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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중해 3국 여행기
여행지 ; 지중해 3국 ; 터키 그리스 에집트
일 시 ; 2005년 10월 14일 - 10월 23일. 10일
제 1 일
출국 ; 인천공항에 여행 팀 12명이 오후 3시에 집합하여 출국 심사를 마치고 6시 탑승을 기다렸다. 너머 일찍 출국심사를 마치고 면세점에서는 별로 살 것도 없어 무료히 탑승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사에서 너머 일찍 집합시켜도 자기들은 좋을지 몰라도 장시간 비행을 해야하는 여행객은 체력 안배를 해야 하는데 쓸데없는데 체력을 소모하는 것이다. 여행에는 국적 기가 제일 인기 있고 편하고 비싼 편이다. 터키에 아시아나 항공 노선이 있는데 적자가 난다고 터키 항공에게 내어주고 지금은 손님이 많아지니 대한항공이 정규노선을 허락해 달라니 정부에서는 아시아나 밖에 인된단다. 지중해에 갈 때 대한항공을 타도 터키 항공과의 협약으로 대한항공 마일리지를 적립 못한다. 또 듀바이를 의무적으로 경유해야만 된다. 아시아나 노선은 터키항공이 운항하니 돈은 터키항공이 벌 수밖에 없다. 손님 입장에서는 장거리는 빠른 시간에 직항으로 운행하는 것을 원하는 것인데 입맛대로 돼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슐탄 아흐멧 사원 옆모습
미아 ; 대한항공으로 12시간 비행을 하고 터키 이스탄불에 현지시간 오후 10시에 터키 입국심사를 마치고 대합실에 모였다. 인원이 많은 다른 한국 여행 팀이 빠져나가고 어데 가나 북적거리는 한국사람은 보이지도 않고 달랑 우리 팀만 남았는데 현지 가이드가 보이지 않는다. 조금 기다려도 소식은 없고 서울서 온 T/C 가이드가 이리저리 연락을 하는 모양인데 진척이 없으니 여행객이 술렁거리기 시작을 한다. 터키는 처음 온 초보가이드를 보냈으니 여행사도 한심하고 관광 학을 전공했다는 가이드가 영어도 제대로 못하고 현지 호텔 전화번호도 모르고 왔으니 참 한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두어 시간 지체되니 자정이 되었고 공항에는 우리밖에 없고 당황한 가이드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가이드만 처다 보는 우리는 참으로 기가 막힌 노릇이다. 여행객들이 이제 가이드는 제쳐놓고 방법을 강구하나 뾰족한 수가 없다. 비수기에 급조해 만든 여행 스케줄이라 호텔도 적혀있지 않고 현지 가이드는 전화를 안 받고 서울을 연락하니 한밤중에 당직도 없고 터키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하려고 전화를 해도 신호음만 가다 끊겨 버리고 황당하기만 한 상황이 버러지고 있는 것이다. 여행객들은 또 대사관에 연락하라고 하나 연락이 된다고 대사관 직원이 할 일없이 우리 같은 여행객을 안내해 줄 리도 없으나 답답하니 거기라도 구조의 손길을 뻗쳐 보는 것이다. 그나마 연락이 안 되는 대사관은 고만두고 한국여행객이 잘 가는 호텔을 물어 확인하라니 올 시즌호텔이 나와 예약현황을 물으니 없단다. 이러다가 누가 안내해 준다고 덜컥 쫓아가다가는 사기꾼에 걸려 몽탕 털리고 국제 미아가 될 수도 있으니 정신 차려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여행객들이 실력을 발휘해도 외국어도 서투르고 터키어는 처음 듣는 말이고 좋은 방안이 안 떠오르니 우왕좌왕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다 시간만 흐르는 것이다. 새벽 1시가 다 되여 여행객중의 한사람이 환영 대를 뒤지다 한국사람 하나를 찾았다. 다행히 다른 여행 팀의 현지 가이드다. 1시반 이후에 입국하는 모스크바 경유하여 들어오는 여행 팀을 기다리는 중이란다. 사정을 이야기하니 누구 하나를 부른다. 이때에 나타난 친구가 우리 현지 가이드다. 서울 가이드는 이때서야 서울 여행사 팀장과 통화가 되었다. 서울은 이제 아침이니 통화가 된 모양이다. 현지 가이드는 이리저리 전화를 해 보더니 우리 팀이 맞는단다. 이 현지 가이드는 우리가 KAL이 아니고 모스크바를 경유하여 오는 팀으로 알고 기다렸다 이제 나타나고 전화는 꺼 놓고, 잘-들 한다. 어쨌든 우리는 미아에서 벗어났다. 버스 타고 호텔로 오는 중에 현지 가이드가 사과를 해야하냐고 하여, 당연히 해야한다고 하였는데 현지 가이드는 자기가 잘못이 없다는 표정이 억울한 모양이다. 자기 억울한 사정은 서울팀과 할 것이고 일단 사과하고 이 문제는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고 이 후의 여행 일정이나 이야기하자고 하였다. 호텔에 도착하니 아까 전화했던 올 시즌 호텔이다. 방에 짐을 풀으니 새벽 3시가 되었다. 6시반에 모닝 콜 이란다. 일찍 호텔에 와서 짐을 풀고 장시간 비행 여독을 풀어야 내일 일정이 가벼운데 이거 뭐람
제 2 일
이스탄불 ; 어제 허리가 꼬이도록 장시간 비행을 하고 공항에서 헛 시간 보내며 호텔에서 잠도 제대로 못 잣는데 그래도 아침 제시간에 잘 맞춰 집합하고 본 투어에 차질 없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 숙달된 여행객들이다.
동로마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불이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으며 이스탄불로 개명된 이 도시는 동서양의 문물이 교차하는 물류의 중심지로 과거의 번영이 곳곳에 산재하고 있는 거대 도시다. 보스푸러스 해협을 끼고 동쪽은 유럽, 서는 아시아 대륙에 걸쳐있는 이스탄불에서 우리는 유럽 쪽에 호텔을 잡았다. 터키가 수도를 앙카라로 이전하며 지금은 교역의 중심지로 변모하였다. 비잔틴문화로 빛나는 터키는 문명의 중심에서 후진으로 물러나는 비운의 운명이나 아직도 투르크 전사의 용맹함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국민이다.
불루 모스크 ; 역사의 기록인 오벨리스크와, 이와 비슷한 모양의 뱀기둥이 서 있는 히포드럼에서 사진을 찍고 슐탄 아흐멧 사원 일명 불루 모스크를 입장하였다. 이스람국의 사원은 처음 입장하여 보았는데 안에는 불교 같은 상도 없고 기독교 같은 십자가도 없고 의자도 없는 기도하는 장소만 넓다. 기도 방향은 마호멧의 성지 쪽을 보고 기도하게끔 양탄자가 표시 되여 있고 천장은 푸른색으로 격자 무늬를 실내 전체를 수놓아 전체가 푸른색을 띠어 불루 모스크란 명칭이 생겼단다. 실내의 장식과 무늬가 단순하여 화려한 로마 교회와 구별이 된다. 부인을 여러명 거느릴 수 있는 이스람국이라 남존여비가 극심하여 여자가 기도하는 장소도 한구석에 별도로 설치 되여 있다. 외부에서 보면 모스크 중심을 돔으로 씌우고 사방에 뾰족탑을 높이 4개를 세운 것이 멀리서 도 보이고 보기도 멋있다. 시골의 작은 모스크는 뾰족탑이 하나다. 이 탑에서 기도하라는 성자의 목소리가 널리 퍼지면 길바닥이나 도로나 장소만 있으면 엎드려 기도를 하는데 하루 한번이 아니고 댓번 하는 것 같다. 이렇게 많이 기도하다 일은 언제 하나 궁금하고 남의 일에 근심이 된다. 시아파 수니파로 갈려 있는 이 무스림들을 우리는 너머나 모른다.
쏘피아 성당
라마단 ; 전세계에 이들이 얼마나 많고 그 세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우리는 접해보지 못하여 그 위력을 모르고 있다. 더구나 10월은 라마단 기간이다. 무스림은 이 라마단 기간에 지하드인 성전을 하여 죽으면 최대의 영예로 알고, 천국에 가며 부자는 자기의 재산을 희사하여 못사는 사람들에게 식사를 익명으로 사원 앞에서 대대적으로 한다. 미국 부시대통령이 이락크에서 이 라마단 기간동안에 긴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스림은 라마단 기간동안 해가 떠서 질 때까지 하루종일 모든 음식을 안 먹는다. 해뜨기 한시간 전에 성자의 목소리가 교회의 종처럼 울려 퍼지면 하루치를 다 먹고 낮에는 하루종일 굶고 저녁 해가 지고 성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이 시각이 되면 각 모스크 앞에는 임시 천막이 여러 동 서 있고 그 앞에는 굉장히 길게 줄을 서 있는데 이는 부자가 희사한 식사를 모스크에서 나눠주고 있는 것을 먹기 위해서다. 줄을 서 있는 사람이 창피함이나 부끄럼은 전혀 없이 당당하고 당연하게 보였다. 절에 가면 일년 내내 밥을 주는데. 밤 8시가 되니 도시 사람들이 모두 거리를 나온 것 같이 무척 붐비는 것을 보면 모든 일이 주로 밤에 성사되는 것 같다. 자정이 넘어서도 북적거린다. 낮엔 낮잠 자는 시아스타 타임 에 오후 6시만 되면 가게를 철수하니 밤에 활동하는 것이 이상 할 리도 없다.
소피아 성당 ; 우리가 알고있는 성 소피아 성당, 이들은 성당이라 하지 않고 박물관이라 하고 모스크가 아니라 입장료도 받는다. 세 번째 다시 건축했다는 소피아 성당은 터키 관광의 대표적인 것으로 알려 졌으나 막상 와보니 정말이구나 하고 감탄이 나오지는 않는다. 역사 이래로 이스람과 기독교의 각축장이 된 이 도시는 최후에 이스람의 승리로 성당 완공 일주일전에 점령 되여 십자가를 훼손시키고 모스크가 된 기독교 입장에서 보면 비운의 소피아 성당이다. 기독교 점령지는 일신교라 상대의 종교유물을 모두 파괴하는 대신 이스람은 상대 종교와 병존하는 입장이라 이 성당에서 이스람 예식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소피아 성당은 그리스정교의 기독교 냄새와 이스람교의 냄새가 모두 나는 대형 아름다운 사원이다.
동서양의 경계선인 보스프러스 해협에서 인천 영종도 다니는 페리선같은 관광 선에 올라 차 한잔하며 골든 혼 만까지 크루즈 여행을 즐겼다. 보스프러스 북쪽은 흑해 남쪽은 마르마라해 해협중간에 제우스와 헤라가 치정 극을 벌인 골든 혼 만이 있다.
골든혼 만 ; 신의 제왕 제우스가 이오와 바람피우다 헤라가 눈치채니 이오를 암소로 변모시키고, 헤라는 모른척하고 암소를 선물로 달래서 100개의 눈을 가진 아르고스에게 암소를 감시 시키니, 제우스는 아들이고 전령신인 헤르메스에게 해법을 찾게 해 암소를 이 골든혼 해협을 건너뛰게 하여 이오를 살린다. 본래는 헤르메스가 피리를 불고 설명을 하며 아르고스의 눈을 감게하고 이때를 이용하여 아르고스를 죽인다는 신화다. 헤라가 죽은 아르고스의 눈을 빼와 이 눈으로 공작의 깃털장식을 만들어 공작새의 무늬가 되었다. 헤라는 무지개와 쇠파리 님프에게 시켜 이오인 암소를 못살게 하였으나 제우스의 간청으로 이오는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 왔다. 기념품점에는 공작 꼬리의 눈 모양의 목걸이가 있다.
굴뚝 ; 해협 양옆은 예쁜 별장들이 늘어섰고 굴뚝이 많이 보이는데 굴뚝이 시커머치가 않다. 지중해성 온대라 별로 불을 집힐 필요가 적었던 것 같고 어쩌다 굴뚝이 없는 집이 보이는 것을 보면 근래에 지은 별장인 모양이다 한집에 굴뚝이 여러 개인 것을 보면 펜션 식으로 운영하는 것 같다. 집이 저런 정도라면 현대식으로 내부를 차려놓고 최소한 가스를 사용하여 굴뚝은 없어야되는데 정말로 제대로 잘해놓고 사는지 들어가서 확인을 해 보고 싶다. 서양 갑부들의 별장이라니 더 호기심이 난다.
바자르 ;그랜드 바자르는 5천여개의 상점이 밀집해 있는 이스탄불에서 제일 큰 선물 시장이다. 보석과 옷이 주종이며 터키의 특산인 가죽제품이 다양하고 품질도 좋고 파는 가게도 많다. 가격도 저렴한데 주의할 것은 부르는 가격의 30%는 더퍼놓고 깍아야 한다. 그 이상 깍으면 아주 잘사는 것이다. 에누리가 우리 나라 동대문 시장의 60년대 시장 같다. 물건을 좀 사고싶어도 이만큼 깎고도 비싸게 준 것 아닌가 하고 근심이 되서 오히려 물건사기가 망서려 진다. 카쉬미르 실크나 터키석도 참으로 싸다. 잘 골라서 사면 재미도 있고 물건에 만족도 하지만 너머 많은 종류의 보석이 있으면 지식이 없는 우리는 선별할 수가 없어서 서성거리다 고만두게 된다. 이스람권의 시장을 바자르(Bazaar)라고 하는데 우리 나라에서 자선 바자회 한다며 반짝 서는 시장의 어원이 이 바자르다. 여기는 유로$보다는 US$를 갖고 물건을 사는 것이 유리하며 터키 리라는 1$ ; 1,300,000TL이라 원화로치면 공 3개 빼면 된다.
터키석 목걸이, 카쉬미르 마후라, 가죽 핸드백 등 물건을 사니 안 사니 해도 쇼핑의 맛은 보았다. 산 것을 집사람은 만족해 하니 나도 마음이 흡족하다.
지하묘소 ; 지하 궁전이라 불리는 아라베탄 사라이는 지하 공동묘소인데 왜 이렇게 지하 깊숙히 가족묘까지 설치하여 놓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묘가 많지 않은 것을 보면 귀족층만 매장한 것 같다. 땅속 깊이 들어갈수록 영혼을 구제한다는 토속 신앙도 아닐 테고 천당을 가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겠고 현대의 우리는 옛날의 그들의 뜻을 알 수가 없다. 관의 흔적만 있고 말 뼉다구까지 있는 이 지하묘소는 치장이 없어 눈요기 감은 별로다. 지하 묘소에서 나와 대로로 진입하려는데 시민들이 아예 대로를 막고 대로나 인도나 자리를 깔고 정오기도를 하려고 사원 쪽을 향하여 정오시간을 기다리는데 모든 차량은 통행이 금지될 수밖에 없다. 라마단 기간이라 더욱 그렇단다.
전동차 ; 우리 나라 옛날 오육십년대 동대문에서 왕십리 거쳐 뚝섬까지 가는 전동차 같은 낡은 전차도 길이 막혀 마냥 서있다. 우리 관광 버스는 재주껏 빠꾸하여 서민들이 북적거리는 시장을 통과하려니 이스람국인 터키인의 실생활을 적나라하게 보는 것 같다. 차도르를 쓴 수니파의 복장 시아파의 눈만 나오는 까만 복장, 화려한 내복 판매상부터 일상 모든 생활용품들, 서민들의 떠들고 활동하는 남루하지만 활기찬 모습을 곁에서 보니 아 이게 생활이구나 하는 느낌이 온다.
포세이돈 신전
제 3 일
올리브유 ;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보스프러스교를 건너 유럽에서 아시아권 이스탄불을 지나 고속 도로와 지방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계속 달렸다. 오늘은 육각별과 초승달의 이스람국인 터키에서 그리스 정교회의 그리스 아데네를 향하여 하루종일 가기만 하는 것이다. 우리 여행객이 가이드에게 그리스 가이드에게는 연락을 했느냐, 호텔 전화번호는 알아 놨느냐, 하며 이스탄불 공항에서의 3시간 불안에 떤 생각을 하며 서울 가이드에게 다그친다. 오전 내내 달리는데 넓은 들판에 올리브 농장이 많이 보인다. 산은 별로 없고 들판인데 땅이 거름진 것 같지는 않고 약간 황무지다. 넓은 들판에 띄엄띄엄 농가가 보이고 작은 모스크가 보이는데 부농 같지는 않다. 점심을 먹는 식당에 올리브로 만든 기름이나 향수를 파는데 무척 싸다. 우리는 올리브유 하면 서양의 음식을 만들 때 들어가는 신비의 물질로 생각했으나 여기에선 흔해 빠진게 올리브유다. 우리 나라 계절에 안맞아 올리브유가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을 뿐이다. 점심을 먹고 또 달려서 3시경에 조그만 항구인 체스메에 도착했으니 터키도 참으로 넓은 나라다. 난생 처음간 이스람국을 뒤로하고 5시에 그리스 가는 연락선에 승선하니 6시에 출항한단다.
로링 ; 제법 바람이 불고 배가 대형이 아니라 정박해 있는데 로링이 제법 친다. 밖에 나가 출항시간에 맞춰 다시 타자고 해도 히오스까지 한시간밖에 안 걸리니 우리 여행객은 로링을 치는 대도 배에 있겠단다. 막상 출항을 하니 우리 여행객은 로링에 취해 죽을상이다. 로링 피칭이 배에서 얼마나 괴로운지 얕보다가 경험하는 순간이다. 물론 나는 밖에 나갔다가 시간 맞춰 승선했지. 히오스에서 아데네까지 침대 객실이 있는 대형 페리선을 또 탄다고 하니 또 로링을 하지 않나 하고 지레 겁을 먹는다.
야간 페리 ; 페리선은 북 유럽의 실리야 라인 보다는 작으나 식당이나 빠가 있고 객실은 4인용인데 욕실까지 잘 갖추어져 있다. 잠을 제대로 못 자면 다음날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경험한 바라 자기 전에 소주를 약간 마시고 숙면에 들어갔다. 야간 침대 열차나 야간 페리나 움직이는 침대에서 자보지 않은 사람은 잠이 덧나기 쉬워 다음날 고생하기 십상이다. 그래도 비행기의 일반석에서 조는 것보다는 양반이다. 오늘 구경거리는 없고 하루종일 이동만 하였는데 이스탄불에서 아데네까지 두시간이면 비행할 것을 비용 덜 드리느라고 하루를 허비하고 고생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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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1호 파르테논 신전
제 4 일
선박 ; 새벽 5시에 기상하여 페리선에서 하선하니 꼭두새벽에 피레우스 항구에 도착한 것이다. 항구에는 우리가 타고 온 것 같은 대형 페리선이 즐비한데 과연 선박의 나라 그리스로구나 하고 단번에 이해가 간다. 배는 가격이 엄청 비싼데 그리스의 부는 이 배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 오나시스가 잭크린을 얻은것도 이 배의 위력 덕분이다. 그리스인의 지중해 상술은 유명한데 그리스의 많은 섬은 배를 이용할 수밖에 없고 배를 이용한 무역이 발달하여 수도 아데네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포세이돈 ; 아데네 시내에 들어가 새벽에 식사를 마치니 너머 일러서 조그만 스낵 같은 식당에서 시간 때우기 위하여 놀란다. 아데네에서 그리스의 땅끝인 수니온곶에 있는 포세이돈 신전을 보기 위하여 해안 가를 따라 달리는데 곳곳에 해안가 별장이 들어서 있다. 유럽의 부호들의 여름별장이란다. 왼쪽의 조그마한 산에는 나무하나 없는 쓸모 없는 석회석 산이고 경치도 대단하지 않은데 바다만 보고 별장을 짖는 다는 게 납득이 덜 된다. 우리 나라 남해안의 해안이 여기보다 몇 곱절 아름답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신전은 언덕 위에 기둥만 남아 멀리서도 보이는데 신전 안에는 가볼 필요도 없단다. 수니온곶의 언덕에 올라 에게해를 바라보는데 바람이 불고 서늘하여 찻집에 들러 차 한잔하며 여행객끼리 담소를 하였다. 이번 여행 팀은 서로 헐뜯지 않고 잘 어울려 여행 분위기가 좋았다.
파르테논 ; 아데네의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올라 세계문화 유산 1호인 파르테논 신전을 구경하였다. 대리석으로 지어진 파르테논 신전은 언덕 맨 위에 위치하여 관망하기는 참 좋으나 다 부서져 기둥만 남고 대형 신전의 흔적은 찾을 수 있으나 건물에 붙어있는 모든 조각품은 다 없어지고 부서진 별 볼일 없는 몇 개만 남았는데 세계문화 유산 1호라고 하기엔 너머나 초라하고 허전하다. 세계 문화와 학문의 발생지이며 민주주의의 탄생 장소인 아크로폴리스의 위용은 간데 없고 전쟁이 휩쓸고 간 황량한 언덕의 잔해물만 남은 것 같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설명과 조각의 예술성을 재현 하려고 하나 대영 박물관에 다 뺏기고 남은 흔적으로 꿰 맞출려고하니 그 노력이 오히려 참담하게 느껴진다. 찬란한 도시국가의 아데네가, 로마가 점령한 후에도 로마에게 교육을 가르친 아데네가, 그리스 신화의 중심인 아크로폴리스가 참담하게 무너진 이유를 알 수 없다. 선진국에서 밀려난 그리스를 생각하면 일제가 휩쓸고 간 우리 나라 같은 기분이다.
제우스 신전
아크로폴리스 ; 아크로폴리스 언덕은 바위로 되어있고 그 바위는 모두 대리석 바위고 그 맨 위에 파르테논 신전이 있으며 밑으로 보면 그리스에서 가장 오래된 야외극장인 디오니소스 극장, 그 옆으로 보면 신들의 왕인 제우스 신전이 있는데 이 신전이야말로 정말 기둥 몇 개만 남았다.
우리 나라는 대리석 하면 미치는데 여기서는 신축되는 집은 흔한 대리석으로 지으며 목재는 비싸서 안 짖는 단다. 지중해의 열대성 기후라 대리석으로 마루를 깔아도 우리같이 오싹 하지는 않을 거다. 베치카 나무를 파는 것을 보면 여기도 겨울은 조금 서늘한 모양이다.
쏘크라테스 ; 쏘크라테스 감옥이라고 데리고 갔는데 바위굴에 철창만 앙상하게 있는 정말로 가꾸지 않은 관광 상품이다. 파르테논 신전이 잘 보이는 이곳뿐이 아니라 도처에 있는 유적을 잘 관리하면 관광수입도 짭짤 할텐데 관리가 이렇게 소홀하면 오던 관광객도 발을 돌릴 것 같다.
쏘크라테스 감옥
까메오 ; 쇼핑점에서 까메오를 선전 하는데 여인상의 얼굴을 돌로 정밀하게 조각하여 목걸이 반지 귀걸이 셋트로 파는데 보석이라고 제법 돈을 달란다. 주로 우리 관광객을 목표로 파는 이 까메오가 외국 관광객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는 것 같은데 한국에서는 유행이라는게 씁쓸하게 느껴진다. 호주의 스쿠알렌 같이 한참 한국에서 인기있다 수그러 드는것 아닐가.
제 5 일
애기나섬 ; 이오니스 호텔에서 나와 애기나섬으로 가는 유람선에 탑승했다. 애기나 섬에 도착하여 신전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일정에 없어 항구 주변에서 어슬렁 거려야 한다.. 여름에 오면 이 많은 시간을 해수욕하며 보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으련만 누드 피서객도 많다는 그리스에서 시간만 보내는구나. 해변에 발도 담가보고 핸드백을 놓고 오는 해프닝도 벌어지고 걷다가 이제 그만 가자고 항구로 다시 돌아오는 정말 영양가 없는 관광이다. 지중해의 꽃인 크레타섬을 보고 싶었는데 실망이 크다. 유람선에서 우리끼리 모여 앉아 떠드는 것이 즐거움 이랄 가, 아니면 동양인인 우리를 보고 신기해하는 배안의 상점 종업원과 통하지도 않는 말로 손 발 다해가며 이야기하는 즐거움 이랄 가, 기대했던 섬 크루즈는 아니다.
아데네 공항에서 카이로로 이동하여 밤 늦게 피라미드호텔에 짐을 풀었는데 이 호텔은 5성 호텔에서 3성 호텔로 떨어진 것 같다. 건물의 걷도 멀쩡하고 방도 괸찮으나 시설의 관리가 부실하다.
제 6 일
카이로 ; 난생 처음 아프리카에 첫발을 디딘 곳이 에집트의 수도 카이로다. 아프리카의 최고도시이고 나일강의 인류 발상지인 카이로는 나름대로 대도시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신호등도 없고 횡단 보도도 없으나 별 교통사고 없이 사람들은 차 길을 잘 건너다닌다. 고속화 도로에서 건너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게 보이나 여기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여기도 알라신을 믿는 이스람국이다.
3국인 비교 ; 아시아인인 터키사람은 동양인보다 서양사람을 더 닮았는데 유럽인인 그리스인은 서양 사람과 약간 차이가 난다. 아프리카인 인 에집트인은 검둥이 같이 까말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리스인과 더 닮고 작은 편이나 약간 검은 티가 난다. 극동에다 이세나라 사람을 갔다놓고 구별하라고 하면 쩔쩔 맬 거다. 이 사람들이 한 중 일 3국 사람을 구별 못하듯이 우리도 이들을 구별하려면 아리까리하다.
관광지도 ; 터키 그리스 에집트 3국 모두 관광을 주 수입원으로 하는 나라가 각국 공히 관광객을 위한 관광지도가 제대로 비치 되여 있지 않고 그 흔한 무료 관광 가이드 맵도 없어 예비 지식이 없는 우리는 처음 듣는 용어들을 기억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줄리어스 시저를 율리우스 카이자르라고 해도 모르는 판에, ) 지금 우리가 어데로 가고 어디쯤 있는지도 모르고 가이드 뒷 꽁무니만 쫒아 다니니 허수아비가 된 기분이다.
화장실 ; 3국 모두 휴게소의 화장실은 유료나, 두루말이 화장지 조금 찢어서 들고 팁을 받는 화장실이라 화장실에서 돈을 내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는 거부감이 느껴진다. 우리 나라 고속도로의 화장실은 세계에서 1등이다.
물 ; 세나라 모두 서유럽 같이 식수에 안달 맞다. 모든 물은 사먹어야 되는 판이니 물병 하나씩 꿰차고 관광 다니는 모습이 물이 흔한 우리 나라에서 보면 가관이다. 물 좋고 산 좋은 우리 나라 금수강산 최고다.
가이드 ; 피라미드관광을 떠나는데 버스에 가이드만 4명이다. 서울서 온 눈물 흘린 가이드, 현지가이드, 현지 가이드 보조(현지인), 에집트 관광공사 공무원(현지인) 합하여 4명이 좇아 다니는데 룩소에서는 배낭여행 숙소 판촉 하는 우리 나라 가이드에다 운전기사까지 합하면 12명인 관광객을 보좌하는 비 관광객이 6명이니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피라미드 ; 황량한 모래언덕 위에 세워진 피라미드는 육중한 돌로 사각뿔대로 쌓아올린 초대형 구조물로 옛 에집트의 왕 파라오의 무덤인데, 현대인도 지금까지 왜 이렇게 크게 무슨 이유로 돌을 쌓아 올렸는지 미증유로 남아 있는 것이다. 내부 구조는 엄청 넓은 줄 알았더니 상상외로 좁다. 내부 계단으로 계속 올라가 관이 있는 곳에 50여 평의 맨 공간이 전부고 치장도 없다. 피라미드 속에 미로가 있고 보물도 많다는데 이 카프라왕의 피라미드는 미로는 다 봉쇄했는지 거대하기만 하고 볼 것은 없다. 차라리 석조 건축 스핑크스는 사진사에게 앵글의 초점을 맞출 만 하다. 문제는 풀 한 포기 없는 이 모래 사막에 이 거대한 피라미드나 스핑크스만 홀로 있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조화를 이루지 못한 파라오의 무덤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피라미드는 와서보면 실망한다. 스핑크스 옆의 야외 식당에서 바람에 모래만 날리지 않는다면 스핑크스와 피라미드를 보며 점심 식사를 하는 것은 일품이다.
파피루스 ; 왕골 같은 풀잎을 대나무 살같이 쪼개서 압착하여 만든 최초의 종이 파피루스는 상상외로 질기고 두껍지만 실용 가치가 있다. 이 파피루스에 고대 에집트의 화려한 그림을 놓아 파는데 에집트의 특산물이고 가격도 저렴하다. 뉴질랜드에도 파피루스가 있는데 열대지방에서 생성하는 풀잎이다.
피난교회 ; 올드 카이로의 유대인 교회와 예수 피난교회를 보며 옛날에 에집트에 기독교인들이 예상외로 많았다는 것을 보고 유럽에만 많다는 나의 편견이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모세가 에집트를 떠나는 구약을 생각하니 오히려 기독교의 태동이 에집트라고 해야하지 않을 가 생각된다. 그래서 그런지 기독교 순례자가 여기를 무척 많이 방문한단다. 예수교 핍박시절 기독교인들이 신전에 모여서 숨어살며 신전의 그림을 훼손시키며 예수의 얼굴이나 십자가를 그리는 불행한 사례도 남아 있다. 고대 에집트는 왕이 신으로 추앙되기 때문에 왕족끼리 결혼하고 신전에는 불가침 지역이라 왕족 외엔 출입이 금지 됐던 곳이다.
스님 ; 가이드가 저걸 어쩌나 하길래 쳐다보니 우리 나라 스님들이 스님 복장을 하고 단체 관광을 하는데 그 현지 가이드가 목사 부인이란다. 외국가면 간혹 스님이 삼겹살도 찾는다는데 목사 부인이 침소 봉대하여 불교는 어떻고 하면 복잡해지니 가이드를 바꿀 것이지 왜 서로 불편한 짖을 하나.
제 7 일
왕가의 계곡 ; 중대 에집트의 수도였던 룩소를 가야 하는데 새벽 비행기라 아침도 도시락을 들고 버스에 올라 졸면서 먹어야 했다. 막상 룩소에 도착하니 시간이 남아돈다. 남쪽에 있는 룩소는 열대 지방이라 반소매보다 오히려 얇은 긴소매 옷을 입어야 태양에 덜 그슬린다. 왕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 왕가의 계곡을 들어가니 계곡의 모습이, 우리 나라 계곡에 나무도 돌도 물도 없는 새빨간 흙뿐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황량한가 느낌이 갈 거다. 이 계곡에 굴을 파고 그 안에 무덤을 안치하였는데 이 계곡 저 계곡에 여러 개의 무덤이 있다. 진시황릉이나 세종대왕릉을 보다 이 왕가의 능을 보니 삭막하기 그지없다.
나일강의 돛단배에서 망중한
장제전 ; 왕가의 무덤에서 조금 덜어진 곳에 함세슈트 장제전이 있는데 왕들의 제전을 집전하던 곳이다. 규모도 크고 신전 같은 기분이 드는데 시뻘건 계곡에 이 건물 하나 있으니 쓸쓸하게 보인다. 돌에 새겨진 조각이나 기둥의 모양 벽화 등등 하나 하나 꼼꼼히 보면 모든 역사가 나올 것 같으나 우리는 아 이런 것이 있었구나 하고 그림 한 장 구경하고 나오듯 발길을 돌린다.
거상 ; 멤논의 거상을 보고는 여긴 벌판인데 이런 거상을 달랑 하나만 왜 세웠을 가 궁금하다. 이 근처를 파보면 옛날의 유적이 줄줄이 나올 것 같다.
나일강의 서안을 둘러보고 강가의 식당에서 에집트의 젖줄인 나일강을 보며 중식을 하였다. 나일강 ; 에집트는 나일강의 상류에서 알렉산드리아 삼각주까지 강 좌 우로 강물의 혜택을 받는 곳 까지만 푸르고 사람이 살고 쓸모 있는 땅이고 그 나머지는 다 못쓰는 모래 언덕이다. 그러니 나일강이 없다면 에집트의 존재 자체도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펠루카 ; 중식후 이 나일강에 하얀 돛단배 펠루카를 타며 망중한을 즐겼다. 제법 큰 나룻배에 사공 둘이 노가 없이 돛으로 풍향을 이용하여 배를 조정하는데 윈드서핑 조절하는 것 같이 세일링 한다. 관광객인 우리 부부가 흰색으로 상하 복을 입고 있으니 가이드가 우리 둘이 앉은 모습을 일부러 사진 찍어 주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좀 특색이 있었나 보다.
대신전 ; 룩소의 하이라이트인 나일강 동안의 카르나크 대신전과 룩소르 신전을 관람하기 위하여 출발하였다. 대신전이라 거대한 건축물 안을 구경하는 줄 알았더니 지붕도 없는 대형 기둥이 주류다. 상상을 초월하는 굵고 높은 기둥이 수십 개로 오베리스크 보다도 높다. 여기에 있는 오베리스크 둘중 하나는 파리의 콩코드 광장에 있다. 프랑스나 영국 로마가 좋은 조각이나 쓸만한건 다 흠쳐가고 나머지 부서진 신전의 건축물만 있다. 갖가지 자기들의 역사 유물을 조형물이나 조각으로 남겨 놓았으나 너머나 훼손되고 약탈당한 것이 많아도 아직도 엄청난 양의 유물이 있어 에집트가 옛날엔 정말로 강성한 국가였구나 하고 감탄한다. 고대 에집트의 전성기를 이룬 람세스 2세의 석상이 멤피스 뿐만 아니라 여기에도 있는데 여기에 있는 석상이 에집트의 대표 관광표지 사진으로 나온다. 세계 최초의 태양력도 벽에 음각 되여 있고 나일강의 홍수 조절 수위 표시도 있고 절대 왕의 표시인 뱀과 딱정벌레 상도 있는데 절에서 하는 탑돌이 같이 이 딱정벌레 상에서 7바퀴 반을 돌란다. 카르나크와 룩소르 신전이 붙어 있는데 이을 돌아보는데 다리가 아플 지경이다.
룩소르신전 입구
람세스 2세상
수십개의 돌기둥 숲에서
크레오파트라 ; 신전의 돌기둥 옆에서 클레오파트라 무덤이 있느냐 없느냐 따질 때 나는 에집트의 마지막 왕이고 애인 안토니오와 3일 간격으로 죽어 옥타비아가 에집트를 로마의 황제령으로 만들어 지금까지 크레오파트라의 무덤은
있을 수 없다고 아는 체를 하였다. 크레오파트라와 안토니오의 연합군이 옥타비아의 부장 아그리파에게 패전 당하고 둘이 알렉산드리아에서 자살하고 크레오파트라의 자식인 2남1녀중 크레오파트라의 첫애인 카이자르(영어로 씨저)에게서 얻은 큰아들은 죽이고 둘째 애인 안토니오누스에게서 얻은 남매는 로마로 데려온다. 카이자르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의 제 1대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되었는데 이 황제의 딸이 지조가 없어 바람을 피웠는데 바람피운 고관대작들 중에 크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에게서 낳은 아들도 끼여 있었다. 황제는 바람피운 딸은 외딴섬으로 귀양보내고 고관대작은 해외로 추방시키고 크레오파트라의 아들은 사형선고를 내렸는데 사형 받기 전에 스스로 자살하여 생을 마감하였다.
대-한민국 ; 룩소시에서 저녁을 하는데 종업원이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대-한민국 하며 박수응원 까지 하여 볼펜하나 주니 다른놈이와 대-한민국 하면 우리가 박수 맞추어주고 대-한민국 하는 바람에 식당은 소란해 졌으나 2002 월드컵이 얼마나 세계를 놀라게 하였는지 새삼 느껴지며 붉은 악마 응원단에 감사의 마음을 다시 한번 보낸다.
노는 여인 ; 카이로 가는 비행기가 자정에나 있단다. 이 많은 시간을 무엇을 하고 보내나 궁리하다 재래시장을 갔다. 어디를 가나 재래 시장은 생기가 넘치고 싸고 재미있다. 식료품 가게에서 향료의 왕이라는 샤프란 을 샀다. 이 가게에 엄마와 두 딸 아들이 있는데 차도르를 쓴 엄마와 딸들은 가만히 앉아있고 입만 놀리며 아들혼자 바쁘게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한다. 왜 앉아서 만 있고 도와주지 않느냐고 하니 여기 여자들은 놀기만 하고 남자만 일한단다. 참 잘- 한다.
알렉산드리아 궁정 정원
제 8 일
비둘기 ; 지중해에 있는 알렉산드리아항구로 가는데 카이로에서 나일강을 끼고 북쪽으로 세시간 고속도로를 달리면 된다. 고속도로 오른쪽 나일강이 있는곳은 푸르고 반대쪽은 사막이다. 국토의 면적은 넓어도 쓸모 있는 땅은 얼마 안 된다. 길쭉한 돔 같은 것에 구멍이 뚤려 있어 물어보니 비둘기 사육장이란다. 평화의 상징이라 잡혀먹지도 않고 잘 사는 줄 알았더니 여기서는 비둘기 요리도 판단다. 정력에 좋다면 우리 나라에선 비둘기 씨도 마를텐데 아직 정력 소리는 안나온다.
알렉산드리아 ; 알렉산더 대왕이 정벌하여 세운 도시 알렉산드리아는 에집트의 프톨레마이우스왕조의 시작이고 수도로서 에집트의 멸망과 이 왕조의 마지막 왕인 크레오파트라의 죽음의 장소다.
등대 ; 이곳에는 세계7대 불가사의중의 하나였던 등대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카이트 베이 요새가 들어앉았다. 지중해의 훈풍은 사막의 열풍보다 훨씬 살만하다.
파티 ; 카이로에 돌아와 발리댄스 구경도 집어치고 우리 여행객끼리 호텔 베란다에 모여 한국에서 갖고 와 남은 소주와 식당에서 줏어온 빵이나 과자를 안주 삼아 한잔하며 마지막 여행의 밤을 즐겼다. 이번 여행은 여행객끼리 잘 협조하여 불상사 없이 서로 즐겁게 여행을 하여 어느 여행보다 제일 화목하였다. 우리 집사람의 매일 옷 갈아입는 패숀쇼도 한목 했다. 그 바람에 우리 집 여행 빽은 커야만 한다.
제 9 일
듀바이 ; 오늘 하루종일 또 7시간 시차 때문에 내일아침까지 계속 비행기를 타고 인천까지 가는 것이다. 아침 러시아워를 피해 일찌감치 건설중인 카이로 신시가지를 비껴서 공항에 도착하여, 내 인생에 마지막인 카이로를 향하여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인천행에 올라 장시간 몸을 비비꼬며 갈 생각을 하니 엄살이 난다. 귀국 중간에 듀바이 경유하느라고 두어 시간 아랍에미리트의 듀바이 면세점에 들르니 몸이 한결 부드러운 것 같다. 아랍에미레이트가 중동의 새로운 부국으로 부상하는 것 같다.
제 10 일
서울 ; 비행기에서 자다 깨다 기내식만 몇 차례 축내다 아침 8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짐 찾기에 바쁘다. 이스탄불이나 카이로나 인구 천만이 넘는 서울보다 큰 도시인데 서울은 새로 지은 신흥도시 같고 이스탄불이나 카이로는 옛날에 현대를 약간 가미한 도시 같다.
지중해 3국 여행 잘 다녀왔다. 집사람과 티격태격하지 않고 끝까지 즐겁게 여행한 것도 처음이라 나도 기분 좋다. 땡.
2005. 11. 24
권 오 찬
쏘크라테스 언덕에서본 파르테논 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