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구자, 파헤쳐진 친일의 본색 2/3
친일 음악가 조두남(1912~1984)과 친일 시인 윤해영(1909∼1956/7 ?)의 자품인 <선구자>에 대한 사실이 본격 알려진 건 2003년 5월 26일이다. 1940년대 조두남과 같이 기타리스트로 한때 활동했던 그의 제자 김종화(1921년생)는 그가 지은 책 <음악가 김종화>에서 "<룡정의 노래>는 나라를 잃고 살길을 찾아 류랑하던 우리겨레가 자기의 피와 땀으로 개척한 룡정(용정)을 노래한 것"이라고 하였다. "한국에서는 노래의 선율만 그대로 두고 노래의 제목을 <룡정의 노래>로부터 <선구자>로 고쳤으며 가사도 고쳤다"고 하였다. 그는 <룡정의 노래>가 <선구자>로 둔갑하고, 친일행적이 뚜렷한 윤해영이나 조두남을 독립운동가처럼 만든 역사의 조작품이라고 하였다. 그는 <룡정의 노래>가 1944년 봄 헤이룽장성 무단장(목단강)시 인근의 닝안(영안)에서 열린 조두남의 신곡 발표 공연에서 첫 선을 보였다면서, 당시 가사에는 '활을 쏘던 선구자',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따위의 구절은 없었으며, 그 대신 '눈물의 보따리', '흘러온 신세' 같은 유랑민의 설움이 주조를 이루었다고 돌아봤다. 또 그는 "특히 가사 2, 3절을 크게 고쳤는데 유랑민의 서러움이 역력히 보이는 "눈물 젖은 보따리"를 "활을 쏘던 선구자"로 고치고 "흘러온 신세"를 버리고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를 넣었다"고 밝혔다.(오마이뉴스 2004. 8. 27; 정식의 가곡의 탄생', 선구자' ⑧ 김종화의 증언) https://www.mindgil.com/news/articleView.html?idxno=84872
그는 <룡정의 노래>는 1944년 발표된 곡이어서 세상에 알려진 독립군이 부르던 노래도 아니라고 하였다. 청산리전투나 봉오동전투(1920년)와도 먼 세월의 차가 있고 일제패망 직전 마지막 발악을 하며 한반도와 만주를 쥐어짜는 시기에 일제의 삼엄한 통제속에서 극장에서 공식발표된 곡이기도 하다. 윤해영은 <룡정의 노래>에서 선구자를 찬양했지만 그가 불과 1년전 썼던 <락토만주>에서도 나오는 게 선구자였다. 룡정의 노래 3절에 '조국을 찾겠노라 흘러온 신세'라는 부분은 1944년 일제하에서 불가능한 자구이고, 1절의 '지난날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는 독립군이 아니라 간도총영사관이 있던 룡정에서 조선인을 탄압하던 일본군간부는 아니었을까라고 회상하였다. https://story.kakao.com/_HMljM/gNORQO8oaP0
작사자로 알려져 있는 윤해영은 그동안 국내에서는 1932년 어느날 하얼빈에 살고있던 조두남을 찾아가 시 한편을 내어놓으며 표연히 사라진 `독립군' 쯤으로 인식돼 있다가 1991년 이후 변절한 친일(親日) 시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김종화의 술회에서 그는 `변절' 운운할 필요가 없는 친일 시인 뿐인 인물이며 <선구자>의 작사자는 따로 있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선구자>의 작곡 시기와 관련, 그는 "한국 책을 보면 <선구자>노래가 1932년에 창작됐고 용정에서 불렸다고 하는데 그때 용정에서 살았거나 공부했던 사람들은 그런 노래를 부른 적이 없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는 또 "다른 예술가처럼 자기 작품 자랑을 좋아하는 조두남 선생이 나와 2년간이나 사귀었고 별로 허물이 없는 사이인데도 1944년 봄 ‘신작 발표 공연’ 전에는 그런 곡을 만들었다는 얘기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조두남은 ‘그 청년은(윤해영)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였지만 조두남은 윤해영과 광복 전 몇 해 동안 왕래하면서 윤해영의 시로 작곡했고 한다. 그가 거짓말한 이유는 윤해영이 해방 후 북한으로 들어갔으므로 자신의 작곡 <선구자>가 금지곡이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도 있다.(기호일보2025. 6. 17)
친일 음악가 조두남과(1912~1984) 친일 시인 윤해영의(1909∼1956?) 작품이라는 <선구자>에 대한 사실이 본격 알려진 건 2003년 5월 26일이다. 윤해영은 일본이 세운 괴뢰국 만주국을 찬양하는 글을 쓰고 조두남은 일본의 징병제를 찬양하는 군가풍 가요를 작곡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지면서 1990년대부터 친일 논란이 일어났다. <선구자>의 원곡인 <용정의 노래> 가사와 작사·작곡자의 활동으로 볼 때 선구자는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식민지 개척의 첨병 역할을 한 이들을 지칭하는 표현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2026 08.13, 2/3]
첫댓글 교수님의 깊이 있는 통찰과 씁쓸하지만 마땅히 직시해야 할 역사적 진실에 깊이 공감하며 글을 읽었습니다.
어릴 적 가슴을 울리던 "일송정 푸른 솔은..."의 멜로디가 누군가의 기만과 친일의 역사 위에 세워진 신분세탁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그 배신감과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역사의 왜곡과 망각의 대가:
독립군의 비장한 노래로 알고 자란 곡이, 실상은 일제 말기 가장 엄혹했던 시기에 '만주국 건설'을 찬양하던 친일파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해방 후 아무런 반성 없이 둔갑했다는 사실은 해방 정국 이후 우리 사회가 청산하지 못한 친일 잔재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노래를 잃어버린 아쉬움:
가사 속 해란강과 일송정은 그대로 흐르고 서 있는데, 그 시절 우리가 품었던 순수한 애국심과 감동이 친일파의 위선에 의해 오염되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고 속상합니다. 이제라도 이 노래의 진짜 진실을 알고, 무작정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하기보다 아픈 역사적 사실의 한 조각으로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진실을 마주하는 일은 아프지만, 그 아픔을 딛고 서야 비로소 올바른 역사가 세워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