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와 부여
문자 메시지가 왔다. “9월 농촌에서 살아보기 체험 후기 이벤트에 당첨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내 눈을 의심한다. “이게 무슨 일이야. 내 글이 당첨되었다고?” 글쓰기를 부단히 연습한 효과가 나타나는 순간이다. 공공 기관에서 인정할 만한 수준이 아닌 것을 알지만, 우선 상품부터 확인해 본다. 스타벅스 5,000원 커피 교환권이다. “에게게” 기대에 못 미치는 초라함에 몇 명이나 당첨되었나 다시 확인해 보니 39명이나 된다. 왜 이리 많은가 싶어 이벤트 내용을 꼼꼼히 읽어 본다. “이크! 그러면 그렇지.” 선착순 200명을 뽑는다는 글이 이제야 보인다.
부여살이 한 달이 지났다. 더운 여름날 첫인사를 나누었는데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하다. 숙소 주위의 가을 논에는 누렇게 익은 벼들이 고개를 숙이는 중이다. 매일 새로운 상황을 맞닥뜨리니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재미있다. 가을날 맑고 푸른 하늘 아래를 바람 따라 걸어 다니며 부여를 속속들이 알고 싶다.
만나는 사람마다 거의 같은 소리를 한다. “이렇게 인구가 자꾸 줄면 5만도 어렵겠어.” 한때는 10만이 넘는 소도시였다고 한다. 어쩌다 지금은 인구 소멸 지역에 포함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읍내 중심가의 건물은 낡고 수명을 다했으나 재건축할 여건이 못 된다고 했다. 행여 터파기 공사 중에 기와 조각이라도 나오면 문화재 발굴 조사로 기약 없는 하세월을 보내야 하며, 당분간 재산권 행사는 물 건너가 버린다니 섣부른 재건축이나 개발에 뛰어들 수 없는 게 현실이라 했다. 시설 노후화는 가속화되는데, 규제에 묶여 발전을 기대할 수도 없고 대체할 공간조차 없으니 오죽이나 답답할까.
문화유산은 있으나 문화가 없는 도시다. 국보 7점, 보물 17점, 사적 21곳, 명승 1곳, 천연기념물 4점을 포함하여 총 164점의 국가유산을 보유한 명실상부한 문화유산의 도시다. 120년 동안 백제의 도읍이었으나 현재는 상설 수영장 하나가 없다. 뮤지컬은 고사하고 연극 공연을 관람하려고 청양이나 공주, 대전으로 가야 한다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젊은 혈기의 열정을 쏟을 문화가 없고 문화공간이 없으니, 젊은이들이 떠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러한 현실적인 책임을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다는 주민들의 말에 공감이 간다.
있어야 할 건 다 있는 것만 같은데, 없다고 한다. 국립대학교가 있고 군민 종합 체육센터가 있으며 영화관도 둘이나 있다. 대형 리조트가 있고 메이저급 커피 브랜드의 커피숍도 여럿 있으며, 식빵을 맛있게 만드는 빵집과 치아바타나 캄파뉴를 매일 굽는 카페도 있다. 20분 거리에 고속철 역사가 있고 고속도로 나들목도 자그마치 두 곳이나 된다. 들판은 비닐하우스가 가득하니 농가 소득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가난을 업보로 삼는 지역이 아닌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존재한다는 말이지 만족을 뜻하지는 않는다. 아주 조금 부족하다. 젊은이들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귀촌 귀농의 천국이라고 한다. 은퇴하고 와서 살기에는 가장 적합한 도시라는 말이다. 교통사고 발생 빈도가 최하이며, 전국에서 범죄 없는 도시로 인정받아 여러 차례 표창받았다고 한다. 가장 안전한 도시라는 의미다. 뒤집어 생각하면, 젊은이가 술에 취하는 밤 문화가 없으니 범죄가 일어날 여지조차 없는 셈이다. 나이 들면 싸울 힘도 없다. 팔, 다리, 어깨, 무릎, 허리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데, 무슨 힘으로 삿대질을 해댄단 말인가. 혈기와 패기로 앞뒤 물불을 못 가리는 젊음이 있어야 치고받고 다투어서 부러지고 깨지는 일도 생기는 법이라며 씁쓸하게 웃는다.
추석 연휴가 코앞이다. 연중 가장 풍성한 한가위에 부여 최대 축제인 ‘백제 문화제’를 개최한다는 현수막이 한 달째 펄럭인다. 명절을 가운데 끼워 자그마치 열흘 동안 공주와 부여 두 도시에서 백제 문화를 재현하고 도시를 홍보한다고 했다. 매일 유명 가수가 무대에 오르고, 전통놀이가 재현된다. 5,000억을 투자하여 백제문화단지에 위례성과 사비성을 재현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해마다 단단히 준비한 덕분에 관광객의 만족도가 상당하다고 한다.
나에게 부여는 선택이다. 고향도 아니며 생활 터전 역시 아니다. 두루두루 살피다가 흡족하면 고르고, 부족하면 더 나은 것을 위해 미련 없이 떠나도 전혀 흠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 부여에서 나서 자라고 지금껏 애써 지켜온 이들의 눈빛은 나와는 다르다. 그들에게 부여는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