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s Who?
한국의 사립미술관 관장들 (19) 정송규 무등현대미술관 관장
"광주·호남 지역의 새로운 현대미술 중심지"
사람이건 단체건 이름은 중요한 법이다. 이름은 그것을 가진 자 또는 단체의 아이덴티티를 설명해 준다. 그런 점
에서 정송규 관장은 무등현대미술관에 자신이 지향하는 메시지를 고스란히 담은 셈이다. 무등현대미술관은 이름
그대로 무등산 증심사 자락에 위치해 있다. 알려진 대로, 무등산은 광주 전남 지역의 상징. 증심사, 원효사, 약사암,
규봉암 등의 사찰은 물론 식영정과 소쇄원 등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사계절 내내 끊이지 않는다. 산의 정상인 천
왕봉과 서석대, 그리고 입석대는 매서운 산세를 자랑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무등산은 푸근한 어머니를 연상시킬
정도로 완만한 산세를 견지하고 있다.
이 지역의 예술가들에게 무등산은 영감의 원천이자 삶의 터전으로 삼고 싶은 곳이다. 무등산 자락에 작업실을 짓
고 창작에 전념하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삼는 예술가도 적지 않다. 무등산이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이유는 향후 광
주시가 이 지역을 문화 벨트로 조성할 계획을 갖고 있지 때문이다. 위로 의재미술관에서 아래로 우제길미술관을
잇는 미술의 거리가 이 지역의 새로운 문화 쉼터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다. 무등현대미술관은 바로 이
문화 벨트의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
'폐쇠적'인 지역 미술계의 숨통을 트고 싶다
무등현대미술관의 이름에서 전해지는 또 하나의 메시지는 현대미술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미술관과 현대미술,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다. 그러나 정 관장의 말을 들어보면 결코 쉽지만은 않은 과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광주 호남 지역의 미술계는 한 마디로 폐쇠적입니다. 오지호와 임직순의 그늘 아래 20~30년을 보내고 말았어요.
90년대 이후 활기를 띠었던 한국현대미술과 달리 이 지역의 현대미술은 단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습니다."
위험한 발언이다. 임직순 화백이 아끼는 제자로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명성을 누렸던 정 관장의 입에서 나왔다고
는 믿기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붓을 든 이라면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200
7년 10월 2일 문을 연 무등현대미술관이 어떤 길을 걸어갈 지를 일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대지 724㎡에 2층으로 이루어진 무등현대미술관의 첫 인상은 단정함이었다. 가급적 꾸밈을 배제하려 한 듯한 흔
적이 역력했다. 1층은 전시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기다랗게 뻗어 있는 전시 공간은 발걸음을 옮기며 작품을 감
상하느 재미를 안겨 준다. 하지만 무등현대미술관의 백미는 2층이라고 할 수 있다. 정 관장의 작업실과 전시장이
한 몸을 이루고 있는 2층은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넘쳐나고, 창문으로 무등산을 감상할 수 있는 아늑함이 인상적이
다. 바닥에는 정 관장의 손자뻘 되는 아이들이 갖고 놀 만한 형형색색의 장난감이 분해된 채 누워있다. 최근 정 관
장이 머릿속에 이리저리 구상하고 있는 새 작품의 재료란다.
이젤 위에는 정 관장이 몰두하고 있는 '조각보' 작업이 완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1997년까지 인물화와 누드
화에 열중했던 정 관장은 1998년을 기점으로 기존의 작품 경향에서 확연히 달라진다. 그 중심에는 '조각보'가 있었
다.
"뭔가 잡히지 않는 회의감이 들었어요. '나'에 대한 정체성을 고민하게 되었다고 할까요. 고민의 결과는 바로 '어머
니'의 삶을 그리자는 것이었어요. 그것의 매개물이 바로 '조각ㅂ'를 현대적으로 재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조각보'를 통해 만나는 어머니의 삶
정 관장이 수십 년 동안 자신이 가꾸어온 작품 세계를 일거에 바꾸게 한 원동력은 바로 어머니이 삶이었다. 이를
위해 정 관장은 '점'처럼 보이는 조각보 무늬를 하나하나 캔버스에 찍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에게 조각보는 단순한
조형미보다 어머니의 삶의 깊이를 구(求)하는 최상의 재료이자 도구였다. 여기에는 평생 동안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며느리로서, 세 자녀의 어머니로 살아온 자신의 삶도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어머니의 삶이 쉽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표 나지 않는 어머니
의 삶이 있기에 가정의 행복이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됩니다"
정 관장에게 점, 즉 조각보의 무늬를 캔버스에 찍어나가는 행위는 직접 '체험'하고 쌓아가야 무언가를 이룰 수 있
는 우리네 인생의 원리를 담고 있는 행위이기도 하다. 구도의 행위라고 얘기해도 무방할 정 관장의 작업의 정점에
는 행복이 자리하고 있다. 그의 손을 거친 작품이 '기쁨(delight)'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오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
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현대인의 삶을 보노라면 자꾸 '건너뛰는'듯 보여요. 당장
은 손쉬울지 몰라도, 당장은 빨리 갈지 몰라도 결국 언젠가 다시 걸어가야 할 텐데 말이죠."
2층의 또 다른 자랑은 약 2백 여 점의 작품을 보관하고 있는 수장고에 있다. 의재 허백련의 산수화와 임직순, 오승
윤의 서양화, 그리고 서예와 도자, 공예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모여 있는 이곳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경건함마저
풍겨난다. 소장품의 상당량을 차지하고 있는 정 관장의 작품들에서는 작품이 변해온 길을 반추하는 재미가 느껴진
다.
무등현대미술관은 이제 걸음마를 뗀 신생 미술관이다. 10월 개관에 맞춰 열렸던 <굿모닝 광주> 전의 제목처럼 이
지역 문화인들과 시민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소개했을 뿐이다. 그러나 정 관장은 무등현대미술관이 이 지역에 현대
미술을 전파하는 발신지 역할을 하겠다는 욕심을 숨기지 않는다. 그의 입에서 '디아 비콘'이라는 화두가 떨어졌다.
자신의 작품 세계에 회의를 느끼고 무작정 떠났던 1997년 뉴욕 방문, 그리고 비록 찾는 이는 적지만 현대미술의
흐름을 알 수 있었던 디아 비콘에서 느꼈던 감동을 무등현대미술관에 전하고 싶다는 것이다. 무등현대미술관에 우
리의 눈길이 닿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062)223-6677
광주│글 ·사진=윤동희 객원기자(북노마드 대표)
2007-12-10 ⓒThe Museum
<정송규 관장 프로필>
정송규 관장은 조선대 미대를 졸업했다. 미국 오하이오 클리브랜드 인스티튜트 아트스쿨을 수료했다. 광주시전 심
사위원, 광주미술협회 부회장, 제6회 광주비엔날레 이사 등을 역임했다. 2006 광주시립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수
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