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성큼 다가왔네요. 열매가 영글어가는 우리의 신앙의 여름을 기대해 봅니다.
15:1, “크고 이상한”(great and marvelous/amazing)
θαυμαστός(따우마스토스)는 “이상한”보다는 ‘놀라운, 기묘한’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마지막 재앙인 일곱 대접 심판을 수식하는 말입니다.
일곱 인, 일곱 나팔에 이은 세번째 심판입니다.
15:2, “불이 섞인 유리 바다”(a sea of glass mixed with fire)
여기에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등장합니다.
우선 “유리 바다”는 4:6의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를 떠올리게 합니다.
성도들이 보좌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 바다는 동해 바다나 서해/남해 바다 같은 그런 바다보다는 하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창세기 1:6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에스겔 1:22(“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이 있어 보기에 두려운데 그들의 머리 위에 펼쳐져 있고”)도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는 13장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3:1-2에 짐승(the beast)이 등장합니다. 13:14에 짐승의 우상(his image)이 등장합니다. 13:17-18에 짐승의 수(the number of his name) 666이 등장합니다. 그것들은 적그리스도가 열국으로 하여금 하나님 대신에 자신을 섬기라고 강요하게 될 모든 측면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그 세 가지를 이기고 당당하게 보좌 앞 수정 같은 하늘 위에 서 있습니다.
여기에서 성도와 ‘이긴 자’ 간의 상관 관계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긴 자만이 그곳에 서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또한 이겨야 합니다.
유혹/시험(temptation)을 이기고, 세상의 압박(pressures of the world)을 이기고, 우주적인 악의 세력(cosmic powers of evil)을 이겨야 합니다.
15:3의 “모세의 노래”란 모세가 출애굽한 다음 불렀던 승리의 노래입니다. 출애굽기 15:1-19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출애굽 때처럼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로 성도들을 용으로부터 구원하신 것(계 12:11)을 회상하며 부르게 될 노래가 바로 이 노래입니다.
계 12: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는 각각 다른 두 개의 노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노래를 다른 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인한 구원을 모세를 통한 출애굽에 빗댄 것입니다. 따라서 ‘모세의 노래와 같은 어린 양의 노래’라고 보면 좋을 듯합니다.
이 노래에는 힘이 있을 것입니다. 감격이 있을 것입니다. 이긴 자들의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이기게 하신 이를 힘입어 이긴 자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 날에 이 노래를 함께 불러야겠습니다.
15:5, “증거 장막의 성전”
요한 사도가 다음 환상을 볼 때, 하늘의 성전이 열렸습니다. 성전이 ‘열린’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실 때 성전 휘장이 찢어지며 지성소가 열린 것을 연상하게 하고, 그것은 그 자체로 심판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나타난 성전은 ‘증거의 장막’으로 정의되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증거”이고 그 증거는 언약궤를 가리킵니다. 십계명/율법을 가리키며, 그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언약을 상징합니다. 그 언약에는 축복과 저주가 동시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11:19에서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인 것은 자비의 표징(sign)이지만, 여기에서의 언약궤의 출현은 심판의 표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15:6의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그것을 말해줍니다. 일곱 대접의 심판을 진행할 천사들입니다.
15:8,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미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여기에서의 ‘연기’는 구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이 빽빽하게 가득 찬 것처럼 성전 안에 충만한 형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일지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인간으로서는 범접하기 힘든 존귀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어떤 것이리라 상상해 봅니다.
출애굽기 40:35에는 모세조차 그곳에 접근할 수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접근하면 죽을 것 같은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열왕기상 8장 11절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도 있습니다.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임박한 심판과 하나님의 임재, 모두가 숨죽이는 그런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16장
인과 나팔 심판(4+2+1)과 달리 대접 심판은 일곱번의 심판이 연이어 이루어집니다.
16:2,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심판의 대상이 한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 천사는 심판의 정당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나이다”
그러자 제단이 화답합니다.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여기 제단에서의 목소리는 6:9에서와 같은 ‘죽임을 당한 영혼들의 소리’라기보다는 9:13과 더 유사합니다.
6:9,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9:13, “내가 들으니 하나님 앞 금 제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16:7,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 대한 심판 받는 자들의 반응은 한결 같습니다.
16:9,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또 회개하지 아니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
16:11,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16:21, “하나님을 비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더라”
심판의 정당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천사들과 정반대의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심판에도 불구하고 세 더러운 영들은 아마겟돈에 천하 왕들을 모아 최후의 전쟁을 준비합니다.
그 세 더러운 영들은 각각 용/사탄과 바다에서 나온 짐승/적그리스도와 땅에서 올라온 짐승/거짓 선지자에게서 나와 마지막 때에 처음으로 거짓 삼위일체를 이룹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끝까지 발악을 할 것이라고 하네요.
회개는 신앙인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날마다 회개의 영을 부어주셔서 항상 겸비하게 우리 주 앞에, 또한 사람들 앞에 설 수 있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첫댓글 일곱 인을 떼고 일곱 나팔이 차례로 불리고 그 다음에 일곱 대접의 재앙이 이어집니다. 이어진 심판들에도 자신들의 행위를 결코 회개하지 않으며 도리어 하나님을 비방합니다.(16:11) 악을 행하면서도 그것이 심각하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한편으로는 악을 악인줄 깨달아 죄를 회개하는 우리도, 하나님이 생각하시는만큼 죄를 혐오하고 자신이 저지른 악에 괴로워하지는 않은것 같습니다. 우리의 양심이 점점 더 죄와 악에 민감해지고 또 하나님의 거룩함과 죄인인 우리를 위해 베푸신 모든 은혜를 더 깊이 알게 되는 일은, 우리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때에야 일어날 것입니다.
환란중에도 짐승과 우상을 섬기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킨 자들이 마침내 하나님앞에 섰을때, 그들은 자신들이 겪은 고초와 인내, 승리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초점은 전능하신 이의 크고 놀라우신 일, 의롭고 참된 주의 길, 주의 이름, 홀로 거룩하신 주, 주의 의로우신 일…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아직 이 땅에 머무는 우리도 그들처럼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영광을 돌리며 나의 죄에는 더욱 민감해지는 동시에 나의 잘남과 자랑에는 점점 더 둔감해지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며 내 의로 교만해 지는 자 되지않기를 바래봅니다
주만 의로우시며 거룩하시고 만국이 우리 하나님앞에 머리숙여 경배할 날이 오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승리한 자들만이 함께 어린양의 피를 힘입어 승리의 노래를 부를것을 또한 믿습니다. 엷어져 가는 믿음이 아닌 굳건한 믿음의 반석위에 서서 우리 주님을 찬양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