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詩 나는 이렇게 썼다>
와운 마을에서
김완
나무는 사백 년을 살기 어렵다는데
마을을 굽어보는 천 년된 소나무 두 그루
구름도 누워 지나가는 곳에
열댓 가구 삼십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마을로 오르는 시멘트 길에
선명하게 찍혀 있는 작은 발자국,
나무가 울고 별이 떨어지는 밤
무슨 급한 사연 있어
서둘러 산을 내려갔을까
태풍과 바람의 통로인 계곡
그 밤의 아픈 물이 오늘은 푸르구나
지리산 달궁 계곡 근처 와운마을에 오르면
가슴속에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는
빨치산이란 이름의 숨 가쁜 말 떠오른다
바위를 가르는 나무의 무서운 집념처럼
짧은 삶의 격렬함과 슬픔에 대하여
아픈 사람들의 오래된 이야기가 전해오는
와운 마을, 사진첩 속에는 다랭이 논이 서 있다
-졸시 「와운 마을에서」 전문
뱀사골, 달궁 계곡 그리고 와운 마을 가는 길:
일 년에 몇 차례 광주보훈병원 내과의 공식 행사가 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은 행사 중의 하나는 해마다 12월에 하는 송년등반이다. 작년 송년등반 때 해마다 내과의 인원이 점점 늘어 한해 한번 하는 모임으로는 부족하다는 과원들의 의견을 주임과장이 받아들여 매년 유월 첫째 주에 1박2일로 내과 Workshop을 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올해 첫 행사장소로 지리산 뱀사골이 정해졌다.
계절적으로 유월의 지리산은 연초록에서 진청색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6월의 숲은 눈부셨고 깊고 비렸다. 가을의 결실을 위해 나무들도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야외 나들이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소화기내과 팀들이 학회 때문에 참석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오랜만에 내과의 많은 식구들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미리 예약한 펜션(전북 남원시 산내면 덕동리, 달궁 계곡에 위치)에 짐을 풀고 가벼운 등산복차림으로 오전 11시경 뱀사골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계곡물은 지난밤 내린 비로 풍성하였고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도록 깨끗하였다. 체력이 약한 과원들을 위하여 왕복 3시간 30분에서 4시간 정도의 코스를 잡았다. 반선, 요령대, 탁용소, 병풍소까지 완만한 코스로 등산을 하고 내려오는 일정이었다. 계곡을 따라 삼삼오오 얘기를 나누면서 세상살이에 찌든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며 편안하고 즐겁게 산행을 하였다. 유월의 숲과 계곡은 푸르고 깊었다. 숲 안에는 시간이 내려앉아 서늘하였고 시간이 겹쳐지고 이어지는 모습이 환히 들여다보였다. 가벼운 바람에도 지리산의 능선은 흔들려 보였다.
온갖 상념들 밟으며 계곡을 오른다
말채나무 꽃잎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흩날린다
초록 잎은 지고 숲은 가을을 맞을 것이다
가슴에 푸른 하늘 품었던
청춘도 노랗게 물들 것이다
-졸시 「풍경-뱀사골」 부분
병풍소에서 준비해간 김밥과 라면 등으로 점심을 먹고 내려오는 길에 천연기념물 424호 천년송이 있는 와운 마을(남원시 산내면 부운리)에 들렀다. 마을까지 올라가는 거리가 1 Km 밖에 되지 않았으나 무척 가팔라 힘들었다. 천연기념물답게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아주 높은 곳, 구름도 쉬어 누어 간다는 곳에 천년된 소나무 두 그루가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뱀사골 상류 명선봉으로 부터 뻗어 나온 산자락에 자리 잡은 이 소나무는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있는 모습에서 장엄한 기품을 풍기고 있었다. 두터운 용비늘 모양의 나무껍질이 오랜 세월의 연륜을 말해주는 듯하였다.
마을 가게에 들러 산채나물 안주에 지리산 산삼막걸리를 한잔씩 하였다. 이곳저곳 구경하고 내려오는 중에 마을의 옛날 사진을 전시해 놓은 가게에 들러 사진을 보며 주인에게 마을의 역사를 물어보았다. 그 사진 속에는 오래된 마을 가게, 옛 마을의 모습, 주위 숲과 다랭이 논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또한 마을로 향하는 시멘트 길에 찍혀있는 작은 발자국을 보면서 많은 상상을 하였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읽었던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과 이태의 소설 『남부군』에서 느꼈던 여러 감정들이 이리저리 얽히면서 이 한편의 시가 만들어졌다. 비교적 감정의 과장 없이 어렵지 않게 쓴 시이다. 눈에 보이는 풍경과 풍경 속에 숨어있는 내면의 이야기들을 상상하며 담담하게 써내려간 시이다. 저녁에는 멀리 광주에서 직접 차를 몰고 내과의국 OB회장인 강내과 원장이 합류하였다. 더불어 더욱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펜션에서 장작불 바베큐를 먹으며 함께 보낸 그 시간들이 벌써 아득하기만 하다.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은 참 힘이 세다.
시인 金完
약력:
광주 출생
2009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그리운 풍경에는 원근법이 없다』, 『너덜겅 편지』, 『바닷속에는 별들이 산다』가 있다
2018년 제 4회 송수권 시문학상 남도시인상 수상
E-mail: kvhwkim@chol.com
첫댓글 노랗게 물드는, 이제 붉게 물드는 시절이다. 내 시절도, 내게 가까이 있는 이들의 시절도 가을이다. 여기 동해의 바다는 분리주의자, 하늘의 푸른 색이 오히려 흰색으로 기을어지게 하는 바다는 심한 푸른 색이다. 저 지경으로 퍼래져서 어쩌란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