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낭송 바르게 하기』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지도/황봉학 시인

『시낭송 바르게 하기』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지도/황봉학 시인   목마(木馬)와 숙녀(淑女) /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生涯)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庭園)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孤立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女流作家)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意識)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通俗)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시작(詩作)』 7호. 1955. 10.   ------------------------------------------------------  이 시를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면 얼마나 많은 낭송가가 낭송했는지 알 수 있고 그만큼 이 시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많은 낭송 중에서 이 시를 완벽하게 낭송한 낭송가를 찾기 힘들었다.   우선 원문이 많이 틀려서 정확한 원문을 여기 올려드리는 것이다.     낭송하시는 분들이 잘못 낭송하고 있는 부분을 살펴보면,     ‘술병에서'를 '술병에’로 낭송하시는 분이 많다.   ‘술병에서’와 ‘술병에’서 ‘서’ 자 한 자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낄 수 있다.     ‘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이 행을 아예 빼버리고 낭송하는 분도 있다.   (‘부숴진다’는 ‘부서진다’가 바른 표기법이다. 그러나 원문에 ‘부숴진다’로 되어 있어 그대로 올린다. 새로 발간되는 박인환의 시집은 ‘부서진다’로 바른 표기법대로 출간되어 있다.)     ‘가벼웁게’를 ‘가볍게’로 낭송하시는 분이 있다.   ‘가벼웁게’는 시어이기 때문에 ‘가벼웁게’로 낭송하여야 한다.   시에는 음악성이 있기 때문이다.     ‘목메어 우는데’에서 ‘목메어’를 목메여‘로 낭송하는 분이 의외로 많았다.     ‘…등대(燈臺)에…’ 이 한 행은 시인이 앞뒤로 줄임표를 썼다. 그만큼 시인이 공을 들였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등대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등대로’에서 언급한 것으로 ‘등대’는 버지니아 울프가 꿈꾸었던 ‘유토피아’를 말한다. 즉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이렇게 이어지는데 ‘…등대(燈臺)에…’ 앞뒤로 줄임표가 있으므로 충분한 여운을 남기고 다음 행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연달아 낭송하는 분이 있었다.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을 ‘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으로 낭송하는 분이 있는데 잡지는 낡은 잡지만 통속한 것이 아니라 잡지 자체가 통속답다. 그리고 시의 원문에도 ‘낡은’은 없기 때문에 주의하여야 한다.     그리고,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이 두 행을 낭송하시는 분 중에서 ‘뱀과 같이 눈을 뜨고’로 행을 붙여 낭송하는 바람에 섬뜩한 느낌을 들게 하는 분이 있었다. 뱀처럼 눈을 뜨라니? 얼마나 섬뜩한 말인가.   이처럼 시에서는 행과 연을 잘 구분하지 못하면 아주 다른 시가 되거나 뜻을 엉뚱하게 해석하게 만든다.     자, 그리고 아주 중요한 부분을 설명하고자 한다.   이 시에 등장하는 ‘거저’와 ‘그저’다.   ‘거저’가 1번, ‘그저’가 3번이다.   '거저'는 '아무런 노력이나 대가 없이'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빈손인 상태'를 가리킨다.   '그저'는 '그냥 하염없이' '아무 조건 없이' 등의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잘 구분하여 써야 하고 발음도 구분을 명확하게 해주어야 한다.   발음은 ‘거저=거저’ ‘그저=그저’로 그대로 발음하면 된다.   시인이 처음 발표한 선시집에는 네 군데 다 ‘거저’로 발표되어 있다.   그 후 『시작(詩作)』 7호. 1955. 10.』에서 구분하여 ‘거저’ 1번과 ‘그저’ 3번으로 수정되었다.   그리고 시인이 작고한 다음 발간되는 시집마다 ‘거저’와 ‘그저’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제대로 표기를 못 해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처음에는 '바아지니아·울프'로 표기 되었다가 '버지니아 울프'로 수정되었다.    <낭송법>   이 시는 연의 구분이 없이 행의 구분만 있는 한 연으로 된 시다.   시 자체에 음률감이 묻어 있기 때문에 완급조절만 잘하여도 좋은 낭송이 될 수 있다.   한 자 한 자의 시어를 배우들이 무대에서 연극을 할 때 보법에 신중하듯이 시어 한 자 한 자에 정감을 주어야 한다.     완급조절을 할 부분은,   문학이 // 죽고 // 인생이 // 죽고     이 부분을 완만하게 낭송하다가,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女流作家)의 눈을 / 바라다보아야 한다.     이 부분에서는 급물살을 타듯 속도를 높인다.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通俗)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 떠나는 것일까.     이 부분에서 다시 완급을 조절하면 된다.     이처럼 한 편의 시를 낭송할 때는 많은 공부가 필요하고 특히 원문을 잘 파악하여 낭송하여야 한다.     시인 박인환은 1926년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6·25전쟁이라는 역사적 혼란기에 청춘을 보내고, 1955년 목마와 숙녀가 실린 ‘박인환 선시집’을 간행한 다음 해 심장마비로 요절한다.   (안타깝게도 시인의 시집이 발간되고 인쇄소에 불이 나는 바람에 시인의 시집을 받아 본 분이 별로 없어 현재 원본은 몇 권만 남아 있다.)     이 시가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시의 기본은 음악성과 서정성인데 ‘목마와 숙녀’가 그 기본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저급하다고 하는 일차적 감성의 지배를 제일 많이 받는다. 일차적 감성이란 사랑, 그리움, 고뇌, 고독, 희열 등을 말하는데 이러한 일차적 감성에 시적 감성이 더해질 때 사람들은 시와의 정서적 공감을 통하여 위로받고 용기를 얻게 된다.   ‘목마와 숙녀’가 다소 신파적이고 지나치게 감상적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사람들이 오랜 세월 변함없이 이 시를 사랑하는 이유가 바로 이 풍부한 서정성 때문이다. 또한 낭송하기 쉽게 음악성도 갖추고 있다.   모쪼록 시가 다소 신파적이라도 신파에 흐르지 말고 담담하고 정감 있는 목소리로 듣는 사람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낭송되기를 바란다.   <낭송하는데 참고하고자 하는 분은 아래 처음 발표된 원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木馬와 淑女-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바아지니아·울프의 生涯와 木馬를 타고 떠난 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木馬는 主人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少女는 庭園의 草木옆에서 자라고 文學이 죽고 人生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木馬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孤立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作別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女流作家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未來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木馬 소리를 記憶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意識을 붙잡고 우리는 바아지니아·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靑春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人生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雜誌의 表紙처럼 通俗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木馬는 하늘에 있고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선시집, 1955. 10. 15, 산호장.         -황봉학 시인, 시낭송 교육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