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 불
허 정
국민 절반이 넘는 다수가 선택한, 아니 대통령 직선제 이후 지금까지 어느 대통령과도 비교할 수 없을 다수 득표로 선출된 대통령과 그 정부를 퇴진시키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정부를 세우고자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십만이 넘는 촛불이 몇 달째 광장에서 거리에서 요동치며 사회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50년 전만해도 일부 도시를 제외한 농촌 지역의 대부분은 전기의 혜택을 못 받았기에, 석유등잔 희미한 호롱불 밑에서 독서도, 길쌈도 하며 살아왔기에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을 조금 자세히 보려다가 머리털을 그스르게 되는 경우도 많았고, 또 밝게 하려고 심지를 돋우면 비례해서 그을음도 더 나기에 몇 시간 등잔 밑에서 일을 하고 나면 코 밑이 새까맣게 되어 있었던 기억이 새롭다. 이 때 부잣집에서는 값비싼 촛불을 환히 밝히며 살았고, 서민들도 제사나 아주 귀한 손님이 내방했을 때는 촛불을 켰고, 상례의 문상(問喪) 때도 초를 구해가는 풍습이 있어 요즘도 부의금을 낼 때 ‘향촉대(香燭代)’란 이름을 썼다 하기에, 촛불은 나에게 부와 호화의 상징물로 기억되고 있었다.
이 때 유머로 이런 얘기도 있었다. 전깃불이 들어온 곳도 배전 사정이 나빠 전깃불이 끊기는 경우가 많아 불이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했기에, 전기 수급이 불안정하고 제멋대로인 한전을 원망하던 청년이 앙심을 품고, 한전 수금원이 전기 사용료를 받으러 왔을 때 전기 사용료를 주었다 뺏었다를 계속하며 한전 직원을 놀리자, 수금원이 화가 나서 왜 그러느냐니까 그 청년의 하는 말이 “당신들도 전기를 주었다 뺏었다 하는데 나도 돈을 주었다 뺏었다 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지 않느냐? 초 한 자루 값이라도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항변하니, 수금원도 할 말을 잊고 묵묵부답이었다는 우스갯소리가 당시의 우리 사회의 단면을 대변해 주고 있다. 이때는 초 한 자루가 소모품이라기엔 정말 귀하고 소중한 재원으로 생각되었다.
전력 사정이 좋아져 촛대가 거의 잊혀 가고 있었는데, 2002년 6월 의정부 조양중 2년 신효순, 심미순양이 친구 생일잔치에 가다 주한 미군 궤도 차량에 치여 사망했는데, 10월에 미 군법에서 가해 운전병 마크 위크 병장의 무죄가 결정되자, 언론이 대서특필하며 이의를 제기하자 국민의 분노가 폭발하게 되었다. 이 기회에 반미 단체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 미군 철수를 외칠 때, 네티즌 가운데 앙마란 ID를 가진 청년이 미순 효순 촛불 집회를 제안하여 이것이 공감을 얻어 삽시간에 그해 대선 정국을 뒤흔든 태풍으로 화하였다. 이때부터 화촉이란 이름으로 축복의 상징이었던 촛불이 성난 시위의 상징이 되었다. 이번 쇠고기 파동은 촛불이 공감을 얻어 활기를 더하자 처음 대수롭잖게 여겼던 정부도 당황하여 대통령이 두 차례나 대국민 사과를 하고, 미국과는 쇠고기 추가 협상을 하여 안정을 가지는 것 같았는데, 일부 세력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 촛불 시위를 하고, 드디어 쇠파이프 등으로 무장하여 무력 충돌마저 서슴지 않는다.
해서 이젠 광화문 일대의 주민들도 시위대의 행동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며 반기를 들고 일어섰다. 지난 5월 초 결성된 대책 회의는 1,700여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지만, 사실상 수구좌파 조직인 진보연대가 주도하고 있다. 그 중심인물인 오종렬, 한상열 씨는 평택 미군 기지 확장 저지, 맥아더 동상 철거, 한미자유협정 반대 같은 시위를 주도한 진보연대 공동 대표다. 진보연대는 작년 9월 대선을 앞두고 출범했으며,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남북공동선언 실천연대, 범민련 남측 본부, 민주노동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파기, 신자유주의 반대, 강대국의 제국주의적 지배 정책으로부터 자주권 쟁취 등을 강령으로 채택하고 있다. 북한의 대남 적화(赤化) 전략을 고스란히 옮겨다 복창(復唱)하는 친북 반미 집합체다. 국민 건강을 걱정하는 체하며 실상은 우파 정부 타도와 반미 투쟁을 주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것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굶어 죽는 북한 주민을 걱정한다는 소리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들이 단 한 번이라도 북한 국민을 아사(餓死) 상태로 몰아넣은 김정일 정권을 비판하면서 북의 민주화와 개혁을 주장
한다면 광우병 쇠고기 걱정을 하며 촛불을 드는 것을 믿어 줄 것인데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촛불 시위 두달여 동안 지금까지 경찰은 500여 명이 다치고 전경 버스 200여 대가 파손됐다. 차도 점거 시위로 수많은 시민들에게 끼친 차량통행 불편과 치솟기만 하는 유가의 추가 부담은 어쩔 것인가. 인근 기업 및 상점들도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한다. 서울 시청 앞 광장의 잔디가 시위대의 발에 짓밟혀 거의 죽는 바람에 막대한 세금을 들여 잔디를 다시 심고 있다.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가 두 달 넘게 계속되면서 시위 양상이 폭력화 방향으로 심화되는 현상이다. 경찰이 불법 시위를 차단하기 위해 그들의 행동을 저지하면 경찰이 폭력을 행사한다며 경찰 버스를 부수고, 전진하고 방어하는 과정에서 쌍방 간에 폭력이 일어난다. 사실 이런 폭력 시위가 아니더라도 치안을 유지해야 하는 경찰은 국민의 안전과 평온을 지켜 주어야 하기 때문에 국민 생활에 불편을 주는 단체 행동에 대하여는 제재(制裁) 수단을 강구해야만 한다. 외국 대사관이 즐비해 있는 광화문 일대에서 100일도 넘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명분으로 불붙은 촛불 시위는 그 일대 주민들의 불편은 물론 우리 법 질서를 파괴하고 국제 사회에서도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크게 손상시켜 놓고 있다.
2000여 년 전 중국 주나라의 전국시대 때 제자백가 중 법가 사상가인 한비자(韓非子)는 “하인이 주인을 위해 일하는 것은 충실한 성품에서가 아니라 보수를 받기 때문이며, 주인이 하인을 보살피는 것은 친절한 품성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수레를 만드는 사람이 이웃이 돈 많이 벌기를 바라는 것은 착한 심성이 아니라 돈을 많이 벌어야 수레를 많이 이용하기 때문이며, 관을 짜는 사
람이 죽기를 바라는 것은 수레 만드는 사람보다 영악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죽지 않으면 관이 안 팔리기 때문이라 했다.
한로축괴(韓獹逐塊)란 고사(故事)가 있다. 한국이라는 사람이 기르던 개가 흙덩이를 쫓아간다는 말로, 흙덩이를 던지면 계속 물고 돌아오는 영리한 개에게 재미를 붙인 개 주인이 지나가는 사자에게도
흙덩이를 던졌더니 사자는 자기를 해치는 행동이라 생각하고 흙덩이를 던진 한국에게 달려들어 큰 상처를 입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미군 장갑차 문제 이후 재미를 붙인 좌파 세력의 터무니없이 이어지는 이 촛불 시위는, 이명박 반정부 시위를 넘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토대로 한 대한민국의 국체를 흔드는 좌파 운동이라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시위대는 처음부터 경찰의 공권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경찰의 대응을 폭력으로 규정하며 경찰청장 퇴진을 외치고 있다. 지난 토요일에도 경고 방송과 물대포에 그친 경찰에 대해 시위대는 물대포에 최루탄이 섞였다고 트집 잡아 폭력성을 부각시키는 데 혈안이 됐다. 물대포와 최루탄 사용이 불법도 폭력도 아니라고 왜 떳떳이 말하지 못하는가. 환자에게 칼을 사용하여 수술해야 할 급성 맹장염을 혹시나 뒷날 후유증을 두려워해 칼을 잡지 않았다면, 칼을 든 강도가 상대의 목을 찌르려는 급박한 상황을 보고도 후환이 두렵다는 이유로 눈을 감아 버린다면 그 의사나 그 경찰은 어떤 인간적 평가를 받겠는가.
잃어버린 좌파 10년이란 한숨 섞인 어제의 평온이 오히려 그리워지는 사회 분위기이다. 정당한 민의에 의해 정권을 받았다면 정당한 법치에 의해 불법과 혼돈을 종식시켜야 하는 것이 공권력의 임무이
다. 무엇이 두려워서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이들에게 휘둘리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결혼식을 화촉을 밝히는 행사라 하여 화촉연이라 한다. 탄일을 축하하여 나이 숫자의 촛불을 밝힌다. 결혼을 축하하는 환희와 축복의 촛불이 규탄과 성토의 아수라장의 성난 촛불로 변한 현실이 안타까
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