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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녀석 이랑 함게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을 찾아 갔다.
대전 엑스포 박물관 입구 놀이 시설 이용료를 제외하곤 입장료가 성인 1000원 어린이 500원
자기부상열차를 이용하면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을 관람할수있는데 1993년 8월부터 11월까지 개최되었던 대전세계박람회 폐막 후, 박람회 부지를 과학공원으로 조성하였습니다.
입구부터 과학박물관의 모습은 웅장하였읍니다.
보리고래뼈 구조 전시물
보리고래뼈 실물크기라는데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공용 거대한 커기에 놀랍습니다.
이번엔 자기 부상열차 타러 갑니다. 시간대별로 운행 시간표가있어 미리 예약을 해야 승차할수 있습니다. 방문 하시기 전에 휴무일 정검이 필요하겠네요
기관실은 열차 윗부분과 아랫부분에 자그마하게 설치가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편도 1km라는 초단거리 운행이라 할지라도 열차는 열차이기에... 일반 전동차에 있는 장비들은 다 갖춰져 있더군요
열차 시간이 되어 안내에 따라 플랫홈으로 올라갔습니다. 2량 1편성의 귀엽게 생긴 자기부상열차가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더군요
좀처름 관심을 가지지 않던 아들녀석 자기부상열차 시동을 거니까 호기심이 발동 합니다
과학공원역으로 출발 ! 부웅~~ 공중에 떠서 달리는 자기열차 승차감은 아주 좋았습니다.
자기부상열차는 9월 중순까지는 무료로 운영되며, 10월부터는 탑승 요금을 지불하는 유료로 운영됩니다.
살살달래며 사용하던 디카를 아들녀석이 줌을 잡아 당기다가 그만 에라~~가나서 더이상 사진은 담을수 없었답니다. 아들 손에 들어가면 성한 물건이 없지만요~
과학관역으로 출발 ! 자기 부상 열차를 타고 가야 하는데...
그냥 과학 공원에서 나왔더니 교통이 불편 하더군요
다리에 한밭식물원 안내판이 눈에 들어와서
아들한테 가보자고 달래도 싫타고만 도래질 하는 아들이 야속 하였어요
택시를 타고 버스터미널로 와서 7시 20분발 버스를타고 서울로 돌와 왔습니다. 모처름만에 많이 걸었더니 다리가 무지 아픕니다.
2008년 6월 29일 일요일
아래는 인터넷 정보 검색하였네요
대전역에서 버스 185번과 513번을 타시면 돼요 버스 185번 : 구즉-대덕대학-엑스포과학공원-대전시청-대전역-동구보건소 (운행간격 17분) 버스 513번 : 엑스포아파트-엑스포과학공원-정부종합청사-남선공원-도청-대전역-옥계동(운행간격 10분)
1993년 세계 박람회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대전 세계 박람회(大田世界博覽會)는 1993년 8월 7일에서 11월 7일까지 대한민국 대전광역시 대덕연구단지 내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로, 대전엑스포(Expo 1993 Daejeon)라고도 한다. 대한민국이 처음 국제 박람회 기구의 공인을 받아 개최한 박람회이며 주제는 ‘새로운 도약에의 길’, 부제는 ‘전통기술과 현대과학의 조화’와 ‘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재활용’이었다. 태극을 변형한 엠블럼과 마스코트 ‘꿈돌이’가 상징이었다. 꿈돌이는 후에 대전광역시의 공식 마스코트가 된다. 세계 108개국과 33개 국제 기구, 대한민국의 200여 개 기업이 참가했다. 정부와 민간을 합쳐 1조 8천억 원을 들였고 1450만 명이 관람했다.[1] 박람회가 끝난 이후 박람회 시설은 엑스포 과학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개장했다. [편집] 개최대한민국은 제24회 하계 올림픽을 개최한 1988년 말에 박람회 준비를 시작했고, 1989년에 대통령 노태우가 개최 의지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국제 박람회 기구의 공인을 받기 위한 교섭 활동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개최 신청 기간(5년)이 촉박하고, 비용 문제 때문에 국제 사회의 여론도 부정적이어서 1992년부터 1995년까지는 세계 박람회를 개최하지 말자는 말도 있었다. 대한민국 법률 자문들의 의견도 비관적이었다. 대한민국은 부유한 선진국 위주의 축제였던 세계 박람회에 이제는 개발도상국의 참여도 이끌어 내야 한다는 점을 일깨우고, 대한민국이 당시 경제 협력 개발 기구에 가입하기 위해 교섭하고 있었던 점을 내세워 선진국과 개도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방식으로 국제 박람회 기구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박람회의 주제로 채택된 ‘새로운 도약에의 길’(영어: The Challenge of a New Road to Development) 역시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마침내 1989년 12월에 열린 제106차 국제 박람회 기구 총회에서 대한민국에 조사단을 파견하기로 결정하고, 조사단의 보고서를 토대로 1990년 8월 총회에서 대전세계박람회를 공인한다는 결정이 만장일치로 내려졌다. 당시 급속한 산업화가 이루어진 대한민국은 전통 문화가 상당 부분 파괴되고 지역간·계층간의 불균형이 심화되었으며 환경이 오염되는 등 축차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에 직면해 있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조화로운 발전을 강조하는 대전세계박람회는 자연스럽게 전통 기술과 현대 과학의 조화, 자연과 인간의 조화 등도 목표로 삼게 되었다. 그래서 부제로 ‘전통기술과 현대과학의 조화’와 ‘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재활용’이 채택되었다. [편집] 그 이후엑스포 후 엑스포 부지는 엑스포과학공원으로 한동안 운영되어 왔으나 극심한 경영난으로 2006년 이후 동부 쪽은 대전광역시와 기업의 컨소시엄으로 주상복합건물 및 호텔이 건설 중이며, 서부 쪽은 기존의 엑스포 건물을 이용하여 과학 테마파크인 엑스포과학공원으로 여전히 활용하고 있다. |
첫댓글 신기한 것들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