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 신부님은 탐정》
제7화 ― 성당 고양이의 목걸이
주일 아침 일곱 시.
은솔성당 마당은 이른 미사에 참석하려는 교우들로 조금씩 붐비기 시작했다.
장태식 요셉 관리장은 빗자루로 계단 앞의 낙엽을 쓸고 있었다. 전날 밤바람이 강하게 불어 성당 마당 여기저기에 나뭇가지가 떨어져 있었다.
그때 화단 쪽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야옹.”
장태식이 빗자루질을 멈췄다.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성모동산의 돌담 위에 앉아 있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새까만 털을 지녔지만, 왼쪽 앞발 끝부분만 흰색이었다. 마치 흰 양말을 신은 것처럼 보였다.
“어디서 왔느냐?”
장태식이 가까이 다가가자 고양이는 도망가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고양이의 목에는 낡은 갈색 목걸이가 채워져 있었다.
목걸이에는 두 가지 물건이 매달려 있었다.
하나는 파란색 표찰이 붙은 오래된 열쇠였다.
다른 하나는 성 크리스토포로의 모습이 새겨진 작은 성패였다.
장태식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열쇠는…….”
그는 고양이를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가만히 있어보아라.”
고양이는 장태식의 손이 목걸이에 닿기 직전 돌담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성당 계단을 향해 달아났다.
“거기 서라!”
장태식이 빗자루를 든 채 고양이의 뒤를 쫓았다.
마침 성당에 들어오던 오미자 안나 사목회장이 그 모습을 보았다.
“관리장님, 아침부터 누구를 쫓아가세요?”
“고양이를 잡아야 합니다.”
“고양이가 무슨 잘못을 했어요?”
“성당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미자는 눈을 크게 떴다.
“고양이가 성당을 털려고 온 거예요?”
장태식이 걸음을 멈추고 오미자를 바라보았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목적도 없이 열쇠를 훔치지는 않았을 것 아니에요?”
“회장님, 고양이는 사람처럼 범행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다.”
“그건 잡아서 물어봐야 알지요.”
장태식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고양이를 쫓아갔다.
사제관에서 나온 김맑음 프란치스코 신부는 성당 마당을 가로질러 달리는 검은 고양이를 발견했다.
그 뒤로 장태식과 오미자가 달려오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신부님, 고양이가 성당 열쇠를 훔쳤어요!”
오미자가 소리쳤다.
고양이는 신부님 앞에서 멈추었다.
김맑음 신부가 천천히 몸을 낮췄다.
“안녕하십니까?”
오미자가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신부님은 고양이한테도 존댓말을 하세요?”
“처음 만났으니까요.”
“고양이가 대답할 것도 아닌데요.”
그 순간 고양이가 짧게 울었다.
“야옹.”
김맑음 신부가 오미자를 바라보았다.
“대답한 것 같습니다.”
신부님이 손을 내밀자 고양이는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신부님의 손끝에 코를 가져다 댔다.
김맑음 신부는 고양이 목에 매달린 열쇠를 살폈다.
파란 표찰에는 희미하게 글자가 적혀 있었다.
구창고
장태식이 말했다.
“오래전에 사용하던 창고 열쇠입니다.”
“어디에 보관하던 열쇠입니까?”
“사무실 금고 안에 있었습니다.”
그때 최병철 베드로 사무장이 성당 계단을 올라오다가 사람들을 발견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오미자가 검은 고양이를 가리켰다.
“사무장님, 금고가 털렸어요.”
최병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뭐라고요?”
“범인은 저 고양이예요.”
“고양이가 금고를 어떻게 엽니까?”
“그건 지금부터 신부님께서 밝히실 겁니다.”
최병철은 고양이의 목걸이를 확인했다.
“저 열쇠는 어제 분명히 사무실 금고에 넣었습니다.”
고양이는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성당 출입문 쪽으로 달아났다.
“잡으세요!”
최병철이 외쳤다.
그러나 검은 고양이는 미사에 참석하러 들어가는 교우들의 다리 사이를 빠져나가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고양이를 찾느라 미사를 늦출 수는 없었다.
김맑음 신부는 제의실로 들어가 제의를 입었다. 장태식과 최병철은 성당 안을 조용히 살폈지만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오미자는 성가대석과 고해소까지 확인했다.
“고양이가 제대 위로 올라가면 어떻게 하지요?”
최병철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미사 중에는 소란을 피우지 말고 지켜보겠습니다.”
김맑음 신부가 말했다.
“고양이가 갑자기 나타나면요?”
“그때 상황에 맞게 대처하겠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너무 침착하십니다.”
“사무장님께서 두 사람 몫을 걱정하고 계시니 저는 침착해야 합니다.”
종이 울리고 미사가 시작되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미사는 평소처럼 진행되었다.
말씀 전례가 끝난 뒤 김맑음 신부는 강론대에 섰다.
“우리는 때때로 눈앞의 모습만 보고 쉽게 판단합니다.”
몇몇 교우가 고양이 사건을 떠올린 듯 성당 뒤쪽을 돌아보았다.
“사람이 낡은 옷을 입고 있다고 해서 게으른 사람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말이 없다고 해서 마음까지 차가울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합니다.”
그 순간 성당 뒤쪽에서 작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야옹.”
교우들이 고개를 돌렸다.
검은 고양이가 고해소 앞에 앉아 있었다.
김맑음 신부는 잠시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제 강론에 대답해 주시는 분이 계시는군요.”
성당 안에 작은 웃음이 퍼졌다.
고양이는 통로를 따라 천천히 앞으로 걸어왔다. 그러다가 성모상 앞에 앉았다.
김맑음 신부는 강론을 계속했다.
“무엇이든 제대로 알기 전에는 판단을 잠시 멈추어야 합니다. 사랑은 상대를 서둘러 규정하지 않는 데서 시작합니다.”
강론이 끝나고 미사는 계속되었다.
고양이는 성모상 앞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영성체가 시작되었다.
교우들이 차례로 제대 앞으로 나아갔다.
고양이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지켜보다가 성당 오른쪽 벽을 따라 움직였다.
오래된 성상과 기둥 사이를 지나 제의실 쪽으로 향했다.
오미자는 고양이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뒤쪽 통로를 막았다.
최병철도 반대편에서 천천히 접근했다.
고양이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제 갈 곳이 없어요.”
오미자가 속삭였다.
고양이는 벽 아래의 작은 환기구 앞으로 걸어갔다.
환기구를 막고 있던 나무판 한쪽이 조금 벌어져 있었다.
고양이는 그 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안 돼!”
최병철이 손을 뻗었지만 이미 늦었다.
검은 꼬리 끝이 벽 속으로 사라졌다.
영성체가 끝난 뒤 두 사람은 환기구를 확인했다. 손전등을 비춰보았지만 안쪽은 너무 어두웠다.
고양이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최병철이 말했다.
오미자는 성호를 그었다.
“혹시 보통 고양이가 아닌 것 아닐까요?”
“회장님, 고양이는 좁은 틈을 잘 통과합니다.”
장태식이 말했다.
“그런데 저 벽 안에는 아무 공간도 없지 않습니까?”
“도면상으로는 그렇습니다.”
“도면에도 없는 곳으로 사라졌잖아요.”
오미자가 목소리를 낮췄다.
“신부님, 혹시 30년 전에 살던 고양이의 영혼이…….”
“안나 회장님.”
김맑음 신부가 제의를 정리하며 말했다.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는 교우들께 하지 마십시오.”
“저도 아직 확신한 것은 아니에요.”
“확신하기 전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미사가 끝난 뒤 김하늘 안젤라가 환기구 앞에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신부님, 여기 무엇이 있어요.”
빛이 바랜 사진이었다.
사진에는 30년 전 은솔성당의 옆모습이 담겨 있었다.
지금보다 나무가 작았고, 성당 외벽도 보수 공사 전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사진 한가운데에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왼쪽 앞발 끝만 흰색이었다.
오늘 나타난 고양이와 똑같았다.
오미자가 사진을 보고 입을 벌렸다.
“제가 뭐라고 했어요? 30년 전에도 같은 고양이가 있었잖아요.”
최병철도 당황한 표정이었다.
“고양이가 30년을 살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보통 고양이가 아니라는 거지요.”
“털 색이 같은 다른 고양이일 수 있습니다.”
“앞발의 흰 무늬까지 똑같잖아요.”
김맑음 신부는 사진을 뒤집어 보았다.
뒷면에는 파란 잉크로 글씨가 적혀 있었다.
1995년 봄. 구름이와 나눔방 앞에서.
한길수 요셉.
“구름이라는 이름의 고양이였나 봅니다.”
김하늘이 말했다.
“한길수 요셉은 누구입니까?”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박복례가 사진을 확인했다.
“예전에 은솔성당 관리장을 하셨던 분입니다. 지금 장 관리장님보다 두 분 앞이었을 겁니다.”
장태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일을 시작하기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나눔방은 무엇입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최병철은 본당 건물 도면을 가져왔다.
도면에는 성당 오른쪽 벽 뒤에 별도의 방이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김하늘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 확대했다.
“신부님, 여기 좀 보세요.”
사진 속 고양이 뒤에는 작은 나무문이 있었다.
현재는 성당 외벽과 나무 장식판으로 막혀 보이지 않는 장소였다.
“신부님, 고양이 뒤에 있는 문이 지금은 없어요.”
김맑음 신부는 사진과 현재의 벽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환기구 위쪽의 나무 장식이 다른 부분보다 조금 튀어나와 있었다.
“고양이가 열어달라는 문은 창고 문이 아닌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열쇠였다.
사람들은 사무실로 돌아갔다.
최병철이 금고를 열었다.
“분명히 어제 제가 여기 넣었습니다.”
금고 안에는 본당 통장과 중요 서류, 예비 열쇠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구창고’라고 적힌 열쇠는 보이지 않았다.
최병철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정말 사라졌습니다.”
김맑음 신부가 금고 안을 자세히 살폈다.
열쇠 보관함 아래에 장부 한 권이 놓여 있었다.
신부님이 장부를 들어 올리자 작은 금속 소리가 났다.
달그락.
장부 뒤쪽에서 파란 표찰이 붙은 열쇠가 나왔다.
구창고
모두가 열쇠를 바라보았다.
“여기 있잖아요.”
오미자가 말했다.
“이상합니다. 그렇다면 고양이 목에 있던 열쇠는 무엇입니까?”
최병철이 두 열쇠를 비교했다.
표찰의 색과 글씨는 거의 같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금고에서 발견한 열쇠가 조금 더 새것이었다.
“복제품입니다.”
장태식이 말했다.
“이 열쇠는 원본을 본떠 나중에 만든 것 같습니다.”
“그럼 고양이가 금고에서 열쇠를 가져간 것이 아니군요.”
김하늘이 말했다.
김맑음 신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같은 열쇠가 두 개 있었던 겁니다.”
오미자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고양이 금고털이 사건은 아니었네요.”
최병철이 말했다.
“왜 아쉬워하십니까?”
“사건이 조금 평범해졌잖아요.”
“고양이가 금고를 터는 사건을 기대하신 겁니까?”
“그건 신문에도 나올 만하잖아요.”
그때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최병철이 전화를 받았다.
“찬미 예수님. 은솔성당입니다.”
잠시 뒤 그의 표정이 달라졌다.
“검은 고양이요?”
모두가 최병철을 바라보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서유진 로사라는 젊은 여자였다.
전날 저녁부터 검은 고양이가 집에 돌아오지 않아 찾고 있다고 했다.
고양이의 이름은 ‘먹구름’이었다.
목에는 오래된 성패가 달린 갈색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지금 바로 성당으로 오시겠답니다.”
최병철이 전화를 끊었다.
오미자가 말했다.
“구름이 다음에는 먹구름이에요?”
김맑음 신부가 사진을 바라보았다.
“우연은 아닌 것 같습니다.”
30분 뒤 서유진이 은솔성당에 도착했다.
그녀는 사진을 보자마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사진이 왜 여기에 있지요?”
“고양이가 사라진 환기구 앞에서 발견했습니다.”
김맑음 신부가 대답했다.
“사진 속 한길수 요셉 씨를 아십니까?”
“제 할아버지입니다.”
서유진의 할아버지 한길수는 30년 전 은솔성당 관리장이었다.
사진 속 검은 고양이 구름이는 한길수가 기르던 고양이였다.
“지금 기르는 먹구름이는 구름이의 새끼가 아닙니다. 여러 세대가 지난 후손이에요.”
한길수의 가족은 오랫동안 검은 고양이들을 돌보았다. 이상하게도 몇 세대에 한 번씩 왼쪽 앞발만 흰 고양이가 태어났다.
“사진 속 구름이와 닮아서 먹구름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럼 목에 달린 성패도 할아버님의 것입니까?”
“네. 성 크리스토포로 성패입니다. 할아버지께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지니셨던 거래요.”
“열쇠는요?”
서유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 보는 물건입니다.”
며칠 전 서유진은 오래된 집을 정리하다 할아버지가 쓰던 나무상자를 발견했다. 먹구름이가 상자 안에서 놀았고, 그때 열쇠가 목걸이에 걸린 것으로 보였다.
“사진도 그 상자 안에 있었습니다. 먹구름이가 물고 갔나 봐요.”
“사진을 물고 성당까지 찾아왔다는 말입니까?”
오미자가 놀라 물었다.
서유진의 집은 성당에서 두 골목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먹구름이는 열린 창문으로 빠져나와 옛 고양이의 냄새가 남은 물건을 따라왔을 가능성이 있었다.
김맑음 신부는 열쇠와 사진을 바라보았다.
“이제 문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장태식은 환기구 주변의 나무 장식판을 조심스럽게 분리했다.
장식판 뒤에는 시멘트 벽이 아니라 오래된 나무문이 숨어 있었다.
문 아래쪽 일부가 썩어 작은 동물이 드나들 만한 틈이 생겨 있었다.
“먹구름이가 이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서유진이 틈을 향해 불렀다.
“먹구름아.”
안쪽에서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야옹.”
오미자가 다시 성호를 그었다.
“살아 있는 고양이가 맞기는 하네요.”
“처음부터 살아 있었습니다.”
최병철이 말했다.
김맑음 신부는 ‘구창고’라고 적힌 원본 열쇠를 문에 넣었다.
열쇠가 정확하게 맞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자물쇠는 쉽게 돌아가지 않았다. 장태식이 기름을 바르고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철컥.
30년 동안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먼지가 가득한 작은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쪽에는 낡은 선반과 나무상자 몇 개가 놓여 있었다. 한쪽 벽에는 빛이 바랜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먹구름이는 가장 높은 선반 위에 앉아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먹구름아, 이리 와.”
서유진이 부르자 고양이는 선반에서 뛰어내려 그녀의 품으로 들어갔다.
목걸이에는 사진과 같은 파란 표찰의 열쇠가 매달려 있었다.
“정말 할아버지 상자에서 가져왔나 봐요.”
사람들은 작은 방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선반 위에는 오래된 쌀통과 연탄표, 사용하지 않은 담요가 있었다. 나무상자 안에는 30년 전 본당의 기록이 보관되어 있었다.
김하늘이 낡은 공책을 펼쳤다.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은솔성당 나눔방
공책 안에는 물건을 가져간 사람의 이름이 없었다.
대신 날짜와 물품 수량만 기록되어 있었다.
쌀 두 봉지.
연탄 열 장.
아기 분유 한 통.
겨울 외투 한 벌.
“이름이 하나도 없어요.”
김하늘이 말했다.
박복례가 공책을 살펴보았다.
“도움을 받은 사람을 기록하지 않은 겁니다.”
한길수 관리장이 지키던 나눔방은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필요한 물건을 가져갈 수 있는 장소였다.
누가 무엇을 가져갔는지 묻지 않았다.
대신 형편이 나아진 사람이 쌀이나 연탄을 다시 채워 넣었다.
“그래서 성당 창고가 아니라 나눔방이라고 불렀군요.”
김맑음 신부가 말했다.
장태식은 벽의 보수 흔적을 살폈다.
“1996년 성당 증축 공사를 하면서 이 문을 막은 것 같습니다.”
도면을 새로 그리는 과정에서 작은 방이 빠졌고, 나눔방의 존재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나무상자 맨 아래에는 봉투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봉투 앞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언젠가 이 문이 다시 열리면.
김맑음 신부가 편지를 펼쳤다.
한길수 요셉이 남긴 글이었다.
이 방에는 귀한 물건이 없습니다.
다만 누군가 말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을 가져갈 수 있도록 빈자리를 남겨두었습니다.
도움을 청하는 일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니 묻지 말고, 판단하지 말고, 필요한 사람이 가져갈 수 있게 해주십시오.
형편이 나아지면 다른 사람을 위해 다시 채워주면 됩니다.
편지를 읽은 사람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서유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할아버지께서 성당 일을 하셨다는 것만 알았지, 이런 방을 만드신 줄은 몰랐습니다.”
김맑음 신부가 편지를 조심스럽게 접었다.
“할아버님께서 문을 다시 열어달라고 열쇠를 남기신 것 같습니다.”
오미자가 먹구름을 바라보았다.
“결국 고양이가 할아버님의 부탁을 전한 거네요.”
최병철은 공책과 편지를 살폈다.
“모든 기록을 정리해서 본당 역사 자료로 보관해야겠습니다.”
“사무장님께서는 역시 기록부터 생각하시네요.”
“기록하지 않아서 이 방이 30년 동안 잊힌 것 아닙니까?”
이번에는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문제는 나눔방을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오미자는 즉시 다시 운영하자고 주장했다.
“쌀과 라면, 휴지 같은 것을 놓아두면 좋겠어요.”
최병철은 안전과 관리 문제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유통기한도 확인해야 하고, 오래된 전기시설도 점검해야 합니다.”
장태식도 고개를 끄덕였다.
“문과 바닥을 수리해야 합니다. 곰팡이도 제거해야 하고요.”
박복례는 선반을 손으로 닦아보았다.
“수리부터 합시다. 그다음 무엇을 놓을지 생각하면 됩니다.”
김맑음 신부가 말했다.
“예전 방식 그대로 운영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움을 청하기 어려운 분을 배려한다는 뜻은 이어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작은 방을 다시 은솔성당의 나눔 공간으로 만들기로 했다.
필요한 사람이 부담 없이 가져갈 수 있도록 쌀과 생필품을 두되, 음식의 유통기한과 안전은 봉사자들이 정기적으로 확인하기로 했다.
물건을 가져간 사람의 이름은 적지 않기로 했다.
대신 물건을 채운 날짜와 품목만 기록하기로 했다.
새 공책의 첫 장에는 한길수 요셉의 편지 일부를 옮겨 적었다.
묻지 말고, 판단하지 말고, 필요한 사람을 위해 자리를 남겨두십시오.
사건이 해결된 뒤 먹구름은 사제관까지 따라왔다.
박복례는 식당에서 고등어를 굽고 있었다.
생선 냄새를 맡은 먹구름이 주방 문 앞에 얌전히 앉았다.
“안 된다.”
복례가 단호하게 말했다.
먹구름은 고개를 갸웃했다.
“야옹.”
“그렇게 봐도 안 돼.”
김맑음 신부가 말했다.
“어머니, 오늘 큰일을 한 고양이입니다. 조금 주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간이 된 생선은 고양이에게 좋지 않습니다.”
“그러면 간을 하지 않은 것을 따로 구워주시면 되겠네요.”
복례가 신부님을 바라보았다.
“신부님께서는 누구 편이십니까?”
“도움을 청하는 존재를 외면하지 말라는 오늘 강론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아까부터 신부님께서 먹구름이 옆에서 생선만 바라보고 계시던데요?”
“저는 이미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양이를 핑계로 생선을 더 드시려는 것 아닙니까?”
김맑음 신부는 대답하지 않았다.
복례는 한숨을 쉬고 간을 하지 않은 생선살을 조금 떼어 작은 접시에 담았다.
먹구름은 기다렸다는 듯 접시 앞으로 다가갔다.
김맑음 신부도 식탁에 앉았다.
“제 생선은 어디에 있습니까?”
“신부님 것은 아직 굽고 있습니다.”
“먹구름이가 저보다 먼저 먹네요.”
“먹구름이는 아침부터 30년 된 방도 찾았습니다.”
“저도 열쇠의 비밀을 풀었습니다.”
“그럼 생선이 다 구워질 때까지 기다리는 일도 푸실 수 있겠네요.”
서유진과 성당 식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한 달 뒤.
옛 나눔방은 깨끗하게 수리되었다.
문 위에는 작은 나무 간판이 걸렸다.
은솔 나눔방
필요한 만큼 가져가시고, 나눌 수 있을 때 다시 채워주세요.
첫날 선반에는 쌀과 라면, 세제, 휴지, 여성용품과 아기 기저귀가 놓였다.
누가 가져가는지 지켜보는 사람은 없었다.
김맑음 신부는 나눔방을 축복한 뒤 봉사자들과 함께 기도했다.
“주님, 이곳을 찾는 이들이 부끄러움보다 따뜻함을 느끼게 하시고, 저희가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자리를 내어주게 하소서. 아멘.”
“아멘.”
먹구름은 문 앞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목에는 오래된 성패만 달려 있었다. 두 개의 열쇠는 최병철이 금고에 따로 보관했다.
이번에는 열쇠마다 분명한 이름표도 붙였다.
은솔 나눔방 원본 열쇠.
은솔 나눔방 예비 열쇠.
오미자가 물었다.
“사무장님, 정말 금고에 넣어도 괜찮겠어요?”
“왜 안 됩니까?”
“먹구름이가 또 가져갈 수도 있잖아요.”
“고양이는 금고를 열지 못합니다.”
“지난번에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열쇠를 가지고 나타났잖아요.”
최병철은 금고 문을 잠근 뒤 열쇠를 주머니에 넣었다.
먹구름이 사무장의 주머니를 빤히 바라보았다.
최병철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왜 저를 보는 겁니까?”
먹구름이 짧게 울었다.
“야옹.”
김맑음 신부가 미소를 지었다.
“사무장님께서 다음 사건을 너무 빨리 시작하지 않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날 검은 고양이가 열어준 것은 오래된 문 하나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나눔의 마음도 30년 만에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다음 회 예고
제8화 ― 「밤마다 켜지는 교리실 불」
매일 밤 열한 시.
아무도 없는 은솔성당 교리실에 불이 켜진다.
관리장 장태식이 문을 열어보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다.
칠판에는 매일 다른 문장이 적혀 있다.
‘저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다음 날에는 책상 위에서 색연필로 그린 성당 그림이 발견된다.
그리고 그림 속 창문 하나에는 실제 성당에 없는 사람이 서 있다.
“누군가 밤마다 이곳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최병철 사무장은 출입문 자물쇠를 바꾸지만, 그날 밤 교리실 불은 다시 켜진다.
김맑음 신부는 칠판 아래에서 작은 보청기 건전지 하나를 발견한다.
“들어온 사람이 아니라, 아직 나가지 못한 사람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오전 7:22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