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자 A씨는 최근 법원에서 부채탕감을 받기 위해 파산·면책신청을 냈다가 오히려 낭패를 당했다. 신청서를 내기만 하면 빚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파산신청 직전 채권자에게 6,000만원을 갚았다는 사실을 의심스럽게 생각한 재판부가 A씨를 불러 심문한 뒤 파산관재인을 선임해 A씨의 재산 조사에 나섰기 때문이다. 파산관재인은 A씨의 채권자인 B씨의 통장거래내역과 둘 사이의 관계를 집중조사해 B씨가 허위 채권자로 A씨의 돈을 잠시 보관해준 사람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B씨가 A씨로부터 받은 6,000만원을 일주일 후 A씨의 아들 통장으로 고스란히 다시 송금했다는 결정적 사실도 밝혀냈다. A씨는 결국 면책받지 못했다.
서울중앙지법이 채무자들의 사기·허위성 면책을 걸러내기 위해 개인파산 채무면책신청 심리를 엄격히 하면서 파산선고율과 면책인용률이 뚝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채무면탈만을 목적으로 한 파산신청이나 재산을 은닉한 의심이 드는 경우 파산관재인을 선임해 정밀조사에 나서는 사례까지 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이 때문에 개인파산 신청건수 자체가 지난해에 비해 월평균 1,100여건 줄어드는 등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브로커 등에 의한 집단적 개인파산신청을 차단하고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현상을 막기 위한 제도도입취지가 어느 정도 구현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구두심문강화 및 파산관재인 선임 등에 따른 사건처리지연과 비용증가 등은 문제점으로 지적돼 적절한 개선책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파산선고율·면책인용률 80%대로 뚝 떨어져=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수석부장판사 지대운)가 지난 4월 ‘개인파산사건의 심리방식 전환방안’을 시행(법률신문 2010년4월12일자 1면 참조)한 이후 지난달까지 7개월간 파산선고율이 87.07%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6년 99.16%를 기록했던 파산선고율은 2007년 98.68%, 2008년 97.02%, 지난해 93.24%로 매년 감소추세를 보이긴 했지만 80%대까지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채 탕감 등 면책인용률도 89.17%까지 감소했다. 면책인용률은 지난 2006년 98.77%, 2007년 98.2%, 2008년 96.68%, 지난해 93.18%를 각각 기록했었다.
이같은 현상은 개인파산 심리방식이 기존 서면심리위주 방식에서 벗어나 신청자 본인을 직접 구두심문해 채무면책 필요성을 꼼꼼히 판단하는 등 엄격한 방식으로 변화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사기·허위면책 등 채무면탈만을 목적으로 한 파산신청이나 재산을 은닉한 의심이 드는 경우 법원이 적극적으로 파산관재인을 선임해 정밀조사에 나서는 경우가 늘었기 때문이다. 실제 심리방식 전환이후 7개월간 파산심문기일 진행건수와 면책절차에서 의견청취기일 진행건수 등 구두심문건수가 3,760건으로 급격히 늘었다. 2009년 한해동안 구두심문 진행건수 3,001건보다 많은 수치다. 개인파산관재인 선임사건수도 지난해 전체인 497건보다 훨씬 많은 578건을 기록했다.
◇ 심리방식 전환 안착화, 파산신청도 줄어= 이처럼 개인파산 신청자의 채무면책여부 등에 대한 법원의 심리가 깐깐해지면서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되는 파산신청도 지난해에 비해 절반가량으로 줄었다. 지난해 2,757건이었던 월평균 파산신청 접수건수는 심리방식 전환 이후 7개월간 1,584건으로 42.6%나 감소했다.
그 이전에는 2006년 3,670건, 2007년 4,176건, 2008년 3,402건으로 매달 3,000~4,000건 수준이었다.
고홍석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공보판사는 “구두심리원칙과 개인파산관재인 선임 확대라는 새로운 심리방식의 도입으로 개인파산절차의 남용 또는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겠다는 법원의 시그널이 시장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현상은 서울중앙지법이 엄격심리 방식을 취함에 따라 파산신청자들이 다른 지역 관할 법원으로 옮긴 탓이라며 이른바 ‘풍선효과’에 불과하다고 보는 업계의 지적도 있다. 파산사건 경험이 많은 서초동의 한 법무사는 “소나기는 피해가야 하는 것 아니냐”며 “좀 더 지켜보자며 파산신청 자체를 미루거나 수원이나 인천 등 수도권 지역의 다른 법원에 신청을 내는 채무자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사건처리 지연, 파산관재인 선임비용 해결위한 개선책 필요= 새로운 심리방식이 사기·허위성 면책 신청자들을 골라내는 데 실질적인 효과를 나타내며 안착화되고는 있지만, 사건처리지연과 신청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파산관재인 선임비용 문제는 해결해야할 과제로 남았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관계자는 “구두심문과 파산관재인 선임이 늘면서 불가피하게 사건처리에 소요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며 “파산절차와 면책절차를 동시에 진행하는 한편 파산관재인 선임여부를 기록검토 후 조기에 판단하고 누락서류로 인해 보정에 드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파산신청서 양식도 개선하고 있지만 엄격심사 원칙상 기본적으로 소요되는 시간이 많아 고민”이라고 밝혔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대법원예규를 보면 파산관재인 선임비용이 150만~300만원선이고 감액하더라도 80만원 등으로 여전히 높은데 빚에 시달린 채무자들의 마지막 선택이 파산신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파산관재인 선임비용을 예납하지 않으면 파산신청 자체가 기각되는 점을 고려해 파산관재인 선임비용예납을 소송구조 대상으로 만들어 일단 낼 수 있도록 한 뒤 나중에 파산신청자가 사기·허위성 면책신청자라고 밝혀지면 그때 예납비용을 추징하는 등 개선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원이 파산관재인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다른 변호사는 “심리방식 전환의 취지는 좋지만 일부 경험없는 파산관재인들의 무례한 행동도 문제”라며 “가난하고 악 밖에 남은 것이 없는 파산신청자를 찾아가 거만하게 윽박지르고 지나치게 몰아세우는 사례가 심심찮게 발견되는데 법원이 파산관재인을 철저히 관리하지 않으면 제도의 취지자체가 몰각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