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셔서 장모의 열병을 고치신 일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계신 가운데 하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계셨을지라도 그분 자신은 성자 하나님으로서 거룩하신 분인 까닭에, 이미 모든 사람의 사정을 아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이 누구인지를, 그들을 위하여 품고 계신 뜻과 계획이 무엇인지를 다 아시고 계시므로 또한 그들을 찾아오십니다. 본문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예수님이 베드로의 집에 들어 가셔서 그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신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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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심
마가복음 1:29-31 (마8:14-15, 누가복음 4:38-39)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의 가버나움에 정착하여 거주하시면서 안식일에 여러 회당과 각처에서 가르치시며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그 첫 번째 표적으로 소개되고 있는 것이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회당 안에 있는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신 일이었습니다(눅 4:31-37)
본문은 예수님이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신 후 회당에서 나와 베드로의 집으로 들어가셔서 열병으로 앓아 누워 있는 장모를 고치신 사건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회당에서 나오신 예수님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베드로와 그의 형제인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막1:29). 거기에는 베드로의 장모가 중한 열병으로 앓아 누워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오시자 사람들이 베드로의 장모의 병을 고쳐줄 것을 간절히 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장모에게 가까이 다가가 곁에 섰습니다. 그리고는 열병을 꾸짖으면서 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막1:31). 그러자 즉시 열병이 떠나 체온이 정상으로 회복이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곧 일어나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위하여 식사를 준비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셔서 장모의 열병을 고치신 일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계신 가운데 하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계셨을지라도 그분 자신은 성자 하나님으로서 거룩하신 분인 까닭에, 이미 모든 사람의 사정을 아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이 누구인지를, 그들을 위하여 품고 계신 뜻과 계획이 무엇인지를 다 아시고 계시므로 또한 그들을 찾아오십니다. 본문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예수님이 베드로의 집에 들어 가셔서 그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신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본문에 앞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일을 하시며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시는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자기를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귀신은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 곧 메시야이심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이 예수님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는 것을 통하여 그 귀신을 꾸짖어 쫓아냄으로써 예수님 자신이 회당에서 가르치신 말씀이 어떠한 권세인가를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로서 신적 권위가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사단의 세력과 그 나라를 멸하시기 위하여 권세를 행하십니다. 그 사실을 회당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시는 것에서 알리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놀라워 하나 귀신이 한 말과 예수님이 이적을 행하신 권세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질 못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로서 그리스도이신 메시야 되심에 대해 믿음을 갖질 못합니다. 예수님 자신의 가르침과 이적을 인하여서 예수님이 누구 신가를 보질 못하고 알지 못하는데 귀신이 말하는 것에서 예수님을 보고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귀신이 예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금했습니다 (참조, 눅 4:41) 예수님은 귀신의 도움을 받아서 자신이 메시야인 것을 나타내시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회당에서 나와 첫 번째로 부르신 제자-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과 함께 베드로의 집을 찾아 들어 가셨습니다. 베드로의 집은 가버나움에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워 있었습니다. 그 열병은 중한 열병-큰 열병-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얼마나 심하게 중병을 앓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베드로의 집을 예수님이 들리신 것은 단지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을 앓고 있는 것을 알고는 측은히 여겨서, 또는 베드로가 자신을 좇는 제자로 있기 때문에 그들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본문과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 간절하게 구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이 “저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그의 일로 예수께 여짜온대”로 간략하게 소개되고 있어 그 말이 지니고 있는 내용이 생략되어 있지만 예수님께서 그들의 간청을 들어주신 데서 암시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며 이적을 행해 주시지만 사람들이 메시야 되심을 이해하고 있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떠나셔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로 가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과 베드로의 장모 및 병간호로 시중들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비록 그들이 알고 있는 예수님의 메시야관이 성령 강림 이후에 깨달은 지식과 같은 온전한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미미하게나마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집에 들르시자 예수님께 간청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에 대해 듣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 이적을 행하신 권세가 무엇을 나타내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행하여 주기를 바랐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그러한 믿음을 알고 있었으며 그들이 원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알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메시야관과 그 권세를 그들의 믿음으로 확인시키시며, 확증시켜 주기 위하여서 그들의 간청에 응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셔서 장모의 열병을 고치셨습니다. 궁극적으로 예수님이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신 일은 베드로의 집에 있는 사람들의 믿음을 생생하게 하여 견고하게 세워주시기 위하여 예수님 자신이 친히 그 집에 오셨고, 열병을 앓고 있는 병자에 손을 대셨고 열병을 꾸짖으시며 그 손을 잡아서 일으키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거기에 있다가 그 광경을 본 사람들에게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행하시는 일은 단순히 직접 당사자에게만 한하지 않고 항상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증거(testimony)가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누구시냐 하는 것을 좀 더 깨닫게 하는 증거로서의 의미를 가집니다. 나아가서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의 믿음을 한층 더 강화시켜주는 유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예수님의 병 고침으로 즉시 건강이 회복되어 앓아 누웠던 자리에서 곧 일어난 베드로의 장모는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수종들었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식사를 준비하여 대접하여 섬긴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경외심에서 그리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