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산행은 노천 박물관이라 일컫는 경주 남산입니다.
1. 산행일시 : 2016년 12월 27일(화요일)
2. 산행코스 : 포석정~ 금오봉~통일전
3. 산행거리 및 소요시간 : 8.5km(3시간 30분 소요)코스
4. 회비: 25,000원
5. 출발 시간: 그랜드컨벤션 7:00분 >역앞 7:10분 > 풍기 7:30분(농협앞)
6. 계좌번호 : 농협 351 0901 938733 김제호
회 장 김제호 ; 010- 3522- 5666
총무 김선구 ; 010- 4142- 8038
총무 김미영 : 010- 6540- 2772
많은참석부탁드립니다.
신청은 회장과 총무에게 메시지로 하세요.
쌀쌀해진 날씨에 ♡감기조심하세요♡
본 코스는 나라의 번영을 천신에게 제사지내던 포석정에서 시작하여, 가족이 손을 잡고 짙은 솔향기를 맡으면서
숲속을 거닐 수 있으며, 남산에서 조성 연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불상 유느리골 마애삼체불(835년 조성)과,
폐허가 된 상실절터, 석양무렵이면 부처님과 바위 전체가 황금빛을 발하는 부엉골 마애여래좌상,
옛 절터에 새로이 세워진 부흥사와, 늠비봉 바위산을 기단으로 한 백제계통의 늠비봉 오층석탑 등을
만날 수 있는 가족끼리 가볍게 등산과 문화재답사를 겹할 수 있는 코스이다. (자료 - 경주남산연구소)
경주 남산 494m
■ 위치 : 경북 경주 내남면 용장리
■ 남산은 경주시의 남쪽에 솟은 산으로 신라인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다. 금오봉(468m)과 고위봉(494m)의 두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40여 개의 계곡과 산줄기들로 이루어진 남산은 남북 8km 동서 4km로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내린 타원형이면서 약간 남쪽으로 치우쳐 정상을 이룬 직삼각형 모습을 취하고 있다. 100여 곳의 절터, 80여 구의 석불, 60여 기의 석탑이 산재해 있는 남산은 노천박물관이다. 남산에는 40여개의 골짜기가 있으며, 신라 태동의 성지 서남산, 미륵골·탑골·부처골 등의 수많은 돌 속에 묻힌 부처가 있는 동남산으로 구분된다.
포석정(慶州鮑石亭址) 史蹟 1 號
포석정 일대는 성남이궁(城南離宮)터라 한다. 이궁이란 임금이 행차하셨을 때 머무시는 별궁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 곳은 왕족과 귀족들의 놀이터인 것이다. 산 좋고 물 좋은 부엉골(포석골의 본 이름) 어귀에 이궁을 이었던 것이나, 지금 여러 건축터는 알지 못하고, 오직 옛대로 뚜렷하게 남아있는 것은 개울가 바위 위에 자리잡은 포석정 뿐이다.
신라 시대에 유상곡수(流觴曲水)의 연회를 행하던 곳으로 유상곡수는 삼짇날에 술잔을 물에 띄워 두고, 왕과 귀빈을 비롯한 참석자가 물길을 따라 앉아서 술잔이 돌아오기 전에 시를 짓던 놀이를 일컫습니다.
헌강왕 때, 남산의 산신령이 포석정의 연회에 놀러왔다고 한다. 이때 산신령과 헌강왕이 함께 춤을 추었는데, 이것이 신라 시대의 춤인 ‘어무 산신무’ 의 기원입니다.
돌홈을 파서 물을 흐르게 하고 그 흐르는 물에 잔을 띄워놓고 술잔을 주고 받으며 즐기던 곳이다. 돌홈 모양이 구불구불하여 전복<鮑>껍질 모양과 같으므로 포석정이라 하였다. 또 이곳 포석정에서 55대 경애왕(景哀王)이 나라의 위기를 당해 이 포석정에서 제사의식을 행하다가 후백제(後百濟) 견훤(甄萱)의 침략을 받아 비참하게 죽어 신라 천년의 종말(928년)을 내리게 된 슬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포석정이 어느시대에 무슨 목적으로 지어졌는지는 아직까지 수수께끼로 남아있으나, 최근 발굴결과와 여러 정황을 볼 때, 포석정은 삼국시대(통일전)에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어졌으며, 경애왕이 포석에 나간 것은 견훤이 영천(永川)까지 침략해 오자 왕건에게 구원요청을 하고 포석사에 나가 천신에게 제사지내다 변을 당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적의 침략이 눈앞에 닥치고 있는데 한겨울에 이궁에 술놀이를 나갔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유느리골 마애삼체불(배리 윤을곡 마애불좌상, 지방유형문화재 195호)
포석정 주차장에서 순환도로를 따라 약 500m 들어가면 개울을 건너는 다리가 있고, 다리를 건너자 말자 북쪽 등성이로 올라가는 길이 있으며 100m 정도 올라가면 바위가 보인다. 높이 3m, 넓이 6m 가량 되는 ㄱ자 형으로 절벽으로 솟아있는 바위에 마애삼존불이 새겨져 있다. 넓은 면은 2.5m로 두 분의 여래상이 새겨져 있고, 좁은 면은 0.9m로 한 분의 여래상이 새겨져 있다.
서향을 하고 계시는 부처님은 보생여래(?)로 추정되며, 왼손에는 보주를 들고, 오른손바닥은 배에 대고 있으며, 가사는 통견이며,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에는 각기 2체씩의 화불(化佛)이 있다. 남향의 벽면 왼쪽은 석가여래(釋迦如來)로서 겹으로된 연꽃 위에 설법인을 하고 있으며, 가사는 통견이며, 광배에는 화불이 없고, 옷주름이 선명하여 생기가 도는 듯 하다.
오른쪽은 약사여래(藥師如來)로서 왼손에는 약그릇을 들고 있으며, 가사는 편단우견이며, 광배는 주형광배이다. 이 마애불의 왼쪽에「태화을묘9년(太和乙卯九年 : 張忠植 교수 해독)」이라는 명문이 있다. 태화 9년은 신라 42대 흥덕왕(興德王) 10년(835)에 해당되는데, 이 불상들이 새겨진 연대인지는 더 연구가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이 주변에는기와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아 부근에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상실절터
유느리골 마애삼존불에서 순환도로를 따라 700m쯤 더 올라가면, 부흥사 입구를 지나 해목령(蟹目嶺)아래에 논밭으로 되어있는 넓은 평지가 있는데 이곳이 상실절터이다. 남산신성의 주봉(主峯)이던 해목령을 주산(主山)으로 삼고 좌우 산이 감싸고 있어 한없이 아늑한 분위기를 이루고 있다. 터는 지금 논밭으로 파괴되어 규모는 알 수 없으나 굉장히 큰 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석탑 옥개석 두 개와 옥신 한 개만이 남아 있을 뿐 다른 유적은 없으며, 『慶州南山の佛蹟』에 의하면 한 변이 90.9㎝되는 대석 위에 여덟 잎의 연꽃을 새긴 석등대석과 5층석탑재도 남아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없다.
부엉골 마애여래좌상(鮑石溪谷磨崖佛坐像)
상실절터에서 도로 아래로 100m쯤 아래로 내려가면 부흥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부흥사로 올라가다 크게 도는 길에서 산등성이를 타고 아래로 150m쯤 내려가면 조금 큰 묘가 나오는데 그 남쪽 바위 절벽아래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이 선각으로 새겨져 있다.
이 곳은 매우 가파른 곳이며, 건너편에는 거대한 바위 절벽인 부엉더미가 보인다. 마애불이 새겨진 바위는 자연으로 처마가 이루어져, 부처님은 눈비를 맞지 않는 자연으로 된 법당에 계시는 것이다. 바위면의 붉고 누른 부분이 많은 곳에 부처를 새겨 석양무렵이 되면 부처님은 황금빛을 발하는 신비스러운 부처님이다.
넓은 연꽃 위에 결가부좌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앉은 평안한 상이다. 선에 힘이 없고 부드럽기만 한 것으로 보아 신라하대 또는 고려 불상에 가까운 느낌이 든다. 마애불이 새겨진 바위 위에는 석등대석이 있으며, 이곳에서 올려다보는 늠비봉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부흥사
옛 절터 위에 1971년경에 창건된 절이다. 옛 절터는 다 파괴 되었으며 유적으로서는 삼층석탑의옥개석(屋蓋石) 하나가 남아있다. 남향으로 자리잡은 이 절은 바로 앞에 늠비봉이 안산(案山)으로 솟아있고 멀리 배실 정상 봉우리가 조산(朝山)으로 솟아있다. 북에는 웅장한 해목령(蟹目嶺)이 솟아있고, 동에는 금오정 누각이 하늘에 떠있다. 서쪽으로는 부엉더미 바위가 병풍을 두르고 있다.
늠비봉 위에 솟았던 석탑도 이 절에 속해있던 것이라 생각되는데, 이러한 환경 속에 하늘 높이 솟았을 늠비봉 석탑을 그려보면 속세와 절연된 불국토의 영감을 느끼게 된다. 이 터에서는 신라, 고려, 조선 등 여러 시대 기와조각들과 그릇 파편들이 보여 오랜 세월 동안 향연을 피워 온 유서깊은 절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늠비봉 오층석탑
부흥사(富興寺) 바로 앞에 솟은 봉우리가 늠비봉이다.이 늠비봉 위에 목탑을 본떠 세운 오층석탑이 있었다. 산 꼭대기에 솟아 있는 바위 윗면을 깎아내어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대충 다듬은 석재로 탑을 쌓아 올렸던 것이다. 이 탑의 위대함은 기단에 있다. 삼각산 위에 솟아있는 자연바위를 잘라 버리고, 모자라는 부분에는 다듬지 않은 석재를 보충하여 자연 반, 인공 반인 기단을 만들어 놓았다.
얼금얼금 깨뜨린 석재들은 인공적인 탑신에 어울리고 우툴두툴한 자연 석재들은 자연적인 바위산에 조화되어 삼각산은 하늘에 닿은 탑으로 승화되었다. 서양에서는 사람의 정신을 하늘로 이끌기 위해 40, 50년 걸려 첨탑을 세웠다. 그러나 신라인들은 자연이 이룩한 산 위에 인공을 보태어 하늘에 닿은 첨탑을 세운 것이다.탑 기단부에 올라서면 서쪽으로는 배리평야와 선도산이 굽어 보이고, 북쪽으로는 해목령을 마주하며 서라벌이 한 눈에 굽어 펼쳐진다. 부흥사 입구 오르는 길에서 이 봉우리의 오층탑을 상상하며 바라보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금오정
늠비봉이나 부흥사에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거나, 순환도로를 따라 올라갈 수 있다. 1969년 경주시에서 전망대로 세운 콘크리트 건물이며, 이곳에 올라서면 외동평야로부터 토함산과 경주시가지, 선도산, 단석산까지 옛 화려하던 서라벌판이 한 눈에 굽어 보인다.
국사골 상사바위
금오정 입구 도로에서 50m쯤 가면 오른쪽은 까마득한 절벽이며 이곳에 두 개의 바위가 우뚝 솟아있다. 이 두 바위가 상사바위로서, 한 개는 할아버지 바위이고, 한 개는 소녀바위로써 살아서는 이루지 못한 사랑이 죽어 바위로 사랑을 이뤘다는 애틋한 전설이 전해진다. 이곳에서는 바위의 전체 모습이 잘 보이지 않고, 동남산 남산동이나, 남쪽 건너편에 있는 남산부석에서 보면 웅장하게 솟아있는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사자봉(팔각정터)
1960년대 국토건설단이 남산 순환도로를 건설할 때 세운 팔각정자로서, 그후 어느땐가 벼락맞아 불타버리고, 지금은 터만 남아있는데 이곳에서의 전망 또한 아름답다.
통일전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南山洞) 에 있는 통일기원전각.
삼국통일의 정신과 화랑의 호국정신을 기리고 이를 이어받아 나라의 정신적 지주로 삼기 위하여 조성한 것으로 전각 안에는 태종무열왕, 문무대왕, 김유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회랑에는 통일을 향한 격전의 현장을 보여주는 기록화를 길게 전시해놓았다.
이밖에도 넓은 경역 곳곳에 삼국통일기념비와 태종무열왕, 문무왕, 김유신 장군의 사적비 등이 세워져 있다.
호국영령의 뜻을 기리는 장소여서 초·중등학생들의 통일이념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남산 칠불암과 전망대로 오르는 등산로도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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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영풍산악회 12월 경주 남산 금오봉.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