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적 광기 배제'에 대한 푸꼬와 데리다의 논쟁에 관심이 있는 분은 해석학 연구 12집에 실은 다음 논문을 참조하기 바람.
‘성찰하는 주체’는 미칠 수 없는가?
- 데카르트적 광기 배제에 대한 푸꼬와 데리다의 논쟁
홍 은영
주제어: 성찰하는 주체(le sujet méditant)
데카르트적 광기배제(l'exclusion cartésienne de la folie)
데카르트적 코기토(cogito cartésien)
성찰(Méditation)
푸꼬(Michel Foucault)는 1984년 폴 라비노우(Paul Rabinow)와의 인터뷰에서 왜 논쟁(la polémique)을 싫어하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응답한 바 있다. “나는 토론을 좋아하고, 질문이 내게 주어졌을 때, 그것에 답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나 자신이 논쟁에 휘말리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책을 열었을 때, 그 저자가 자신의 논적을 ‘유치한 극좌파’(gauchiste puéril)라고 비난하는 것을 보면, 그 즉시 책을 덮어 버린다”
Michel Foucault, "Polémique, politique et problématisation", in Dits et écrits, vol. 4,.591쪽
이 짧은 한 마디에서 우리는 그가 논쟁을 일으키거나 논쟁에 연루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인물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 탓인지 그는 생애동안 그 자신이 직접 어떤 인물이나 책을 거론하여 구체적으로 논쟁을 제기한 적이 거의 없다. 유일하게 ‘논쟁’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이 바로 데카르트적 광기 배제에 대한 데리다(Jacques Derrida)와의 논쟁이다. 그러면 그들 사이의 논쟁을 다루기에 앞서 데리다가 문제 삼은 푸꼬의 『광기의 역사』가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를 간단하게 살펴보고 넘어가기로 하자.
푸꼬는 자신의 초기 저서인 광기의 역사를 통하여 광기가 자명하게 드러나는 행위적 또는 생물학적 사실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문화적 실천들의 산물임을 드러낸다. 광기란 전사회적(前社會的)인 어떤 본질을 갖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문화의 필요와 요구 또는 그 시대의 특정 상황과 관련하여 자체의 존재영역과 자격을 획득한다는 것이다. 푸꼬는 이러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기 위해 정신의학적 차원에서 과학적으로 접근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보다 심층적 수준에서 그것들이 분절되어 나타나기 이전의 모습을 그 역사적 지층 내에서 파헤쳐 나간다.
그리하여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광기라는 대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밝힘으로써 광기의 타자로서 나타나는 이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마치 과학적 타당성을 보증받기라도 한 듯,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정상과 비정상의 담론이 갖는 내면적 특성을 역사적 변천과정을 통하여 보여준다. 바로 여기에서 『광기의 역사』가 일반적인 정신 의학사와 어떻게 다른지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광기의 역사』는 사실적 자료들을 다루는 정신 의학사를 중립적 차원에 놓으며 각각의 이론들이 등장할 수 있는 가능 조건을 개념적 차원에서 드러낸다. 푸꼬는 역사적 인식론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정신 의학이 출현하는 장을 고고학적으로 탐색한다.
결국 이 같은 시도는 정신 의학의 이론이나 과학적 담론이 어떤 근거에서 등장할 수 있었는가를 밝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시기는광인에게 이중적 의미를 부여하던 르네상스 시기와 ‘대감금’(le grand renfermement)으로 특징지어지며 비이성(déraison)으로 분류되는 고전주의 시기(17-18세기), 그리고 보다 과학적 의미가 가미됨으로써 정신 의학의 입지를 굳히며 인간주의적 특색을 가시화하는 근대에까지 이어진다.
1. 논쟁의 발단
데리다는 1963년 소르본느 대학 교양학부 특강 데리다는 이 강연을 “Revue de metaphysique et de morale” (1963, 4)지에 먼저 싣고, 4년 뒤인 1967년에 자신의 저서인 Érituire et différence (Seuil, 1967) 에 ‘코기토와 광기의 역사’(Cogito et Histoire de la folie)라는 제목으로 삽입한다. 푸꼬는 그날 이 특강 장소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강연 텍스트가 들어 있는 『글쓰기와 차이』가 출간될 즈음에는 아주 따뜻한 격려의 편지를 보내기까지 했다고 한다.
에서, 푸꼬의 『광기의 역사』를 비판의 논거로 삼아, 특히 데카르트에 대한 해석을 중점적으로 신랄하게 비판했다. 얼핏 보면 『광기의 역사』의 전체 구성으로 볼 때, 일부에 그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데카르트 독법을 데리다가 문제 삼은 것은 “푸꼬의 모든 기도가 이 암시적이고 약간 수수께끼 같은 몇 페이지 안에 압축되어 들어있으며 푸꼬가 제시한 데카르트 및 데카르트적 코기토(Cogito cartésien)에 대한 독법이 그의 문제 틀 안에서 의도의 측면에서나 가능성의 측면에서 『광기의 역사』 전체를 좌우한다.” J. Derrida, l'Écriture et la Différence, Seuil, Paris, 1967, 52-53쪽
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데리다의 비판은, 데카르트가 사유의 근원으로서 이성을 규정함으로써 이성의 절대적 권위의 영역으로부터 광기를 원천적으로 추방시켰다는 푸꼬의 분석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비롯된다. 즉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적 성찰』(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 이하『성찰』로 줄임
중 ‘제일 성찰’(Meditatio Prima)에서 푸꼬가 데카르트의 의도를 잘못 이해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푸꼬의 이성 개념에 대한 일반 논리를 문제 삼은 뒤, 이차적 방법으로 푸꼬의 데카르트 해석을 공략한다.
이에 맞서 푸꼬는 그에 대한 반박문을 1972년에 '데리다에 대한 답변'( Réponse à Derrida)이라는 제목으로 <파이데이아>(paideia)에 먼저 싣고 "Réponse à Derrida" 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Paideia 11호, 131-147쪽)
, 그 후 같은 해 『광기의 역사』(Histoire de la Folie) 재판 말미에, “이처럼 늦게 답을 해서 미안 하오”라는 헌사와 함께 ‘Mon corps, ce papier, ce feu’라는 제목으로 재수록 한다. 무려 10년이나 지난 뒤에 데리다에 응답한 셈이다. 이 논문에서 푸꼬는 데리다의 ‘텍스트성’(textualité)이론을 총체적으로 문제 삼으며 데리다가 데카르트를 얼마나 부주의하게 읽었는지를 지적한다. 가상의 대화 방식을 '나의 몸, 이 종이, 이 불'이라는 제하의 논문은 데리다와의 가상의 대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즉 데리다의 데카르트 독해에서 문제가 되는 구절을 그대로 인용한 뒤, 그 독해의 오류가 무엇인지를 세밀하게 분석, 지적하고 있다.
통해서 데리다의 독해 방식이 갖는 결함을 드러냄으로써 그러한 결함이 데리다 자신의 잘못된 지식 철학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넌지시 알린다.
광기가 사유로부터 추방된 것이 아니라 사유 안에 극복되어 있다는 데리다의 논박을 분쇄하고 광기의 배제가 17세기를 기점으로 일어난,‘감금’이라는 사회적 실천에 대한 철학적 등가물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푸꼬는 아주 흥미로우면서도 치밀하게 자신의 고유한 데카르트 독법을 선보인다
본 글에서는 데리다가 어떤 구조적 틀 속에서 푸꼬의 독해 방식을 부정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본 뒤, 그 한계를 검토하고 양 주장이 갖는 철학적 함의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2. 광기 역사의 가능성
데리다는 푸꼬의 ‘데카르트적 배제에 대한 독해’에 있어서의 오류를 지적하기 전에 푸꼬가 『광기의 역사』 서문에서 주장하는 “침묵의 고고학”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부정한다. 이러한 거부는 데리다의 다음과 같은 이중적 전략에서 비롯된다.
첫째, 그는 고대 그리스로부터 현대에 이르기 까지 오직 하나의 이성 형식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따라서 푸꼬의 주장대로 17세기에 어떤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든 간에, 비이성을 사유로부터 완전히 배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즉 “이성에 반대하는 혁명조차 이성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이성의 내부에서만 작용할 수 있기에 이성에 반대하는 역사나 고고학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역사의 개념은 언제나 이성적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J. Derrida, 앞의 책. 59쪽
둘째, 푸꼬의 데카르트 읽기는 잘못되었고, 광기는 사유로부터 배제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철학적 반성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 보이려고 한다. 이러한 이중 구조는 결국 푸꼬의 이성 개념에 대한 일반 논리를 문제 삼은 뒤, 그의 데카르트 해석을 공격하는 형식을 띤다. 데리다가 첫 번째 전략을 성공시키기 위해 문제 삼은 『광기의 역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신병의 고요한 세계에서는 근대인은 더 이상 광인과 교류할 수 없다. 한편에서는 이성의 인간은 광기에 정신과 의사를 파견하고, 그럼으로써 질병이라는 추상적 보편성을 통해서만 관계를 정당화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광기의 인간은 똑같이 추상적인 이성의 매개에 의해서만 사회와 교류한다. 여기서 이성은 질서, 물리적 도덕적 제약과 집단으로부터의 익명성과 압력, 일치에 대한 요구로서 규정된다. 이성의 인간과 광기의 인간 사이에는 공통의 언어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이제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18세기말 광기를 정신병으로 규정함으로써 대화는 명백히 단절되었고 양자의 분리는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었으며, 그럼으로써 광기와 이성 사이의 교류를 가능케 하는 구체적인 구문론도, 더듬거리는 불완전한 단어들도 침묵 속으로 사라져갔다. 광기에 대한 이성의 독백에 불과한 정신 분 석학의 언어는 그와 같은 침묵에 근거해서만 확립될 수 있었다.
따라서 나는 여기서 언어의 역사가 아니라 이러한 침묵의 고고학을 기술하고자 한다.” M. Foucault, Histoire de la folie à l'âge classique, preface, Paris, Gallimard, !961, 2쪽과, Madness and civilization, Tavistock publications, London,1967, 10-11쪽;
이 글은『광기의 역사』 초판의 서문에 나타나 있는 것을 푸꼬가 영역판의 서문에 다시 넣은 것으로서, 이성을 넘어서려는 푸꼬의 열망이 잘 나타나 있다. 푸꼬의 의도는 결국 정신병의 역사를 쓰려는 것이 아니라 광기 그 자체를 드러내려는 것이다. 이 글에는 정신병에 대한 과학적 개념화나 도덕적 개념화도 자연적 질서의 최고 심판자인 인간 이성의 설정과 관련시키지 않고는 제대로 이해될 수 없으므로 광기의 배제 아래에 놓여있는, 광기를 침묵케 하는 역사적 필연성을 설명하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
데리다는 광기가 그 책의 주제가 되리라는 푸꼬의 열망이 바로 그 작업의 가장 미친 측면 J. Derrida, 앞의 책, 56쪽 참조
이라고 주장한다. 데리다에 따르면, “우리의 모든 유럽적 언어 활동은, 즉 서양의 이성의 모험에 가까이든 멀리서든 참여한 모든 언어활동은 푸꼬가 광기의 객관화나 체포로서 정의한 계획의 끊임없는 위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언어 활동에서는 어떤 것도 그 언어활동을 말한 그 누구도 역사적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 J. Derrida, 앞의 책, 58쪽
언어는 이성의 매체이기 때문에 미치지 않고서는 광기의 역사를 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데리다의 입장이다. 침묵도 부정성도 결코 이러한 이성 언어의 구조 속에서는 푸꼬를 도와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광기의 본질은 말해질 수 없으며, 그런 탓에 광기의 경험은 그 책 안에 들어가 있을 수 없다.
데리다는 은유적으로 다음과 같이 비유한다. “푸꼬가 법정에 내놓고자 하는 것이 고전적 의미에서 역사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그러나 재판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단순한 분절행위에 의해 소송절차와 평결은 끊임없이 죄를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J, Derrida, 같은 책, 65쪽
광기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미 적의 편에, 즉 질서의 편에, 합리성의 편에 들어서 있기 때문에 광인을 위한 유일한 대변자가 광인을 배반하게 된다는 논리이다.
데리다가 바라본 서양 철학사는 이성의 역사로 점철되어 왔고 그러한 이성의 역사는 언제나 극복해야 할 적을 대립의 형태로 가져왔다. 그리하여 진리와 허위, 의미와 무의미, 이성과 광기, 중심과 변두리, 육체와 정신 등과 같은 이분법적 대립이 파생되었고, 이것은 신성불가침의 토대로서의 중심적 현존을 앞에 내세우기 위한 방편으로 기능하였다. 이성과 비이성의 대립과 갈등을 기초로 서양철학과 형이상학은 기원의 현존적 통일에 대한 신화를 키워 나갈 수 있다고 보는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결정(décision), 나눔(partage), 차이(différence)의 역사를 기술하려는 시도는 구분을 원래의 모습으로서의 단일성에서 결과한 구조나 사건으로 해석하여 오히려 형이상학을 그 근본적 작동에서부터 인정하는 위험스런 결과를 초래한다.” J, Derrida, 같은 책, 65쪽
따라서 이성이 광기의 자유로운 주관성을 배척하고 객관화함으로써 스스로 구성된다는 이성의 결정이 역사의 기원이고 역사성 자체이며, 언어 활동과 의미의 조건이고, 의미의 전통의 조건이라면, 푸꼬가 기술한 것처럼 배제의 고전적 계기는 절대적 특권을 갖지 못한다. J, Derrida, 같은 책, 67쪽
고전 시대의 광기 추방도 단지 하나의 견본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푸꼬는 이런 반론을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광기의 역사』 서문에서, 그리스인들이 말하는 휘브리스(hybris방탕함)라는 단어는 단순한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트라시마커스나 칼리클레스의 존재가 그 사실을 충분히 증명하는 바와 같이, 로고스에 대한 반의어로서 기능하지 않았다고, 즉 논쟁으로부터 그것의 대립물을 배제하지 않았다고 설득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절에서 설명하는 이성과 몰이성의 조화마저도, 데리다는 하나의 허구적 신화에 불과할 뿐이며, 푸꼬가 암시하는 것은 아주 오랜 신화의 현대판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신념에 따르면, 이성의 효과와 확신은 이미 성취된 배제에 묶여 있었을 뿐이다.
데리다에 있어서는 이성 밖의 어떤 특권화 된 공간도, 어떤 더 높은 차원의 이성도, 어떤 다른 이성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그가 푸꼬가 내세우는 광기 배제의 가정을 받아들이는 한계는 그것을 내적 추방으로 규정하는 한에서이다. 이러한 논증은 사실상 데리다의 철학적 조망 데리다는 차이의 놀이가 벌어지는 장을 ‘텍스트’(texte)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기표들은 그 자체의 의미가 아닌, 기표들과의 차이 대립관계를 통해서 불확정적으로 고정된다. 그리하여 경험적 기표들 전체의 선험적 근거로 선험적 기의를 상정하는 것은 허구라고 설명한다. 모든 것은 이러한 ‘텍스트’ 안에 있으며 "텍스트 바깥은 없다"(Il n'y a pas de hors de texte)고 강조한다. 즉, 모든 것을 ‘텍스트’로 환원시킨다. 이러한 주장은 알고 보면 ‘텍스트 바깥’을 주장하는 형이상학자들의 주장을 공략하기 위한 방법으로 볼 수 있다. 해체라는 방법을 통하여 데리다가 하는 작업은, 텍스트를 면밀히 해독하여 저자가 전체 텍스트 내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가 일관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역설적인 의미로까지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텍스트가 자신이 설정한 기준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는데 실패 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데리다는 이러한 해체 전략을 플라톤, 훗설, 소쉬르, 프로이드 등과 같은 저자들을 비판하는 데 사용했다.
-개념 뒤에 있는 실재란 도달될 수 없고, 실재에 도달하는 지점은 항상 또 다른 개념의 창조에 의해 연기될 것이라는 -과 깊은 연계를 갖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광기의 관념은 어떤 특권도 가질 수 없으며 관념 배후의 본질에도 역시 도달할 수 없다. 데리다가 푸꼬에게 하고 싶은 말은 서구 철학적 전통이 범해온 오류를 똑같은 방식으로 범했다는 지적이다. 현전의 형이상학에 대한 데리다의 이러한 총체적 비판은 1960년대에서부터 70년대에 걸친 데리다의 작품 속에 잘 전개되어 있다.
이러한 데리다의 비판과는 다른 과점에서 푸꼬는 광기의 경험에 직접적으로 다가가는 것이 불가능함을 일찍이 밝힌 바 있다. 『지식의 고고학』을 통하여 담론 형성의 규칙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그는 이미 순수한 있는 그대로의 야생적 경험의 존재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한 바 있다. 푸꼬에 따르면, 광기라는 대상 형성의 과정에는 이미 정치 사회 제도적인 흐름이 스며 얽혀 있으며, 광기의 담론은 일정한 담론 형성의 규칙 푸꼬는 고고학의 탐구 대상이기도 한 담론의 형성 규칙을 파악하기 위해 담론의 형성 과정을 대상, 주체, 개념, 전략의 형성이라는 네 가지 요소 속에서 분석한다.
첫째로, 대상 형성을 위한 규칙이 있다. 이 규칙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작용을 하는데, 출현의 표면과 경계 짓기의 권위, 분류의 격자가 바로 그것이다. 둘째로, 언표적 양태들의 형성이 있다. 여기에서는 언표와 주체, 대상, 개념들 사이의 관계를 문제 삼는다. 상관적 공간으로 분류되는 이 공간(l'espace corrélatif)에서, 주체는 언표로부터 파생된 기능을 부여받는다. 단어, 문장, 명제들의 체계가 내부적인 변수와 변이에 의해 기능하는 것과 달리, 담론 형성의 공간에서 주체는 언표적 장의 변화에 따라 그 때 그때 다른 위치를 차지한다. 또한 명제나 문장의 관점에서는 우연적인 것이 언표의 차원에서는 규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셋째, 개념 형성을 지배하는 규칙이 있다. 여기에는 언표를 질서 지우고 차례로 배열하는 관계를 형성하는 규칙과 언표의 집합에 대한, 수용과 거부의 다양한 태도를 규정하는 규칙들 및, 담론 형성의 언표들에 적용될 수 있는 다양한 개입의 절차를 규정하는 규칙들이 포함되어 있다. 담론형성의 규칙을 지배하는 마지막 형태는 전략의 형성으로서 여기에서 뜻하는 전략이란 하나의 담론 형성 내에서 전개되는 특정한 이론이나 주제를 뜻한다.
결국, 푸꼬가 이러한 시도를 통하여 구현하고자 하는 것은 담론 형성의 규칙을 밝혀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분산들을 그 자체로서 기술하고, 점진적으로 연역적인 구성물로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조금씩 쓰여지는 거대한 책으로서도 조직화되지 않는 이 요소들 사이에서, 하나의 규칙성-그것들의 계기적인 출현에 있어서의 상호관계, 공통의 공간 속에서 부과 받을 수 있는 위치들, 상호적 기능 작용, 서로 위계화된 변환들-을 지표화 할 수 없겠는가를 탐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그 내적인 구조를 분석하기 위해, 정합성의 작은 섬들을 고립시키지 않는다....이것은 분배의 형태들을 연구하는 것이며 추론의 연쇄들을 복구하는 대신에 차이의 평면을 수립하는 대신에 분산의 체계(systèmes de dispersion) 를 기술하는 것이다.”(M. Foucault, L'archéologie du savoir, Gallimard, Paris,1969) 일련의 언표들 사이에서 분산의 체계를 기술하고, 대상들, 언표 행위적 유형들, 개념들, 전략들 사이의 규칙성을 확립하는 것이 바로 담론 형성(formation discursive)을 다루는 푸꼬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형성 규칙을 통해 담론의 존재 조건은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된다.
이 지배하는 특정한 장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는 본래의 광기 모습을 그려 보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들뢰즈도 지적한 바와 같이 지식은 언표 가능한 것(담론적인 것)과 가시적인 것(비담론적인 것)의 환원 불가능한 구조 속에 싸여 있어서, 현상학적 지향성이란 존재 불가능한 것이다. “현상학으로부터 인식론으로의 전환. 이것이 푸꼬의 주요 업적이다. 보는 것과 말하는 것은 지식(savoir)을 의미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말하는 것을 보지 않고 우리가 보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모든 것은 지식이다. 이것이 바로 ‘야생적 경험’이 존재하지 않는 첫 번째 이유이다. 즉, 지식의 아래 또는 이전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것이 바로 지향성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이다.” (G. Deleuze, Foucault, Les Édition de Minuit, 1986, 116쪽)
또한 푸꼬의 후기 철학적 입장에서 마련된 계보학에 의해서도 이런 원초적 경험은 부정된다. 지식의 지층 바깥은 권력의 놀이에 의해 에워싸여지므로 모든 경험은 권력 관계에 포획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데리다는 데카르트적 배제에 대한 푸꼬의 해석에 도전함으로써 다시 한번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려고 시도한다.
3. 『성찰』에 대한 데리다의 독해
데리다는 데카르트의 회의에 대한 고찰에서, 광기가 어떤 특권적인 취급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어떤 배제의 논리에도 종속되지 않음을 밝힌다. 즉, 광기가 “성찰하는 주체는 미칠 수 없다” "le sujet méditant ne peut pas être fou"("Réponse à Derrida", in Dits et écrits, Paris, Gallimard, 281쪽
고 데카르트를 해석하는 푸꼬의 주장처럼, 사유 세계로부터 추방된 것이 아니라 인간 사유의 내면적 본질로 받아들여져 있다고 본다. 데리다의 독해에 따르면, ‘제 일 성찰’에 나타나 있는 광기는 감각적 망상의 예에 부응하는, 아주 심각한 경우(꿈)가 아닌, 단지 조금 더 진행된 회의의 한 예에 불과하다 J, Derrida, 앞의 책, 78쪽 참조
데리다는 <제 일 성찰>을 철학자로서의 데카르트와 상식을 대표하는 가정상의 대화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대화로 이해한다. 데카르트 『성찰』에서 푸꼬와 데리다에게 논쟁을 야기 시킨 부분을 간단히 살펴보자.
감각들은 이따금씩 별로 감각적이지 않은 것과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les choses peu sensibles et fort éloignées)과 관련하여 우리를 속이곤 하지만, 우리가 그러한 감각 수단에 의해 알고 있는 것들이라 할지라도 이성적으로 의심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만나게 된다. 예를 들면, 내가 실내복을 입고 종이나 또는 그와 같은 어떤 다른 것들을 손에 들고 불 옆에 앉아 있다고 하자.
내가 어떻게 이 손과 이 육체가 나에 속한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가? 내가 나를 정신이상자들(insensés)과 비교하지 않는다면, 즉 정신이상자들은 담즙에서 올라오는 검은 증기로 인해 뇌가 혼란되어, 그들은 매우 가난하면서도 스스로 왕이라고 확신하고 옷을 벗고 있는데도 주홍색에 금빛 옷을 입고 있다고 믿고, 또는 유리로 된 몸을 가지고 있다고, 또 항아리 모양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은 광인이며, 내가 그들의 예를 따른다면 나 또한 그들보다 덜 미쳤다고(moins extravagant)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나는 자신이 인간이며 잠자는 습관이 있고 정신 나간 사람들이(insensés)깨어 있을 때 마음 속에 그려보는 것과 같은 것들, 또는 더 기묘한 것들을 나의 꿈속에서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침대 속에서 옷을 벗고 잘 때도 얼마나 여러 번 내가 이 장소에 있고 옷을 입고 있으며 불 옆에 앉아 있던 것을 꿈꾸었던가? 내가 이 종이를 바라보고 있고, 내가 흔들어보는 이 머리는 조금도 졸지 않고 있고 내가 의식적으로 손을 뻗고 있으며, 또 내가 이것을 느끼는 것은 결코 두 눈이 잠들어 있지 않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것은 수면 속에서는 지금 내가 느끼는 것만큼 그렇게 명석하고 판명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주의 깊게 생각해 보면, 내가 잠잘 때도 그러한 환상에 의해 자주 속았었다는 기억이 있다. 이러한 생각을 토대로 본다면, 잠이 깨어 있을 때와 잠잘 때를 구분시킬 수 있는 어떤 충분한 표식도, 결정적인 단서도 없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보고 놀란다. 나는 너무 놀라서 내가 지금도 잠을 자고 있다고 스스로 확신하는 것이 거의 가능할 정도이다. René Descartes, Les Méditations Métaphysiques, Paris, Livrarie Générale Française, 1990, 30-33쪽
데카르트는 감각적 기원을 갖는 모든 지식은 우리를 속일 수 있고, 우리를 오류에로 이끌 수 있으므로 모든 감각적 인상들은 의심에 열려있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에 가상의 비철학자(대화자)는 의심할 수 없는 어떤 것들(내가 바로 이 불 앞에 앉아 있다는 사실과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더욱이 자신의 몸이 유리로 되어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러한 직접적 지각들을 의심하려 한다면, 그들은 미친 사람들일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가 그들의 예를 따른다면, 우리 또한 미쳤음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데카르트는 명백히 확실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조차 의심의 여지가 있음을 그의 소박한 동료인 촌부에게 설득한다.
이 설명에 이어 데리다는, 데카르트가 좀 더 심화된 광기(미친 상태)의 예로서 꿈의 예를 들어 보인다고 주장한다. 꿈의 경험이 광기의 경험보다 더 일상적이며 더 보편적인 경험에 관계된다고 보는 것이다. 데리다가 꿈이 광기 보다 '더 미쳐있다(extravagant)고’ 보는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광기는 우연적이고 불완전한 방식으로 감각적 지각의 어떤 영역에만 영향을 미치는 반면, 꿈은 감각적 지각의 전체에 걸쳐 혼란을 초래한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여 지금 우리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놀라움’(étonnement)을 경험할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데리다는 데카르트의 관심이 광기의 개념 규정에 있지 않음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감각적 기원에 관한 관념들의 절대적 총체성이 의심스럽게 되는 것은, 즉 객관적 가치를 빼앗기게 되는 것은 광기의 경우에서가 아니라 꿈의 경우에서라는 결론을 끌어낸다.
이러한 설명에 비추어 보면, 광기의 가정은 훌륭하고 좋은 예가 아니며, 회의의 적절한 수단 또한 아니다. 이에 대한 이유로 데리다는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광기의 예는 감각적 지각의 장 전체를 다루지 못한다. 광기는 언제나 늘 기만하지는 않는다.(언제나 미쳐있지는 않다) 둘째, 그러한 예는 교육학적 질서 안에서 볼 때, 비철학자의 저항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에(즉, 철학자가 자신이 발하는 바로 그 순간에 미쳐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허용할 때), 적절하지 못한 예이다. 데리다는 이러한 이유로 데카르트가 설정한 광기의 가정을 ‘교육학적 질서에서 볼 때 불행하고 비효율적인 예’(un example inefficace et malheureux dans l'ordre pédagogique)라고 지적한다. J. Derrida, 같은 책, 79쪽 참조
철학자와 비철학자 사이의 대화는, 그들이 꿈을 꾸고 있을지라도 수학과 기하학의 일반 원리들과 같은 것들은 확실한 채로 남아있다고 하여 확실성의 지적 토대만을 남겨둔다. 이 시점에서 철학자는 촌부를 사라지게 하고 자신의 고유한 철학적 작업을 시작한다. 데리다는 광기의 가정도, 꿈의 가정도 충분한 광기를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데카르트가 ‘사악한 정령’(malin génie)이라는 총체적 광기를 등장시킨다고 설명한다. 하늘에 태양이 떠있다는 것, 2+2=4라는 것을 믿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즉 ‘사악한 정령’의 속임수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사악한 정령’이라는 극단까지 치달은 총체적 광기의 가정을 신중히 싸안음으로써 ‘Cogito ergo sum’이라는 확실성에 도달하게 된다. 데카르트적 자아의 대담성은 자아 자체를 ‘비 의미’인 ‘사악한 정령’에 절대적으로 대립 시킬 때 나타난다. 즉 규정된 이성도, 규정된 비이성도 나타내지 않는 근원적인 지점에로 귀환하기 위해, 철통같은 확실성의 지점에로 돌아가기 위해 자아를 정립할 때 나타난다.
데리다가 푸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내가 미쳤다 해도 나의 생각이 전적으로 미친 것이라 해도 코기토의 행위는 정당하다’라는 것이다. 데카르트적 코기토는 인간의 사유가 이성적이냐 아니냐 하는 결정의 순간이나 계기를 초과(excès)해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데카르트가 광기를 진리의 영역 속에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인간의 사유세계로부터는 광기를 추방시키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앞에서의 주장에 비추어 보면, 광기의 배제는 17세기 고전주의 시대에 와서 갑자기 생긴 역사의 한 결정이나 산물이 아니라 역사성의 본질이며 속성이다. 따라서 푸꼬는 고전주의 시대에 특유한 배제의 구조를 강조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배제의 구조가 역사적으로 다른 것들과 어떻게 구분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4. '광기'와 '꿈'의 비대칭성
푸꼬의 응답이 실려 있는 논문이 시도하는 것은 데리다의 데카르트 해석을 해체하고 자신의 주장을 더 강력하고 세밀하게 펼치려는 것이다. 데리다의 데카르트 독해 방법의 결함을 드러냄으로써, 데리다가 얼마나 부주의하게 텍스트를 읽었는가와 그의 철학 체계 자체가 얼마나 많은 사유의 가능성을 폐쇄시켜 놓았는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푸꼬는 논란이 되는 구절에 해당하는 『광기의 역사』 56-59페이지 사이에서, 꿈과 광기가 데카르트적 회의의 전개 과정에서 동일한 지위를 갖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리고는 꿈은 광기에 비해 이중적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하는 데리다의 견해를 지적함으로써 자신의 항변을 시작한다.
데리다가 말하는 특권 가운데 하나는, 꿈의 ‘비정상적 특성’(extravagant)이 광기가 갖는 불합리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는 인간이므로 꿈 속에서 나 자신을 표상하는 습관이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푸꼬는 전자를 논증적 차원에(démonstratif) 있다고 보며, 후자는 실천적 잇점(exercice)이라고 설명한다. 전자가 논증적 특성이고 후자가 실천적 특성인 이유는, 꿈은 나로 하여금 불확실한 상태에 있게 만드는 한편, 꿈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비교적 빈번하게 일어나므로 실천적으로 접근하기 쉽기 때문이다.(M. Foucault, Dits et écrits vol. 2, "Mon corps, ce papier, ce feu", Paris, Gallimard, 1994, 248쪽 참조)
그런데 문제는 ‘보편적’(universel)이라는 말을 통하여 양 측면을 애매모호하게 강제로 결합시킨 데에 있다. 꿈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사실과 꿈 속에서의 혼돈이 나로 하여금 모든 것을 의심케 한다는 사실의 양자를 무리하게 과장함으로써 데카르트의 텍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훨씬 넘어서 버렸다. 이러한 과정에서 꿈의 광기적 특성(extravagant)과 꿈의 빈도수가 갖는 상이한 특성이 소거됨으로써, 데카르트 담론 안에서 이 두 특성이 갖는 특이한 역할이 무시되는 결과가 발생했다. M, Foucault, 같은 책, 같은 쪽. 푸꼬는 데카르트가 꿈의 논증적 특성 보다는 꿈의 습관적 특성에 더 크게 주목했음을 강조하고, 데리다가 이러한 관점을 파악하지 못함으로써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한다.
다음으로 푸꼬는 ‘꿈에 대한 나의 경험’과 관련하여 아주 놀라운 통찰을 해낸다. 그의 논의를 따라가 보자. 꿈의 광기적 특성에만 주목하는 데리다와 달리, 그는 ‘깨어있음’과 ‘잠자고 있음’ 사이에 존재하는 무차별성(indifférence) 또는 ‘구분불가능성’(indivision)은 자고 있을런지도 모른다는 ‘준확실성’ (quasi-certitude)에 대한 ‘놀라움’을 성찰하는 주체에게서 일어나게 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것을 쉽게 설명하면, 꿈에 대한 기억과 현실 사이의 차이를 증명하는 과정이 주체의 사유 과정 안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며, 꿈과 현실 사이의 유사한 지각 현상으로 말미암아 발생된 ‘놀라움’은 주체가 완전히 늘 깨어있는 상태로 된다는 것이 이제 더 이상 확실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태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에서 푸꼬가 의도하는 것은, 이렇게 주체가 수정되는 과정에서조차도, 혼미의 상태에서 조차도, 더 나아가 불확실한 상태에 이르게 되더라도, 주체의 성찰 행위는 방해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꿈과 현실 사이의 구분이 불명료할 때일지라도, 주체는 구분 불가능을 야기하는 원칙이나 일정한 사물들을 정확히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꿈의 습관적 특성에 의해 주어져 있는 가능성은 다음의 네 가지로 정리된다.(같은 책, 250쪽 참조) 1) 꿈은 직접적으로 접근이 가능하며, 그 모델은 수많은 기억들에 의해 제공된다. 2) 이 경험은 실제로 다음의 계열대로 성찰 안에 나타난다.( 꿈에 대해 생각하는 것, 꿈을 회상하는 것, 꿈과 깨어있음을 식별하고자 하는 것-이 과정에서 우리는 지금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갖게된다. 3) 이러한 성찰적 실행(exercice méditatif)에 의해 꿈에 대한 사유는 주체 그 자신 안에서 효력을 발생한다. 그것은 주체를 혼미하게 함으로써 주체를 변경시킨다. 4) 주체를 변경시킴으로써 깨어있는 것이 불확실한 주체로 만든다 할지라도, 꿈에 대한 사유는 성찰하는 주체로서의 주체의 지위를 박탈하지 않는다.
이러한 꿈의 경험을 푸꼬는 꿈에 앞서 논의 했던 광기의 예와 비교한다.
5. ‘비효과적인(?)’ 예로서의 광기
데리다의 입장에서 보자면, 광기는 데카르트에 의해 배제된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예에 의해 무시되었을 뿐이다. 광기의 예가 매우 부적절하게 지시했던 것을 꿈의 예가 보강하고 일반화시킨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푸꼬는 꿈과 광기 사이의 대립은 아주 다른 유형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데카르트의 『성찰』에 나타나 있는 꿈과 광기의 두 단락을 신중히 비교한 뒤, 그것들 사이에 내재해 있는 대립 체계를 상세히 추적한다.
먼저 성찰 행위의 본성(nature)에서 볼 때, 광기의 단락에서 사용된 용어는 ‘비교’(comparer)의 용어인데 반해, 꿈의 단락에서 사용된 용어는 ‘기억’((rappeler)의 용어 이다. 다음으로 성찰 행위의 논제(thème)에서 볼 때, 광기에 있어서는 현재 자신의 상황을 다른 것으로 바꾸어 놓는(transporter, 자신의 몸이 유리로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등) 반면, 꿈에 있어서는 장면을 바꾸어 놓지 않는다(ne transporter). 즉 꿈은 나의 존재 장면을 가리키는 지시 사를 둘로 나눌 뿐(꿈속에서, 나는 마치 내가 지금 불의 열기를 느끼고 있는 것처럼 불의 열기를 느낀다 : 지금 이 열기와 이마쥬 속에서의 열기), 꿈에서의 상상은 실재적 지각 위에 고정된다. 셋째, 행위를 테스트 하는 과정을 볼 때, 꿈의 단락에서는 꿈인지 아닌지를 테스트 하는 것이 가능하나, 꿈과 현실 사이의 차이 구분이 어려웠던 데 반해, 광기의 단락에서는, 나 자신이 광인인지 아닌지를 테스트하는 것은 불가능하나, 즉각적 확인은 가능하다.(“그들은 광인이다”라는 외침과 더불어) 끝으로 행위의 결과를 보면, 광인을 흉내 내고자 하는 것은 미친 짓인 반면(흉내 낸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꿈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능하다. 푸꼬는 이러한 근거 위에서 데카르트가 자신의 ‘놀이’에 속임수를 썼다고 본다. 즉 만일 성찰자가 조금 전에 꿈에 대해 시험했듯이 자신이 광인된 것처럼 가장하려고 시도한다면 광인의 경우에도 꿈의 예에서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불 옆에 앉아 종이를 바라보면서 이것이 광인의 환상이 아닐까하고 의심하는 테스트를 제시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곳에서 데카르트의 폭력성이 드러난다고 푸꼬는 주장한다.
푸꼬는 어떻게 데리다가 이렇게도 상이하게 드러나는 두 행위의 대립 체계를 인식하지 못 했는지 또 데카르트의 속임수를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의아하게 생각한다. 담론의 놀이 안에서 기능하는 용어의 역할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데리다가 한심스럽기까지 하다고 지적하면서, 광기를 ‘불충분하고 불행한 예’라고 단순하게 지적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거라고 비아냥거린다. M. Foucault, 앞의 책, 252쪽 참조
푸꼬가 지적하는 데리다의 데카르트 독해상의 문제점 중 또 다른 한 가지는 데리다가 데카르트의 텍스트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라틴어 초판을 참조해야 한다고 여러 번 주장하면서도, 자신은 불역 판에 머물음으로써 라틴어 텍스트에 나타나 있는 용어상의 차이를 간과하는 오류를 범한다는 점이다. 문제가 되는 용어가 무엇인지 살펴 보자.
데카르트의 구절,“이 손과 이 몸이 나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만일 내가 나 자신을 정신 나간 어떤 사람(certains insensés)과 비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부정할 수 있는가?”,에서 사용된 광기에 관한 용어는 ‘insanis’이다. 그런데 자신을 ‘왕’이나 ‘물병’으로 간주하는 (미친)사람들을 지칭할 때는 ‘amentes’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며,“내가 그들(광인)을 따른다면, 나 역시 덜 미친 것이 아니다”라는 귀절에서는 ‘demens’이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세 가지 용어 모두 ‘미친 사람들’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푸꼬는 데카르트의 이러한 용어의 구별적 사용에 착안하여, 데카르트가 광인들을 그저 특징짓는 것이 문제가 될 때는 의학적 용어로 사용되는 ‘insani’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지적한다. ‘광인들은 증기로 울혈된 뇌를 가지고 있다’라는 의학적 설명을 데카르트가 덧붙인 데서 쉽게 그러한 용례를 인지할 수 있다. 그러나 “광인들을 따라 행동해서는 안된다”라는 사실을 확인하고자 할 때는 ‘demens'과 ‘amens’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 두 용어는 법률적 용어에 가까운 것으로서 종교적, 시민적, 사법적인 어떤 행위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지칭할 때 주로 사용된다. 말하자면, 전자는 성격 규정 용어이고 후자는 자격박탈 용어이다. 전자에서는 증상이 문제가 되고, 후자에서는 능력이 문제가 된다. 이 두 용어가 다르게 사용되고 있는 데카르트의 두 구절은 성급한 토톨로지가 아니라는 것이 푸꼬의 주장이다 . M, Foucault, 같은 책, 253-254쪽 참조
말하자면 데카르트가 ‘생각하는 주체는 미칠 수 없다’라는 것을 확인하는 텍스트의 이 부분에서 이렇게 구분하여 두 용어를 사용한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푸꼬가 지적하는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데카르트 텍스트의 불어판과 라틴어 판을 비교하여 살펴보자.“Si ce n'est peut-être que je me compare à ces insensés, ce qui le cerveau est tellement troublé et offusqué par les noirs vapeurs de la bile, qu‘ils assurent constamment qu'ils sont des rois, lorsqu'ils sont des pauvres; qu'ils sont vêtus d'or et de pourpre, lorsqu'ils sont tout nus; ou s'imaginent être des cruches, ou avoir un corps de verre. mais quoi? ce sont des fous, et je ne serais pas moins extravagant, si je me reglais sur leursexemples." /라틴어 판 "Nisi me forte comparem nescio quibus insanis, quorum cerebella tam contumax vapor ex atra bile labefactat,ut constanter asseverent vel se esse reges,cum sunt pauperrimi, vel purpura indutos, cum sunt nu야, vel caput habere fictile, vel se totos esse cucurbitas, vel ex vitro conflatos; sed amentes sunt isti, nec minus ipse demens viderer, si quod ab iis exemplumad me transferrem."(R. Descartes, 앞의 책, 32-33쪽 참조)
따라서 데리다처럼 그 구절들이 토톨로지인 양 한 가지 용어로 요약해 버리는 것은 텍스트를 아주 밋밋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푸꼬는 데리다가 이러한 용어가 갖는 법률상의 의미를 어렴풋하게나마 지각했다고 본다. 다음과 같은 구절이 그러한 추측을 가능케 한다.
“권리의 문제를 위한 지표로서...광기의 문제를 다루었다...데카르트의 관심은 광기의 개념을 규정하는 일이 아니라 오로지 관념의 진리성(la vérité des idées)에 관한 권리의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법률적이고 방법론적인 목적에서 ‘extravagance’(미쳐있음)의 현재 개념을 사용하는 데 있다. J. Derrida, 앞의 책, 79쪽
그러나 푸꼬에 따르면, 여기서 데카르트가 범한 오류는 광기를 지칭하는 두 용어 사이의 차이 위에서 놀고 있는 데카르트의 텍스트를 제대로 읽지 못한 데 있다. 결국 그는 오로지 ‘이념의 진리성’과 관련되어 있었다고 성급하게 주장해 버린 셈이다.
6. 그림에 나타나 있는 광기
데리다는 푸꼬의 해석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즉 데카르트가 만일 사유로 부터 광기를 추방했다면, 화가들의 상상에서 드러나는 광기에 가까운 표현들에 관해 그(데카르트)가 어떻게 말할 수 있었겠느냐고 질문한다. J, Derrida, 같은 책, 75-76쪽 참조
푸꼬의 주장이 맞는다면, 데카르트의 텍스트에서 배제 되었어야 할텐데 어떻게 꿈의 가능성과 마찬가지로-데카르트는 꿈속에서의 환영을 화가의 그림에 비유하기도 한다-받아들여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푸꼬는 이런 물음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는 데카르트의 텍스트 공간에 광기의 문제가 스며있음을 인정한다. 두 가지로 나누어 응답하는 푸꼬의 답변을 들어 보자. 첫째, 데카르트가 자신이 미칠 가능성을 배제했다고 해서 광기가 반성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도출되지는 않는다. 광기가 ‘놀이 바깥’에 있다는 것은 ‘extravagance’의 내용에 대한 것이 아니라, 성찰하는 주체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광기는 반성과 지식의 대상으로서는 결코 배제되지 않는다. 둘째, 데리다가 문제 삼고 있는 구절인, ‘화가들의 상상 작용은 황당무계하다’(extravagant) 라는 구절에 나타나 있는 ‘extravagant’이라는 단어는 불행하게도 라틴어 텍스트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 단어는 불어판 번역자가 부가시킨 단어에 불과하다. 따라서 ‘extravagant’이라는 단어가 데카르트에 의해 분명히 사용되었다고 하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일 뿐이다.
광기가 꿈으로부터 구별되는 것은, 데리다의 주장처럼 광기의 예가 덜 좋은, 불충분한 예이기 때문이 아니라 양자가 갖는 대립적 특성 때문이다. 그런데 데리다의 분석은 다음과 같은 여러 차이들을 놓치고 있다 M. Foucault, 같은 책, 256쪽
예컨대 문자적 차이, 이마쥬의 주제적 차이 등을 모두 지나쳐 버리고 있다. 특히 ‘비교와 회상’의 형태로 성찰하는 주체에 의해 실행되는 행위, ‘차이에 대한 즉각적 인식과 놀라움’의 형태로 나타나는 주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효과, 그리고 ‘잠자는 상태dormiens에서는 성찰하는 주체로서의 자격을 부여받으나 미친 상태demens에서는 그러한 자격을 부여 받지 못한다는 점 등을 모두 놓쳐버렸다.
7. ‘논증적 성찰’로서의 『성찰』
푸꼬는 데리다의 비판이 ‘제일 성찰’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고, 데리다에게 자신의 독해 방식을 친절하게 소개한다. 푸꼬는 『성찰』을 담론적 사건의 결과로 이해한다. 각각의 선회 지점(광기의 예, 꿈의 예)에서 성찰하는 주체의 위치가 수정되고, 종국에 가서는 사물의 진리가 신에 의해 보증된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주체의 확실성이 산출된다. 말하자면, 『성찰』 안에서 주체는 자신의 고유한 운동에 의해 일정한 변화를 거듭하게 된다. 담론은 꿈과 광기의 예를 통하여 주체를 위험에 빠뜨리고, 테스트에 통과 시키며, 주체 안에서 이러한 상태들을 산출하여, 주체가 처음에는 결코 갖지 못했던 자격을 주체에게 부여한다. 결국 『성찰』은 산출되는 담론적 사건들의 결과 자체에 의해 유동 가능하고 변화 가능한 하나의 주체를 함축하고 있다. 『성찰』은 연역의 형식적 규칙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규칙 지배적인 동시에, 주체를 산출하고 수정한다는 의미에서 구성적이라 할 수 있다. ‘체계’(système)와 ‘실행’(exercice)을 갖춘 이러한 성찰의 방식을 푸꼬는 논증적 성찰(méditation démonstrative)이라고 이름 붙인다. M, Foucault, 같은 책, 258쪽 참조
푸꼬가 보기에 데리다는 이러한 구조와 특성을 무시한 채, 데카르트 텍스트의 배후에서 소박하게 또 다른 목소리(대화자)를 생각해냄으로써, 즉 '수사적'(rhétorique) '교육학적'(pédagogique) 허구를 상상해냄으로써 데카르트적 배제를 세 번씩이나 되풀이한다. (한편으로 데카르트는 사유 세계로부터 광기를 배제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첫 번째 배제는, 『성찰』의 철학자가 아닐 뿐 아니라, 다듬어진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또 다른’ 주체(대화자)에서 일어나고, 두 번째 배제는 철학의 장소가 아닌 비철학적인 소박성의 장소에서 이루어지며, 세 번째 배제는 아주 강력하고 그럴듯한 꿈의 예를 인용함으로써 반론을 무장해제 시켜 광기 보다 ‘더 나쁜 예’(꿈)를 받아들이게 할 때, 발생한다. M, Foucault, 같은 책, 263쪽
푸꼬에 따르면, 데리다는 자신의 교묘한 가정을 전개시키는 과정에서, 문자적 요소를 생략하고 꿈과 광기 사이에 이루어지는 의미론적인 대립의 유희를 간과했으며 ‘실행’과 ‘논증’의 이중적 골조를 이해하는 데 실패 했다. 또한 차이들을 소거시켜 광기와 꿈의 예를 근접시킴으로써 광기를 혼미하고 실패한 예로 규정하는 한편, 꿈의 예를 보편적인 것으로, 광기의 예가 갖는 부족함을 흡수, 보완하는 것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데카르트적 배제의 길을 뒤에서 쫓아갔다.
이 지점에서 푸꼬는 데리다가 배제를 범한 의도를 다음과 같이 우회적으로 설명한다. 데카르트는 성찰하는 주체를 광기로부터 떼어 놓음으로써, 즉 미칠 수 없는 것으로 자격부여 함으로써 광기를 배제한 반면, 데리다는 배제를 통하여 철학적 담론에 특정한 지위(광기의 담론과는 다른 것으로서의)를 부여하고자 했다. 배제를 통하여 양 담론 사이에 외재성의 관계(un rapport d'extériorité)를 확립해 놓은 것이다. 푸꼬의 말을 빌어 역설적으로 표현하면, “텍스트의 차이의 생략과 목소리의 차이에 대한 보상적 고안은 데카르트적 배제를 두 번째 수준 위로 옮겨 놓았으며 데카르트적 배제가 배제하고 있는 것을 배제해 버렸다.” M, Foucault, 같은 책, 264쪽
데리다는 광기의 배제가 일어나는 지점에서는 광기를 부정하는 반면에, 광기라고 가정하기 어려운 곳에서는 오로지 광기의 극단을 본다. 아마도 이 같은 데리다의 노력은 사회 역사적 힘들의 영향으로부터 철학의 영역을 보전하려고 한 데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8. ‘언제나 깨어있는’ 성찰하는 주체
데리다는 데카르트의 텍스트에 등장하는 ‘사악한 정령’(malin génie)이란, 인간 지적 능력에까지-꿈과 광기가 주로 인간의 감각적 능력에 혼란을 가져오는 반면-타격을 주는 것으로서 총체적 광기(광기의 극단)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데카르트의 가정-‘하늘, 공기, 색채, 형체, 소리, 그리고 우리가 보는 모든 외적 물체들은, 사악한 정령이 우리에게 거짓되게 믿도록 만든 환상과 속임수인지도 모른다는 R. Descartes, 앞의 책, 45쪽
-이 이 단계에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푸꼬의 설명을 따라 탐색해 보자.
데카르트적 코기토는 이 극단적 지점에서, 자신이 미쳤는지 아닌지, 속았는지 아닌지를 감히 결정할 수 있는 ‘초과’(excès)에 도달한다. 이 시점이 바로 광기가 소거되는 순간이다. 배제의 순간이 아니라 광기가 이성 앞에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순간인 것이다. 데리다는 사악한 정령을 총체적 광기로 내세우기 위해 광기가 실제로 명명되는 그 곳에서 광기가 문제된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그리고는 이제 광기가 나타나 있지 않은 곳에서 광기가 문제된다고 주장한다.
푸꼬는 ‘사악한 정령과 코기토의 대면’이 광기에의 진정한 대면이라는 데리다의 주장을 거부하기 위해, 또한 사악한 정령과 광기 사이에 내재하는 아주 다른 상반적 특성을 보여 주기 위해 다음과 같이 두 장면을 대비시켜 설명한다. M. Foucault, 앞의 책, 265쪽
‘광기의 경우’에서는, 환영적 자주색이 나의 벗은 몸과 나의 빈곤을 덮어준다고 믿는 반면, ‘사악한 정령’의 경우에서는 내 몸과 내 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서슴지 않고 믿지 않는다. 속임수의 범위로 볼 때는 사악한 정령 역시 광기에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속임수에 관한 주체의 위치로 말하자면 ‘사악한 정령’과 ‘광기’는 엄격히 서로 대립된다.
‘사악한 정령’이 비록 데리다의 주장처럼 광기의 특성을 다시 취한다 할지라도 , 그것은 성찰의 실행이 ‘미칠 위험을 배제한 뒤’라는 사실을 푸꼬는 주지시킨다. 데카르트의 텍스트를 다시 읽으면서 면밀히 비교해 보자. ‘내가 하늘 공기 그리고 모든 외적 사물들을 환각과 꿈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때, 광인들은 자신의 환영과 꿈이 하늘, 공기, 그리고 외적 사물들 그대로라고 믿는다.’ ‘나는 나의 신뢰 속에서 어떤 오류도 받아들이지 않도록 조심할 것이다’라고 생각할 때, 광인들은 그러한 오류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교활한 기만 자를 마주 대하고 있는 ‘성찰하는 주체’(le sujet méditant)는 보편적 오류에 의해 혼돈된 광인으로서가 아니라, 언제나 깨어있는 교활한 적수로서 행동한다. 이러한 모습은 다음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나는 나의 정신을 이 거대한 기만자의 모든 계략들에 대비하여 잘 준비시킴으로써 아무리 그가 전능하고 교활하다 할지라도 나에게 아무것도 부과시킬 수 없도록 할 것이다. R. Descartes, 앞의 책, 47쪽
푸꼬는 최종적으로, 데리다가 자의 적으로 변환, 전도, 대체를 범함으로써 텍스트의 의도를 왜곡시키고 광기와 꿈의 예가 보여주는 중요성과 특이성을 놓친 것은, 그의 ‘체계’(système)에 의해서라고 결론짓는다. 즉 ‘담론적 실천들’(pratiques dicursives)을 ‘텍스트의 흔적들’(traces textuelles)로 환원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생략하고 오로지 독서를 위한 표지만을 취하며, 주체가 담론에 연루되는 방식을 분석하지 않고 텍스트 뒤에 목소리를 상정했기 때문이다. 또한 ‘담론적 실천’을 그 것이 수행되는 변형의 장 속에 놓지 않고 거기에 말해졌거나 말해지지 않은 어떤 기원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푸꼬는 논문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다소 심한 비난을 하며 끝을 맺는데, 이 부분은 나중에 삭제했다.
“ 나는 ‘담론적 실천들’의 이러한 ‘텍스트화’(textualisation) 속에 은닉되어 있는 것이 ‘형이상학(la métaphysique)이라고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더 심하게 말해서, 여기서 확연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역사적으로 잘 규정된 ‘소교육학’(une petite pédagogie)이라고 말할 것이다. 즉 학생들에게 ‘텍스트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Il n'y a rien hors du texte)라고 가르치는 교육학 말이다. 이러한 교육학은 기원의 유보를 지배한다. 여기서도 역시 존재의 의미(le sens de l'être)가 말해지는 것은 분명한 말들 속에서가 아니라 말소(rature)로서의 말들 속에서, 말들의 ‘격자’ 속에서 이다. 이러한 교육학은 선생에게 텍스트를 마음대로 재해석할 수 있도록 그의 목소리에 무한정의 절대권을 부여한다.” M. Foucault, 앞의 책, 267쪽
텍스트의 독립성을 토대로 고정된 의미의 굴레로 부터 벗어나 의미의 무한한 궤도를 달리는 차이의 이론은 차이와 비차이의 차이를 통해, 다른 형태로 동일성이나 기원을 추구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이는 또 하나의 통일 원리를 추구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설명이다.
9. 맺는말
푸꼬는 자신의 고유한 시대 구분-르네상스 시대, 고전주의 시대, 근대-에 따라 역사 시기를 구분 짓고 어떤 시대의 한 담론이 어떤 조건들을 토대로 형성되고 시대의 변환에 따라 어떤 조건들을 바탕으로 변환되는가에 주목한다. 즉 담론의 형성과 변환을 가능케 하는 ‘가능성의 조건들’(conditions de possibilité)을 밝히는 데 주력하고 이러한 탐구 방법을 ‘고고학’(Archéologie)이라고 이름 붙인다. 그는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그동안 가려진 채 소외되어 왔던 많은 영역들이 어떠한 인식 여건 속에서 타자로 규정되어 왔는가를 드러내 보이며 나아가 서구 철학사의 근저에 흐르고 있는 많은 중요한 문제들-인간, 역사, 광기, 이성, 권력, 타자 등-을 ‘바깥에서 사유’(la pensée de dehors)한다.
이 방법에서는 은폐된 의미나 심층적 진리를 드러내거나 주체에 의해 파생된 담론의 기원을 추적하려는 것이 아니라 언표 기능이 작용하는 일단의 조건에 관계된 실천의 규칙을 확립하는 데 촛점을 맞춘다. 일반 지성사가 발생, 지속, 진보, 총체성을 상정하는 반면, 푸꼬의 고고학은 일반적으로 수용된 역사를 괄호로 묶고 그러한 역사의 가정과 절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역사가의 작업과는 ‘다른’역사를 기획한다.
그는 이전의 역사가들에 의해 주어져 있는 자료들과 다르지 않은 동일한 문서들을 ‘다르게’ 읽어 내려갈 뿐이다. 즉 역사의 피륙에서 담론을 낳은 계기들을 재단하면서 그 시대의 특성을 분명하게 드러내려고 한다.
따라서 고고학적 방법으로 접근해 나간 『광기의 역사』가 궁극적으로 다룬 대상은, 광기라는 실체도, 광기라는 말에 연관된 어떤 사태들도 아니며 정신병에 대한 과학적 개념화도 아니다. 고고학적 방법을 통해 접근하려는 광기라는 대상은 그것을 둘러싸고 형성된 여러 가지 언표들이 관계 맺는 장이자 그러한 장에 영향을 미치는 가시적인 비담론적 요소들의 실천적 장이다. 푸꼬는 이러한 대상이 출현하는 규칙을 다음의 세 가지로 제시한다. M. Foucault, L'archéologie du savoir, Paris, Gallimard, Paris, 1969, 56-58 참조
첫째, ‘출현의 표면’(les surfaces d'émergence)으로서 담론과 제도적 실천 사이의 복합적 그물망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19세기 정신 병리학은 광인 가족, 인접한 사회 집단, 노동 환경, 종교적 공동체 뿐 만 아니라 예술, 성, 벌 등이 형성하는 복합적 표면에 의해 이루어졌다. 둘째는 ‘제한의 심급들’(instances de limitation)로서 광기라는 대상을 다루는 것이 사회적으로 인정된 제도들을 들 수 있다. 광기라는 대상은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와 분리 불가능한 것으로서, 19 세기 초 광기를 환자라는 규정을 통하여 정신 의학의 대상으로 정립했던 의학, 광기를 감형 요인으로 작용케 한 형법적 정의, 종교적 권위, 광기의 특권적 장소였던 문학적 담론 등이 그 예에 속한다. 끝으로 ‘특이화의 그물들’(grilles de spécification)이 있는데 이는 정신 의학적 대상으로서 광기를 분류하고, 대립시키고, 인척 관계를 맺어주고, 서로 이끌어 내도록 해주는 체계들이다. 영혼에 대한 상이한 해석들, 순환적 반복으로서의 생과 역사, 신경 생리학적 상호 관계의 놀이들이 여기에 속한다.
따라서 역사의 작업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은 ‘각 사건들을 구별함과 동시에 한 사건이 속하는 차원과 의미망을 식별하여, 각 사건의 연결, 발생의 계보를 재구성하는 일이다.’ “ 사건은 실체도 아니고, 우연한 사고도 아니며, 성질도 아니고 과정이나 절차도 아니다. 그것은 물체의 범주에 속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비물체적인 것도 아니다. 사건은 물질성의 차원에서 효과를 나타내고, 그 자체가 효과가 되기도 한다. 사건은 그 나름의 장소를 점하고 있으며, 관계, 공존, 분산, 재결합, 축적, 물적 요소의 선별 속에서 구성된다. 사건은 행위도 아니고 물질적 분산의 효과로서 물질적 분산 속에서 생산된다.”( Foucault, L'ordre du discours, 1971, Paris, Gallimard, 59쪽)
푸꼬는 지식이 단순히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의 수동적인 수용이나, 실재에 대한 관념의 표상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지 않는다. 즉, 지식 성립을 위해서는 특정 시공의 역사적 장에서 이루어지는 물질적이고 제도적인 실천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틀 속에서 이루어지는 담론은 비담론적인 것과의 관계 속에서 가능하므로, 담론이 먼저 생성된 다음에 실천이 파생적으로 뒤따르는 것이 아니라 담론 자체가 실천인 셈이다.
예컨대 부르주아적 절대 왕정의 질서 체계가 확립되던 17세기에 벌어진 “대감금”(Le grand renfermement)이라는 사건은 여러 상황과 맞물려 있다. 빈민 구호 병원(L'hôpital général)의 틀 속에 감금된 사람들은 광인들 뿐 만 아니라 병자, 약자, 난잡한 사람, 신성 모독자, 반항적 아이들을 포함하는 이질적 집단이었다. 그들의 유일한 공통적 특성은 ‘게으르다는 점’ 뿐이었다. 이 같은 특성은 당시 부르조아 사회의 윤리 의식에 위배되는 것으로 ‘심각한 결함’으로 간주되었다.
푸꼬는 ‘대 감금’이 인간의 공동체적 삶으로부터 광기를 물리적으로 배제시켰던 것처럼, 인간의 이성적 삶으로부터 광기를 개념적으로 배제 시킨 사건이 바로 데카르트의 ‘제일 성찰’에 나타난 의심하는 주체로부터의 광기의 배제라고 설명한다. 바로 이 지점이 푸꼬와 데리다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철학적 공간이다. 데리다는 지금까지 자신의 해체 전략을 통하여 서양 철학을 전복시켜온 것과 같은 방식으로 푸꼬의 방법론을 전복시키려고 시도한다. 즉, 텍스트의 일정한 규칙을 따라가면서 독해 한 뒤 자기는 말하지 않은 채, 텍스트가 스스로 자기 모순에 직면함을 보여주는 전략을 『광기의 역사』에 적용한다. 그러나 ‘데카르트적 배제’에 대한 푸꼬의 논리를 부정하는 과정에서 그는 몇 가지 오류를 범했다. 첫째, 우리는 데리다의 주장처럼, 꿈이 광기 보다 더 미쳐있다는 논리를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둘째, 프랑스어 텍스트에 의존함으로써 라틴어 텍스트에는 있지도 않은 용어에 촛점을 맞춰 반박하는 오류를 범했다.
그렇다면 푸꼬는 무죄인가? 그는 데리다가 문제 삼은 혐의로부터 얼마나 벗어날 수 있는가? 푸꼬는 데리다가 광기의 역사 전체의 의미와 기획, 그리고 본질을 단순히 그 세 페이지 안에서 포착할 수 있으리라는 소박한 생각에 빠져 있다고 비난한 바 있다. 즉 세 페이지를 통해 전체 650 페이지를 전복시킬 수 있으리라는 허망한 꿈에 사로잡혀 있다고. 그러나 푸꼬의 지적만큼 그 세 페이지가 사소하거나 미미한 부분은 아니었다(푸꼬는 그 세 페이지가 자신의 책인 광기의 역사에서는 부수적인 부분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Réponse à Derrida", in Dits et écrits, vol. 2, p.284
) 데카르트적 광기 배제라는 푸꼬의 가정은 사실상 광기의 역사 전체를 떠받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고유한 방법론인 고고학의 적용 근거로서도, 아울러 그의 주저인 『말과 사물』의 성립 근거로서도 작용한다. 왜냐하면 푸꼬에게서 고전주의 시대(표상의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로서의 데카르트는 근대의 문턱에 서있는 칸트의 철학에 대비되는 주요 인물이기 때문 이다. 『말과 사물』을 전개할 당시 푸꼬의 틀에서 보면 데카르트의 코기토 발견은 그 발견자인 데카르트의 개인적인 철학적 성취라고 보기 어렵다.“나는 생각한다(je pense)”로부터 나는“존재한다(je suis)”로의 직접적 연결고리를 찾은 데카르트에 있어서 “나는 존재한다”가 더 이상 검토되지 않은 채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에피스테메(épstémè) 속에서는 전혀 문제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칸트에 와서야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의 비판적 법정 앞에서 기소 당하게 된다. 칸트의 철학적 관점에 비추어 본다면 표상의 무비판적 수용에 기초한 철학은 독단적 형이상학이다. 그러나 푸꼬에 따르면, 칸트의 작업 또한 표상의 출처와 근원을 문제 삼음으로서 또 다른 형이상학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Les mots et les choses, Paris, Gallimard, 1966, 256쪽 참조)
이러한 문제를 접어 둔다면, 데카르트 독해에 관한한 누가 승자인가? 데리다가 바라본 서양 철학은 늘 ‘목소리’에 ‘로고스’에 관심을 가지면서 ‘글’에 대해서는 깊은 우려를 표명하는 ‘음성중심주의’ 또는 ‘로고스 중심주의’였다. 말하자면, 다른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우리의 모든 기표가 그리로 향하는 변하지 않고 의심의 여지없는 의미(선험적 기표)를 추구해 왔다. 바로 정신, 자아, 이데아, 세계정신, 신 등이 그것에 속한다. 이런 개념들은 우리의 모든 사상과 사유 체계를 형성 시킨 것이기에 그것 자체는 그 체계들을 넘어서 있다. 그러나 데리다는 이런 선험적 의미는 허구라고 비판한다. 신성불가침의 토대, 제일 원인, 또는 절대적 기원을 가정하는 모든 사유 체계를 ‘형이상학’이라고 부르며, 이런 논리에서는 늘 이분법적 대립을 상정해 왔다고 주장한다.
데리다의 텍스트론에서는 형이상학적 동일성에 의해 부차적인 것으로 배제된 ‘차이’가 형이상학에서 상정하는 기원이나 토대보다 더 근원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그렇다고 해서 ‘차이’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차이와 동일성은 서로 보충관계에 놓여있으므로 대립적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데리다의 입장에서 볼 때,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제한을 초과하고 있다. 코기토의 세계는 모든 규정된 진리를 초과해 있으므로 광기란 결국 코기토가 안고 있는 초과의 계기일 뿐이다. 따라서 데카르트적 배제의 구조는 절대적 특권이나 원형적 범례를 갖는 것이 아니다. 데리다는 광기를 철학적 배제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유 가능성의 조건들을 설정하는 형이상학적 계기로 간주하고 담론적 실천을 텍스트의 흔적으로 환원 한다. 반면에 푸꼬의 관심은, 단절적 역사 시기 속에서 사변적인 사유의 형식들이 그것을 일으키는 사회 문화적 관계의 그물망 속에 어떻게 연루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
사이드(E. Said)가 푸꼬와 데리다 사이의 논쟁에 중추적 기능을 하는 것으로 텍스트의 ‘내적 텍스트성’(internal textuality)과 ‘텍스트 외적 실재’(extra-textual reality)를 드는 것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설명이라고 여겨진다. L. McNnay, Foucault, Cambridge, Polity press, , 1994, 36쪽 참조
푸꼬와 데리다는 자신들의 철학적 입장을 충실하게 관철시키기 위해, 서로가 전통적인 형이상학의 흐름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그들은 사실상 여러 측면에서 전통 형이상학의 일반적 특성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꼬는 데리다가 형이상학이라고도 볼 수 없을 만큼의 유치한 교육학에 빠져 있다고 비난하며, 데리다는 푸꼬가 현실 존재를 가능케 하는 조건을 파헤침으로써 전통 형이상학에 함몰되어 있다고 비난한다. 아마도 이같이 서로가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따라 질주하는 것은 각자가 지닌 철학적 이념의 공약 불가능성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 문헌
Boyne, Roy, Foucault and Derrida, Unwin hyman ltd, London, 1990
Derrida, Jaque, Ècrituire et Différence , Seuil, Paris, 1967
Descartes, René, Méditations métaphysiques, Le Livre de Poche, 1990
Méditations métaphysiques, Librairie Générale Française, 1990
Deleuze, Gilles, Foucault, Les Édition de Minuit, Paris, 1986
Foucault, Michel, L'archeologie du savoir, Gallimard, Paris, 1969
, L'ordre du discours, Gallimard, Paris, 1971
, Dits et écrits, vol. 2, Gallimard, Paris, 1994
, Histoire de la folie, Gallimard, Paris, 1961
,Madness and civilization, Tavistock publications, london, 1967
Gutting, Gary, Michel Foucault's scientific Knowle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9.
,the Cambridge Companion to Foucault, "Foucault and history of madness"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4.
Habermas, Jürgen, Der Philosophische Diskurs der modern, Suhrkamp verlg, Frankfurt am Mein , 1985
McNay, Lois, Foucault, Polity press, Cambridge, 1994
Rudinesco, Elisabeth, Penser la folie : essais sur Michel Foucault, Edition Galileée, paris,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