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 원각사 소개

미주한국불교와 인연이 이주 깊은 필라델피아는 미합중국의 첫 번째 수도이며 뉴욕에서 남쪽으로 160km 현재 수도인 워싱턴 D.C에서 240km 북쪽인 펜실베니아주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다. 미국에서 뉴욕, 나성, 시카고 다음으로 네 번째 큰 도시이고 우리 동포 수는 4-5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필라델피아의 역사는 1600년대에 초기 오란다와 영국선원들이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1682년 퀘이커인 윌리암팬(Wuhan1 Penn)에 의하여 본격적인 도시로 건설되기 시작하였으며 윌리암 팬에 의하여 명명된 필라델피아(philadelpia)라는 뜻은 그리이스어로 「형제애」를 의미한다. 전세계 약 20만 명의 퀘이커인 중 1만 여명이 이곳 필라델피아에 살고 있다. 그래서 퀘이커와 갚은 관계를 맺었던 관계로 퀘이커의 영향력이 강한 이곳에 1964년 일붕 서경보스님이 필라 템플(Temple)대학에 공부하러 오면서 필라델피아는 이곳 한국불교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그후 서경보스님은 이곳에 선원을 개원하여 미국인들에게 한국선을 지도하면서 우리 나라 스님으로서는 첫번째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 지명스님이 1988년에 템플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는 동국대 출신인 김학봉, 김용표씨가 역시 템플대학에서 불교공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서경보스님이 박사학위 취득 후 서울로 귀국하면서 한국불교와 필라델피아가 맺은 인연이 사라지는 듯 하였는데, 지금 필라델피아에서 치과 의사로 있는 김종규박사와 그의 부인인 현재 원각사 신도 회장 김대성화보살 부부가 78년도에 필라델피아에 이사오면서 필라에 한국불교 포교의 거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김박사 부부는 필라에 이사오기 전 뉴욕에 살면서 법안 스님이 주지로 계시는 뉴욕 원각사에 나가면서 법안스님과 인연을 맺고 필라에 이사오면서 이 인연을 계속이어 나갔다. 김박사부부가 필라로 이사온 뒤 집안이 채 정리되기도 전인 2주 후부터 김종규박사 집에서 법안스님을 모시고 2주일에 한번씩 법회를 가졌다. 그후 장소를 인터내셔날 하우스로 옮겨 불교 및 동양사상 강의가 계속 되었는데
때로는 새벽 2-3시까지 계속 할 때도 있었다. 이러한 강의를 법안스님은 뉴욕에서 필라까지 오고 가는데 거의 5시간이 소요되는 거리를 2년 동안을 계속했다. 이 과정을 통해서 그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불교지식과 신앙심을 아주 확고하게 심어 주었다. 이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김종규박사 부부 외에 현 미주한인 총 연합회장 차동섭박사, 정대화, 김봉준, 이범운, 장세일, 박승수, 홍용표씨 부부 등이며 약20-30명쯤 모였는데 연령적으로 매우 젊었다. 그 당시의 분위기에 대하여 김종규박사는 '대부분 불교에 대하여 몹시 관심이 많았고 불교교리 등에 대하여 몹시 갈구하는 분위기였다' 고 전했다.
이때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지금도 원각사신도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렇게 2년 동안을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불교 강의를 통하여 불교교리에 대한 기초를 다진 다음 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주축이 되어 사원 건립을 한 것은 아마 미주 전지역에서 유일한 경우인 것 같다. 현재 미주한국불교의 사원건립이 대도시 중심의 기존의 사찰이 있는 옆에 개원하는 것에 대하여 찬,반의 의견이 있지만 필라 원각사 건립 과정은 앞으로 미주에서의 한국사찰 건립방향을 제시하는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이렇게 법안스님과 필라에 사는 20여명의 불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몰입하면서 이 부처님의 말씀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거점 확보 즉 사찰의 건립에 대한 준비도 착착 진행시켰다. 서도의 대가이신 법안스님이 2차례에 걸친 사찰 모금 서예전으로 $25,000여불의 기금을 마련하고 미국인 변호사한테 대부를 받아 5만 불 현금으로 현재의 필라 원각사를 구입하였다. 그리하여 초대 주지로 서울에 계신 혜안스님을 초청하여 모시고 1981년 5월 12일에 개원을 했다. 이때 임원진은 회장에 정대화, 총무 김종규, 서기 이범운, 이사장에 차동섭씨 등 2년여 동안 같이 공부를 하던 사람들이었다. 미국에 온 다음날 필라 원각사 초대주지로 취임한 혜안스님은 어린이들을 이주 좋아했으며 청년회에 이주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취임 1년만에 여러 가지 사정으로 혜안스님이 필라 원각사를 떠나고 그 뒤 지월, 설산, 혜명, 지명, 무착 법장스님 등이 원각사와 인연을 맺었었다. 이중 지명스님은 83년부터 88년까지 계시면서 공부에 매진하여 템플대학에서 한국스님으로서는 서경보스님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박사학위를 받아서 지금은 귀국하여 청룡암에 머물면서 한국불교 발전에 노력하고 있다. 이유야 어쨌든 주지스님들이 바뀔 때마다 불사의 맥이 끊기고 신도들의 신심도 저하되었다. 주지스님의 잦은 변동으로 필라 원각사는 객관적인 많은 잠재력이 있음에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불사를 진행시키지 못했지 않았나 추측된다. 필라 원각사의 객관적인 조건은 아주 좋다.
첫째로 필라 한인인구가 4-5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니 여기에 따른 잠정 불교인수는 적어도 4-5천명을 기본 불교신도수로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둘째로 신도들이 친목회 등을 조직하여 친목을 도모하며 자발적으로 조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셋째로 미국에 한국 사찰들이 대부분 재정란에 허덕이고 있으나 필라 원각사는 지금의 원각사를 좀더 넓힐 목적으로 어느 정도의 기금을 마련하여 놓고 있다. 주위의 건물을 적당한 가격으로 구입하여 공간을 대폭 확장하고 원각사가 한인타운과 가까운 잇점을 활용하여 주일학교 등을 개설하고 봉사기능을 할 수만 있다면 원각사는 비약적인 발전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신도는 약 300세대이고 매주 정기법회에 평균 50-60명이 참석하고 있다. 주지스님은 '회장인 김대성화총무 남기현 재무 전성각심 이사장 차동섭박사 외에도 김학구, 권학금, 장영록, 권태문 거사 등과 최보명심, 정초연성, 양상속행, 김증도화, 우실상화보살님들 또 청년회원인 김남민, 이경숙, 이상숙, 송준헌, 방항식, 최관열씨 등이 아주 헌신적으로 원각사 발전에 힘쓰고 있다고' 하면서 이외에도 많은 불자들이 힘든 이민 생활 속에서 절을 찾고 부처님 말씀을 따르려는 것을 볼 때 기쁨을 느끼고 필라 원각사의 발전이 보이는 것 같다고 만면에 웃음을 띄고 말씀하신다.
필라 원각사가 다른 어떤 불사보다도 신경 쓰는 것이 있다면 청년불자들에 대한 관심일 것이다. 주지 청해스님, 신도회장 김대성화보살, 김학구거사 등은 청년회 발전에 남다른 관심과 정열을 쏟고 있다. 현재 청년회는 매주 정기법회를 가지고 또 매월 첫 번째 토요일은 1,080번씩 절을 한다. 법장스님이 주지로 계실 때 시작한 '탁마'는 매월 발행되는 원각사 회보인데 청년들이 컴퓨터를 이용하여 식자에서 편집 인쇄까지 맡아서 하고 있다. 작년에는 사찰에서 일부분 지원하여 대학생, 고등학생 등 5명과 인솔자가 1달간 송광사에서 실시하는 수련대회에 다녀왔으며 올해에도 10여명쯤 다시 보낼 계획이다.
필라 원각사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하여는 '우선 지금의 법당이 적어 보다 큰 법당을 마련하고 공간을 확보하여 한글학교와 탁아소, 노인들이 이야기하며 쉴 수 있는 곳, 장년들이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곳을 마련하고 역량에 맞게 움직이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싶다' 고 말씀하신다.
원각사에는 주지스님 외에 정수스님이 일본에서 석사를 마치고 작년부터 원각사에 머물면서 박사과정에 들어가기 위하여 공부하고 있다. 88년 11월부터 원각사에 계시는 주지 청해스님은 주지는 처음이지만 언제나 겸손한 자세로 신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쓰며 절의 굿은 일들을 농부가 농사짓듯 소리 없이 잘 해 나가고 계시는 모습을 필자는 원각사에 갈 때마다 느꼈다. 신도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그들의 뜻을 받들며 원각사 발전을 위한 초석이 되는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성실하게 진행시키고 있는 주지스님과 이 스님을 모시고 따르는 신도들을 볼 때 원각사의 발전은 눈앞에 온 것 같다. 필라 원각사의 발전을 기대한다.

새로 이전한 필라델피아 원각사 전경
필라델피아 원각사 주소 : 627 W. Chelton Ave. Phila, PA 18901
전화번호 : 215)276-2211
1990년 2월 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