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위에 피어난 반지꽃
-북소리 축제를 다녀와서-
도서관부 정명숙
아침부터 잔뜩 흐린 하늘이 수상하다. 비가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행삿날 비가 오면 불편한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걱정스런 맘을 안고 행사장으로 향했다. 행사장 부근에 도착하니 음악소리가 들렸다. 음악소리 덕분에 벌써 본리공원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는 듯했다. 서둘러 주차를 하곤 <그림책 꽃 피었다> 우리 지회 부스를 찾아갔다.
부지런한 회원들이 이미 부스를 예쁘게 정돈해 놓았다. 꽃과 관련된 그림책부터 우리회 홍보자료와 체험 자료까지, 한눈에 잘 들어오게 정리되어 있었다. 빗줄기가 굵어지자 전시해 놓은 책들 위로 비가 날아들었고, 천막에 빗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급하게 젖은 책들을 닦고 비를 맞지 않는 곳으로 옮겼다.
비님의 방문으로 축제장에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만 신이 났을 뿐, 아이들의 모습이 많이 보이지 않아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의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색색의 예쁜 우산을 쓴 아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 부스에도 아이들이 찾아왔고 아이들을 맞이한 회원들은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아이들이 꽃반지를 만들게끔 도와주기도 했다. 보라색을 좋아하는 공주도 다녀갔고, 꽃은 시시하지만 책을 한아름 안고 있는 엄마에게 예쁜 꽃을 선물하겠다는 씩씩한 아이도 다녀갔다. 친구와 둘이서 행사장을 돌고 있다는 아이는 골라온『튤립』 책을 읽어주니 알뿌리꽃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기도 했다. 꽃반지를 만들어선 집에 계신 할머니께 드리겠다기에 하나 더 만들기를 권하기도 했다.
솜씨 좋은 회원들이 만들어 놓은 꽃반지와 꽃송이가 아이들의 마음뿐만 아니라 어르신들의 마음까지 홀린 듯하다. 친구분처럼 보이는 세 분의 어르신이 우리 부스에 관심을 보이셔서 윤희 씨가 앉으시라며 부스 안으로 안내해서 책도 읽어드리고 기분좋게 꽃반지 만드는 것도 도와드렸다.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어르신의 굵은 손가락 위에도 반지꽃이 피어났고, 어르신의 얼굴에는 꽃처럼 수줍은 미소가 피어났다.
어도연 행사에 아이들과 함께했었는데... 엄마, 아빠와 함께 온 아이들을 보니 우리 아이들 어릴 때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어도연 행사에 참가할 때면 늘 내 아이가 우선이어서 다른 아이들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아이를 따라 다른 부스에 체험활동을 하러 가기도 하고 한 동안 아이가 안 보이면 어도연 부스를 떠나 아이를 찾으러 다니기 일쑤였다. 오롯이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고 북소리 축제에서 우리 부스를 지킨 건 처음이다. 내 아이가 옆에 없으니 자연스레 여러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예쁘게 깔맞춤한 옷들을 입은 세 자매와 함께 온 다정한 부부, 아이보다 더 책에 관심이 많은 엄마 따라서 그냥 들린 아이, 우산을 쓰고 장화를 신고 비오는날을 즐기는 아이, 수줍어하면서 읽어준 책에 대해 질문을 하는 아이, 꽃잎이 네 개가 아닌 여섯 개인 꽃반지를 만들고 싶다는 아이, 반지 말고 꽃을 만들어 달라는 아이, 아빠를 걱정하는 아이까지 많은 아이들을 그날 눈에 담았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이젠 내 아이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사랑스럽게 보인다. 모처럼 많은 아이들을 만나서 에너지가 충전되는 기분이었다.
회원들의 간식과 점심을 챙기느라 정신없었던 대표님, 북소리 축제 전 책 선정부터 고민이 많았던 도서관부 부장님 희정 씨 외에도 든든히 자리를 지켜주는 많은 회원들이 있기에 어도연 대구지회는 한결같은 속도로 잘 굴러가는 것이 아닐까?
너무 소란하지도 않고 너무 적적하지도 않은 북소리축제에서 우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이야기꽃을 피우고 반지꽃이 피어나게 하고 웃음꽃도 피워냈다. 그리고 그날 내 손가락 위에도 반지꽃이 피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