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에 남은 깊고 긴 감동
2. 대가일성(大家一聲)의 시편들
한국 서울의 중심가인 광화문 네거리에 큰 사옥을 가진 어느 기업이, 그 건물 외벽에 초대형 ‘글판’'을 운영하고 있다. 이른바 ‘광화문 글판’이라 불리는 공익성 글 게시 캠페인이다. 짧은 시의 전문(全文) 또는 시의 한 구절을 선정하여 계절마다 바꿔 거는데, 그 세월이 벌써 한 세대를 경과 한다. 이 소문난 걸개 시화전은 도심(都心)의 미관을 시원하게 하고 광화문 거리를 지나는 하루 1백만 명의 시민들을 즐겁게 한다. 해당 기업은 25년이 되던 해, 모두 1백편의 게시된 시를 두고 설문조사를 했더니 1위로 꼽힌 시가 나태주의 「풀꽃」이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정말 짧은 시다. 모두 석 줄밖에 안되니 그 글에 전문을 새길 수 있었다. 경구처럼 짧은 시 한 편이 각자의 가슴에 남기는 감동은, 사람마다 다르고 또 그 가슴의 상태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강조하여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 짧은 시의 힘과 쓸모에 관해서다. 심금을 울리는 감동은 많은 말이나 긴 글에 의지하지 않는다. 그래서 고어 중에는 극단적으로 촌철살인(寸鐵殺人)이란 용어도 있다. 짧고 쉽지만, 교훈과 감동을 가진 글이 오래 간다. 시도 그렇다. 더욱이 요즘처럼 신산스러운 삶과 고단한 정신을 견뎌야 하는 시대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한국 시단의 대가(大家)들이 남긴 짧은 시가 사람들의 입술에 오래 머무는 현상은 이러한 세태를 반영한다. 다음은 작고한 저명 시인 조병화(1921~2003)의 「해인사」라는 시다.
큰 절이나 작은 절이나
믿음은 하나
큰 집에 사나 작은 집에 사나
인간은 하나
사찰의 크기와 믿음의 수준을 재는 눈으로 사람 사는 집의 크기와 인간됨의 수준을 재는, 놀라운 대비(對比)와 각성의 도식을 이끌어냈다. 본질적인 것은 외형에 좌우되지 않는다. 이 짧은 시에는 눈에 비친 경물과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사의 이치를 통찰하는 사유(思惟)의 깊이, 그리고 시적 완성도가 함께 결부되어 있다. 다시 한편의 시를 더 보기로 하자. 고은의 「꽃」이라는 시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리길 때 못 본
그 꽃
인생에 여러 굴곡이 있음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연륜에 걸쳐 그 굴곡들을 두루 밟아 보지 않고서는 그것의 숨은 내막을 모두 체현하기 어렵다.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과 경험으로 겪어서 아는 것은 다르다. 이 짧은 시 한 편에는 그와 같은 세상살이의 웅숭깊은 내면, 일생의 시간을 대가로 지불하고서야 체득할 수 있는 깨우침의 교훈이 잠복해 있다. 사정이 그러한데 어떻게 이러한 시를 수발(秀拔)하다 하지 않겠는가.
2024.8.12.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