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sill there Jimi?
1969년 8월 15일 뉴욕주 북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 베델이란곳에서 열린 Woodstock 페스티벌은 락음악의 역사상 가장 기억될 만한 이벤트 중의 하나였다고 평가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이른 아침 들판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자던 수십만의 사람을 깨운 날카로운 기타소리에 실린 미국 국가인 Star Spangled Banner를 들었던 관중들은 펜더스트라토 캐스터를 거꾸로(그는 왼손잡이였다)들고, 취한 듯 연주해 대는 Jimi Hendrix의 신들린듯한 무대에서 넘쳐 나오는 자유분방함에 같이 젖어드는 자신을 발견 했을 것이다.
그가 사망한지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현재 뮤지션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뮤지션'으로 손꼽히는 그는, 기타가 단순한 리듬위주의 반주악기에 지나지 않았을 때, 그 단계를 훨씬 높여서 음악전반에 있어서 리드악기로서의 위치를 굳히는데 크게 공헌했다. 이러한 모든 업적이 불과 단 4년 여에 걸친 활동기간과 단지 3장의 정규 스튜디오 앨범으로 이루어졌다면 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1942년 11월 27일 미국 북서부의 워싱턴주의 시애틀에서 Johnny Allen Hendrix 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16살이 되던 때 처음으로 중고기타를 사면서 음악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뉴욕으로 옮겨 클럽등지에서 연주하던 그는, 66년 당시에 유명한 밴드였던 Animals의 베이시스트 Chas Chanlder에게 발탁되어 영국의 런던으로 건너가게 된다.
이곳에서 드럼의 Mitch Mitchell과 베이스의 Noel Redding으로 구성된 Experience란 이3인조 밴드로 출발해 데뷔앨범인 [Are you Experienced?] 를 67년에 발표한다. 퍼즈사운드의 날카로운 금속성 기타 소리에 실린 블루스와 락 그리고 사이키델릭 사운드 까지 모두 접할 수 있을 정도로 복합적인 이 데뷔 앨범에 실린 "Hey Joe"와 "Purple Haze", "The Wind Cries Mary" 는, 발표되자 마자 영국의 차트에서 10위권에 들면서 큰 반응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 앨범의 성공으로 이들은 이듬해인 67년 6월에 미국에서 열린 Monterely Pop Festival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으면서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 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음악보다 사람들에게 더욱 충격을 주었던 헤프닝은 그의 기타 연주에 있다. 무대 위에서 기타에 불을 지르기도 하고, 퍼즈와 와와 페달, 그리고 기타앰프의 피드백을 한껏 이용한 그의 음악은 당시로서는 충격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이러한 겉으로 드러난 해프닝뿐만 아니라 감성적이고 세련된 그의 음악 자체와 연주에 있다고 하겠다. 노래 한곡 한곡에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음악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누구보다 다양한 감성을 풍부하게 표현했다.또한 [Electric Ladyland]에서 보여준 오버더빙의 테크닉은, 요즘은 당연연한 것처럼 받아들여 지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도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남들보다 훨씬 앞서가는 이러한 그의 천재성에 비해 그의 음악생활 자체는 무척 불행한 편이었다. 특히 재정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자유분방한 스타일의 생활이나, 주변 상황에 대해 크게 관여하지 않는 성격으로 인해, 그의 앨범 출판권에 대해서 여러 단계의 중복계약이 이루어져 여러 번의 법정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사건들로 인해 그의 밴드는 69년에 해체하게 되고 그는 Buddy Miles(Drum)과 Billy Cox(Bass)와 함께 Band of Gypsies란 그룹을 결성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식 밴드활동 이외에도 그는 전 멤버들과 자주 라이브 활동을 갖고 또한 앨범을 녹음할 때 다시 결합하는 등 형식에 구애 받지 않는 그의 자유분방함을 음악이외에도 마음껏 드러내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그의 스타일은 음악 방향에도 크게 영향을 끼쳐서 어떠한 컨셉에 의해 구성된 음악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파생되어 나온듯한 음악으로 그의 음반을 채우기도 한다.
70년에 구성된 라인업을 보면 예전의 멤버였던 Mitchell과 Cox로 구성되어서 마지막 까지 활동하는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수많은 비평가들과 대중들로부터 상반된 평가를 받으면서 음악활동을 계속 해오던 그는 [First Ray of the new Rising Sun]을 녹음하던 중 29의 젊은 나이로 '약물과 관계된 원인으로' 영국의 런던에서 70년 9월 18일 숨을 거두고 만다.
비록 정규 스튜디오 앨범은 3장밖에 발표하지 않았지만, 틈날 때 마다 녹음활동에 몰두했던 그는 엄청난 양의 작품들을 남겼는데, 그의 사후 3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약 50여장에 이르는 다양한 형태의 편집앨범 등이 발매되어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그를 아껴왔던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그 결과로 아직도 그의 죽음과는 관계없이 수많은 뮤지션들이 그의 음악에 영향을 받으며 음악적인 역량을 키워가기도 하고, 서슴없이 가장 많은 영향을 준 뮤지션으로 그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때문에 사람들은 아직도 그의 숨결이 세상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하늘에서도 머물지 않고 아직 우리들과 함께 호흡하는 그를 느낄 수 있는 "Little Wing"을 추천하고 싶다.
VanCouver에서 Silver Rain
첫댓글 1970년은 3J가 차례로 죽어나간 해였지. 지미 헨드릭스, 짐 모리슨, 재니스 조플린... 내가 이 사람들의 음악적 영감을 내림굿 받았나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