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그리스도 (1506)
히에로니무스 보스
기괴함의 거장인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1450-1516)는
15~16세기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환상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화가이다.
‘보스’라는 이름은 그의 출생지인 네덜란드 스헤르토헨보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는 예술가 가문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곳에서 살았다.
그는 인문주의적이고 민속적이며 과학적이고 연금술적인 데다
교리적인 요소까지 그림의 배경으로 삼았다.
작품 속은 기괴한 상상의 짐승이나 비현실적 풍경,
인간의 악행에 대한 묘사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작품은 교회와 도덕적 교훈을 서로 연결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특징이 있으며,
그의 상상력은 20세기 초현실주의 미술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예수님께서 골고타 언덕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장면은
네 복음서에 모두 나오는데, 복음서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이 장면은 마태오복음 27장 31-33절, 마르코복음 15장 20-22절,
루카복음 23장 26-33절, 요한복음 19장 16-17절이 그 배경인데,
성경은 골고타로 가는 십자가의 길에 대한 장면을 생각보다 간결하게 기록했다.
루카복음을 제외하면 고작 2~3절밖에 안 된다.
그런데 공관복음에서는 십자가의 길에서 시몬이라는 키레네 사람을 보고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하지만,(마태 27,32; 마르 15,21; 루카 23,26)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터’라는 곳으로 나가셨다.(요한 19,17)
히에로니무스 보스는 <십자가를 지고 가시신 그리스도>를 여러 번 그렸는데,
1505~07년에 그린 마드리드 왕궁에 있는 이 작품은 공관복음의 내용을 따랐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으로 가시는 장면이다.
이 그림은 같은 주제의 다른 그림에 비해 훨씬 단순한 구성으로 되어 있고,
관람자들이 예수님의 수난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를 위해 두 도둑을 주제로 그린 부분을 그림에서 삭제했다.
예수님은 T자 모양으로 만들어진 십자가를 고통스럽게 짊어지고 가신다.
그의 머리에는 가시관이, 그의 맨발에는 가시가 박힌 나무 신발이
그분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이 그림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짓눌려 훨씬 더 무너져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뒤에 흰옷을 입고 있는 키레네 사람 시몬이 십자가의 아랫부분을 잡고,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돕고 있는 모습이다.
아마도 검은 옷을 입고 그 옆에서 시몬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하는 사람은
수석 사제나 바리사이일 것이다.
그들은 지나가는 어떤 사람에게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키레네 사람 시몬으로서 알렉산드로스와 루포스의 아버지였는데,
시골에서 올라오는 길이었다.(마르 15,21)
예수님 위에서는 붉은색 옷을 입은 대머리의 사내가
밧줄의 한쪽 끝으로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있고,
갑옷을 입고 깃털 달린 투구를 쓴 군사가
예수님께서 묶인 밧줄을 끌고 앞장서고 있는데,
그의 망토에는 이슬람을 상징하는 초승달이 그려져 있고,
그것은 아마도 이교도의 상징일 것이다.
그 뒤에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기괴한 모습과 복장인데,
그들은 창과 깃발과 나팔을 들고 예수님을 처형하러 가고,
아무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지 않다.
이들의 표정을 보았을 때, 이들은 모두 예수님에 대한 적대감을 표시하고 있고,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르는 무지를 상징하고 있다.
멀리 배경에는 높은 탑이 여럿 보이는 도시가 보인다.
그 도시는 예루살렘의 모습 같지 않고 15~16세기 플랑드르의 도시 풍경이다.
그림을 보는 사람이 좀 더 현실감을 느낄 수 있게 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도시와 예수님 사이에 파란색 옷을 입은 여인과 붉은색 옷을 입은 이가 있는데,
몸이 반쯤 무너져 있는 여인은 성모마리아이고,
성모를 부축하고 있는 이는 아마도 사도 성 요한일 것이다.
이들은 멀리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보며 슬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