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천민의 해방자 암베드 카르는 누구인가?
하리잔(불가촉천민 계급)의 지도자로 1947~51년 법무장관을 지냈다.
인도 서부의 불가촉천민 계급인 마하르가(家) 출신으로
소년시절 신분이 높은 학교 친구들에게 굴욕을 당했다.
아버지는 인도군의 장교였다. 바로다의 가에콰르(통치자)가 주는
장학금을 받아 미국·영국·독일의 여러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가에콰르의 요청으로 바로다 관청에 들어갔으나
역시 신분이 높은 동료들의 학대 때문에 자리에서 물러나
변호사업과 가르치는 일에 전념했다.
곧 하리잔 사이에서 지도적인 위치에 서게 되었으며,
하리잔을 위해 몇 개의 잡지를 창간했고,
하리잔이 정부의 입법위원회에 그들의 대표를 보낼 수 있도록 했다.
하리잔을 위한 연설로 마하트마 간디와 논쟁을 벌이면서
〈국민의회와 간디가 불가촉천민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What Congress and Gandhi Have Done to the Untouchables〉
(1945)를 썼다.
1947년 인도 정부의 법무장관이 되어 불가촉천민에 대한 차별을
불법화하는 인도 헌법 구성에 앞장섰으며,
이 문제를 의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자신이 정부 내에서 영향력이 없다는 사실에 낙담한 그는
1951년 사임했다. 1956년 10월 힌두교리가 불가촉천민을
영속화시킨 데 절망을 느껴 힌두교를 버리고
약 20만 명의 동료 불가촉천민과 함께 인도 나그푸르에서
의식을 치르고 불교도가 되었다.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 untouchable]
harijan이라고도 함.
전통적인 인도 사회에서 가장 낮은 카스트에 속하는
수많은 집단 또는 카스트 체계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들.
불가촉천민이라는 말의 사용과 그와 관련된 사회적 차별행위는
1949년에 인도의 헌법제정회의에서 채택된 헌법에 의해
불법으로 규정되었으며 파키스탄에서는 1953년 불법임이 선포되었다.
위대한 사회지도자인 마하트마 간디는 불가촉천민을
하리잔(하리 비슈누 신의 자녀들, 또는 간단하게 신의 자녀들이라는 뜻)이라고 불렀으며,
여러 해 동안 이들의 해방을 위해 활동했다.
전통적으로 직업 또는 생활습관이 더러운 일과 관련되어 있으면 불가촉천민으로 규정되었다.
예를 들면 ① 어부 같은 사람들,
② 소를 죽이거나 죽인 소를 치우는 일 또는
가죽무두질을 하면서 생계를 잇는 사람들,
③ 똥·오줌·땀·침 등 인체의 배설물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
청소부나 세탁부,
④ 쇠고기를 먹거나 집돼지· 닭 등의 고기를 먹는 사람들인데,
인도의 원시종족들 대부분이 이 범주에 속한다.
수많은 사원과 대부분의 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상위계급이 물을 긷는 우물의 사용이 금지되었다.
이들과 접촉하는 일은 상위계급의 사람들을 심하게
오염시킨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다시 정화시켜주는
의식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도 남부에서는 일부 불가촉천민들을 보기만 해도
일단 오염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들은 밤에만 활동했다.
이러한 사회적 차별 때문에 많은 불가촉천민들이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불교 등으로 개종함으로써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다.
인도 천민의 해방자 암베드 카르는 누구인가?
암베드 카르는 힌두교 하에서 계급 해방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불교로 개종한다. 사진은 1956년 나그푸르에서 열린 개종식 모습.
인도 현대사의 지도자 중 인도 국민의 깊은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인물은 누구일까?
아마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대부분 ‘간디’를 첫 손가락에 꼽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인도 국민들은
‘제이 브힘(Jay Bhim, 암베드카르 만세!)’을 외친다.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인물이지만, 암베드카르(1891∼1956)는
인도 불가촉천민의 해방자 이자, 현대 인도불교의 중흥자로
칭송받는 ‘영웅’이자 ‘신화’다.
인도의 학교는 어린 암베드카르가 두려워 그에게 질문을 하지도,
산스크리트어를 가르치지도 않았다.
이러한 사회적 멸시에 시달리던 암베드카르는 노예제도인 카스트를 타파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매일 새벽 두시에 일어나 공부에 매진했다.
1907년 대학에 입학한 그는 이후 주위의 도움으로
미국과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했고
고국에 돌아와 교수와 변호사로 일했다. 그러나 동료 교수들은
그가 교수 휴게실에 놓인 주전자의 물조차 마시지 못하게 하는 등
신분 차별은 계속됐다.
교수직을 사임하고 다시 영국으로 건너간 그는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했고
1927년 ‘초다르 저수지’ 사건으로 불가촉천민 해방운동의 신호탄을 쏘았다.
이는 마하드 시의 상위 카스트 주민들이 불가촉천민의
초다르 저수지 사용을 반대한 것에 저항한 사건으로,
암베드카르를 비롯한 만여 명의 군중은 저수지까지 행진하고
‘금지된 저수지’의 물을 떠 마심으로써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했다.
이후 그는 힌두교의 개혁을 위해 법무장관과 노동장관을 역임하며
불가촉천민을 위한 정당을 창당했고, 그들의 의회진출을 법제화 하는 등
신분제 철폐를 위해 앞장섰다.
그러나 그는 힌두교 아래에서 신분제를 타파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1935년 “힌두교인으로 태어났지만, 힌두교인으로 죽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 선언한다.
그리고 그가 대안으로 찾은 가르침은 바로 불교였다.
“프라즈나(지혜)와 카루나(사랑) 그리고 사마타(평등)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기에
저는 불교를 사랑합니다. 이 원리들은 선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들입니다.”
암베드카르는 불가촉천민들과 함께 계급해방에 앞장섰다.
그는 불교 교리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이어갔으며 1956년 10월 14일,
나그푸르에서 50여 만 명의 추종자들과 함께 불교로 개종함으로써,
사그라져가던 인도 불교에 불을 지폈다.
신분제의 완전철폐를 주장했던 암베드카르와 달리
간디는 카스트 제도가 인도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라 여겼다.
이러한 인식차이는 불가촉천민의 의회진출과 차별근절 등의 문제에 있어 첨예한 대립을 보였다.
오늘날 인도인들이 “암베드카르가 없었다면 인도 불가촉천민의 역사는
전혀 다르게 쓰여졌을 것”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진정 국민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줄 알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일생을 바쳤던 암베드카르의 일생을 통해
오늘날 지도자의 모습을 반추해보게 된다.
<여수령 기자>
인도불교의 중흥 암베드카르의 불교입문맹세 22개항
1956년 10월 14일과 15일, 인도 나그푸르의 딕샤 부미에서
50만명의 사람이 일시에 불교로 개종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일찍이 세계에 유래가 없었던 가장 큰 교계의 개종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러한 불교 집단 개종식을 주도한 인물은 암베드카르 박사이다.
그의 개종식은 불기(佛紀) 2500년을 기념한 1956년 10월 14일
나그푸르에서 거행되었다. 이때 운집한 50만 명의 천민이 그와 함께 불교도가 되었다.
이 역사적인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암베드카르 박사는
지지자들 앞에서 22가지 맹세를 제정했다.
이러한 암베드카르의 맹세들은 혼돈과 반목으로부터
불교를 보호하는 보루의 역할을 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대중을 빈곤 상태로 이끌고 힌두교의 상위 계급들을 살찌우는 미신과
소모적이고 무의미한 의식들로부터 개종자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이 점에서 암베드카르가 인류의 희망으로 중시한 것은 불교의 평등 사상이었다.
암베드카르의 불교입문맹세 22개항
01. 나는 브라흐마 비슈누 마헤슈와라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고 또한 숭배하지도 않는다.
02. 나는 라마와 크리슈나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고 또한 숭배하지도 않는다.
03. 나는 가우리(시바신의 처, 월경전의 소녀)나 가나빠띠(집단의 수령)와 같은
힌두 신전의 남신, 여신 중 어느 쪽도 신으로 인정하지 않고 또한 숭배하지도 않는다.
04. 나는 화신(化身, 신들이 변해서 다른 것으로 나타난다는 사상)을 믿지 않는다.
05. 나는 붓다가 화신인 것, 즉 그가 비슈누의 화신인 것을 믿지 않는다.
도리어 나는 그것이 거짓 선전이라고 생각한다.
06. 나는 조령제(祖靈祭)를 지내지 않고 제사떡을 드리지 않는다.
07. 나는 붓다의 법에 거슬리는 어떠한 관행에도 따르지 않는다.
08. 나는 어떠한 의식이나 제식도 브라흐만의 손에 의해서 집행되는 일을 하지 않는다.
09. 나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믿는다.
10. 나는 평등권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한다.
11. 나는 붓다에 의해 가르쳐진 8정도를 따른다.
12. 나는 붓다가 가르친 불교교단의 10계를 지킨다.
13. 나는 모든 생물을 자비롭게 보호한다.
14. 나는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
15.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16. 나는 사음을 하지 않는다.
17.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18. 나는 팔정도를 따르고, 선행, 자비를 행함을 인생지침으로 삼는다.
19. 나는 사람됨에 해롭고 진보를 방해하는 불평등주의적인 힌두법을 고발하고 또한 거부한다.
그리고 나는 붓다의 법을 택한다.
20. 나는 불교야말로 유일한 참된 종교라고 확신한다.
21. 나는 새로운 생활에 들어간 것을 확신한다.
22. 나는 붓다가 가르친 그 밖의 다른 계율과 교리에 따라 살아갈 것을 맹세한다.
(편집 요약)
출처 : 염화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