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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우니까 시조이다.
이 봉 수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시조는 쓰기가 어렵다. 시조쓰기가 쉬우면 아무도 시조를 귀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며 시조시인은 명성을 얻지 못할 것이다. 정격시조는 드물고 사이비시조가 판을 치는 이유도 시조가 어렵기 때문이다. 어려운 것을 쉽게 쓰려고 하니 사이비시조가 나온다.
많은 시조시인들이 명성은 얻고 싶고 정격시조를 쓰기는 어려우니 사이비시조를 쓰고 변명과 이유를 남발한다.
“시조는 융통성 있는 정형시이다”, “정형으로 표현 안 되는 것은 한두 자(또는 몇 자) 가감을 해도 된다,” “표현이 어려우니 정형에 구애될 필요가 없다”, “시조의 영역을 넓혀야 한다.” “평시조는 단조로우니 사설시조나 엇시조를 혼합하여 정형에서 더 자유롭게 벗어나고 새로운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 “자유시처럼 보이게 하는 것도 시인의 능력이며 새로운 경향이다”, 심지어는 “평시조 정형만 고집하는 것은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뒤떨어지고 문학을 모르는 것이다”라는 말까지 한다.
대다수의 시조시인들은 한 자도 가감을 허용하지 아니 하는 명실상부한 정형을 고착시키는 데에는 노력을 게을리 하고 예로부터 내려온 정형을 깨면서 알게 모르게 시조 장르를 해체하는 일에는 독자보다 앞장서고 있다.
시조는 쓰기가 어려운 것이 특징이다. (역설적이지만) 어려우니까 시조이다. 문학적 평가는 차치하고 형식만 볼 때, 어렵지 않으면 사이비시조이거나 자유시이다.
시조는 그릇이 정해져 있으니 내용물이야 어떻든지 정해진 그릇으로 담아내야 한다.
종장 둘째 마디 외에는 정해진 3 또는 4자만으로 지어야 하는데 내용에 맞는 시어를 고르자니 2자 또는 5자로 구성된 마디가 섞여 나온다. 한 음보의 자리에 여러 음보가 들어앉아 자유시처럼 되기도 한다. 자유시는 모든 단어를 무제한 동원하고 여러 개의 단어를 마음대로 조립해서 쓸 수 있지만 시조는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시구의 내용을 정형으로 표현할 수 없으면 내용을 바꾸어서라도 형에 맞게 지어야한다. 주제가 시조정형에 어울리지 않으면 자유시로 써야 한다.
이에 더하여 시조 종장은 3.4조에 만족하지 않고 변화를 즐긴다. 3에서 5로 솟구쳤다가 4.3으로 바뀌어 내려온다. 마치 보통 높이로 오르락내리락하던 산이 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태산으로 솟았다가 강바닥으로 자지러지듯 하는 조화를 부리니 종장 음보를 맞추기는 더욱 어려운 것이다.
한국어는 언어의 성격상 음수가 음보를 이루는데(김춘수 저 <시의 이해와 작법> P13) 시조 음보는 3자 또는 4자로 구성된다(종장 둘째마디는 5자).
문장 속에서 2자가 3자 역할을 하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고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같은 2자라도 3자음보의 길이로 읽어도 되는 것이 있고 읽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일지(一枝)/ 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과 [누가/ 이길을 일으켜/ 나를 세워/ 줄 것인가](정완영<흩어진 눈발자국> 새시대시조 08가울호P139)에서 [일지]와 [누가]는 같은 2자 이지만 음보는 다르다.
또한 붙여서 읽는 마디가 음보임에도 불구하고 이유 없이 한 음보를 여러 행으로 갈라놓거나 중간에 쉼표(,)를 찍어 오히려 음보를 깨는 경우를 흔히 보는데 이는 음보의 기본도 이해하지 못한 소치이다.
초.중장 3.4.3.4의 리듬은 잔잔한 물결 같이 자연스럽게 强,弱의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다. 3.4조는 3.3조 또는 4.4조로 변화를 줄 수도 있지만 3.3조는 나약하고 맛이 없다. 3.4의 결합은 궁합이 맞지만 4.4 또는 3.3 결합은 男.男 또는 女.女의 결합과 같아 어딘지 어색하다.
절대 불변 이라고 하는 종장 첫째 마디 3을 글자 수 맞추기에 급급하여 억지로 만들면 얼핏 보기에는 시조정형에 맞는 것 같지만 의미가 왜곡되거나 어법이 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면, [유백의 찻잔을 만드는 어느 도공의 기도처럼](이우걸<새벽>새시대시조2008가을호P147)에서 [유백의/ 찻잔을 만드는 어느 도공]으로 읽으면 “어느 도공”이 “유백(우유색)”이 되어 의미가 왜곡되므로 [유백의 찻잔을/ 만드는 어느 도공]으로 읽어야 하는데 이는 종장정형이 아니다. 또 [이여사, 이여, 이여사, 뱃물질도 숨 겨운데](윤금초<비양도 물길>새시대시조2008겨울호P163)는 첫 구가 3.2.3자로 종장정형이 아니며 크게 양보하여 [이여사/ 이여 이여사]로 읽더라도 일반적인 어법이 아니다([이여사 이여/ 이여사]가 일반어법 임).
종장 둘째 마디는 5자 이상 7자까지 또는 8자까지 허용된다고 논자마다 다른 주장을 하며 작품마다 자수가 달라 정형이 없다. 종장 3.5.4.3의 구성은 다른 어떤 자수의 구성보다 합리적이며 예술적인데, 첫째 마디 3자만 맞추고 둘째 마디는 엿가락 늘이듯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하는 것은 음수를 맞추기 어려우니까 구차스럽게 편법을 쓰는 것이 아닌가 싶다. 종장 둘째 구 4.3도 3.4 또는 4.4로 변형해서 쓰는데 3자 또는 4자음보를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쉬운 대로 묵인하더라도 이것이 원칙이 될 수는 없으며 따라서 언젠가는 종장전체를 원래의 모습대로 3.5.4.3 자수정형으로 굳혀야 할 것이다.
시조의 首, 章과 句는 자수형식뿐만 아니라 의미형식도 갖추어야 한다. 2음보는 1구로, 2구는 1장으로, 3장은 1수로 질서 있게 의미의 결합을 이루어야 한다. 의미가 맞지 않는 시어를 억지로 결합시켜 놓은 구 또는 장은 생선뼈같이 목에 걸려 제대로 넘어가지 않으니 독자들이 애를 먹는다.
이와 같이 시조는 자유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쓰기가 어렵고 까다로운 것이 사실인데 어렵다고해서 정형이 아닌 사이비작품까지 시조의 반열에 올려놓고 영광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하 08년 4/4분기 이후 시조단의 모습을 대강 훑어본다.
1. [월간문학]의 작품들
(1) 08.10월호
시조 9편중 [어느 산골 외딴집](최윤표)은 3수의 연시조이지만 한 음보도 어긋남이 없는 정격시조이고 나머지 8편은 파형시조이다.
파형된 음보 중 특히 3자음보의 길이로 읽혀질 수 없는 2자음보 또는 1자음보만 추려내 본다.
-[나무에게](김월준) 첫째수 중장 : 멋지게/ 한번// 걸어나와/ 보게나
-[요란 침묵](白利雲) 초장 : 갑자 을축/ 지나/ 하나 둘/ 사라진 봉분// //
-[봉선화 4제(四題)](전병택) 3.회억(回憶)중장: 그날의/ 피울음이/ 상기/ 꽃잎에 젖고//
-[남정강.158](金海錫) : 첫째 수 초장 : 강은/ 늘/ 깨어 흐른다// 칠흑의/ 어둠에도// //
(2) 08.11월호
시조 13편중에서 3편의 정격시조를 발견한다. 누구에게나 똑 같이 어려운 시조를 이 시인들은 어떻게 정격으로 썼을까?
강가에서
양혜순
강둑에/ 다가서면/ 병풍 같은/ 물안개/
바람이/ 밤을 새던/ 갈대숲이/ 있었고/
숨결이/ 고운 물새는/ 물거울 위/ 떠 있다/
한 소절의/ 시로 오라/ 강변의/ 내 사람아/
눈썹 같은/ 초승달이/ 어울리면/ 좋겠다/
가만히/ 가만히 걷자/ 한 나울의/ 추억따라./
생(生)과 사(死)
이들샘(본명 이흥우)
부싯돌/ 불빛같은/
인생 삶/ 찰나인가/
그토록/ 눈부셨던/
죽순 같은/ 열정도/
한순간/
참바람 앞에/
뼈다귀만/ 보이나/
분수
양계향
위를 보고/ 살리라/
뻗어 보고/ 싶어라/
쉬임없는/ 몸부림/
시지프스/ 신화인가/
자연의/
순리를 따라/
다소곳이/ 숙인 고개./
이 3편의 정격시조는 내용면에서도 시상이 선명하고 시적표현이 뛰어나다. 정형을 지키면 제대로 표현을 할 수 없다는 변명들을 부끄럽게 한다.
거미망의 kwm.www
-꼬마호랑거미에게
이상범
거미도/ 동서남북/ 방향표시/ 하고 산다./
각 방위마다/ 새긴/ 거미망의/ 영문 부호/
그 하얀/ 기호의 약자/ 거미만이/ 아는 비밀./
아침 안개 매단/ 이슬 집이/ 환히/ 드러나면/
거미는/ 가까운 곳/ 나뭇잎 속/ 숨었었다/
맑은 날/ 호랑거미 한 마리/ 붉고 노란/ 줄무늬./
케이 더블류/ 엔 점,/ 더불유/ 더블유/ 더블유/
꼬마 거미/ 생존의 망/ 수신의 망/ 발신의 망/
세계에/ 귀를 열고서/ 소통하는/ 거미 왕국./
이 작품은 3.4조 음보를 일탈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며 수의 구별도 없어 1연 9행의 자유시에 불과하다. [케이 더블류 엔 점, 더불유 더블유 더블유]는 몇 음보인지 물어 보고 싶다.
한 잔 술에도
이갑상
한 잔 술로/
첫사랑에/취했다/ 443
내가슴/ 파고들어/
첫키스를/ 안겼다/ 3443
한 잔 술/
이별의 눈물/흘렸다/ 353
그녀의/ 슬픔과/ 침묵은/ 깊었었다/ 3334
운명적인/ 후회도/ 두렵지/ 않았던가/ 4334
그녀의/ 가슴 한가운데/
큰구멍 하나/ 있었다/ 3653
한 잔 술에도/
그녀는/ 실컷/ 울고 있었다/ 5325
영원히/ 잠들고 싶은가/
또/ 우는가/ 3613
술 한 잔/
사랑은 아픔/
또/ 눈물로도/ 보았다./ 35143
이 작품의 음보와 음수는 전혀 시조가 아닌 자유형이다. 수장의 구별도 없고 행갈이를 한 이유와 근거를 찾을 수도 없다. 정형을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시상이 단조롭고 시적논리가 없다. 모양만 연,행을 갖추었을 뿐 현세어로 서술한 산문에 가깝다.
(3) 08.12월호
시조 8편중에서 3수 연시조인 [산사(山寺)의 만추(晩秋)](곽은녕) 외에는 정격시조가 없다. 심한 변형시조는 없고 한두 음보 파형으로 그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산까치 부부](황몽산)의 둘째수 종장 [온기를 잃은/ 이웃들에게/ 웃음꽃을/ 선사한다.]는 시조종장이 아님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4) 09.1월호
시조 9편중 [말](홍오선), [불면(不眠)은 더음이라](김의식), [가을에 떠난 임](박영록) 등 3편은 정격시조이고 다른 6편은 파형시조이다.
불안
조영일
지구에 넘치는/ 사람 가운데/
나도/ 한 사람/
같은/ 사람으로/ 얽혀/ 살아가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혼자 사는/
일이다./
바람이/ 부는 날은/ 깃털처럼/ 날으며/
숱한/ 사람의 이름/
닦아/ 날 비춘다/
막막한/ 세상 건너는/
두려움의/
탓이다./
3.4조를 벗어난 파형이 한두 군데가 아니며 수의 구별을 없애고 1연 12행의 자유시로 짜 놓았다. 시상이 평범하고 표현이 애매하다. [혼자 사는 일이다.]는 무엇이 혼자 사는 일인지, [막막한 세상 건너는 두려움의 탓이다.]는 무엇이 두려움의 탓인지 시적논리가 부족하며 [숱한 사람의 이름 닦아 날 비춘다]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5) 09.2월호
시조 14편중 [겨레문학 사랑](李又載), [2월](유자효), [겨울치악산](원수연), [윷놀이](남궁경숙), [섬 동백꽃](고응삼), [나팔꽃](박재곤), [원소리 벌업 마을에는](김영석(송파)), [몽고반점](배상섭) 등 8편은 정격시조이고 나머지 6편은 파형시조이다. 정격시조들이 밀려났던 제자리를 되찾은 듯 대거 출현하였다. 경하할 일이다.
밤빗소리
김영환
오소서 나리소서 머나먼 천애수*여
오실 길 구겨질라 바람 한 점 없으신가
이 한밤 주룩주룩 읊고 시원히도 헹구시네.
불볕에 시달리다 목메인 이 땅인데
나직이 노날처럼 밀물져 오는 비가
어둠에 겨워 넘는 밤 풀벌레도 울음 멎나.
이어서 들려온다 소쇄*한 그 빗소리
훨훨/ 벗어 놓고/ 소리치며/ 덩실 출가/
가로등 빗질하는 단비 나뭇잎도 금빛이네
아,/ 이 밤/ 씻는 소리/ 가을이/ 오는 소리/
겨울. 봄. 여름. 가을/ 돌고 도는/ 연자맨가/
천혜여! 이 땅을 사는 무리 길이길이 누려야지.
* 천애수(天涯水): 하늘가의 물.
* 소쇄(瀟灑): 기운이 맑고 깨끗한.
이 작품은 4수의 연시조로서 부분적으로 파형을 범하였으나 목 타는 가뭄 끝에 시원스레 퍼붓는 밤비를 잘 그려낸 작품으로 문학성이 뛰어나다. [이 한밤 주룩주룩 읊고 시원히도 헹구시네.] 절창이다.
셋째 수 중장의 [훨훨]은 2자음보이나 3자음보의 길이로 읽어야 하므로 전혀 손색이 없다. 넷째 수 초장 첫 구 [아,/ 이 밤/ 씻는 소리]는 3음보가 되어 파형을 범하였고, 중장 첫 구 [겨울. 봄. 여름. 가을]은 2음보의 자리에 4음보가 들어 앉아 정격시조의 자격을 상실하였다. 아까운 일이다.
(6) 09.3월호
시조 12편중에 정격시조는 한 편도 없다.
봄날, 간지러움
한분순
밤내/ 헝클어진/ 마음결/
곱게 빗어/ 찰랑인다/
봄볕/ 머리에 이고/
따뜻이/ 달아오른 눈매/
바람에/ 물든 얼굴이/
꽃보다/ 부끄럼 탄다./
앉은 키,/ 발 끝 간지러운/
보랏빛/ 제비꽃도/
가만/ 고개 내밀어/
바깥녘/ 살피는데/
어린 눈/ 마른 가지 비집어/
기지개 켜는/ 이른 봄./
파형된 음보가 하나 둘이 아니다. 首의 구별도 없이 6연(수의 구별이 있어야 章이라고 할 수 있음)을 같은 무게로 늘어놓았다.
[밤내]는 3음절의 길이로 읽을 수 있지만 [봄볕]과 [가만]은 그렇게 안 된다. [가만]은 [가만히]를 자수 맞추기 위해서 억지로 구겨 넣은 감이 있다.
절기의(節氣)의 시
이상룡
입춘(立春)에서/ 망종(亡種)사이/
해와 달이/ 돌고 돌아/ 한 해가/ 이십사 절기/
봄 오는/ 입춘이라/ 입춘방(立春榜)/ 써 붙이고/
우수절(雨水節)/ 봄비가 풀리고/ 개구리/ 눈 뜬다(驚蟄)/
해가 길어지는/ 춘분절(春分節)/ 농사일/ 청명절(淸明節)에/
빗줄기/ 굵어지고(穀雨)/ 여름 소식/ 앞을 선다(立夏)/
소만(小滿)엔/ 모내기 준비/ 씨 뿌리는/ 망종 시절./
(6연중 2연만 발췌)
엇시조와 평시조의 결합인가? 엇시조라면 시어 선택의 폭이 넓으니 시조쓰기가 쉽겠다. 그러나 거의 사라진 엇시조가 평시조와 섞이는 것은 벼논에 피가 섞인 것과 같다.
영일만 달빛
이도현
꼭/ 40년 전/ 오늘/
결혼/ 첫날밤/ 14223
초가집/ 창가에 떠/
축복해 주던/ 달빛이/ 3453
영일만 해변/ 처마 끝에서/
가만가만/ 속삭인다./ 5544
(둘째수 발췌)
[40년 전 오늘..]은 개인의 일기이다. 독자와 공유하지 아니한 경험은 작자만의 사생활이므로 흥미가 없다.
이 작품은 파형음보가 많고 절대적이라고 하는 종장 첫 음보 3도 맞지 않아 시조라고 볼 수 없다. [영일만 해변 처마 끝에서]는 [영일만 해변]은 있어도 [해변 처마]는 없기 때문에 [영일만 해변/ 처마 끝에서]로 읽어야 한다.
2. 계간지의 작품들
(1) [계절문학]
월간문학의 연장판인 계절문학에서도 정격시조는 극히 드물다. <08겨울호>와 <09봄호>를 통 털어 24편 중 [옥녀](최도열), [학봉 선생 구택](이수용), [바위를 읽다](진용빈) 등 3편만 정격시조이고 나머지는 정격시조의 반열에 들 수 없거나 결함이 있는 작품들이다.
음보율이 맞지 않는 작품은 부지기수이고 의미 문체의 오류를 범한 작품도 있다.
[땀이 벤 고운 삶은](08겨울호 노종래 작<마지막 잎새>)은 [땀이 밴 고운 삶은]으로, [... 들판이 형장(形場)인 양 누웠다](09봄호 우숙자 작<분계선에 서서>)는 [... 들판이 형장(刑場)인 양 누웠다]로 되어야 의미가 맞을 것이다.
[양탄자 타고/ 내려올수록/ 안겨지는/ 한 옛날의 숲/](09봄호 이준섭 작<푸른 나라 안겨 주는>첫째수 종장)은 종장정형으로 볼 수 없고 음보율이 맞지 않다.
[물러앉으면/ 만 리 밖 고향/ 다가앉으면/ 귀엣말 새악시/](09봄호 이희춘 작 <들국화>둘째수 종장)는 아예 종장정형을 모르고 쓴 작품이다.
(2) [새시대시조]
<08겨울호>
환영(幻影)
김숙현
비 오는 오후 세시
산이 번져 강이 된 날
회색빛
사내 하나
건널목에 서 있다
청청한
유월의 가로수
아뜩한 침묵 아래.
때는 6월 어느 날의 오후 3시, 뿌옇게 비가 오니 주위가 조용하고 화선지위의 동양화 같이 산이 강으로 번져버려 잘 보이지 않는다. 건널목에 있는 가로수가 마치 한 남자가 길을 건너려고 서 있는 듯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45자의 짧은 정형에 많은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도 서정적으로 잘 전해주고 있다.
소나기
배종관
뜨겁게 달아 오른
대지의 거친 숨결
산 너머 들려오는
앙갚음의 신음소리
어둠에
부딪친 칼날
원한 맺힌 섬광들.
시커먼 구름 덮어
한 하늘 무너지니
초목들 푸른 함성
천지를 울려 놓고
하늘은
창문을 열어
무지개를 펼친다.
뜨거운 대지 위에 천둥번개가 치고 소나기를 퍼부으니 초목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고 이내 칠색 무지개가 선다. 통쾌하다.
큰 몽둥이를 휘두르듯이 시구가 굵고 힘이 있다. [뜨겁게 달아 오른] [거친 숨결] [앙갚음의 신음소리] [부딪친 칼날] [원한 맺힌 섬광들] [한 하늘 무너지니] [창문을 열어] 등 시어는 굵은 소나기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게 한다.
한 자도 어긋남이 없는 정형으로 음보율이 만점이며 내용 또한 가작(佳作)이다.
이에 비하여 [성산일출봉](손수성), [감이 익는 마을](유상용), [고물(船尾)](강수성), [대안(對岸)](강수성), [교체(交替)](리강룡), [섬마을 선창](姜洋基), [갖바치의 아들](姜洋基) [어느 자화상](양점숙), [어떤 축제](양점숙)등 작품은 3.4조를 벗어난 음보가 너무 많아 시조라고 보기 어렵다.
[독도](홍윤표)는 초장 [동해에 환하게 꽃 핀/ 섬을 독도라네]에서 구의 의미정형이 맞지 않으며, 중장 [한국인 섬기는 섬] 종장 [충절이 지극한 꽃 섬] [대한해협의 효자라네] 등은 시적 논리가 없는 표현이며 특히 독도가 대마도 근처(대한해협)에 있는 섬으로 잘못 알고 쓴 작품이다.
[노숙자의 길](김 산)은 첫째수 종장을 [차라리/ 내 가진 것/ 다 주고 나면/ 펴질까./] 라고 하여 종장 둘째 음보 4자는 시조가 아님을 모르고 쓴 작품이다.
<09 봄호>
안타깝게도 정형을 제대로 갖춘 시조는 드물고 사이비시조가 도처에 널려 있다.
대표적인 변형시조로 [곰나루에서](안영준). [영축산 화엄길](황다연), [이끼 꽃](김창현), [덕유산설천봉 상제루](김창현), [정물](양점숙), [채석강에서](김기옥), [동백이 지기까지는](김기옥), [가삼으로 만든 차](이은국), [한 폭 그림](강수성)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이끼 꽃
김창현
푸른 그늘/ 그믐처럼 겹겹 어두운/
축축한 땅거죽/ 한 치 끝자락/ 4965
수꽃 암꽃/ 제 몸 따로 우뚝 서/
망초 꽃을 그리나/ 햇살이 그리운가/ 4777
움 추려/ 상처 위 올라앉은/
반 뼘 흐른/ 비지 땀./ 3743
오그리고 오는/ 어두운 밤도/
산 까치 새끼들/ 목 쉰 숨소리/ 6545
움켜잡던/ 갈라진 살점 비집고/
꿈꾸는 초록 세상/ 핥으며 뱉으며/ 4876
저 산 빛/ 빛바랜 동학사 뒤 켠/
그림자 껍질/ 일어섰나./ 3854
시조 정형과는 거리가 멀다. 시어들이 서로 호응하지 않고 제각각 움직인다. 기승전결(起承轉結)의 흐름을 짐작해 볼 수도 없는 동문서답들이다.
(3) [시조문학]
<08겨울호>
시조문학 <08겨울호>는 사이비시조가 많고 시조단의 오염이 심하기로는 최악의 상황이다.
거의 대부분의 작품이 3.4조를 일탈하고 있지만 [감자를 캐며](김성숙), [민속마을 연엽주.1](홍병선), [만전당 홍가신](홍병선), [물대포](곽영기), [고양이 오브 뮤직](노창수), [만추.2](리강룡), [생수(生水)를 위하여](리강룡), [쟈모스의 소녀](림혜미) 등 작품은 특히 심하다.
한 편 종장 첫마디 3도 지키지 못하거나 둘째마디 5를 4로 쓴 변형시조도 있다. 이런 변형을 거리낌 없이 쓰는 것이 새로운 시도인가? 아니면 몰라서 그런 것인가?
황혼길 (김숙선)
첫째수 종장: 떠밀지 마 오/ 어차피/ 붙잡아도/ 가야할./
가을밤의 계시 (정하경)
둘째수 종장: 애석타/ 무딘 귓전/ 사투리로/ 맴돌 뿐/
3자 1음보를 한 자씩 행갈이 하여 3음보를 만든 것도 있다. 3434의 4음보자리에 111 434의 6음보가 들어 앉아 있다. 시조 1수가 12음보인 것도 모르고 쓴 작품이다.
한 ! (김숙선)
초장: 겹
겹
이
쌓아 올린
해묵은
사연들을
작품 [한 잔 술에도](이갑상)는 위 월간문학 08.11월호와 시조문학 08겨울호에 동시에 실렸다. 이중투고된 작품이 여과 없이 게재되어 독자를 어지럽힌다.
완벽하게 정형을 갖춘 작품이 드물다. 대개의 경우 파형이 심할수록 문학성이 뒤떨어짐을 발견한다.
사이비시조의 홍수 속에서 정형에 충실하며 읽기 쉽고 독자의 공감을 살만한 작품을 어렵게 찾아낸다.
봄비. 2
박필상
드디어 땅과 하늘
접속이 이뤄지다.
채널도 주파수도
아예 없는 무한 소통,
완전한
교감 뒤에야
풀씨 하나 앉히다.
설록차의 다향
정정배
섬진강 안개 품고
다도해 너울 모아
눈(雪) 속에 틔운 새싹
향기로 가득 채워
가마솥
열정을 달궈
혀 속에다 녹여 본다.
<09 봄호>
비교적으로 정격시조가 많아 다행이다. [새생명의 아침](김영배), [속중(俗衆)들의 머리 위에](김영배), [금강산을 찾아가니](조은철) 등 작품은 파형이 심하고 [사랑.2](이선희)는4장 변형시조이다.
종장 첫 음보를 4자로 하여 시조의 자격을 잃은 작품도 보인다.
겨울고목 (정재열)
첫째수 종장: 잎 떨구듯/
번뇌 떨치고/
동안거에/ 들었는 듯!/
둘째수 종장: 후려치는/
바람죽비에/
풀린 화두/ 다잡는 듯!/
역시 정형을 잘 갖춘 작품일수록 문학성도 뛰어나다. 음보율과 자수율은 물론이고 의미율까지 짜임새 있게 갖춘 작품을 본다.
은장도
함세린
귀뚜리 우는 이밤
속울음 삭혀내고
그믐달 지는 서녘
날세워 품었었지
일순간
한 획을 긋고
찔러오는 별똥별
단풍
최영균
온 산하 삶의 노래
아롱져라 칠보 엽서
잎잎에 새긴 사연
둘둘 말아 봇짐 메고
홀로 갈
먼 나그네 길
가며 쉬며 보고지고
채소가게 그 할머니
-재래시장에서
김월한
경계없이 얼기설기
펼쳐 놓은 좌판가게
오늘도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않아 있다.
얼마를
또 얼마를 팔아야
한 목숨을 지킬런지.
3. 중앙시조백일장의 작품들
(1) 08.10월 (심사위원: 정수자, 권갑하)
<장원> 가방별빛(이순권): 1음보를 파형한 것 외에는 3수 정격연시조이다.
둘째수 중장: [내 대신/ 입은 생채기,/ 그 아픔/ 추스르며]
<차상> 진주 남강(이정홍); 4수 연시조이나 파형음보가 9개나 있어 정형이 크게 훼손된 사이비시조이다.
<차하> 비 그친 오후(장은수): 새의 집, 빈 집, 낯선 얼굴 등 3편의 작은 시를 모아 비 그친 오후를 묘사하고 있다. 시조 정형을 잘 갖추고 있다.
(2) 08.11월 (심사위원: 정수자, 권갑하)
<장원> 빈 뜰에서(김숙향): 3수 연시조로 외형상 정형을 갖추었으나 셋째수 종장 [유년의 그 별/ 살며시/ 새벽이슬/ 젖는다]는 의미상 정형을 일탈하고 있다. 가을, 저녁, 새벽을 순차로 묘사하며 빈 뜰의 정감을 살리고 있다.
<차상> 소행성B612에 보내는 편지(모정희): 3수 연시조로 거의 정형을 갖추었으나 [소행성 B612] [스물일곱 어느날] [마흔 넷 가을] 등 작자만이 아는 사실 또는 의미를 서술하고 있다. 작자만의 경험적 사실을 독자가 읽고 이해해 달라는 주문에 다름 아니다.
<차하> 단풍(강선애): 3수 정격연시조이다. 시상이 산만하고 추상적이다.
(3) 08.12월 ; 연말 대상으로 가름하였다.
(4) 09.1월 (심사위원: 정수자, 강현덕)
<장원> 양파를 까면서(유선철): 시조정형을 갖추었으나 수의 구별을 없앤 1연 9행의 자유시를 만들었다. 제목을 그냥 [양파]로 함이 어울리는 내용이다.
<차상> 천마도 장니(天馬圖障泥)(배종도): 1음보를 제외하고 정격을 갖추었다. 그러나 일반 독자가 접하기 어려운 구석진 곳에 버려져 있는 사물을 끄집어내어 혼자 아는 체하고 쓴 작품은 독자를 위한 작품이라기보다 작자나 심사위원을 위한 현학적(衒學的)작품임을 알아야 한다.
<차하> 겨울 소래포구(정영화): 비교적으로 파형이 적으나 시조의 수구분이 없는 1연 12행의 자유시이다.
(5) 09.2월 (심사위원: 정수자, 강현덕)
<장원> 빈문서1(박은선): 수의 구별이 없는 6연 9행의 자유시이다. 4음보 파형을 범하였다.
<차상> 섬진강 봄(서문기): 3수 연시조로 1음보 파형을 범하였다.
<차하> 밭두렁 태반(엄미영): 1음보 파형을 범하였지만 3수 연시조로, 밭두렁을 태반으로 비유하고 어머니를 회상하며 모진 추위 이겨낸 봄의 정경을 잘 그려 내고 있다.
(6) 09.3월 (심사위원: 정수자, 강현덕)
<장원> 언덕(오영민): 기본 음보율은 잘 갖추었지만 수의 구별을 없애고 6연 12행의 자유시구조로 짜고 있다.
<차상> 행진(송영일): 1연 12행의 자유시형이며 4음보의 파형을 범하였다.
<차하> 수런거리는 덩굴손(조민희): 수의 구별이 없는 1연 16행의 자유시이다.
[맺는 말]
일간지에서 유일하게 신인을 선발하는 중앙시조백일장은 보배로운 시조마당이다. 그 취지와 가치를 살리지 못하고 사이비시조를 선발하면 신인들을 오도하고 시조정형을 깨는 역할을 하게 됨으로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다. 신인들이 파형을 범하는 나쁜 습관을 들이면 어려운 정격시조는 영원히 쓸 수 없게 될 것이다.
(끝)
* 새시대시조 09여름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