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
제주도에 갈 좋은 기회가 생겼다. 진도군에 위치한 대명리조트 쏠비치에서 실시한 전남 가정위탁센터 주관 위탁부모교육 기간 중 위탁부모들의 쉼을 위해 제주도 여행 계획을 마련하였다며 참여 희망부모들은 신청하라고 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생각했지만 몸과 마음을 위한 힐링 여행으로 제주도만큼 좋은 곳이 없다는 생각에 무조건 가겠다고 신청을 했다. 신청 후 당연히 제주까지 비행기로 갈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배를 타고 가는데 완도도 아니고 목포에서 간다고 한다. 목포에서 제주도까지 5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완도에서 배를 타면 3시간이면 가는데 무려 2시간이나 더 걸리는데다 그것도 새벽 1시에 출발한다고 한다. 난감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보지도 않고 포기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여행을 준비했다. 어른들만 가는 것도 아니고 장애가 있는 현우까지 데리고 가려면 장난이 아니겠다는 생각도 했다.
10월 8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몸이 생각처럼 움직여지지 않는다. 현우를 챙겨 다닐 생각을 하니 몸이 힘든 상태로 과연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겁부터 났다. 제주도 여행을 포기해야 하나 여러 생각을 하며 아쉽지만 몸이 안 좋아 갈 수 없다고 말씀을 드려야 옳을 것 같았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방학이 4개월이나 이어져 숨이 막힐 지경이었는데 그나마 숨통을 트여줄 제주도 여행에 설렘과 기대가 컸다. ‘여행가는 당일에 못가겠다고 하면 어렵게 여행계획을 마련 추진하는 선생님들 또한 얼마나 황당해하실까’ 라는 고민도 많이 되었다. 갈 수 있는 방법만 생각하자 다짐하고 오전에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오후 시간에는 병원에 가서 영양제까지 맞았다. 그렇게 몸을 추스르고 밤 9시 제주도를 가는 배를 타기 위해 목포국제여객선 터미널로 향했다.
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하니 벌써 저 멀리 광양, 순천에서 오신 낯익은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타고가야 할 배는 퀸제노비아호로 2만7천 톤급인데 탑승인원이 무려 1,300명이나 된다고 했다. 연휴기간을 끼고 있어서 그런지 정원이 다 찼다고 한다. 배를 탈 때는 현우가 유모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데 높은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하지만 승무직원들이 도와서 올려주었다. 고맙기도 했고 미안하기도 했다.
우리 일행은 밤 10시 30분부터 승선했다. 여러 가지로 불편하고 힘이 들지만 그것 또한 나쁜 경험은 아니었다. 일행 10여 가정과 센터 직원 4명 등 20여 명이 한 객실로 들어가야 했다. 콩나물시루가 된 669호 객실 한 방에서 함께 하루 저녁을 보내야 했다. 시작부터 수월치 않은 여행이었다. 남자 분들은 거의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새벽녘에 한숨 붙이는 듯 마는 듯하다가 날이 새고 제주항에 도착했다.
오전 6시 배에서 내리자마자 아침식사를 위해 제주항에서 가까운 대춘해장국을 찾았다. 여기서부터 위탁가정 마다의 삶과 생활이 보이기 시작한다. 중, 고등학생이면 최소한 밥 먹는 것 가지고는 엄마, 아빠의 애를 녹이지 말아야 하는데 아니다. 신체가 온전해도 지적장애가 있는 아이들, 묻는 말에 대답도 하지 않는 묵묵부답의 아이들, 순간의 모습으로도 그간의 노고가 느껴지는 다양한 모습들이 보인다. 지적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기 위해 위탁 양육을 하기로 했다는 한 위탁 양육 가정 부모님의 모습은 볼수록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위탁가정의 모임이 있으면 특별한 일이 있어도 가급적 꼭 참석을 했다. 비슷한 고민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열심히 살아내는 모습을 보며 위로와 힘을 얻기 때문이다. 내 자식도 건사하기 힘든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이 아이들을 한식구로 받아들이고 부모노릇 하는 것이 어디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인가? 하지만 해낸다. 희망의 불빛을 켜고 어둠을 밝히는 기적의 순간들을 만들어간다. 위탁가정 부모님들과의 소통은 따뜻한 연대가 되어 나를 이끄는 새로운 힘이 되어준다.
아침을 먹은 후 첫 여행지는 새벽 오름이었다. 현우와 난 억새밭 주변에서 사진 몇 장을 찍으며 산책하며 놀았다. 젊은 사람들도 오르기가 버거운 오름이기에 현우와 내가 올라가기엔 벅찬 곳이라 포기한 것이다. 화장실도 가야하는데 유모차가 쉽게 오고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주변의 풍경을 보며 간만의 여유를 만끽했다. 조금 기다리니 금세 오름을 올라갔던 사람들이 내려왔다. 새벽 오름은 40여분 소요되는 산책길인 듯 했다.
새벽 오름을 뒤로 한 채 두 번째로 간 여행지는 곶자왈이다. 나는 곶자왈하면 애코랜드만 생각했는데, 환상 숲이라는 새로운 여행지를 둘러보게 됐다. 10여 년 전 월출산국립공원 숲 해설가를 한 적이 있어 숲을 탐방한다는 얘기에 귀가 번쩍했다. 환상 숲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처럼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점이 대단했지만 더욱 인상 깊었던 점은 해설하시는 분이 보통 관광명소에 가서 알려주는 여느 문화해설사와는 달랐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그 숲에서 생활해보고 얻은 경험들을 이야기했다. 이 숲을 가꾸고 지키며 보존해 가는 경험을 이야기해 주셨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숲을 통해 건강을 찾았기에 숙명처럼 이 숲을 지키고 있다고 하셨다. 그분들의 이야기에서는 생각과 철학이 깃든 삶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많았다. 꾸지뽕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은 가시가 없는데 사람의 손이 닿는 곳은 가시가 있다는 것, 냄새로 자신을 보호한다는 나무 허브는 만져줘야 냄새가 난다는 것, 갈등의 길이란 말의 유래는 원래 나무에서 왔다는 것 등 사소하지만 유익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환상의 숲은 아빠를 살리는 숲, 가족을 모이게 하는 숲, 가슴으로 보는 숲 등 다양한 테마로 이뤄져 있었다. 섬세하게 조성된 숲 공간을 돌아보며 든 생각은 작은 풀 하나라도 내 생명처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생태계를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숲을 돌아본 후에는 족욕탕을 찾아 족욕을 했다. 우리 지역 증도에 있는 해수찜 하고는 많이 달랐고 시설이 현대화되어 있어서 누구든지 거부감 없이 참여할 수 있어서 좋았다. 발 담그기에 딱 좋은 따뜻한 물에 천궁, 비트, 결명자, 감초, 진피, 은행나무 잎 등 좋은 천약 약재료를 넣어 족욕을 할 수 있었다. 따뜻한 차를 같이 마셔야 혈관 노폐물이 빠져 나간다는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소금으로 발바닥을 바른 후 오일을 발라주고 족욕을 마치니 발이 부드럽고 기분이 상쾌했다.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듯 했다.
다음 여행지는 마상쇼를 하는 더마파크였다. 더마파크에 가는 길에 금능 해수욕장에 들러 바닷가 구경을 했다. 바닷가 주변에 쭉 늘어선 종려나무 가로수를 보며 외국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잔잔한 금능 해수욕장은 규모면에서는 크지 않았지만 단아하다는 느낌이 드는 해수욕장이었다. 현우에게 해수욕장의 모래며 밀려오고 밀려나가는 파도를 느끼게 해 주기 위해 해변으로 나갔다. 모래사장에 나가 모래를 만져보게도 했다. 여행의 기회가 쉽지 않은 현우에게 신기하고 소중한 경험이 되기를 바랐다.
마상쇼 관람을 위해 공연장에 들어섰다. 태국이나 동남아지역 여행을 하면 코끼리 쇼하기 전에 바나나를 팔고 그 바나나를 코끼리 먹이로 준 것을 본적이 있는데 이와 비슷한 일들이 여기에서도 보여 진다. 당근 반쪽을 꼬치에 꽂아 1개에 천 원씩 받고 파는데 그것을 말먹이로 체험하도록 했다. 마상쇼에 출연하는 공연자들은 대체적으로 체격이 작고 몸놀림이 빠른 몽골 청년들이라 한다. 예전 제주여행에서 본 마상쇼는 그냥 말쇼에 불과했는데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전쟁스토리로 시나리오를 만들어 춤과 음악이 곁들여지니 공연이 박진감 넘치고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아 내내 재미있었다. 신기한 것은 말의 연기였다. 말이 무릎을 꿇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사람이 쓰러지면 말도 쓰러져 꿈쩍을 하지 않고 있다가 사람이 일어서면 같이 벌떡 일어서는 모습을 보며 깜짝 놀랐다.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는지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첫날의 여행 일정을 마치고 우리가 머무를 제주 동쪽 구좌읍 바닷가에 있는 펜션으로 이동하는 길에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그런데 차를 운행하시는 사장님이 아는 식당을 찾다보니 밥을 먹기까지 식당으로 이동하는 데만 2시간이 걸렸다. 불평들이 나올 법 했지만 불평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라 여기는지 일행 모두가 내색 없이 넘어갔다. 저녁을 먹은 후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지난밤 배에서 잠을 자지 못한 사람들은 들어오자마자 쓰러져 잠을 자는데 잠이 오지 않은 몇몇 분들은 거실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주머니들을 풀었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는 위탁가정들은 비슷한 입장의 사람들이 모이는 기회가 되니 어디에도 이야기 할 수 없었던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들을 술술 풀어내기 시작했다. 가정위탁 부모님들은 대부분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다. 우리는 신체적 장애가 있고 다른 가정은 지적장애가 있는 아이를 위탁 양육하고 있다. 거둬주는 부모의 사랑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하기만 하고,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으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허무함을 느끼는 순간들도 있다. 헌신적으로 수고한 것에 비해 너무 초라한 결과라고 생각되는 때도 종종 있다. 아이들이 우리의 욕심처럼 움직여 주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는 답답하고 한숨도 나고, 슬플 때도 있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신앙의 힘으로 또 사랑의 힘으로 불평 없이 살아간다.
이날 밤중 일행들의 좌담에 관장님도 많이 공감해 주셨다. 여러 가지 사례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셨다. 공감과 위로의 시간이었다. 무엇이 정답이고 무엇이 오답인지 우리는 잘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을 정성을 다해 키우고 마음을 다해 보듬다 보면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 지난 날을 돌아보며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가 이어지고 결국 우리는 밤 깊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 토요일 아침이다. 간단한 샌드위치로 아침식사를 하고 일출랜드에 갔다. 제주도는 식물원 같은 관람지가 참 많다. 일출랜드도 그런 곳이었다. 넓은 공간에 구석구석까지 있어야 될 그 자리에 잘 가꾸어진 나무와 꽃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다.
일출랜드에 있는 미천굴은 만장굴 보다는 규모가 작고 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걸어 다니기에 편하고 좋았다. 가는 곳마다 이국적인 느낌이 들고 국내에서의 여타 관광지와는 다른 느낌이 있어 좋았다. 아열대식물 정원과 잘 가꿔진 정원을 걸은 후 성읍 민속촌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 후 행선지는 김녕미로찾기 공원을 찾았다. 생각 같아선 금방 찾을 수 있을 거 같은데 몇 바퀴를 돌고 돌아도 그 자리인 것만 같다. 하지만 다들 열심히 찾아 임무를 완성한 후에는 재미있어 했다.
처음 집에서 출발할 때는 몸도 마음도 무거웠는데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시간이 가까워지자 뿌듯한 마음도 들고 기분이 매우 좋았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몸 상태도 나쁘지 않았고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 직접 소통하니 한결 고민의 무게가 줄고 마음도 가뿐해졌다. 이번 여행은 힘이 많이 드는 여행이기는 했어도 마음에 얻는 것이 큰 최고의 여행이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며 여유로움을 느끼는 것도 좋고 마음껏 놀이에 참여하며 한바탕 호탕하게 웃어보는 것도 좋지만 이번 여행은 색깔이 달랐다. 화려한 색과 이색적인 체험은 없어도 마음 깊은 곳에 감동을 주는, 삶의 아름다움에 대해 되새길 수 있는 배움과 치유의 시간이 되는 여행이었다. 서로의 힘듦을 공유하고 위로하고 위로받는 시간을 통해 더욱 단단해진 가정의 결속력과 화합의 기반을 얻어가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위탁 양육 가정 모두에게 이번 여행에서의 기억과 경험이 기분 좋은 추억이 되어 일상의 힘듦을 이겨내는 힘이 되길 바란다.
첫댓글 2021년 전남여류문학 연간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