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14.
땅끝마을 해돋이
여명이다. 컴컴해서 한 치 앞도 안 보이더니 어스레한 빛으로 조금씩 밝아지고 있다. 일기 예보에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라 했다. 바람조차 잠들어 버린, 해돋이에 가장 적합한 날이다. 그래도 대단히 춥다. 영하의 추위를 대비해 털장갑을 끼고 두툼한 오리털 파카와 바람막이까지를 걸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열이 팍팍 터지는 핫팩도 호주머니에서 꼼지락거린다.
땅끝마을이다. 갈두항 땅끝선착장 옆에 나란히 위치한 두 개의 바위섬을 맴섬이라 부른다. 기암괴석과 소나무를 배경으로 해가 떠오르는 광경이 황홀하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갈라진 두 바위섬 사이에서 떠오르는 해는 지금까지 내가 봐온 해돋이 중에서 최고였다. 한반도가 연상되는 배경에서 붉은 기운을 품고 동그랗게 밝아오는 맴섬해돋이는 엄청나게 아름다웠다. 소원도 소망도 잊은 채 아무런 생각도 없이 감탄만 하다가 깜짝 놀라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또 감탄하게 했다.
맴섬해돋이는 땅끝마을을 대표하는 명물이다. 일출의 아름다움을 담기 위해 전국 사진 동호인들이 수백 명씩 몰리는 진풍경이 벌어진다고 들었다. 2월 15일을 기준으로 사나흘 정도라고 했다. 10월 24일을 기준으로 사나흘 정도 황홀한 해돋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한해에 딱 두 차례만 가능한 해돋이다. 구름 낀 흐린 날이나 바다 위를 가스로 채운 날이면 입맛만 다시다가 아쉬워해야 하는 만만찮은 해돋이다. 며칠 동안 계속되는 한파경보여서인지 삼각대를 놓은 이들이 십여 명뿐이다. 덕분에 비집고 들어가 사진 몇 장을 찍었다.
해돋이 명소는 많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울산 간절곶해돋이는 새해 첫날이면 북새통이다. 포항 호미곶이나 부산 해운대도 별반 차이가 없다. 강원도 동해 추암 촛대바위, 강릉 경포대와 정동진, 양양 낙산사에서 맞이하는 해돋이 역시 유명하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얀 눈꽃 너머로 붉은 해를 감상할 수 있으니 태백산 정상도 명소라 할만하다.
서른 중반의 젊었을 때 이야기다. 당진 왜목마을에서 하루를 묵었다. 밤늦도록 삶의 굴곡을 담은 술잔을 기울이며 지친 몸으로 푹 꼬꾸라져 잠들어 버렸다. 느지막이 일어나 전복죽 한 그릇을 마시고 돌아왔다. 그때는 몰랐다. 왜목마을이 서해안에서 해돋이와 해넘이를 모두 감상할 수 있는 독특한 장소라는 것을. 일행들은 잔잔한 해넘이와 장엄한 해돋이에 감동하여 마음 깊이 새겼을 테지만 나는 조개구이의 짭조름한 맛만 담아왔다. 젊었기에 놓쳐버린 추억을 위해 다시 그곳에 가서 서해안의 해돋이를 느껴보고 싶다.
나이가 들었나 보다. 일렁이는 붉은 태양을 보며 가능하지도 않은 욕망을 들먹이던 젊은 날들이 부끄러워진다. 노력과 희생의 결과를 소원이라는 핑계에 기댔으니 얼마나 무모한 짓인가. 이제는 털어낼 욕망이나 욕심이 한손으로 꼽을 정도도 안된다. 한때는 그렇게도 설렜던 해돋이가 심드렁해진 이유는 뭘까. 너무 많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냥 떠오르는 태양만을 온전히 느끼기만 해도 충분한데 말이다.
일기 예보를 확인한다. 오늘은 이렇게 맑은데 내일과 모레는 흐리다. 이리저리 따지고 보면 나는 참으로 복을 많이 받은 사내라는 생각이 든다. 날이 참 맑아 좋다.
첫댓글 오라버니 심성에 다른사람 보여줄 심산으로 기록에 남길려고 이리저리 빗겨가며 찍었겠지
이야 이야!!! 하믄서
도사네. 우째알았지?
다 좋았네 바람 한점없는 고요한 바다 해돋이는 추워야 제맛이지 암!!
추웠어. 그런데... 이날만 해돋이가 좋았데. 나머지는 비오고 흐리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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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어가 해돋이... 맴섬... 땅끝이 들어가서 그럴꺼야.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