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셀레스티나》
《라 셀레스티나》(La Celestina)는 페르난도 데 로하스의 작품으로 알려진 《칼리스토와 멜리베아의 비희극》(Tragicomedia de Calisto y Melibea)이 대중적으로 불리게 된 이름이다. 작품은 스페인 가톨릭 공동왕 시대인 15세기 말에 성립했다. 16세기부터 출판상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부침을 겪으면서도 1792년 금서가 될 때까지 계속 읽혔다.
연애를 다룬 줄거리, 교훈적 목적, 권위 있는 고전 문구의 풍부한 인용, 인물의 선택, 대화 형식, 그리고 대학 환경과의 연관성이 매우 높다는 점 때문에 이 작품은 독특한 인문주의 희극의 사례로 여겨져 왔다. 다만 소설과 희곡의 혼합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두 장르 모두에 끼친 영향이 대단히 커서, 줄거리·인물·주제를 직접 계승한 작품뿐 아니라 본래 《라 셀레스티나》와 무관한 희극이나 소설에 등장하는 ‘셀레스티나적’ 배경과 인물까지 포함하는 ‘셀레스티나 문학’이라는 장르를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성립 과정과 출판 역사
《라 셀레스티나》에는 여러 단계의 판본이 존재한다. 일부 학자들은 다른 연대기를 제안하지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설명한다.
‘옛 작가의 원고’
인쇄본의 본문 앞에 실린 〈작가가 어느 친구에게〉와 두운시에서는 작가가 작품의 초고를 발견하여 고치지 않고 받아들였으며, 그것이 자기 작품의 제1막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글이 밀라노의 거대한 대장간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카스티야 학자들의 빛나는 지성 속에서 빚어져 이 종이 위에 새겨진 것을 발견했다. (…) 내가 서투르게 다듬은 말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그대가 알 수 있도록, 옛 작가가 쓴 모든 내용을 나누지 않고 하나의 막 또는 장면에 넣어 제2막의 “형제들이여”라는 말이 나오기 전까지 수록하기로 했다.
이 주장의 진실성에는 논란이 있지만, 제1막이 나머지 부분과 독립적으로 성립했다는 견해, 특히 자료 출처의 차이를 근거로 한 견해에는 어느 정도 합의가 있다. 그 기원과 저자는 확정되지 않았다. 비희극판의 두운시에 코타와 메나의 이름이 언급되기 때문에 로드리고 코타와 후안 데 메나가 가장 자주 후보로 거론되었다.
코타나 메나가 그 위대한 지혜로 / 이 글을 끝맺었더라면.
‘궁정도서관 필사본’
마드리드 궁정도서관의 필사본 1520호에는 《희극》의 제목, 전체 줄거리, 제1막 일부만 남아 있다. 인쇄본보다 앞선 초고로 보이지만 ‘옛 작가의 원고’ 자체는 아니다. 전체 줄거리에서 이미 주인공들의 비극적 최후를 언급하기 때문이다. 발견된 옛 원고에는 그 결말이 없었을 것이다. 필사본은 인쇄된 《희극》과 상당히 다르므로, 후대 작가는 단순히 옛 원고를 제1막으로 붙인 것이 아니라 그 본문을 적극적으로 수정했음을 알 수 있다.
《칼리스토와 멜리베아의 희극》
최초의 인쇄 형태는 16막으로 이루어졌다. 서문인 〈작가가 어느 친구에게〉, 두운시, 작품 첫머리와 전체 줄거리, 그리고 말미의 ‘프로아사의 8행시’가 뒤의 《비희극》판과 다르게 배열되어 있다.
현존본은 세 판뿐이다. 미국 히스패닉 소사이어티 소장의 부르고스 파드리케 데 바실레아 판(표기는 1499년이나 실제로는 1500~1502년), 보드머 도서관 소장의 톨레도 페드로 하겐바흐 판(1500),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의 세비야 에스타니슬라오 폴로노 판(1501)이다.
부르고스 1499년판은 오랫동안 초판으로 여겨졌지만, 현존본에 손을 댄 흔적이 밝혀지면서 그 지위가 의심받게 되었다. 첫 장 이전의 낙장을 감추기 위해 장 번호를 고쳤고, 마지막 장에는 1499년이라는 날짜가 든 인쇄업자 표장을 현대에 사진 복제해 붙인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 표장이 진품이더라도 파드리케는 1502년까지 연도를 바꾸지 않고 사용했으므로 정확한 연대 자료가 되지 못한다.
또한 빠진 장들에 톨레도·세비야 판과 같은 서문 및 발문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고, 삽화판이라는 사실도 이미 작품의 판매 성공이 보장된 뒤 제작되었음을 시사한다. 잠재 독자들이 텍스트를 알고 있어야 값비싼 판화를 넣은 판본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운문 간기의 운율을 보아도 이 판본은 1500~1502년 무렵의 것으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삽화가 없는 다른 두 판도 초판으로 보이지 않는다. 본문 계통상 두 판은 같은 원형 판본에서 유래하므로 그보다 앞선 판이 적어도 하나 있었어야 한다. 세비야 1501년판 표지는 각 막 앞에 줄거리를 새로 넣었다고 밝히는데, 이는 앞선 판본에는 막별 줄거리가 없었음을 뜻할 수 있다. 따라서 《희극》 초판의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으나 1500년 이후일 수는 없고, 아마 1500년에 매우 가까웠을 것이다.
《칼리스토와 멜리베아의 비희극》
두 번째 인쇄 형태는 21막으로 이루어졌다. 기존 서문과 두운시에 ‘산문 서문’을 더했고, 말미에는 ‘작가가 끝맺다’라는 8행시를 추가했다. 《희극》의 제14막과 제19막 사이에 다섯 막을 삽입했으며, 그 밖의 본문에도 뚜렷한 첨가와 수정이 이루어졌다. 출판상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 1792년 금지될 때까지 카스티야어 판본만 100종 이상 알려져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판은 사라고사의 호르헤 코시 판(1507)이지만, 그보다 앞선 판들이 반드시 존재했을 것이다. 1506년 로마에서 이미 이탈리아어 번역본이 나왔기 때문이다. 가장 유력한 초판 연도는 1502년이다. 이 해의 《희극》판이 전하지 않는 것은 새 개정본이 기존 판을 대체했기 때문일 수 있다. 또한 실제 인쇄 연도와 무관하게 1502년 간기를 되풀이한 여러 판이 있는데, 이것이 《비희극》 초판의 간기를 재현했을 가능성도 있다.
제14막과 제19막 사이의 대규모 삽입부는 전통적으로 ‘센투리오의 막’이라 불린다. 산문 서문에 따르면 독자들이 두 연인이 더 오래 사랑을 누리기를 원했기 때문에 추가되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주장과 판단을 살핀 끝에 다수가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를 보니, 사람들이 두 연인의 쾌락의 과정을 더 길게 해 달라고 원했다. 끈질긴 요구를 받은 나머지, 비록 내 뜻에는 어긋났지만 본업에서 시간을 훔치고 휴식 시간까지 써 가며, 내 능력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이 낯선 작업에 다시 펜을 대기로 했다. 새로 덧붙인 부분에도 새로운 비난자들이 나타나겠지만 말이다.
실제로 추가 부분은 매춘부 엘리시아와 아레우사, 아레우사의 허풍쟁이 연인 센투리오, 그의 절름발이 친구 트라소를 주인공들의 죽음에 개입시키며 매춘과 불량배 세계를 더 자세히 묘사한다. 이 판본이 유럽에 작품을 널리 알렸다. 알폰소 오르도녜스의 이탈리아어 번역은 1506년 로마에서 처음 출판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히브리어(1507), 독일어(1520), 프랑스어(약 1527) 번역이 나왔다. 뒤의 프랑스어·네덜란드어·라틴어·영어 번역은 카스티야어 본문을 직접 따랐다.
‘트라소의 막’
인쇄업자 라몬 데 페트라스는 1526년 톨레도에서 22막짜리 《비희극》을 냈다. 새로 추가된 ‘트라소의 막’은 제19막이 되었다. 막 앞의 줄거리에 따르면 이는 사나브리아라는 사람이 쓴 희극에서 발췌한 것이므로 본래 작품의 전체 구상에는 속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22막 판본은 적어도 여섯 종이 전한다.
후안 세데뇨의 운문판
1540년 페드로 데 카스트로는 살라망카에서 후안 세데뇨의 운문판을 출판했다. 최초의 운문화는 아니었지만, 전체 본문을 운문으로 옮기면서 원문의 표현을 충실히 따르려 한 유일한 판이다. 오늘날 사라진 계통상 상위 판본에서 유래하여 좋은 이문을 많이 보존했기 때문에, 전승 과정의 오류를 바로잡는 데 유용하다고 평가된다.
《주석된 라 셀레스티나》
스페인 국립도서관의 16세기 후반 필사본 17631호에는 익명의 주석자가 《비희극》을 자세히 분석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작품의 자료 출처와 16세기 독자의 해석을 알려 주는 핵심 문헌이다.
종교재판의 검열
도덕주의자들은 일찍부터 이 작품을 공격했다. 작품은 “무질서한 욕망에 굴복하여 연인을 신이라 부르는 미친 연인들을 꾸짖기 위해 지었다”고 선언하지만, 실제로는 부정한 사랑을 피하게 하기보다 오히려 가르치고 부추긴다는 비판이었다. 후안 루이스 비베스는 《그리스도교 여성의 교육》(1524)에서 《라 셀레스티나》를 기사도 소설과 똑같이 풍속을 타락시키는 책이라고 보았다. 그는 《아마디스》·《티란트》·《트리스탄》 등과 함께 이를 “악덕의 어머니 셀레스티나”라 불렀다.
이런 비판이 반복되었지만 작품이 금서목록에 오른 것은 1632년이었고, 그때도 일부 삭제 명령만 받았다. 검열 구절은 이후의 금서목록에서 다시 검토되지 않다가 마침내 1792년에 작품 전체가 금지되었다.
‘라 셀레스티나’라는 명칭
16세기 초부터 이베리아반도에서 작품을 《라 셀레스티나》라 부르는 관습은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중매쟁이 노파의 이름을 표지에 넣은 전통은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 베네치아의 체사레 아리바베네가 낸 이탈리아어 번역판(1519)에서는 정식 제목 위에 작은 글씨로 ‘La Celestina’를 별도 표제처럼 넣었다. 이 방식이 프랑스어판과 플랑드르어판에 전해지면서 작품 제목의 일부로 재해석되었다.
스페인어 판본들은 거의 한 세기 동안 《칼리스토와 멜리베아의 비희극》이라는 제목을 유지했다. 예외로 세비야의 하코보 크롬베르거 판(1518~1520)은 《칼리스토와 멜리베아와 늙은 창녀 셀레스티나의 책》이라는 제목을 썼다. 1595년 안트베르펜에서야 비로소 ‘라 셀레스티나’가 실제 제목의 일부로 보이는 최초의 카스티야어 판본이 출판되었다.
저자 문제
1632년 삭제판 이전의 옛 판본 표지에는 저자의 이름이 없다. 그러나 인쇄본에 붙은 두운시의 행 머리글자를 이으면 “푸에블라 데 몬탈반에서 태어난 학사 페르난도 데 로하스가 《칼리스토와 멜리베아의 희극》을 완성했다”는 문장이 나타난다.
1902년 역사상의 페르난도 데 로하스를 “《라 셀레스티나》를 만든 사람”이라고 부른 종교재판 기록이 발굴되면서, 이 인물과 두운시의 로하스가 동일인이라는 견해가 확립되었다. 스티븐 길먼은 새 자료와 주변 환경 연구를 바탕으로 《페르난도 데 로하스의 스페인》(1972)에서 가장 완전한 전기를 구성했다. 이후 역사적 로하스가 개종 유대인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작품의 여러 측면을 해석하는 근거로 자주 사용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동일시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역사적 로하스의 지적 면모와 작품 저자의 지적 성격이 잘 맞지 않으며, 로하스와 작품의 관계를 나타내는 ‘끝내다’와 ‘만들다’라는 동사가 반드시 창작을 뜻하지 않고 인쇄에 어떤 식으로 참여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중 저작설
작품의 부속 텍스트에 따르면 정체불명의 작가가 쓴 미완성 희극이 있었고, 페르난도 데 로하스 또는 다른 사람이 그것을 이용해 《희극》을 시작했다. 이 초고가 ‘옛 작가의 원고’이며 제1막을 이룬다고 본다. 언어·문체·기법·속담 사용·지적 배경의 차이가 이를 뒷받침한다. 다만 궁정도서관 필사본은 옛 원고가 수정 없이 수록되었다는 설명이 사실이 아님을 보여준다.
후안 데 메나와 로드리고 코타가 전통적인 후보였지만, 오늘날 두 사람의 이름은 찬양의 뜻으로 언급된 것일 뿐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알폰소 마르티네스 데 톨레도나 그의 주변 인물, 신학·종교 교육을 받은 사람, 또는 이탈리아 출신 작가라는 설도 있다. 《비희극》으로 확장한 사람은 《희극》의 작가와 같다고 본다.
단일 저작설
19세기 인상비평에서 시작된 이 견해를 최근 가장 체계적으로 옹호한 사람은 미겔 마르티네스이다. 그는 제1막의 독립성을 뒷받침하는 논거들을 반박하고, 차이를 집필 시기 및 작가의 심리·문체 발달로 설명했다. 이 견해는 작품 전체에서 통일감이 느껴지며, 제1막과 나머지의 차이는 출판 전 오랜 집필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당연히 《희극》과 《비희극》도 같은 작가의 작품으로 간주한다.
삼중 저작설과 집단 저작설
전통적인 삼중 저작설은 ‘옛 작가의 원고’, 《희극》, 《비희극》 확장을 각각 다른 사람이 썼다고 본다. 집단 저작설은 여러 대학 구성원이 직간접적으로 협업했다고 주장한다. 작품을 당시 대학의 주제와 장르를 활용한 희극적 놀이로 보거나, 대학에 유입되던 새로운 장르와 사상의 전달 수단으로 보는 것이다.
그 밖에 옛 작가의 원고가 제1막보다 훨씬 길었다는 설도 있다. 제12막, 제14막까지였다는 주장, 심지어 행복한 결말을 지닌 완성된 희극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각 막 앞의 줄거리는 인쇄업자들이 작성했다는 데에는 비교적 합의가 있으며, 두운시와 전체 줄거리 등 다른 부속 텍스트의 저자 역시 본문 저자와 다를 수 있다. 교정자 알론소 데 프로아사를 부속 텍스트의 유력한 작성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장르
장르 문제는 작품 초기부터 논쟁거리였다. 작가는 산문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이들은 결말이 슬프니 희극이 아니라 비극이라 불러야 한다고 제목을 두고 다투었다. 첫 작가는 시작이 즐거웠으므로 희극이라 불렀다. 나는 이 불화를 보고 두 극단의 중간을 취해 비희극이라 이름 붙였다.
18세기 신고전주의 규범이 희곡을 엄격하게 한정하기 전까지 이 작품을 그리스·로마 희극 작가들의 전통과 연결하는 데에는 별다른 의심이 없었다. 후대의 셀레스티나 계열 작품도 제목에 계속 ‘희극’이나 ‘비희극’을 썼다.
극적 소설 또는 대화소설
작품이 지나치게 길고 실제 무대에 올리기 어려우며 신고전주의의 엄격한 희곡 정의에 맞지 않지만 분명 대화 형식으로 쓰였기 때문에, 신고전주의 이론가들은 ‘극적 소설’이라는 명칭을 만들었다. 뒤에는 ‘대화소설’이라는 말도 널리 받아들여졌다. 19세기 내내 이 분류가 우세했으나, 마리아 로사 리다 데 말키엘이 작품을 ‘인문주의 희극’과 연결하면서 힘을 잃기 시작했다.
그 뒤 키스 위놈, 앨런 데이어먼드, 도러시 세버린 등의 연구를 통해 대화소설설이 다시 살아났다. 이들은 시간·공간·줄거리·인물 심리의 처리에서 소설적 기법이 나타난다고 보았다.
인문주의 희극
오늘날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분류는 인문주의 희극, 또는 적어도 그 장르에 접근하려 한 작품이라는 견해이다. 작품이 인문주의 희극의 규칙에서 벗어나는 부분도 있고 당시 카스티야에서 그 장르가 얼마나 알려졌는지 입증하기도 어렵지만, 저자가 이를 기준점으로 삼았다는 데에는 어느 정도 합의가 있다. 최근 연구는 줄거리·인물·언어·무대 같은 형식적 공통점뿐 아니라 교훈적·도덕적으로, 어쩌면 대학에서 읽혔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인문주의 희극은 무대 상연보다 여러 목소리로 극적으로 낭독하는 작품이었다. 알론소 프로아사는 기쁨·희망·격정·분노·동요를 목소리로 표현하고, 모든 인물을 대신해 묻고 답하며, 때에 맞추어 울고 웃으라고 독법을 설명한다.
스티븐 길먼은 이 작품을 장르가 없는 ‘순수 대화’라고 불렀다. 줄거리보다 대화가 우위에 서서 리듬과 의미를 만들며, 저자는 대화가 자유롭게 전개되도록 내버려 두는 데 관심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랑의 기술’, ‘사랑에 관한 논고’라는 분류도 제안되었다.
자료와 영향
플로렌티노 카스트로 기사솔라는 1924년 연구에서 그리스·로마 고전, 교회문학, 이탈리아와 이베리아의 동시대 작가 등 70개가 넘는 이름과 작품을 영향원으로 제안했다. 그러나 상당수는 직접 독서가 아니라 2차 자료나 당시 학자들이 공유하던 명언집을 통한 간접 영향이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영향은 페트라르카의 도덕 저술이다. 특히 역경을 다룬 《양쪽 운명의 치료법》 제2권과 여러 산문 작품이 인용되거나 모방되었다. 그러나 상당수 차용은 원전이 아니라 1496년 바젤에서 나온 페트라르카 라틴어 전집에 딸린 격언·예화 색인에서 가져왔다. 서로 다른 저작에 흩어진 페트라르카의 문장들이 《라 셀레스티나》에서는 같은 주제 아래 연속해 나오고, 바로 그 색인에도 함께 모여 있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중세 유럽 대학에서 널리 쓰인 《아리스토텔레스 권위 문구집》, 페로 디아스 데 톨레도의 《세네카 잠언집》, 알브레히트 폰 아이프의 《시학의 진주》도 영향을 주었다. 명언집의 영향이 워낙 커서 피터 러셀은 작품을 “철학자들의 꽃밭”에 비유했다.
이 밖에도 세네카, 이른바 감상소설과 디에고 데 산 페드로의 《사랑의 감옥》, 성서적 자료가 확인된다. 성서 인용 역시 성서 원문보다 권위 문구집과 평신도 신심서에서 온 경우가 많다. 라틴 희극, 애가 희극의 《팜필루스》, 인문주의 희극, 보카치오의 《피암메타 부인의 비가》, 에네아 실비오 피콜로미니의 《두 연인의 이야기》도 영향원으로 제시되었다.
중매쟁이 노파의 형상에는 로마 희극의 레나, 애가 희극의 중개자, 위(僞)오비디우스의 《노파에 대하여》, 후안 루이스의 《좋은 사랑의 책》에 나오는 트로타콘벤토스 등 동서양 자료가 거론된다. 법률·의학 자료, 궁정 가요집과 민요도 영향을 주었다. 제1막의 첫 장면에는 안드레아스 카펠라누스의 《사랑에 대하여》가, 칼리스토의 사랑과 셈프로니오의 여성 비난에는 《탈라베라 대사제》와 ‘토스타도’의 사랑 논고가 관계된다고 본다.
더 중요한 것은 인용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작가는 글을 쓰면서 그 대목에 알맞아 보이는 격언을 잇달아 연결하곤 했다. 이는 무성의가 아니라 중세 대학의 읽기·쓰기 방식과 관련된다. 권위 있는 문구는 논증을 뒷받침하고 글을 장식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독자도 출전을 찾아내고 확인하며 다른 인용으로 확장하는 연상적 독법을 익혔다.
작품에서는 인용이 틀리거나 변형되고, 잘못 해석되거나 오히려 그 뜻과 반대되는 상황에 적용되기도 한다. 이는 웃음을 일으키는 기능을 하며, 등장인물들이 지혜와 도덕을 주어야 할 격언을 왜곡해 사용함으로써 ‘권위’ 자체와 권위 문구를 쌓아 글을 만드는 방법의 타당성을 의심하게 한다. 여기에는 언어의 힘에 대한 강한 관심이 나타난다.
이 연구들은 저자의 지식인상을 수정했다. 저자는 대부분의 자료를 원전으로 읽은 대단한 박식가라기보다, 서문이 보여 주듯 대학에서 흔히 쓰인 책과 당대 베스트셀러를 활용한 젊은 법학사에 가까웠을 것이다. 역사적 페르난도 데 로하스의 장서에 작품 집필을 뒷받침할 책들이 없다는 점도 그의 저자 여부에 의문을 더했다.
작품의 의도
작가가 직접 밝힌 세 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주인을 타락시키는 “악하고 아첨하는 하인들”을 경계하게 하는 부패의 문제이다. 둘째, 연인을 “자신의 신”이라 여기는 미친 사랑, 곧 불경한 궁정풍 사랑을 경고하는 것이다. 셋째, 인간의 삶이 서로 반대되는 힘 사이의 끊임없고 사나운 투쟁이라는 더 깊고 극적이며 철학적인 주제이다. 젊음과 늙음, 순수와 타락, 무지와 지혜, 가난과 부, 하인과 주인, 여성과 남성, 선과 악이 맞서며 각각의 가치는 내부에 그 반대되는 악덕을 낳는다.
파괴적 힘으로서의 사랑은 이런 철학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작품의 목적은 도덕적이다. 당시 기준으로 노골적인 자연주의는 죄인들이 마땅한 벌을 받는 결말을 통해서만 용납될 수 있었다. 셀레스티나, 멜리베아, 칼리스토, 파르메노, 셈프로니오는 모두 부패의 그물 속에서 죽는다. 그러나 작품의 의도는 “인물들은 죄 때문에 죽는다”는 도덕론에서 “사회가 그들을 죽게 한다”는 비판론까지 폭넓게 논의되었다.
줄거리에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다. 좋은 집안의 두 젊은이가 왜 결혼을 시도하지 않는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두 가문이 미리 원수였다는 설정도 없다. 콜롬비아 시인 마리아 메르세데스 카란사는 멜리베아가 개종 유대인 집안 출신이었고, 당시 독자들은 이름만으로 이를 알아차렸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
작품에는 중세가 끝나고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시대의 특징이 보인다. 중세의 하인은 부양과 보호를 받는 대신 주인을 섬겼지만, 여기서는 칼리스토에게 보수를 요구한다. 중세 귀족은 백성을 지키기 위해 존재했으나 칼리스토는 무예를 행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방어는 왕과 군대의 몫이 되었다. 멜리베아 아버지의 탄식은 토지가 아니라 물질적 재산에 부를 둔 상업의 부활을 보여준다.
나는 누구를 위해 탑을 세웠는가? 누구를 위해 명예를 얻었는가? 누구를 위해 나무를 심었는가? 누구를 위해 배를 만들었는가?
주요 해석
- 도덕적 의도설: 마르셀 바타이용은 미친 사랑과 그 파멸에 맞서는 그리스도교 도덕이 작품 전체를 지배한다고 보았다. 작품은 중매쟁이·매춘부·악한 하인처럼 피해야 할 사회를 보여준다.
- 예술적 의도설: 리다 데 말키엘은 도덕적 바탕을 부정하지 않지만, 도덕 우화라면 생생한 개성을 지닌 인물보다 교훈을 의인화한 유형이 나왔을 것이라고 본다. 작품의 성공은 무엇보다 예술적 의지에서 나왔다.
- 절충설: 오티스 H. 그린은 도덕적 의도를 인정하면서 예술성도 설명한다. 정당한 사랑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며, 비극적 결말을 낳는 것은 죄이다. 궁정풍 사랑의 규칙을 깨뜨린 결과가 비극이다.
- 실존주의적 해석: 아메리코 카스트로와 길먼은 작품을 로하스의 개종 유대인 배경과 관련짓고 그 비관주의를 강조한다. 사랑은 거짓과 기만이고 유일한 현실은 죽음이다. 길먼은 행위보다 말이 의미를 가지며, 작가는 도덕가나 풍자가라기보다 불신에 찬 아이러니스트라고 보았다.
- 유대교 관련설: 마르셀리노 메넨데스 펠라요는 작가가 표방한 정통 교리와 모순되는 종교적·도덕적 회의를 보았다. 멜리베아를 개종 유대인의 딸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데이어먼드는 작가가 3세대 개종자였다면 비관주의를 충격적 개종 경험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 사회비판설: 마라발은 칼리스토를 유한계급의 새로운 생활양식, 셈프로니오와 파르메노를 봉건적 주종 관계의 붕괴를 상징하는 인물로 본다. 모든 인물은 ‘되고 싶은 것’과 ‘되어야 하는 것’의 갈등에 갇힌다.
- 그 밖의 철학적 해석: 삶을 무익한 정열로 보는 신에피쿠로스주의, 현실을 괴기스럽게 뒤튼 패러디, 플라톤적 신스토아주의라는 견해도 있다.
역사·사회적 배경
작품은 1469년 혼인해 1504년 이사벨 여왕이 죽을 때까지 통치한 가톨릭 공동왕 시대에 쓰였다. 1492년에는 아메리카 발견, 그라나다 정복, 유대인 추방이라는 스페인사의 세 중대 사건이 일어났다. 같은 해 안토니오 데 네브리하는 최초의 카스티야어 문법서를 출판했다. 살라망카대학교에서 가르친 그의 활동은 스페인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도래를 촉진했다. 교육상 관례로 1492년을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전환의 시작으로 본다.
이 시기 포르투갈을 제외한 이베리아반도의 영토는 하나의 왕권과 그리스도교라는 하나의 종교 아래 통합되었다. 구(舊)그리스도교도 신분이 중요해지고 유대인·무슬림과 개종자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결국 유대인과 무슬림은 추방되었고, 종교재판소는 다른 종교를 비밀리에 믿는다고 의심받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기까지 박해했다.
구조
막 구분 자체에는 깊은 구조적 의미가 없으며, 행동을 기준으로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 서막: 제1장면에서 칼리스토와 멜리베아가 만난다.
- 제1부: 셀레스티나와 하인들이 개입하고 세 사람이 죽는다. 첫 번째 사랑의 밤이 이어진다.
- 제2부: 복수 음모와 두 번째 사랑의 밤이 이어진다. 칼리스토가 죽고 멜리베아가 자살한 뒤 플레베리오가 통곡한다.
마리아 로사 리다는 사실주의적 차원에서 모든 줄거리의 동기와 사건의 인과관계가 엄격하고 치밀하다고 보았다. 첫 장면은 당혹스럽지만 첫 만남과 격렬한 거절에 필요한 극적 성격을 부여하며 모든 사건의 방아쇠가 된다. 사건은 행위의 대가를 언젠가 치러야 한다는 게오르크 루카치의 ‘제시된 계산서’ 구조처럼 연쇄적 결과로 이어진다.
되풀이되는 모티프는 작품에 대칭성을 주고, 모든 부분적 상징은 결말을 미리 예고한다. 모론은 제1막을 죄, 제2~14막을 재산 상실, 제15~18막을 명성, 제19막을 생명과 영혼, 제20~21막을 총정리로 본다. 추가된 다섯 막은 멜리베아의 성격과 칼리스토의 죽음에 더 깊은 동기를 부여했다.
중심 주제
서문이 밝히는 목적은 “무질서한 욕망에 굴복해 연인을 신이라 부르는 미친 연인들을 꾸짖고, 중매쟁이와 악하고 아첨하는 하인들의 속임수를 경고하는 것”이다. 곧 육체와 황금에 대한 욕망인 미친 사랑, 그리고 인간적·신적 사회질서를 뒤흔드는 부패를 공격한다.
산문 서문에는 페트라르카에게서 온 철학적 주제도 있다. “모든 것은 다툼과 전쟁의 방식으로 창조되었다.” 주인과 하인, 노인과 젊은이, 남성과 여성, 이상주의와 물질주의, 민중어와 교양어가 서로 맞선다.
주요 주제는 사랑·죽음·탐욕이다. 사랑은 모든 인물의 행동을 일으키며, 그 희생자가 되지 않는 사람은 멜리베아의 부모 플레베리오와 알리사뿐이다. 칼리스토는 궁정풍 연인의 인내심도 비밀을 지키는 절제도 없고 멜리베아를 ‘자신의 신’으로 만든다. 두 사람의 관계는 궁정풍 사랑보다 낭만적이고 격정적인 사랑에 가깝다. 반면 셈프로니오와 파르메노가 엘리시아와 아레우사에게 느끼는 사랑은 육체적 쾌락을 추구한다.
칼리스토와 멜리베아의 이상적이고 문학적인 사랑의 언어는 구체적인 욕망을 가리는 수사로 읽힐 수도 있다. ‘미친 사랑’은 욕정과 구별되지 않는 실제 광기의 표현이다. 멜리베아도 사랑을 받아들인 뒤 명예와 부모의 평판을 위험에 빠뜨리며 귀족 여성의 도덕을 버린다.
셀레스티나에게 사랑과 성행위는 서로 바꿔 쓸 수 있는 말이다. 그녀는 궁정풍 사랑의 섬세함을 남녀가 감수성을 가장하는 위선적 몸짓으로 본다. 성은 사적인 일도 아니다. 그녀는 파르메노와 아레우사의 관계를 지켜보려 하고, 멜리베아도 하녀 루크레시아가 정원에 있는 채 칼리스토와 사랑을 나눈다. 이 사랑의 비극적 결과는 작품의 도덕적 해석을 뒷받침한다. 하층 인물들에게는 탐욕과 인색이 상층 인물들의 사랑의 광기를 대신한다.
마술과 셀레스티나
마술의 중요성에는 견해가 엇갈린다. 리다 데 말키엘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당대의 순진한 풍속으로 보았다. 반면 페트리코니, 마라발, 러셀은 마술이 줄거리 전개의 핵심이며, 멜리베아의 열정도 셀레스티나의 주문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작품은 당시 실제로 믿고 행하던 마술 세계를 경고하려 했다는 것이다.
인류학자 카르멜로 리손 톨로사나는 셀레스티나를 늙은 마녀·요술사·중매쟁이라는 보편적 유형이 결합된 인물로 본다. 그녀는 독이 든 연고와 언어의 힘에 의존하는 주문에 둘러싸여 살며 사탄을 불러 명령한다.
나 셀레스티나는, 네가 잘 아는 의뢰인으로서, 이 붉은 글자의 덕과 힘으로, 이 글씨를 쓴 밤의 새의 피로, 이 종이에 적힌 이름과 기호의 무게로, 이 실에 바른 기름을 만든 독사의 사나운 독으로 너를 부른다. 지체하지 말고 와서 내 뜻에 복종하라. (…) 따르지 않는다면 나를 목숨을 건 원수로 여기게 될 것이다. (…) 다시 또다시 너를 부른다. 내 큰 힘을 믿고, 나는 네가 이미 감겨 있다고 생각하는 이 실을 가지고 그곳으로 떠난다.
리손은 그녀가 악마의 하수인임을 인정하면서도 자기 기술을 잘 알고, 액체·실·언어에 내재한 힘을 뜻대로 작동시킨다고 말한다. 사탄과 맺는 계약조차 오만하고 위협적이며 동등한 두 악한 마술 행위자 사이의 계약이다. 훌리오 카로 바로하는 그녀를 마녀와 요술사의 혼합이 아니라 도시에서 활동하는 고전적 요술사의 사례로 보았다.
줄거리
칼리스토는 사냥하던 매를 찾으러 멜리베아의 집 정원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그녀를 본다. 사랑을 청하지만 거절당하고, 이미 격렬한 사랑에 빠진다.
하인 셈프로니오의 권유로 칼리스토는 늙은 매춘부이자 전문 중매쟁이인 셀레스티나에게 도움을 청한다. 여러 물건을 파는 행상인으로 가장한 그녀는 집집마다 드나들며 연애를 중개한다. 엘리시아와 아레우사를 거느린 매음굴도 운영한다.
칼리스토의 다른 하인 파르메노는 자기 어머니가 셀레스티나의 스승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주인을 말리려 한다. 그러나 욕망을 채우는 데만 관심이 있는 주인에게 멸시당하고, 결국 셈프로니오·셀레스티나와 손잡고 칼리스토의 열정을 이용하여 선물과 보상을 나누려 한다.
셀레스티나는 능숙한 말과 아레우사를 얻도록 해 주겠다는 약속으로 파르메노를 자기편으로 만든다. 명왕 플루톤에게 주문을 걸고 뛰어난 언변을 발휘해 멜리베아도 칼리스토를 사랑하게 한다. 보상으로 받은 금목걸이를 탐욕 때문에 하인들과 나누기를 거부하자, 파르메노와 셈프로니오는 그녀를 살해한다. 두 사람은 붙잡혀 처형된다.
셀레스티나와 연인을 잃은 엘리시아와 아레우사는 허풍쟁이 센투리오에게 칼리스토를 죽여 달라고 계획하지만, 그는 소동만 일으킨다. 칼리스토와 멜리베아가 사랑을 나누던 중 거리의 소란을 듣고 하인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칼리스토는 담을 뛰어넘으려다가 미끄러져 떨어져 죽는다. 절망한 멜리베아는 자살한다. 아버지 플레베리오가 딸의 죽음을 통곡하며 작품은 끝난다. 어머니 알리사도 충격으로 죽었다고 알려진다.
등장인물
로하스의 인물들은 중세문학에서 흔한 고정된 ‘유형’에서 벗어나 생명과 심리적 깊이를 지닌다. 같은 인물을 다른 등장인물이 서로 다르게 평가하며 행동에도 모순이 있다. 이는 작가가 인물들을 인간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주인과 하인 세계를 막론하고 모두 개인주의·자기중심성·이타심의 결여를 공유하지만, 완전히 굳어 있지 않고 변화한다. 작가는 인물을 보완과 대립 관계의 쌍으로 만든다. 하인 세계에는 파르메노와 셈프로니오, 트리스탄과 소시아, 엘리시아와 아레우사가 있고, 주인 세계에는 칼리스토와 멜리베아, 플레베리오와 알리사가 있다. 셀레스티나와 루크레시아만 짝이 없지만 두 사람 자체가 이야기의 핵심 대립을 이룬다. 셀레스티나는 생의 방종을 대표하며 비극을 촉진하고, 루크레시아는 억압의 극단을 대표한다.
셀레스티나
작품의 가장 매혹적이고 명백한 주인공이다. 칼리스토와 멜리베아의 사랑이 중심 주제인데도 그녀의 이름이 작품 제목이 되었다. 쾌락주의적이고 탐욕스러우며 생명력이 넘친다. 타인의 심리를 꿰뚫어 보고 반대하는 사람까지 계획에 굴복시킨다. 탐욕, 성욕, 타인을 지배하는 심리적 권력이 행동의 동기다.
과거에는 매춘부였고 이제는 연애를 은밀히 주선하면서 자기 집에서 엘리시아와 아레우사가 매춘하도록 한다. 화장품·약초·실타래·여성 장신구를 팔아 집 안으로 들어간다. 자기 일이 유용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며 직업적 자부심도 있다. 포도주를 좋아하고 악마처럼 영리하지만 탐욕이 판단력을 흐린다. 플루톤이라는 이교적 가면 뒤의 악마와 계약하는 마녀이자 요술사이기도 하다.
칼리스토
자기 욕망을 채우는 일에만 관심이 있으며 이를 위해 누구든 짓밟는 상류층 청년이다. 위험을 경고하는 파르메노의 진심을 무시하고, 진정한 내적 위기도 겪지 않는 이기적 인물이다. 가장 문학적이고 의도적으로 인공적인 인물이며 ‘미친 사랑’의 희생자이자 비극적 반영웅이다. 결혼을 암시하지 않은 채 중매쟁이를 이용해 비밀스럽고 불법적인 사랑을 추구한다. 그의 과장된 말투는 하인들의 조롱을 받는다.
멜리베아
격정적인 젊은 여성으로, 거의 망설임 없이 저항에서 완전한 헌신으로 넘어간다. 억압은 강요되고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나타나며, 어릴 때부터 집안에서 주입받은 위선에 예속되어 있다. 셀레스티나의 주문으로 눈먼 열정에 빠진 희생자로 묘사되지만 사회적 명예의식에 따라 행동한다. 개인적 수치심이나 도덕보다 겉으로 보이는 명예를 지키려 한다. 칼리스토보다 감정이 현실적이고 덜 문학적이다. 칼리스토의 죽음 뒤 자살한다.
루크레시아
멜리베아의 하녀이다. 처음에는 칼리스토를 미워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그를 사랑하며, 그가 멜리베아에게 관능적인 노래를 부르면 주인을 질투한다. 머리를 밝게 하고 입 냄새를 없애는 물건으로 셀레스티나에게 쉽게 매수된다. 셀레스티나의 이름조차 입에 올리지 않으려 할 만큼 위선적으로 행동한다. 마지막에는 칼리스토와 멜리베아의 죽음이 자기 탓이라고 여겨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파르메노
다른 모든 인물에게 타락당한다는 점에서 가장 비극적인 인물이다. 셀레스티나의 옛 동료이자 스승인 클라우디나의 아들이므로 주인에게 위험을 경고하지만 모욕만 당한다. 아레우사에게 유혹당한 뒤 충성심이 무너지고, 사랑이라는 물질적 열정에 눈이 멀어 셈프로니오처럼 칼리스토를 이용하려 한다. 처음에는 타락의 흐름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멜리베아와 평행을 이룬다.
셈프로니오
주인에 대한 이상을 이미 잃고 이기심과 탐욕으로 그를 이용하려 한다. 셀레스티나의 매춘부 엘리시아와 관계를 맺지만 그녀에게 속는다. 주인의 열정을 이용해 자기 연애 비용을 마련하자고 처음 제안한 인물로, 봉건적 주종 유대의 붕괴를 보여준다.
엘리시아와 아레우사
두 매춘부는 속으로 남성과 멜리베아 같은 비전문 여성을 미워한다. 멜리베아를 질투하며 센투리오에게 연인들의 죽음을 복수하게 하려 한다. 엘리시아는 고정 고객과 집이 있지만 아레우사는 경험이 덜하다. 엘리시아는 현재의 쾌락에만 관심이 있고 과거나 미래를 생각하지 않다가 셀레스티나의 죽음으로 현실에 돌아온다. 아레우사는 자의식이 더 강하다. 두 사람의 복수는 연인을 잃은 슬픔보다 보호자를 잃은 불안과 증오에서 비롯된다.
멜리베아의 부모
어머니 알리사는 딸과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의견도 묻지 않은 채 혼인만 궁리한다. 아버지 플레베리오는 일에 지나치게 바쁘지만 외동딸을 사랑한다. 딸이 자살하자 삶의 의미를 모두 잃고 작품 마지막의 애가를 읊는다. 결실 없이 쌓아 온 노력 끝에 운명이 자신을 고독과 불모로 몰아넣었다고 탄식한다.
시간과 공간
명시적 시간과 암시적 시간이 있다. 아센시오에 따르면 첫 장면과 다음 장면 사이에는 며칠이 지나 칼리스토의 열정이 무르익고 그가 셀레스티나를 찾게 된다. 이는 멜리베아의 심리 변화도 그럴듯하게 만든다. 그 뒤 사흘 동안 행동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제15막과 제16막 사이에는 한 달가량의 두 번째 시간 도약이 있고, 이후 모든 사건은 하루 반 동안 일어난다.
도시는 대화 속 거리·광장·교회와 구체적 지명을 통해 형성된다. 살라망카·톨레도·세비야 등이 배경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확정할 근거는 없다. 작가가 전형적인 도시를 창조했다고 본다. 장소는 빠르게 바뀌고 때로 두 공간의 사건이 동시에 진행된다. 주요 행동은 멜리베아·칼리스토·셀레스티나의 세 집에서 일어난다. 멜리베아의 정원은 스페인 문학에서 자연이 처음으로 극화된 공간이라는 의미가 있다. 전체적으로 공간은 생동하고 역동적이며 다중적이고 동시적이다.
문체
두 가지 대립하는 문체가 사용된다. 교양 문체는 도치, 라틴어식 구문, 비슷한 어미의 반복, 고급어, 은유, 긴 종속문, 그리스·로마 인용을 특징으로 한다. 민중 문체는 꾸밈이 덜한 짧은 문장, 지소사, 속담과 관용구, 구어적 어조와 잦은 감탄을 특징으로 한다. 반복·병렬·대조도 풍부하며 방백과 독백을 영리하게 쓴다. 무대 상연보다 소리 내어 극적으로 읽기 위한 작품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짧은 응답은 자연스러움과 현대성을 보여주며, 웅변적 대화도 많다. 방백에는 다른 인물이 알아차리는 것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모두 있다. 독백은 많지 않지만 길고 균형 있게 배치되어 내적 갈등과 성격을 드러낸다. 이미지와 아이러니, 인물 사이의 대칭도 매우 중요하다.
영향과 생명력
가차 없는 사실주의는 동시대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16세기 내내 거듭 출판되고 유럽의 주요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수많은 속편과 모방작을 낳아 ‘셀레스티나 장르’를 만들었다. 펠리시아노 데 실바의 《제2의 셀레스티나》(1534), 가스파르 고메스 데 톨레도의 《셀레스티나 비희극 제3부》(1536), 산초 데 무뇬의 작품(1542), 세바스티안 에르난데스의 《폴리시아나 비극》 등이 대표적이다. 페드로 마누엘 데 우레아는 제1막을 운문화했고 후안 세데뇨는 전편을 운문으로 옮겼다.
셀레스티나의 흔적은 여러 16세기 희극, 피카레스크 소설, 세르반테스의 《가짜 숙모》와 《돈키호테》, 프란시스코 델리카도의 《안달루시아의 로사나》, 로페 데 베가의 여러 희곡과 《도로테아》, 살라스 바르바디요의 《셀레스티나의 딸》(1612) 등에 남았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특히 유모 인물에 직접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오늘날 스페인어권 대중문화에서 ‘셀레스티나’와 남성형 ‘셀레스티노’는 두 사람이 연애 관계를 시작하도록 중간에서 이어 주는 사람을 뜻하는 보통명사로 쓰인다.
각색연극
- 1940년 마드리드 스페인극장에서 카예타노 루카 데 테나 연출, 훌리아 델가도 카로 주연으로 공연되었다.
- 마르가리타 시르구는 1949년 우루과이 솔리스극장에서 연출과 주연을 맡았고, 1956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세르반테스극장에서 다시 공연했다.
- 알바로 쿠스토디오는 1953년 멕시코시티에서 자신의 판본을 연출했다. 이 공연은 멕시코 스페인극단 창단으로 이어졌다.
- 1957년 루이스 에스코바르 연출판에는 마리아 돌로레스 프라데라가 멜리베아, 호세 마리아 로데로가 칼리스토, 이레네 로페스 에레디아가 셀레스티나로 출연했다.
- 1958년 호세 타마요가 로페 데 베가 극단과 첫 무대를 만들었고, 1978년에는 이레네 구티에레스 카바 주연의 새 판본을 공연했다.
- 1988년 스페인 국립고전극단은 아돌포 마르시야크 연출, 암파로 리베예스 주연으로 공연했다.
- 1989년 앙투안 비테스는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잔 모로가 셀레스티나를 맡은 판본을 선보였다.
- 2004년 바르셀로나 리우레극장에서는 로베르 르파주 연출, 누리아 에스페르트 주연판이 공연되었다.
- 2012년 리카르도 이니에스타가 아탈라야 극단을 위해 연출한 판본은 여러 나라를 순회했고 2016년 모스크바의 밤 축제상을 받았다.
- 2015년 차로 로페스는 알바로 타토가 각색한 독백극 《물의 눈》에서 셀레스티나를 연기했다.
- 2016년 호세 루이스 고메스가 직접 셀레스티나를 연기한 판본이 국립고전극단과 아바디아극장의 공동 제작으로 공연되었다.
영화·텔레비전·라디오
- 1965년 카를로 리차니가 매우 자유롭게 각색한 영화 《La Celestina P... R...》을 연출했다.
- 1967년 스페인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에두아르도 풀레르의 각색판을 방영했다.
- 1969년 세사르 페르난데스 아르다빈이 원작에 더 충실한 영화판을 만들었다.
- 1974년 스페인 텔레비전 《책들》에서 헤수스 페르난데스 산토스의 각색판을 방영했다.
- 1976년 멕시코의 미겔 사비도가 에로틱한 판본을 만들었다.
- 1983년 후안 게레로 사모라의 미니시리즈가 방영되었다.
- 1996년 헤라르도 베라 연출, 테렐레 파베스 주연의 영화가 개봉했다.
- 2012년 아르헨티나 국립라디오가 라디오극을 방송했고, 같은 해 작품을 바탕으로 한 텔레노벨라 《너와 함께 태어나다》가 나왔다.
오페라·음악·무용·미술
펠리페 페드렐은 1903년 오페라 《칼리스토와 멜리베아의 서정 비희극》을 작곡했으며 일부가 1921년 초연되었다. 플라비오 테스티의 오페라 《라 셀레스티나》는 1963년 피렌체 5월 음악제에서 초연되었다. 호아킨 닌쿨멜의 오페라는 1965년에 작곡되어 2008년 공연되었다. 제롬 로젠의 《칼리스토와 멜리베아》는 1979년 캘리포니아 데이비스에서, 모리스 오아나의 《라 셀레스틴》은 1988년 파리 가르니에궁에서 초연되었다.
가수 라사 데 셀라는 1997년 음반 《라 요로나》에 〈라 셀레스티나〉를 수록했고, 하비에르 크라에는 1999년 〈멜리베아의 몸〉을 발표했다. 무용으로는 호세 데 우다에타의 발레(1966), 라몬 오예르의 발레(1998), 마리아 안토니아 ‘라 모리스’의 플라멩코판(2008), 고지마 쇼지의 플라멩코판(2009)이 있다.
파블로 피카소는 1904년 중매쟁이 노파를 그린 동명의 초상화 《셀레스티나》를 제작했다. 1974년 알파과라 출판사는 로렌소 고니의 삽화를 넣은 판본을 출판했다.
함께 보기
- 중세 스페인 문학
- 스페인 문학
- 초기 르네상스
- 칼리스토와 멜리베아의 정원
참고문헌에 관하여
원문에는 아디놀피, 아마수노, 데이어먼드, 길먼, 리다 데 말키엘, 러셀, 스노, 위놈 등을 비롯한 연구자들의 논문·단행본과 판본 정보가 상세히 수록되어 있다. 서지사항은 검색과 대조가 가능하도록 첨부 원문의 원어 표기를 따르는 것이 적절하다.
번역 주: 인명·지명·작품명은 한국어 통용 표기가 확립되지 않은 경우 스페인어 발음에 가깝게 옮겼다. 고문 인용은 의미가 자연스럽게 전달되도록 현대 한국어로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