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취재] 중국 - 봉황고성 上
-천년 세월의 고도, 봉황고성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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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신문
그곳이 사람을 이끄는 것은 우리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어떤 향수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곳을 거니노라면 구비진 골목마다 넘치는 활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다 보면 자연스레 묻어나는 세월의 더께가 흘러간 시간의 무게와 더불어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 시간과 더불어 잃어버린 것들을 향해 마음 또한 달음질을 쳐댄다.
날 위해 천년을 기다렸다는 봉황고성 마을로 진입해 들어간다. 어느 곳과 다름없이 사람 사는 활기로 넘쳐나는 길목에는 사방에 먹거리를 파는 가게에서부터 커튼을 드리운 허름한 마을 PC방에, 미용실까지 없는 것 없이 다 있다. 80년대만 해도 뗏목을 타고 나무를 하러 다니는 원주민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는 봉황고성은 아직까지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여행지이다. 중국에서 현지인들의 인기 있는 관광지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것도 불과 20여 년 전.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봉황고성은 여전히 그곳 사람들에게는 활기 찬 삶의 현장이다.
-골목 안에는 활기가 넘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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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신문
지은 지 600년 가량 되었다는 홍교(虹橋), 일명 무지개 다리 아래로 접어들면 드디어 시끌벅적한 골목길이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터번 같은 머릿수건에 전통 의상을 입은 묘족 아낙들이 팔찌, 귀걸이 등 갖가지 은 장식품과 자수품, 염색 보자기들을 펼쳐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손님을 맞이하면서도 뜨개질을 멈추지 않는 아낙들의 표정은 당당하고 씩씩하다. 한 켠에서는 엿 가닥을 늘이면서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발길이 머뭇거리는 순간에 이미 생강엿 한 봉지를 들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입 안에는 벌써 맵싸한 생강엿이 굴러다니고 있다. 찐 고구마 장사에서 군밤 장사까지 기름진 음식에 지친 입맛을 위로해 준다.
복잡한 시장 거리에는 내놓은 화덕에서 요란스레 김을 내며 갖가지 음식물이 익어 가고 있고 일하는 엄마의 등에 업힌 바구니 속 아이는 건강하고 만족한 웃음을 짓고 있다. 엄마 품에 안겨 잠들어 있는 통통하게 살 오른 아가의 푸근한 얼굴과 아이를 어르는 엄마의 얼굴 또한 지친 기색 없이 건강하다. 때로 화관을 만들어 파는 어린 여자아이들도 만나고 그 복잡한 골목 안에서 마작패를 돌리고 있는 한 무리의 여자들도 만난다. 그 모든 풍경들이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면서 온전한 하나의 그림이 된다. 그 진득한 시장바닥에서는 그 활기에 취해 어리버리 정신을 놓았다간 길을 잃고 헤매기 십상이다.
-봉황고성
봉황고성(鳳凰古城)은 중국 중부 후난성(湖南省) 서부 샹시(湘西) 토가족-묘족 자치구의 산속에 자리잡고 있는 천년 고성으로 안휘성, 절강성, 여강고성과 함께 중국 4대 고성으로 손꼽힌다. 장자지에(장가계)에서 차로 3시간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봉황고성은 오랜 시간 산으로 둘러싸여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 60여 년 전 이곳 출신 문학가이며 역사학자인 심종문의 소설 <변경도시>를 통해 소개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100년을 넘은 고옥들이 좁은 골목길을 이루며 자리하고 있고 더불어 옛 성벽과 종루, 부두와 사원들이 그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그 골목 안에 심종문의 생가도 있어 그의 저술과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 주택은 150년 역사를 가진 봉황고성의 전형적인 사합원(四合院)식 민가로 또 다른 볼거리가 되고 있다.
[현지취재] 중국 - 봉황고성 下
-또렷한 잔상으로 마음에 남는 봉황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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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신문
골목이 끝나자 펼쳐지는 타강. 그 풍경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유유히 펼쳐져 있는 타강 위로는 유람을 위한 목선들이 손님을 기다리며 흔들리고 있다. 기껏 대여섯 명이 오를 만한 작은 배를 타고 타강을 따라 흘러가 본다. 노를 저을 때마다 투명한 물 밑으로 수초들이 따라 흔들리고 저 멀리서 들리는 노랫소리와 장단을 맞추는 북소리가 타강 유람을 꿈인 양 만든다. 홍교 아래를 지나간다. 들어가면 다리 같지 않은데 실은 타강 위에 놓여 있는 다리다. 그 안에는 갖가지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고 타강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다.
타강 따라 함께 흐르다
자연스레 타강변의 풍광을 이루는 강변의 수상 고옥들. 그 진한 세월의 끈끈함이 그대로 보전되고 있는 타강변에서 시간의 무게와 아름다움을 더욱 진하게 채색해 주고 있는 것이 바로 검은 기와에 짙은 갈색의 벽이 특징인 이 고옥들, 이름 하여 조각루다. 묘족 특유의 거주 방식으로 지어진 이 수상 고옥들은 주택의 반은 지면에, 또 반은 물 위에 다리를 놓고 지어져 있는데 강변을 따라 4~500채 이상 늘어서 있어 장관을 이룬다.
지금은 대부분이 음식점이나 술집 등, 영업장소로 활용되고 있는데 음식 맛 좋은 조각루 2층의 음식점에 자리잡고 앉아 밖을 내다볼라 치면 그곳이 명실공히 리버뷰가 뛰어난 특급 좌석임을 확인할 수 있다.
강가에서 빨래를 하는 사람들, 또 그 옆에서 야채를 씻고 생선을 다듬는 사람들, 강변의 풍광들이 스치며 지나간다. 이 풍광이 오래도록 잘 보존될 수 있을까 하는 조급한 우려도 함께 스친다.
타강변의 풍경이 아름다운 것은 그저 뛰어난 자연미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 그 강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지난 사람들의 생활의 더께 위에 얹혀지면서 또 다른 감흥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며 또 다시 그것들이 강변 언저리에 함께 녹아들어 살가운 풍경을 재생산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가슴을 아릿하게 만드는 감흥에 취해 어느 때인가 내가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만 같은 착각과 근거 없는 향수에 빠져든다.
그 거리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짐수레를 밀고 있는 아저씨, 바구니를 짊어진 아주머니, 화관 파는 아이들에 관광객들까지 비를 맞으며 조급해진 발걸음을 떼어놓는다. 진해진 표정 위로 활기 찬 기운이 맴돈다. 서둘러 돌아 나오는 골목 길 한쪽에 한 어린 아이가 비를 맞으며 쪼그리고 앉아 혼자 놀이에 열중하고 있다. 들어갈 때 만난 모습 그대로 여전히 자기 세계에 빠져 있는 그 아이의 머리 위로 비가 내리고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눈을 감으니 그 골목의 묵은 때의 흔적과 세월로 착색된 강변의 조각루, 내리는 비에 더욱 선명해지던 그 성곽의 돌빛이 순식간에 온 마음과 머리 속을 뻐근하게 채워 온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남방장성
북방에 만리장성이 있다면 남방에는 남방장성(南方長城)이 있다. 후난성 샹시 봉황현에 위치해 있는 남방장성은 길이가 190km에 달하며 현지에서 나는 청석판을 이용해 축조되었다. 산 정상 기슭을 따라 자리잡고 있는 성벽 위에 서면 그 공사 규모에 새삼 놀라게 된다. 이 남방 장성은 약 400여 년 전 왕조에 순종하지 않았던 변방의 소수민족을 격리시키기 위해 쌓아놓은 것으로 성벽의 높이는 평균 3m 정도이고 병사(兵舍), 전망대, 초소, 봉화대 등이 있다. 남방장성은 묘족 거주 국경지대의 담장으로 불리우며 남북간의 무역 거래와 묘족, 한족 간의 교류 및 융합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고도 한다.
이 남방장성이 우리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2003년에 이어 두 번째로 2005 남방장성배 세계 바둑 고수 대결 한중 대국이 이곳에서 치뤄지고부터이다. 지난 9월11일 한국의 이창호 9단과 중국의 창하오(常昊) 9단이 이곳 가로, 세로 31.7m의 세계 최대 바둑판에서 공개 대국을 가진 바 있다. ‘기행대지 천하봉황(棋行大地, 天下鳳凰, 땅 위에서 바둑을 두어 천하의 자웅을 가린다)’는 이 대결에서 결과는 무승부. 하지만 친선대국의 성격으로 진행된 이 대국은 승패 여부를 떠나 하나의 획기적인 이벤트로 기록되었다.
무려 300여 평 넓이의 바둑판 위에서 소림사 무술 제자 361명이 흰옷, 검은 옷을 입고 바둑 돌의 역할을 하는 가운데 갖가지 무술 동작으로 바둑판 위를 일진, 일퇴하였다. 대형 모니터와 헬기까지 동원된 한편의 대형 이벤트였던 이 행사를 통해 남방장성을 비롯해 봉황현 인근 명소가 전세계에 소개되는 계기가 되었다.
첫댓글 사람사는 냄새가 진한 곳... 조각루와 유람선이 한폭의 그림을 만들어내는 곳... 이런곳.. 정말 원츄~원츄하는 곳 중 한곳입니다....완전 원츄~100만배...
개인적으로 물을 좋아하기때문에... 수상가옥에 대한 야릇한(?) 집착이 있습니다.. 전생에 모였는지..참.... ㅜ 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