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김수민이 누군가
한동안 공천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요란하더니 4.13 총선이 끝나기 무섭게 흐지부지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요즈음 정치권이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공천 개혁은 잠시 떠들다 말 사안이 결코 아님을 새삼 절감한다. 정말 가관은 소동의 진앙이었던 새누리당이다. 총선 참패로 직결된 막장 공천을 반성하는 기미가 눈곱만치도 없다. 괜한 트집으로 멀쩡한 이들을 내쫓고도 모자라서 그들이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뒤에도 복당시키지 않겠다고 몽니를 부린 것부터가 여간 밉상스럽지 않다.
제2당을 감수하면서까지 복당을 한사코 막으려던 이유는 뻔하다. 바로 당권이다. 그 당권 싸움의 한복판에 친박(親朴)이 있다. 당권을 친박이 잡아야 하니 마니로 새누리당은 목하 내전 상태다. 총선 참패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든 상관할 바 아니고 필요하다면 정권 재창출까지도 포기할 태세다. 어떻게든 당권을 잡아서 다음 총선에서도 공천권을 제멋대로 휘두르자는 속셈이다. 이제 친박은 친노(親盧)와 더불어 대한민국 정치를 망치는 패권주의의 양대 진상으로 자리매김한 느낌이다.
까딱하면 국민은 ‘공천 학살’이란 후진 정치를 4년 뒤에 또 구경하게 생겼다. 2008년 총선 당시 친이(親李)계의 공천 학살에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며 통탄해 마지않던 박근혜 대통령도 막상 당권을 잡은 2012년에는 똑같은 공천 학살로 앙갚음했고 새누리당의 공천 막장극은 올해에도 어김없이 되풀이됐다. 현재의 공천제도로는 누가 당권을 잡아도 마찬가지란 얘기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다른 당들도 공천 잡음이 끊이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국민의당 김수민 의원의 홍보비 리베이트 사건은 공천 개혁의 필요성을 웅변으로 입증하는 또 다른 사례다. 국민의당이 일으켰던 총선 돌풍은 어느새 온데간데없고 “이게 새 정치냐?”는 힐난이 빗발친다. 흥미로운 것은 사건의 진상이나 이번 사건으로 당대표에서 물러난 안철수 의원의 대권 행보보다는 김 의원의 정체를 더 궁금해 하는 이들이 꽤 많다는 점이다. 이들의 질문은 간단하다. “도대체 국회의원 김수민이 누구냐?”
김 의원의 증조부 형제가 청주 지역의 저명한 육영사업가였고 아버지가 신한국당(새누리당 전신)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잠깐 지냈다지만 정작 본인은 알려진 게 별로 없다. 숙명여대 시각영상디자인과를 나왔고 ‘브랜드호텔’이란 소규모 디자인업체 공동대표였다는 게 전부다. 국민의당이 만 서른 살도 채 안 된 그를 비례대표 7번에 앉히고 홍보위원장이란 중책을 맡긴 배경도 석연치 않다. 원래는 당 중진이 숙명여대 김모 교수를 추천했으나 김 교수가 본인은 고사하고 대신 제자인 김 의원을 밀었다는 대목에서는 기가 찰 따름이다.
김 의원이 선량(選良)감인지 아닌지는 전혀 검증된 바 없다. 그러나 리베이트 의혹을 조사받느라 검찰청을 드나드는 그를 보고 ‘저런 친구가 국민의 대의기관이란 말인가?’라며 허탈감 내지 배신감을 느낀 이가 한둘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자질이 의심되는 국회의원이 비단 김 의원 혼자가 아니며 특정 정당에 국한된 현상도 아니란 사실이다. 새누리당이든, 더불어민주당이든, 국민의당이든 사정은 오십보백보다.
이 모든 폐단은 권력자가 공천권을 맘대로 주무르는 데에서 비롯된다. 결국 공천권 독점이 만악(萬惡)의 근원인 셈이다. 권력자의 눈에만 들면 비례대표쯤은 떼어 놓은 당상이고 지역구도 걸핏하면 ‘물갈이’니 ‘전략 공천’이니 하며 자기 사람 심기 바쁘다. 정치신인과 각계의 전문가 발탁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주장은 그럴듯하게 포장된 권력자의 궤변일 뿐이다. 미국에서는 물갈이나 전략 공천, 또는 비례대표가 없어서 우리보다 정치신인이 안 나온다고 우겼다간 망신만 당하고 말 게다.
공천권 독점은 독재정권과 ‘3김(金) 시대’에도 횡행한 우리 정치의 고질병이다. 다만 그때에는 각 진영에 범접하기 어려운 ‘주군(主君)’이 버티고 있어 잡음이 적었을 뿐이다. 이런 공천을 거친 국회의원들이 정치를 제대로 할 리 만무하다. 권력자 눈치 보느라 민생은 거들떠볼 겨를도 없다. 권력자에 대한 충성이 소홀했다간 다음 선거의 공천을 보장받지 못하므로 어쩌면 당연한 처세술인지도 모른다.
공천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공천권을 국민이 행사하면 계파 정치는 저절로 사라지고, ‘망나니 칼춤’이나 추는 공천관리위원회는 쓰레기통에 처박힐 것이다. 조작 논란이 끊이지 않는 여론조사 방식 경선은 미국식 예비선거제도로 전환하고,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는 비례대표제는 아예 없애는 방안을 검토할 때다. 어영부영하다 다음 번 총선도 후진 공천제도로 치러선 안 된다. 제20대 국회는 다른 무엇보다도 공천 개혁의 법제화를 최우선 안건으로 다뤄야 한다. |
필자소개 이도선 ( yds29100@gmail.com ) 언론인,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 편집위원, 운영위원 백석대학교 초빙교수 (전) 연합뉴스 동북아센터 상무이사 (전) 연합뉴스 논설실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워싱턴특파원(지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