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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반도를 자유여행으로 돌아 볼 구상을 해 보았으나 시간과 비용도 만만치 않을뿐 아니라 무엇 보다도 유용
한 정보가 제한적 이어서 자유여행은 포기하고 여행사의 패키지 여행을 따라 갔다가 왔으므로 소개 하려 하는
데 글 한 편에 파일 첨부 용량이 50개로 제한되어 있으므로 몇번에 나누어 소개하려 한다.
여행한 나라 : 루마니아, 불가리아, 세르비아(구 유고슬라비아),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베네치아.
2013년 4월 14일(토요일)
우리 부부는 22시가 되기 전에 인천공항 출국 데크 M 카운터 앞에 가서 노랑풍선 여행사의 안내자 백성호
(010- 8653 -1601)씨와 함께 여행할 일행 32명을 만났다. 대부분의 단체여행단과 마찬가지로 이번 여행 그룹
도 3분의2 이상이 여자들이었다.
4월 15일(일요일)
00시 15분경 게이트 109에서 카타르항공 QR883(OZ6889)편에 탑승하고 00시 57분경 이륙하여 10시간 10분
간 비행 후 현지시각 4월 15일 새벽 5시07분 도하국제공항(Doha International Airport)에 착륙하여 벌판에서
버스로 갈아 타고 10여 분간 이동하여 간판이 노란색인 환승 및 출발 터미널(Transfer and Departure Terminal)
에 도착 하였다.
카타르항공을 처음 타 본 나에게 '기내식에서 중동 특유의 냄새가 나서 전혀 먹을 수 없었다'는 어느 분의 여행
기와는 다르게 음료 및 식사의 질과 다국적 승무원의 기내 서비스가 국제화된 규격에 못 미치는 수준 이라고
는 생각되지 않았으나, 카타르 '공항'의 서비스 에는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았다.
공항의 변소에 화장지도 없었고 변기에 앉을 수 있는 판도 없이 달랑 놓여있는 벌거벗은 사기요강(?)이 하도
지저분해서 써커스 하듯 변기 위에 올라간 적이 있었던 1993년 모스크바 공항 에서의 황당했던 경험과 비슷
하게, 거대한 청사에 달랑 3개 밖에 없는 화장실을 겨우 찾아 지독한 악취를 견디며 10여 분씩 줄서서
기다렸다가 일을 본 것은 기억하기 싫은 고역이었고,
세계적으로 으뜸가는 허브 공항이라는 장황한 선전 문구와는 반대로 비행기를 허허 벌판에 세워두고 승객을 짐
짝같이 버스로 날라(?)서 짐 들고 여객청사 계단을 오르내리게 하는 시스템 때문에 출발시각 한 시간 전부터
승객을 버스로 실어 나르기 시작 하는 등 서비스는 최악이었다. 다만 새로운 하마드국제공항(Hamad
International Airport)의 1단계 건설 사업이 금년 9월 완공목표로 약 4km 떨어진 곳에 건설 중이라는 선전 간판
을 보니 그때는 나아질 지 모르겠다.
게이트 18 앞에서 승객 수보다 훨씬 부족한 의자를 겨우 찾아 앉아서 2시간이 넘게 기다리다가 8시 35분 출발
예정인 비행기(QR 943)를 타려고 7시 20분부터 버스 타고 이동하기 시작하여 허허 벌판에 대기중인 비행기
로 가서 버스에서 내린 뒤 트랩을 기어 올라 승객으로 꽉 찬 비행기에 겨우 탑승하고 나서도 안내방송도 없는
비행기 안에서 하염없이 또 기다리다가
09시 13분이 되어서야 이륙하고 4시간 15분 비행 한 뒤 13시 28분 루마니아(Romania : RO)의 수도 부카레
스트(Bucharest)의 헨리콘더 국제공항(Henri Coanda International Airport)에 겨우 도착하였다.
해방된 마음으로 짐 찾아 밖으로 나오니 98년부터 루마니아에 사시며 아릿다운 루마니아 여인과 결혼했다는
현지 안내인 김학배 씨가 56인승 마케도니아 국적의 Vardar Ekspres 버스(SK 059-SU)에 우리를 태우고 14시
25분 부터 시내관광에 나섰는데 이번 여행이 끝날때 까지 봉사한 운전기사는 매우 성실 했으며 마케도니아인
으로 이름은 마쵸 였다.
안내인은 루마니아 하면 떠오르는 미치광이 독재자 차우체스쿠(Ceausescu)가 김일성을 흉내 내다가 종국
에는 부하들에게 백 여 발의 총탄을 맞고 비참한 최후를 마친 이야기를 주제로 하고 그의 행적으로 인하여
파생된 사건, 사물 등을 중심으로 시내를 안내하며
1976 몬트리올 올림픽 체조경기의 2단평행봉에서 올림픽사상 최초로 10점 만점을 받아 세계를 놀라게 한 체조
요정 나디아 엘레나 코마네치(Nadia Elena Comaneci)가 차우체스쿠 아들의 노리개가 되었을 때 미국CIA가
공작을 펴서 그녀의 남자 코치에게 애인 역할을 분담 시기며 코마네치를 미국에 망명 시켰다는 007영화 같은
이야기와 지나치는 몇 몇 건물과 8개의 호수로 된 공원, 도심에 나무가 많은 이유등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소위 혁명광장의 혁명기념 탑(승리의 탑) 앞에 가서 카롤1세 동상, 국립중앙도서관. 장난감 같은 크레툴레스
루마니아 정교회 건물, 구 공산당 본부, 왕궁과 연결되는 지하통로가 있었으며 군중 봉기 때 무너졌으나 무너
진 부분만 유리로 재건축 하여 독특한 건물이 된 구 비밀경찰 청사에 대한 설명 듣고,
차우체스쿠가 1989년 12월 21일 구공산당 본부 건물에서 관중을 동원하여 연설하던 중에 갑작스런 민중의
저항에 부딪혀서 헬기로 도주하다가 1989년 12월 25일 총살 당하기 까지 4일간의 스릴러 소설 같은 설명
듣고, 주변에 있는 어느 건물 상단부에 걸려있는 대형 사진 3개 중 중앙의 것이 코마네치 라는 설명은 기억에
남는데 좌우의 사진이 누구 이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해괴망측하게 생긴 차우세스쿠 궁(인민궁전, 국회궁전)이라는 곳으로 이동하여 세계에서 단일 건물로는 미국
의 펜타곤 다음으로 큰 건물이며 김일성 주석궁에 감동 받아 지었으며, 7000여 채의 개인 가옥 등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순 루마니아 산 자재로 건설하였으며, 지하 94m까지 파내려 갔으며, 지하의 미로를 종합적으로 아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며, 약80% 쯤 건설 되었을 때 차우체스쿠는 총살 당했고,
그 후 어느날 마이클 잭슨이 이곳에서 처음 공연을 하면서 '부카레스트' 시민들에게 '하이 부다페스트' 라고
인사해서 빈축을 샀다는 에피소드도 얘기 했는데, 내 눈에는 이 건물이 스탈린이 좋아했다던 러시아의 모스코
바 대학 건물과 똑같이 아름다움 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흉측스럽고 우중충한 구조물로 만 보였다.
몇 개의 독특한 형식의 건물이 모여 있는 곳으로 이동하여 그 건물들이 차우체스크가 밀어버리려 한 건물들
사이에 있던 정교회 관련 건물들로서 성직자들의 청원에 따라 본래 건물을 해체하지 않고 건물 밑에 레일을
깔아 통 채로 옮겨온 것들 이라는 데 비용은 차우세스쿠 정권이 부담했다는 씁쓸한 설명을 들었다.
19시 : 시내 주택가에 있는 "서울식당"이라는 곳에 가서 먹은 MSG범벅인 육개장 이라는 것은 별로 였지만
제법 맛이 괜찮은 포도주 1잔에 1유로, 루마니아 전통주 1잔에 2유로 씩 만 받은 것은 즐거웠다.
Seoul Resraurant Coreean, Email : lees6017@naver.com
저녁 후 도심에서 북쪽으로 16km 쯤 떨어진 헨리콘더 비행장 활주로 끝 담장 밖에 있으며 시설이 제법 깨끗한
Rin Airport Hotel에 투숙하였다. 호텔 명함을 보니 Rin 호텔들은 시내에 별4개짜리 2개(Central 과 Grand)
이곳에 2개(별4개 짜리 Airport 와 별3개 짜리 Express), 모두 4개의 호텔을 경영하는 것 같았다.
E-mail : reservations.rinairport@rinhotels.ro Phone : +40 213 504 111
배낭 속에 넣어두었던 똑딱이 카메라의 전지가 방전되어서 오늘은 사진이 한 장도 없다.
다음날 아침에 찍은 호텔 사진
4월 16일(월요일)
아침식사는 Full American 부페로 질이 좋았다. 일행 모두가 성실하여 예정대로 8시 정각에 출발하였다. 오전
중에 가려는 드라큘라의 성으로 알려진 브란 성(Bran Castle)은 브라쇼브 주(Brasov)에 있으며 그곳 까지는
북쪽으로 3시간 정도 가야 한다고 한다.
안내인의 설명에 의하면 루마니아가 산유국 이지만 악명높은 차우체스쿠 처형 후에도 그의 최측근 이었던 자가
계속 집권했기 때문에 진정한 개혁이 이루어 지지 못했고 정권이 부패하여 석유, 전기 등 모든 기간산업이
오스트리아 같은 외국 자본에게 넘어가서 경제는 엉망이라 한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지역 국가중 유일한
라틴 계통 사람들 답게 소비도 잘하고 낙천적으로 살며 교육, 의료 등 사회보장 제도가 잘 되어 있어서 미래
걱정은 크게 하지 않고 살아 간다고 한다.
그리고 이 나라는 기초과학이 발달한 나라여서, 세계 최초로 제트엔진을 개발한 헨리 콘더를 기념하여 부카레
스트 공항 이름을 헨리 콘더 라고 했으며,
소위 '눈주름 화장품'도 세계 최초로 개발하여 지금도 최고 품질의 '다리미크림'을 저렴하게 살 수 있어서
루마니아 여자인 자기 부인은 전체 얼굴 화장을 다리미크림 만 으로 한다고 김학배씨가 약장사를 시작 하셨다.
열병합 발전소의 열 공급 파이프를 지상에 건설한 이유, 유정에서 기름을 퍼 올리는 장비를 '메뚜기'리고
부른다는 이야기도 재미있게 하며 9시 25분-35분 : Hotel Restaurant Cernica 라는 간판이 붙은 집에서
화장실 이용하고 나서
경관이 훌륭한 표고 2000m 대의 카르파티아 산맥(Carpathia Mts)에 들어서니 제법 추운데 버스의 히터가
안 돌아 가는 것 같다. 약간 추위에 떨면서 안내인 으로부터 눈 덮힌 높은 산정에 거대한 십자가를 세운 이유,
정교회 국가의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십자가를 세우는 이유 등을 설명 들으며 10시 50분 브란(Bran)성
앞 동네의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루마니아 관광의 꽃인 브란 성은 12세기 요새로 지어진 후 우여곡절을 거치며 지금은 20세기 초 독일출신 마리
왕비(Queen Marie)가 여름별장으로 이용하며 놓아둔 가구를 전시한 박물관 이지만
아일랜드인 브람 스톡커(Bram Stocker)가 소설 드라큘라(Dracula)를 쓰면서 15세기 브란 성주의 아들로서 적
군 포로들을 아주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악명 높은 제페시를 드라큘라 백작의 모델로 삼았다고 하는 점을 루마
니아 관광당국이 교묘하게 꾸며서 이 집이 드라큘라의 집 이었던 것처럼 마켓팅 함으로서 브란(Bran)성이 유명
한 관광지가 되었겠지만 허구일 망정 루마니아에서 제일 주요한 관광 자원이 된 것은 우리도 배울만 하다.
정작 브람 스톡커는 이곳에 와 보지도 않았다 한다.
12시 15분 브란성 떠나 12시 50 브라쇼브(Brasov)에 도착하였다 : 브라쇼브는 루마니아 5대도시의 하나로
인구 38만 명의 공업도시 라지만 12-13세기 독일 상인들이 건설했다는 구 도시지역은 독일형식의 중세 도시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후랑크후르트 구시가(old town)의 뢰머부르그 광장이 연상되는 아름다운 곳 이었다.
삐아짜 스파톨리 광장에 있으며 800년 된 건물이라는 여행기를 읽은 적이 있는 LUSIARI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는데, 빵과 함께 준 맹물에 가까운 수프는 아주 깊고 큰 접시에 엄청 많이 주었다. 종류가 단순한 쎌러드와
구운 돼지고기, 후식은 커피로 점심을 먹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수프는 거의 안 드신 분들이 많았다.
13시 50분 브라쇼브를 출발하며, 안내인이 퀴즈를 했다. 초기에 카톨릭교회 였지만 지금은 다른 종파의 교회라
는 검은교회의 외벽을 이루고 있는 커다란 벽돌 마다 중앙에 모두 움푹한 자국이 있는 이유를 맞추시는 분께는
어쩌구 저쩌구....
다시 카르파티아 산맥을 되넘어 오다가 표고 600m 지점의 시나이아(Sinaia)동네에 접어들었다. 이 동네는
기차역도 있는 옛 귀족들의 휴양지 였다고 하는데 지금도 별장으로 보이는 고급 주택이 즐비하다. 15시 5분
이곳 숲속 언덕바지에 흰 눈 덮인 높은 봉우리들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서 있는 펠레슈 성(Peles Castle)에
도착하였다.
역사상 루마니아는 제대로 된 통일국가 체제를 이루지 못하고 지내다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독일의
도움을 받아 독립전쟁을 일으켜 독립 왕국이 되면서 1866년 국민투표로 독일 푸로이센의 호엔쫄레른
(Hohenzollern-Sigmaringen)가문의 왕자를 카르롤 1세(Carol I) 국왕으로 모시자 왕이 된 그는 정치적으로
루마니아 근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국가 발전에 크게 기여 하였다 한다.
카르롤 1세는 1875년부터 8년간 이 성을 건설 하였다는데 20세기에 지은 이스탄불의 돌마바흐체 궁전과 마찬
가지로, 이 성도 기술과 정보가 풍부한 19세기 말에 지었으므로 위치, 자세, 외양, 내부 장식 등 모든 부문에
제일 좋은 방식을 찾았을 것이므로 아기자기하고 아름답기 짝이 없다. 성(Castle)이라고 부르는 것 보다
궁(Palace)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펠레슈에서 숲속을 산보삼아 걸어 내려 와서 15시 45분 시나이아 정교회의 수도원 (Sinaia Monastry)을 관람
하였는데 분위기가 가톨릭계 수도원보다 개방적 인 것 같았다.
16시 10분 수도원을 떠나 호텔로 돌아오다가 원유를 뽑아 올리는 펌프 '메뚜기' 옆에 있는 주유소 겸 휴게소에
서 20분간 쉬고 올 때 안내인이 또다시 "다리미크림"을 열심히 선전해서 많은 분들이 주문하였으므로 지금쯤은
그분들이 너무 젊어져서 남편들께서 못 알아 볼 정도가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18시 25분 어제 저녁 먹었던 서울식당에 가서 설렁탕 이라는 것으로 저녁 먹고 19시 35분 다시 Rin Airport
Hotel로 돌아 왔다.
호텔 로비에 "Offers for Apartments : All inclusive 39.90 Euro" 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어떤 숙박시설인지 몰라도
저렴 하므로 루마니아를 여행하고자 하시는 분은 www.rgr.ro 나 전화 031 106 11 12 로 확인 해 보시기
바란다.
4월 17일(수요일)
7시 50분에 불가리아를 향하여 호텔을 출발하였으나 출근시간에 부카레스트 북쪽 교외에서 부터 도심을
통과해서 남쪽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교통체증으로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고 국경도착 직전에 변기가 하나
뿐인 주유소에서 오랫동안 정차 했으므로 10시 20분 되어서야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국경지역에 도착했다
10시 30분 다뉴브 강 다리를 건너서
10시 35분 BG(불가리아 : Bulgaria) 입국 심사장에 도착하니까 여권을 모두 수거해 간 후 2시간만에 여권을
돌려주었다. 그러나 불가리아는 일광절약시간제를 시행하지 않기 때문에 불가리아 시각은 11시 20분 이었다.
11시 25분 - 40분 : 국경검문소 떠나 주유소에서 변기가 한개뿐인 화장실을 34명이 이용한 뒤 우리나라 지형
과 비슷하지만 도로 상태는 7-80년대의 우리나라 지방도와 같은 곳을 달려 부카레스트를 출발한지 5시간 20분
후인 13시 10분에 불가리아 옛 수도였으며 현재 제2의 도시 라는 벨리코 투르노보(Velico Tarnovo)에 도착
하여
현지 안내인 배성환 (현지의 Angel Tour 사장으로서 크지 않은 교포사회의 교민회장 이라 함 : Email
: angeltour2011@gmail.com : 전화 359-879-991-339)씨를 만나서 우리나라 하회마을 성격의 민속촌인
아르바나시(Arbanasi)마을로 이동했다.
13시 30분 PACTOPHAT 라는 알파벹 밑에 키릴문자 6자를 벽에 써놓은 이 마을의 식당에 들어가서 빵과
쎌러드, 닭고기와 버섯과 각종야채에 국물을 부어 끓인 스튜 같은 음식, 안내인은 사과 파이라고 하였지만
여러 가지 맛이 나는 과일파이와 흰색이며 맹물 같지만 약간 시큼한 요구르트로 점심 먹고 나서 17세기
전통 부흥양식의 주택 등을 보전 하고 있다는 이 마을을 둘러보았다.
건물 내부는 원형을 유지하는지 모르겠으나 외관상 정말로 오래된 것은 드물어 보이고 최근에 외부를 돌과
시멘트로 보수한 모습이 분명한 집이 더 많았지만 동네 사람들이 푸근해 보이는 점과 동양 냄새가 많이
나는 점은 정겨웠다.
다만 17세기 건설된 불가리아 정교회인 탄생교회(The Church of the Nativity of Christ)는 이곳을 여행한 모든
사람들이 보았 다는데 안내인이 우리를 안내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14시 45분 이 마을을 떠나 15시 10분 짜르레베쯔성(The hill of tsarevets)에 도착했다.: 산성으로 둘러싸인
이 성터의 구조물들을 씨멘트로 졸속 복원(?)중인 것이 전문가가 아닌 나에게도 확연하게 눈에 띠는데 그
중에도 압권인 것은 제일 높은 곳에 지어놓은 성모승천교회라는 이름의 건축물이다.
이 건물은 예전에 성 안에 정교회가 많이 있었다고 해서 새로 지은 정교회라는데 이곳에는 예배 드리는 성직자
도 없고, 제대 쪽을 포함한 모든 벽면에 현직 쏘피아대학 교수의 작품이라는 현대적 감각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무엇을 전하려는 의도인지 몰라도 어두운색이 강조된 그림 중에는 그림을 그린 교수뿐 아니라 이교회를
짓는데 공헌한 관리 등 현존하는 사람들의 얼굴도 그려 놓았다는데 현대 미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 눈에는
흉측스러웠다.
다만 이 교회(?)가 있는 언덕에서 바라다 보이는 조망은 뛰어나서 얀트라(Yantra)강변에 솟아있는 세 개의
언덕위에 둥지를 틀고 있는 벨리코 트루노보를 시원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16시 25분 벨리코 투르노보를 떠났는데 운전기사가 길을 잘못 들어 시내에서 30분을 허비하고 나서야 제 길을
찾았다.
내가 위키피디아에서 얻은 상식에 의하면 불가리아의 젊은이 들이 대거 서부 유럽으로 일자리 찾아 떠나서
한때 780만 명이 넘던 국내 인구가 700만 명 이하로 감소하는 등 인구 감소 문제가 심각하다 했다, 그 외에도
식모나 저임금 노동으로 돈을 벌려고 외국으로 떠나는 부모들이 어린 자식을 노부모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아
학교에서는 부모가 그리워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어린이가 많으므로 선생님들이 힘들어 하시는 다큐
도 보았는데 안내인들은 그런 얘기는 전혀 하지 않는다.
안내인에 의하면 이 도시는 인구의 3분의 1정도인 2만 명 이상이 학생으로 교육도시이며 젊음의 도시라 한다.
안내인이 불가리아의 질 좋은 특산품이 장미향수와 유산균이라고 광고한 것 같은데 무엇이 한개(?)에 20유로
라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18시40분-19시까지 주유소 화장실(2개) 이용하고 푸른 들과 무성한 숲을 바라보며 계속 달려서 20시 10분 :
벨리코투르노보를 떠난지 3시간 45분 만에 불가리아의 수도 쏘피아(Sofia)의 AKORD 호텔에 도착하여 호텔식
당에서 저녁식사를 하였다. : 와인1잔, 빵과 흰 치즈가루 듬뿍 뿌린 쌜러드, 볶음밥을 곁들인 돼지고기 석쇠
구이, 쵸코릿케익
별 3개인 이 호텔 방에 있는 요금표를 보니 숙박비가 매우 저렴하다. 아침식사와 주차와 세금을 포함한 더블
룸 1박 : 주말 약 36유로, 주중 약40유로
Email : manager@hotel-akord.com Tel : 359 2 947 7777
4월 18일(목요일)
어코드 호텔 아침식사 : 안내인이 컨티넨탈 이라고 하였으나 서유럽식의 컨티넨탈 은 아니고 달걀 스크램블과
치즈, 햄도 있었으므로 아메리칸 에 가까웠다.
8시 30분 : 15분쯤 버스타고 가서 45분부터 도보로 쏘피아 투어를 시작하였다.
제일먼저 바냐바시(Bania-bashi)온천수 마셔본 뒤
공산당이 지배하던 시절 레닌광장이었던 네델리아 광장으로 이동하여 아주 멋있는 건물이 지금은 내부 수리중
인 소피아 목욕탕이며, 주변건물들은 구공산당 건물과 구공산당 영빈관건물 이었으나 지금은 의원회관, 대통령
궁. 호텔, 백화점등으로 쓰인다는 설명를 듣고
쏘피아 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다는 16세기의 바냐바시 모스크(Banya Bashi Mosque)와 광장 중앙의 고대
유적 발굴지 둘러보고,
말 타고 있는 터키 기병의 머리 높이 보다 교회 건물을 더 높게 지을 수 없는 규정 때문에 교회를 반 지하로
납작하게 지었다는 성 페트카 지하교회(The underground Church of St. Petka)로 이동하여 오른손에 월계관
을 들고 있는 소피아 여신상을 세운 곳이 과거 공산당 시절에 레닌동상이 서 있던 자리 라는 설명을 들었다.
이곳에서 자유 시간 갖은 뒤 스베따 네델리아 정교회로 가서 1925년 일단의 공산주의자들이 이 교회에서 장례
식에 참석중인 보리스 3세(Boris III)를 암살하려고 폭탄을 투척하였으나 실패하고 무고한 사람만 100여명이
사망하였다는 설명을 듣고
자리를 옮겨 힐튼호텔 뒷 뜰에 있는 성 조지 (로툰다) 교회 (The Church of St. George : the Rotunda)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 이 정교회 건물은 3~4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기독교 이전의 이교도의 사원이나 목욕탕으
로 추정되며 로마 시대에는 교회로 사용되다가 16세기에는 터키인들이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하였으며 '장미
교회'라는 별명이 있다한다. 지금은 소피아의 역사를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이라 한다.
소피아에는 세르디카(Cerdica)유적이 곳곳에 있지만 이교회 뒤편의 유적은 동로마 시대의 목욕탕과 시설관리
건물로 추정 한단다.
이 유적 바로 옆 건물이 대통령 경호실 같은데 그 앞에 주차된 검은 승용차들을 살펴보니 현대 그랜져가 3대,
벤쯔가 1대, 폭스바겐 1대 이었다. 안뜰을 나와서 뒤 돌아 보니 그 건물이 보초가 부동자세로 서 있는 대통령궁
이었다.
흰색의 국회의사당(과거 합스부르크시대의 왕궁), 노란색의 자연사박물관(과거 불가리아의 왕궁)을 지나
10시 30분 쏘피아 성당(Basilica of Hagia Sophia)앞에서 자유시간을 갖고
길 건너의 벼룩시장과 소련이 제공한 20kg의 금으로 돔을 도금했다는 웅장한 알랙산더 너프스키(Alexander
Nevski)기념교회 (20세기에 세워진 것 이므로 당연히 크고 화려하다)를 마지막으로 돌아보고
11시 정각 버스 타고 식당으로 이동할 때 안내인이 다시 한 번 불가리아 특산품을 선전하였다. 11시 15분 한국
식당 우뜨레(Utre Korean Restaurant : Yun Okhee : +359 2 963 0365)에 도착 하여 두부전골 이라는 것을
먹었는데 맛이 제법 괜찮았다.
12시 정각 쏘피아를 떠나 13시 15분 불가리아와 세르비아(Serbia) 국경에 도착하니까 앞에 버스가 5대나 밀려
있다. 2시간을 기다려 15시 15분 통관이 끝났으나 보스니아 시각은 1시간 느린 14시 15분이다.
14시 15분 국경 떠나자마자 King 이라고 쓴 간판을 내건 길가 음식점에서 0.3 유로씩 내고 화장실 이용하였
다. 커피 1잔에 1유로(인스턴트)
16시 20분-30분 : 주유소에서 화장실 사용 18시 25분-35분 : 주유소에서 화장실 사용
19시 20분 : 쏘피아 떠나서 세르비아(Serbia : SER : 과거의 유고슬라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Belgrade)에
도착하였으나 버스의 네비게이터가 호텔을 찾지 못하므로 조금 헤매다가 현지에서 버스에 올라타고 안내한
순박한 청년의 도움을 받고 20시 20분이 되어서야 별 2개짜리 Hotel Nacional 에 도착하였다.
20시 40분 힉교 기숙사 식당 비슷한 호텔식당에서 저녁 : 빵과 아주 묽은 국물 스프, 짭짤한 양배추와 상치
쌜러드, 돼지고기 석쇠구이와 후렌치 후라이, 사과파이
이 호텔의 시설이 매우 낡았지만 방에 있는 요금표를 보면 매우 싸다
Bed& Breakfast per Room : Single room 25 Euro ,Double room 41 Euro ,Tripple room 50 Euro
E-mail : recepcija@nacional.co.rs www.nacional-bdg.com
첫댓글 참 부지런 하기도 해.덕택에 가만히 앉아서 구경 잘했네.
어부인 께서는 점점 더 젊어지시는게 남편 잘만난 덕으로 ㅋㅋㅋ
삭제된 댓글 입니다.
말씀에 따라 썼는데
새해들어 Window 8,1 새컴퓨터로 바꿨더니 조작이 서툴러서 쪼매 힘좀 들었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