완전성과 최종의 완전함이 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이든지, 그것은 영원하다; 그 일에 덧붙일 수 있는 것도 없고, 떼어낼 것도 없다.” 우주의 아버지는 지혜와 완전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의 계획은 견고하고, 그의 권고는 바뀔 수 없으며, 그의 행동은 신성하고 잘못이 있을 수 없다. “그의 눈에는 천년이, 지나버린 어제 같고 한순간일 뿐이다.” 신성의 완전함과 영원함의 규모는 언제까지라도 필사 인간의 한정된 마음이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
그의 영원한 목적을 수행함에 있어, 변함없는 하나님의 반응은 그가 지은 지적 존재들의 변하는 태도와 변화하는 지성에 따라 달라지는 듯 보일지 모른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반응이, 겉보기에, 표면적으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 표면 아래에,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표현들 아래에도, 여전히 영원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목적, 영구한 계획이 존재한다.
바깥 우주들에서, 완전은 반드시 상대적 용어임이 틀림없지만, 중앙 우주, 그리고 특히 파라다이스에서, 완전은 희석되지 않는다; 어떤 단계에서 그것은 심지어 절대적이다. 삼위일체가 나타나는 모습은 신성의 완전함을 서로 다르게 드러내지만, 완전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하나님의 근원적 완전함은 가정된 의로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신성한 본성이 본래부터 완전히 선함에 있다. 그는 최종이고, 완벽하고 완전하다. 그의 의로운 성품의 아름다움과 완전함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다. 우주 공간의 살아 있는 존재들에 대한 계획 전체는 아버지의 파라다이스 완전함을 함께 체험하는 높은 운명으로, 의지를 가진 모든 생명존재를 높이 올리는 신성한 목적에 중점을 둔다. 하나님은 자기중심적이지도 않고, 자기만족에 있지도 않다; 그는 광대한 온 우주에서 자의식을 가진 생명존재 모두에게 결코 멈추지 않고 자신을 내어준다.
2:2.6 하나님은 영원히 그리고 무한히 완전하다; 불완전을 그 자신의 체험으로 직접 겪을 수 없지만, 모든 파라다이스 Creator Son들이 창조하는 진화 우주에서 투쟁하는 모든 생명존재가 겪는 어떤 불완전한 체험도 하나님은 함께 의식한다. 완전한 하나님의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손길은, 도덕적 분별력이 우주 단계까지 올라간 모든 필사 생명존재들의 본성을 에워싸고 그 중심에 완전히 드리운다. 이러한 방법뿐만 아니라, 또 신성한 계심의 접촉을 통해서, 우주의 아버지는 우주 전체에서 모든 도덕적 존재의 진화 생애에서, 미숙하고 불완전한 특징을 가진 체험에서 실제로 참여하고 계신다.
인간의 한계들, 잠재적인 악은 신성한 본성의 일부가 아니다. 그러나 필사자가 겪는 악과 모든 사람들의 관계에서의 도덕적 체험은, 파라다이스에서 나가는 모든 Creator Son에 의해 창조되었거나 진화하는 도덕적 책임을 가진 생명존재들―시간의 아이들 속에서 분명히 하나님 자신을 실현하고 확장시키는 아주 확실한 일부이다.
3. 공정과 의로움 (Justice and Righteousness)
2:3.1 하나님은 의롭다; 그러므로 그는 공정하다. “주(Lord)는 모든 면에서 의롭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은 이유 없이 한 일이 아니다', 주가 말씀하셨다.” “주의 판단은 참되고 완전히 의롭다.” 우주 아버지의 공정은 그의 생명 존재들의 행동과 수행들에서 영향을 받을 수 없으니, 이는 “우리 주 하나님(Lord our God)은 불의가 없고,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며, 어떤 뇌물도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하나님께, 그의 변치 않는 법령들을 바꾸라고, 그래서 그의 현명한 본성의 법들과 의로운 영적 명령이 작용하여 나타나는 마땅한 결과들을 우리가 피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철없이 호소하는 것은 얼마나 쓸데없는 일인가! “현혹하지 말라; 하나님은 조롱당하지 않으신다. 사람이 뿌린 씨는 무엇이든지, 자기가 거두어들일 것이다.” 진실로, 잘못의 결과를 거두는 공정의 경우에도, 신성한 공정은 항상 자비로 완화된다. 무한한 지혜자는 주어진 상황에서 충족되어야 할 공정과 자비의 비율을 결정하는 영원한 결정권자이다. 하나님의 정부에 대항하는 잘못과 고의적인 반란에 대한 가장 큰 처벌은 (실제로는 피할 수 없는 결과로) 그 정부의 개별 주체로서의 존재를 상실하는 것이다. 마음을 다하여 죄를 지은 최종의 결과는 소멸이다. 결국 죄로 확인된 그들의 죄를 포용한 그런 개인들은 그들 자신을 파괴하여 완전히 실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생명존재의 실제적인 소멸은 항상 그 우주에 존재하는 공정의 질서가 완전히 준수될 때까지 지연된다.
존재의 정지는 일반적으로 그 영역, 또는 여러 영역에서 섭리 시대나 새 시대의 판결이 있을 때 공포된다. 유란시아와 같은 세계에서의 이런 판결은 행성의 한 섭리 시대 끝에 온다. 그 같은 시기에서 존재가 중단되는 것은 행성 회의로부터 Creator Son의 법정을 거쳐, Ancients of Days 에인션츠 업 데이즈의 재판소까지 확대되는, 모든 관할 재판소가 공동으로 행동함에 따라 규정된다. 소멸하라는 명령은, 죄인이 거주하는 구체에서 발생한 기소를 확실히 확인한 후, 초우주의 고등 법원에서 시작된다. 그리고나서, 상부에서 소멸 선고가 확정되었을 때, 초우주 본부에서 거주하면서 활동하는 판사들의 직접적인 결정에 의해 그 집행이 이루어진다.
이 판결이 최종적으로 확인되면, 죄인은 순간적으로 마치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된다. 그러한 운명으로부터는 부활이 없다; 그것은 영원하고 영원하다. 그 신분의 살아있는 에너지 요소들은 시간이 흘러 변하고 공간에서 변형되어 그 요소들이 언젠가 출현했던 그 우주 잠재력으로 돌아가서 분해된다. 불의한 자의 성격에 대해서는, 영원한 생명을 보장할 수 있는 그러한 선택과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생명존재의 실패로 인해 생명이 타고 다닐 몸이 박탈된다. 붙어 있던 mind는 줄곧 죄를 품어 마침내 완전히 불의와 한편이 될 때, 생명이 정지되고, 우주에서 해체되면, 그같은 고립된 personality는 창조의 대혼(oversoul) 속으로 흡수되어, Supreme Being의 진화하는 체험의 일부가 된다. 그 부분은 결코 다시 personality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 신분은 마치 태어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된다. 조절자가 깃들었던 성격자의 경우에, 그 체험적 영의 가치는 계속하는 조절자의 실체 속에서 살아남는다. *창조의 대혼 : 모든 혼들을 포괄하는 Supreme Being을 일컫는 말이다.
어떤 우주에서 사실상의 실체들 간에 이의를 제기하더라도, 높은 수준의 the personality가 결국에 낮은 수준의 the personality 위에서 승리를 거둘 것이다. 우주의 투쟁에서 피할 수 없는 이 결과는, 어떤 존재의 신성의 정도는 그 의지 생명존재의 실체 또는 사실성의 정도와 같다는 사실에 내재되어 있다. 순전한 죄, 완전한 잘못, 고의적인 죄, 완전한 부정은 본질적으로 그리고 자동으로 자살 행위이다. 그러한 우주의 실체없는 태도는 오직 일시적인 자비 때문에 - 공정한 판단이 있을 때까지의 관용 - 공정을 결정하기까지― 의로운 판결의 우주 법정 메카니즘을 찾을 때까지 우주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2:3.6 지역 우주에서 Creator Son들의 통치는 사람을 창조하고 영성화(靈性化)시키는 것이다. 이 아들들은 진보하는 필사자 상승에 대한 파라다이스 계획을 효과적으로 실행하고, 반역자들과 잘못된 사상가들을 회복시키는 데 전념한다. 그러나 이러한 애정 어린 노력이 마침내 모두 영원히 거부될 때, Ancients of Days 에인션츠 업 데이즈의 사법권 아래에서 활동하는 세력들에 의해 이 소멸하라는 최종 결정이 집행된다.
4. 신성한 자비 (The Divine Mercy)
2:4.1 자비는 간단히, 완전히 성장한 지식이 유한한 생명존재들의 자연적인 약점과 환경적인 장애를 충분히 인식한 지혜로 인해, 공정이 완화된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넘치시고, 은혜로우시며, 오래 참고 자비가 풍성하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를 부르는 자마다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가 넘치게 용서하실 것이다.” “주(Lord)의 자비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다다른다.”; 그렇다, “그의 자비는 영원하다.” “나는 땅에서 사랑스런 친절, 심판, 의를 행하는 주(Lord)이다, 내가 이것들을 기뻐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의 아이들에게 고통을 주지 않으며, 슬프게도 하지 않으니,” 나는 “자비를 베푸는 아버지(Father)이고 모든 위로의 하나님(God)”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본래 친절하고, 본성적으로 동정심이 많고, 영원히 자비로운 분이다. 그리고 그의 사랑스런 친절을 받기 위해 결코 어떤 영향력도 아버지에게는 필요치 않다. 생명존재의 필요는 전적으로 아버지의 부드러운 자비와 그의 구원의 은혜가 가득 흘러내릴 것을 보장하는데 충분하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에 관하여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용서하는 것이 쉽다. 사람이 이웃을 이해하면 할수록 그를 용서하고 심지어 사랑하는 것까지도 더욱 쉬워진다.
오직 무한한 지혜를 분별하는 것만이 어떤 주어진 우주 환경에서도, 의로운 하나님이 공정과 자비를 동시에 베풀 수 있게 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그의 우주에 있는 자녀들을 향한 갈등으로 결코 고통을 받지 않는다; 하나님은 결코 적대적인 태도에 희생되지 않는다. 모든 것을-알고 계신 하나님은 모든 신성한 속성과 그의 영원한 본성의 무한한 성질이 요구하는 것을 완전히, 동시에, 똑같이 만족시키는 우주 행위를 선택함에 있어서, 그의 자유의지를 직접 행하신다.
자비는 선과 사랑에서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산물이다. 사랑을 베푸시는 아버지의 선한 본성은 우주에 있는 그의 자녀들의 모든 집단의 각 구성원에게 지혜롭게 자비를 베푸는 것을 아까워할 수가 없다. 영원한 공정과 신성한 자비가 함께 합쳐진 것을 인간의 체험에서 공평이라 부를 것이다.
신성한 자비는 완전과 불완전 사이의 우주 단계에서 공평한 조정 기법을 나타낸다. 자비는 진화하는 유한자의 상황에서, 영원의 의로움이 시간 세계의 자녀들에게 가장 높은 이익과 우주 복지 혜택을 주기 위해 수정된 것으로, Supremacy의 공정이 적용된 것이다. 자비는 공정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다. 진화 우주에서 하위 영적 존재와 물질 생명존재들에게 공평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오히려 최고의 공정 요구에 대한 이해심 있는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자비는 시간과 공간의 창조의 다양한 지적 존재들 위에 머물러서 지혜롭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베푸는 파라다이스 삼위일체의 공정이며, 이러한 공정은 우주의 아버지와 그와 연관된 창조자들의 주권적 자유의지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mind로 확정되고, 신성한 지혜로 확정된 것이다. *Supremacy 수프레머시 : Supreme과 관련된 표현들 참조.
5. 하나님의 사랑 (The Love of God)
1:5.1 “하나님은 사랑이다.”; 그러므로 우주 문제에 대하여 그가 친히 가지는 유일한 태도는 항상 신성한 사랑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그의 생명을 우리에게 줄 만큼 우리를 넉넉히 사랑하신다. “그는 악한 자와 선한 자에게 태양이 비치게 하고, 공정한 자와 불의한 자에게 비를 내리신다.”
그의 아들들의 희생이나 그의 하위 생명존재가 간청해서 하나님을 설득하여 그의 자녀들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니, “아버지는 그 스스로 너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mind 속에 깃들라고 보내는 놀라운 조절자는 바로 아버지의 사랑이 반응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보편적이다; “누구든지 하나님께로 올 수 있다.” “진리를 알게 됨으로써 모든 사람이 구원받게 하신다,” 그는 “누구라도 멸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창조자(Creators)들은 사람들이 신성한 법칙들을 어리석게 위반함으로써 생기는 비참한 결과로부터 그들을 구하려고 가장 먼저 애쓰시는 분들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아버지다운 애정이다; 그러므로 그는 때때로 “우리의 이익을 위하여 우리를 꾸짖어, 우리가 그의 거룩함을 따르는 사람이 되게 한다.” 심지어 너희의 불같은 시련 속에서도, “우리의 모든 고난 속에서 그는 우리와 함께 고통을 받는다." 는 것을 기억하라.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신성하게 친절하다. 반역자들이 의로운 길로 돌이키면, 그들을 자비롭게 받아들이시는데, “우리의 하나님이 풍성하게 용서하시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하여 너희의 죄를 씻어주나니, 너희의 죄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보라 아버지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였는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워지게 될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깃드는 아버지의 선물인 조절자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나타내는 가장 큰 증거이며 우리가 그를 사랑할 최고의 이유다. 그는 둘이 영원히 하나가 되는 그 시간을 아주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너희가 찾으려 해도 하나님을 찾아낼 수 없지만, 깃드는 영의 이끄심에 순종하면, 우주의 아버지이신 파라다이스 personality 존재 앞에 너희가 마침내 설 때까지, 한 걸음 한 걸음, 한 생명 한 생명, 우주를 거치고 또 우주를 거쳐서, 한 수준 한 수준, 너희는 어김없이 안내될 것이다.
1:5.6 인간 본성의 한계와 물질 창조의 장애물이 네가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만든다고 해서 네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것은 얼마나 불합리한 일인가. 너와 하나님 사이에는 건너야 할 끔찍한 거리가 (물리적 공간이) 있다. 마찬가지로, 거기에는 큰 영적 차이가 있어서 다리를 놓아야 한다. 그러나 너와 파라다이스에 하나님이 몸소 계신 앞을 물리적ㆍ영적으로 떼어놓는 것이 아무리 많아도, 멈추어 하나님이 네 안에 산다는 이 엄숙한 사실을 깊이 생각해 보라. 하나님은 그분 나름대로 그 사이에 이미 다리를 놓았다. 네가 영원한 우주 생애를 추구하는 동안, 네 안에 살고 너와 함께 고생하라고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의 영(spirit)을 보냈다.
그토록 위대하고, 동시에 비천한 인간을 향상시키는 봉사에 그렇게 사랑으로 헌신하는 분을 예배하는 것이 나는 쉽고도 즐겁다. 그렇게 창조력과 통제력이 막강하고, 그래도 완전히 선하고, 그토록 충실히 우리를 항상 보호하는 자애심을 보이는 분을 나는 자연히 사랑하게 된다. 그렇게 위대하고 막강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선하고 자비롭기만 하다면, 나는 아마 똑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리라 생각한다. 하나님의 놀라운 속성을 인식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본성 때문에 우리 모두가 아버지를 더욱 사랑한다.
진화하는 공간 우주에 본래 있는 다양한 시간 세계의 어려움을 이기려고 아주 용감히 투쟁하는 Creator Son들과 그 하위 행정가들을 관찰할 때, 우주의 이 작은 통치자들이 크고 깊은 애정을 가졌음을 나는 발견한다. 결국, 그 영역의 필사자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는, 우주의 아버지와 신이든 인간이든 모든 다른 존재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들 personality가 참으로 우리를 사랑함을 깨닫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체험은, 대체로, 사랑받는 체험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이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함을 알고 있으니, 비록 하나님이 최상ㆍ궁극ㆍ절대성과 같은 이 모든 속성을 벗어버린다 하더라도, 나는 계속 그를 지극히 사랑할 것이다.
현재, 그리고 영원한 시대의 끝없는 영역에 걸쳐, 아버지의 사랑은 우리를 따라온다. 너희가 하나님의 사랑하는 본성을 깊이 생각할 때, 그 사랑에 대하여 성격자의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반응은 하나밖에 없다: 너희는 갈수록 더 창조주를 사랑하게 될 것이고, 어린아이가 땅에서 부모에게 주는 것과 비슷한 사랑을 하나님께 바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아버지, 참된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아이들을 사랑하며, 마찬가지로 우주의 아버지는 그가 창조한 아들딸을 사랑하고, 언제까지나 그들의 복지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현명하고 멀리 내다보는, 부모다운 사랑이다. 우주 아버지의 완전한 성품이 지닌 신성한 지혜와 모든 다른 무한한 특징과 조화되어, 신성한 사랑이 작용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지만, 사랑이 하나님은 아니다. 생각 조절자의 수여에서 필사 존재를 위한 가장 큰 표현의 신성한 사랑을 지켜볼 수 있지만, 너희가 받는 아버지 사랑을 가장 크게 계시한 것은 그의 아들 미가엘(Son Michael)이 땅에서 이상적인 영적 삶을 살았던 수여 생명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의 사랑을 각 인간 혼에게 개별적으로 주는 분은 안에 깃들어 계신 조절자이다.
1:5.11 사랑이라는 인간의 언어 표현을 이용하여, 하늘 아버지가 우주의 자녀에게 품는 신성한 애정을 묘사하라고 강요받으니 나는 이따금 거의 비명이 나올 지경이다. 이 용어는 존경하고 헌신하는 필사자의 관계를 나타내는, 사람의 가장 높은 개념을 뜻하지만, 온통 저열하고 전혀 부적당한 허다한 인간관계를 표시하는 일이 아주 빈번하기 때문에, 어떤 표현을 빌리더라도, 살아 계신 하나님이 우주의 인간에게 품는 비할 수 없는 애정을 가리키는 데 같은 표현을 쓰는 것은 부당하다.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신성한 애정의 참된 그 본질과 지극히 아름다운 의미를 인간의 mind에 전할 낱말, 더할 나위 없고 꼭 맞는 낱말을 내가 쓸 수 없으니 얼마나 딱한 일인가!
인간이 personal 하나님의 사랑을 보지 못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단지 선의 나라가 될 뿐이다. 신성한 본성의 무한한 통합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하나님이 생명존재들과 가지는 모든 personal 관계에서 지배적 특징을 나타낸다.
6. 하나님의 선하심 (The Goodness of God)
1:6.1 우리는 물리적 우주에서 신성한 아름다움을 볼 수도 있고, 지적 세계에서 영원한 진리를 분별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선하심은 개인이 종교적 체험을 가지는 영적 세계에서만 발견된다. 종교라는 것은 참 본질 안에서 하나님이 선하심을 믿고-신뢰하는 것이다. 철학적으로는 하나님이 위대하고 절대적이며, 심지어 지적이고 또한 personal일 수 있지만, 종교에서 하나님은 또한 도덕적이어야 한다; 그는 선해야만 한다. 사람은 위대한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 있지만, 오직 선한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한다. 하나님의 이 선하심은 하나님의 personality 일부이고, 이 선의 충만한 계시는 오직 하나님을 믿고 있는 아들들의 개인적인 종교적 체험에서 나타난다.
종교는 영적 본성의 초월 세계가 인간 세계의 근본적인 필요를 인식하고 반응하는 것을 암시한다. 진화된 종교는 윤리적일 수도 있지만, 오직 계시된 종교는 참되고 영적으로 도덕적이다. 하나님(God)이 왕답게(kingly) 도덕성에 지배받는 신(Deity)이라는 오래된 개념을, 예수는 부모-자식 관계에서 생기는 친밀한 가족 도덕의 수준, 대단히 감동적인 수준까지 올려놓았는데, 필사자의 체험에서 이 부모-자식 관계보다 더 온화하고 아름다운 관계는 없다.
“하나님의 풍부한 선함은 잘못하는 사람을 뉘우치게 한다.” “모든 좋은 선물, 모든 완전한 선물은 빛의 아버지로부터 내려온다.” “하나님은 선하며, 그는 사람의 혼의 영원한 피난처이다.” “주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다. 그는 오랫동안 참았으며 선과 진리가 풍부하다.” “주가 선하심을 보고 맛보라! 그를 신뢰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은 은혜롭고 동정심이 가득하다. 그는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마음이 상한 자를 치료하고, 혼의 상처를 고치신다. 그는 사람에게 전능한 힘을 가진 후원자이시다.”
하나님을 왕이나 재판관으로 보는 개념은 높은 도덕 기준을 육성하고 한 집단으로서 법을 존중하는 민족을 만들었지만, 이 개념은 시간 세계와 영원 속에서 그가 어떤 지위를 가졌는지에 대하여 개별 신자를 불안한 처지에 놓이게 했다. 후대의 히브리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아버지라고 선포했고, 예수는 각 사람의 아버지로서 하나님을 드러냈다. 하나님의 모든 인간적 개념은 예수의 삶 속에서 초월적으로 빛난다. 부모의 사랑에는 이기심이 내재되어 있다. 하나님은 아버지처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사랑한다. 그는 우주의 모든 personality에게 파라다이스 아버지이다.
의로움은 하나님이 우주의 도덕 법칙의 근원임을 암시한다. 진리는 하나님을 계시자로, 가르치는 자로 나타낸다. 그러나 사랑은 애정을 주고 사랑을 갈망하며, 부모와 자식 사이에 존재하는 그러한 이해할 수 있는 친교를 추구한다. 의로움은 신성한 생각인 반면, 사랑은 아버지의 태도이다. 하나님의 의로움이 하늘 아버지의 사심 없는 사랑과 양립할 수 없다는 잘못된 가정은, 본성에 통일성이 없다는 전제를 낳았고, 속죄 교리를 정교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 교리는 하나님의 통일성과 자유 의지, 이 두 가지에 대한 철학적 공격이다.
1:6.6 애정이 많은, 하늘 아버지의 영은 땅에 있는 자녀들 안에 깃들며 그는―한편에서는 공정, 한편에서는 자비―를 가진 분열된 personality가 아니다. 그의 은혜나 용서를 받기 위하여 중재자가 필요하지도 않다. 신성한 의로움은 엄중히 처벌하는 공정에 지배되지 않는다;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은 심판자로서의 하나님을 초월한다.
하나님은 결코 분노하거나, 복수심이 가득하거나, 성을 내지 않는다. 하나님의 자비가 거부되었을 때 공정이 그 자비를 조절하고, 지혜가 흔히 그의 사랑을 절제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가 의로움을 사랑하는 것은 그만큼 죄를 미워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는 아버지는 모순된 personality이 아니다; 신성한 통합은 완전하다. 하나님의 동위자들에게 영원한 독자성이 있는데도, 파라다이스 삼위일체 안에는 절대적 통합이 있다.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고 죄를 미워한다. 이러한 말은 철학적으로 참말이지만, 하나님은 초월적인 personality이며, person들은 다른 person들을 사랑하고 미워할 수 있을 따름이다. 죄는 person이 아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사랑하는 것은, 그 죄인이 (영원의 잠재성을 가진) personality 실체이기 때문이다. 한편 죄에 대하여 하나님은 personal 태도를 취하지 않는 것은, 죄는 영적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personal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공정은 단지 죄가 존재하는 것을 인식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법은 죄를 없애버린다. 필사자 mind에 깃드는 영 조절자와 완전히 한 편이 될지도 모르는 것처럼, 바로 그 죄인이 또한 마침내 온통 죄와 한 편이 될 때, 이 신성한 본성의 태도가 변하는 듯이 보인다. 이렇게 죄의 편이 되는 필사자는 전적으로 비영적 본성이 되고 (따라서 personally 실체가 없는), 궁극에 존재의 소멸을 맛보게 된다. 심지어 불완전한 본성을 지닌 생명존재는 실체가 없는, 실제로 진행되어가는 점점 더 영적인 우주 안에서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
Personality 세계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은 사랑의 person으로 발견된다; 영적인 세계에 직면했을 때, 그 사랑은 personal 사랑이다; 종교적 체험에서는 하나님은 이 둘 다이다. 사랑은 하나님의 자발적인 의지를 나타낸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신성한 자유의지─사랑하고 자비를 베풀고, 참을성을 보이고, 용서를 베푸는 보편적 성향에 그 기초를 둔다.
7. 신성한 진리와 아름다움 (Divine Truth and Beauty)
1:7.1 모든 유한한 지식과 생명존재의 이해는 상대적이다. 높은 출처에서 얻은 지식과 정보라 할지라도 상대적으로 완전하고, 지역적으로 정확하고, 개인적으로 참일 뿐이다.
물리적인 사실들은 꽤 균일하지만, 진리는 우주철학에서 살아 있고 실행할 수 있는 요소이다. 진화하는 personality들의 의사소통은 겨우 부분적으로 현명하고, 상대적으로 참될 뿐이다. 그들은 그들의 personal 체험 범위들에 한에서만 확신할 수 있다. 한 곳에서 완전히 사실일 수 있는 것은 다른 창조 구역에서는 오직 상대적으로 사실일 수도 있다.
신성한 진리는 우주철학에서 살아 있고 실행할 수 있는 요소이다. 진화, 최종의 진리는 확고하고 보편성이 있지만, 여러 구체에서 온 수많은 개인들이 말하다시피, 영적 일에 관한 이야기는, 지식의 상대적 완벽성 때문에, 그리고 그 개인적 체험의 길이와 범위뿐 아니라 그 체험의 상대적 충만함 때문에, 때때로 세부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위대한 첫째 근원 중심의 법과 법령, 생각과 태도는 영원히, 무한히, 보편적으로 참되다; 동시에, 각 우주ㆍ체계ㆍ세계, 그리고 창조된 지적 존재에게 이것들을 적용하고 또 그에 대하여 조정하는 것은, Creator Son들이 각자의 우주에서 작용하는 그들의 계획과 기법에 따르며, 또한 무한한 영과 기타 관련된 모든 하늘 personality들이 마련한 지역 계획 및 절차와 조화된다.
물질주의의 잘못된 과학은 필사 인간을 우주에서 따돌림 받는 자가 되도록 선고할 것이다. 그러한 부분적 지식은 악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것은 선과 악, 두 가지로 이루어진 지식이다. 진리는 충만과 균형 둘 다 있어서 아름답다. 인간이 진리를 추구할 때, 그는 신성하게 실재하는 것을 추구한다.
철학자들은 추상적인 오류 속에 오도되었을 때, 실체의 한쪽 측면에만 주의를 집중시키는 관행과 그런 고립된 측면을 전체적 사실로 선언하는 것에 현혹될 때 가장 심각한 오류를 범한다. 현명한 철학자는 항상 모든 우주 현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존재하기 전의 창조적인 설계를 찾으려 할 것이다. 창조적인 자의 생각은 변함없이 창조적 활동보다 앞선다.
1:7.6 지적 자의식은 진리의 아름다움, 진리의 영적 품질인 개념의 철학적 일관성뿐 아니라, 항상 존재하는 진리의 영의 정확한 반응에 따라서 확실하고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다. 행복은 진리를 인정하는데서 비롯되는데,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진리는 실천할 수 있다. 실망과 슬픔은 잘못하기 때문에 다가온다. 잘못하는 것은 실체로서 실재하지 않기 때문에 체험 속에서 실체가 될 수 없다. 신성한 진리는 그 영적 향기로 가장 잘 분별할 수 있다.
영원한 추구는 통합을 위한 것이고, 신성한 일치를 위한 것이다. 방대한 물리적 우주는 파라다이스 섬 안에서 한데 모이고, 지적인 우주는 mind의 하나님, 곧 합동 행위자 안에서 한데 모이며, 영적 우주는 영원한 아들의 personality 안에서 하나로 모인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에서 고립된 필사자는, 깃드는 생각 조절자와 우주 아버지의 직접적인 관계를 통해서, 아버지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된다. 사람의 조절자는 하나님의 분신이며, 언제까지나 신성과 일치되기를 추구한다. 조절자는 첫째 근원 중심의 파라다이스 신과 함께, 또 그 안에서 결합한다.
최고의 미(美)를 식별하는 것은 실체를 발견하고 통합하는 것이다: 영원한 진리에서 신성한 선함을 분별하는 것, 이것이 궁극의 미(美)이다. 인간 예술의 매력조차도 그 통일성이 주는 조화에 있다.
히브리 종교의 큰 실수는 하나님의 선(善)을 과학의 사실적 진리와 예술의 호소력 있는 미(美)를 연결 짓지 못한 것이다. 문명이 진보함에 따라, 그리고 종교가 진리를 상대적으로 배척하고 미(美)를 무시할 정도로 하나님의 선(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과 같은 현명하지 못한 과정을 계속 추구함에 따라,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고립된 선(善) 개념, 추상적이고 단절된 개념을 멀리하는 경향이 갈수록 더 생기게 되었다. 현대 종교에서 지나치게 강조된 고립된 도덕은 많은 20세기 인간의 헌신과 충성을 붙잡지 못하고 있으며, 그 도덕적 명령에 덧붙여, 과학, 철학, 영적 체험, 물리적 창조의 미(美), 지적 예술의 매력의 진리들과 그리고 진정한 성품 성취의 중대성을 동등하게 고려한다면, 그 고립된 도덕은 스스로 회복할 것이다.
이 시대의 종교적 도전은, 영적 통찰력으로 멀리, 앞을 내다보는 남녀, 곧 우주적(cosmic) 진리, 우주적(universe) 미(美), 신성한 선(善)에 대한 확대되고 지극히 통합된 현대적 개념의 새롭고 흥미 있는 생활 철학을 감히 건설할 자들을 향한 것이다. 이처럼 새롭고 올바른 도덕성에 대한 전망은 사람의 mind 안에서 모든 선(善)한 것을 끌어당기고, 사람의 혼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도전할 것이다. 진(truth)ㆍ미(美)ㆍ선(善)은 신성한 실체이며, 사람이 영적 생활의 눈금을 올라감에 따라서, 영원자의 이러한 최고의 품질은 사랑인 하나님 안에서 갈수록 더 조율되고 통합된다.
1:7.11 모든 진리─물질적, 철학적, 또는 영적─는 아름답고도 선하다. 모든 참된 미(美)―물질적 예술이나 영적 균형―은 참되고도 선(善)하다. 모든 진정한 선(善)은―개인적 도덕이든, 사회적 평등이든, 또는 신성한 봉사이든―똑같이 참되고 아름답다. 건강과 건전한 정신과 행복은 진(truth)ㆍ미(美)ㆍ선(善)이 인간의 체험 속에서 섞임에 따라서, 이 셋이 통합된 것이다. 이러한 효율적인 삶의 수준은 에너지 체계, 관념 체계, 영(靈) 체계, 이 셋을 통합함으로 생긴다.
진리는 일관성이 있고, 미(美)는 사람을 끌어당기며, 선(善)은 안정을 가져온다. Personality 체험 속에서 실체인 이러한 가치가 통합을 이룰 때, 그 결과는 지혜에 의해 조율되고 충성심에 의해 자격이 주어지는 높은 수준의 사랑이 된다. 모든 우주 교육의 진정한 목적은 여러 세상에서 고립된 아이가 확대되는 체험에서 나타나는 더 큰 실체에 더 잘 연합하도록 영향을 주는 것이다. 실체는 인간 수준에서 유한하고, 더 높은 신성한 수준에서는 무한하고 영원하다.
[유버르사에서 Ancients of Days의 권한으로 활동하는 한 신성한 조언자가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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