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하면 떠오르는 것이 도전, 용기이다. 하지만 나는 긴장, 떨림, 두근거림으로 히말라야 오지학교 탐사대를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형들, 친구들과 어색하여 서먹서먹하였다. 그러나 1차, 2차 모임을 통해 점점 친해질 수 있었다. 2차 모임 때 춤 연습이 완벽하지 않아 많이 걱정 하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대원들의 춤 실력은 늘어나는 듯했다. 방콕 공항에서도 다들 비행으로 인해 많이 지쳐있는데도 공항 구석 쪽에서 음악을 틀고 춤 연습을 하였다. 힘들었지만 다 같이 함께 연습을 하니 덜 지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9시간의 짧지 않은 시간 동안의 기다림 끝에 다시 비행기에 올라탔다. 3시간의 비행 끝에 드디어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도착하였다. 짐을 내리던 와중에 짐이 바뀌어 대장님께 꾸중을 들어 죄송했다. 짐을 찾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가슴에 담고 최고급 호텔로 이동하였다. 최고급 호텔에서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더욱 친해졌던 계기가 된 것 같았다. 저녁 시간이 되어 네팔 전통 식사를 하러 갔다. 네팔 전통 공연을 즐기며 인상 깊었던 45도의 전통 술을 마시며 대원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때 그 술을 넘길 때 목구멍의 따가움을 평생 잊지 못할 듯하다. 다음 날은 트레킹의 시작하는 날이었다. 국내선 항공기를 타고 포카라로 이동하는데 항공기의 소음이 너무 커서 귀를 막던 중 기내에서 솜을 나누어 주어 경치 구경을 하며 순조롭게 포카라에 도착했다. 포카라에서 키솔, 핀죠, 페마, 니마, 찬드라 셰프 등 여러 스텝을 소개 받은 뒤 라면을 배에 채운 뒤 트레킹을 시작했다. 첫 날이라 조원들끼리 이야기도 하며 트레킹을 해 별로 힘들지는 않았다. 디케둥가 롯지에서 첫 1분 스피치를 하며 웃고 떠들었던 것이 기억에 생생하다. 밤에 별도 보고 형들과 정자에서 이야기도 하며 하루를 끝마쳤다. 두 번째 날이 밝자 다들 힘찬 발걸음을 내딛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오르막길이 많아 힘들었지만 친구들과 말을 하며 걸으니 한결 수월했던 것 같다. 몇몇 대원들은 고산병 증세 때문에 더욱 힘들어 하는 표정이었다. 나도 힘들었지만 고산병으로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보며 스스로를 위로하였다. 다음 날 새벽에 푼힐 전망대에서 멋진 히말라야 일출을 보기 위해 푼힐로 올라갔다. 그 과정에서 나는 정말 죽기 살기로 겨우 올라왔다. 올라오자마자 지쳐 풀밭에 누웠는데 주변의 경치가 어찌나 예쁘던지 힘들었던 게 잠시 잊혀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일출을 보고, 다들 활기찬 모습을 되찾아 타다파니에 도착했다. 몇몇 친구들이 다행스럽게도 고산병이 나아 밤에 함께 발냄새나는 양말을 던지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다음 날, 아주 많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시행착오 끝에 시누와에 도착하니 기분이 너무 상쾌하며 말 못할 쾌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그날 밤도 친구들과 재미난 이야기를 하며 밤을 보냈다. 해가 뜨면 자동적으로 아침을 먹고 우리는 또다시 트레킹을 시작했다. 도반에 도착해 맛있는 라면을 먹고 똥을 싸러 갔다가 나왔는데 다들 부둥켜잡고 있고, 몇몇 친구들을 우는 것이었다. 고산병 증세가 악화되어 3조 조장 황영현 형, 멋진 척 안치홍 형, 해운중 동기 조원준, 영어 잘하는 이은서 누나, 이규원 형까지 5명이 함께 올라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때, 원준이가 갑자기 나를 잡고 열심히 갔다오라며 눈물을 흘릴 때 나도 울컥하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가고 싶어도 함께 할 수 없는 대원들 몫까지 열심히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리가 후들후들거릴 정도로 앞사람만 보며 걸었더니 다행히도 데우랄리 롯지에 도착하였다. 그날은 어찌나 힘들었던지 갑자기 설사가 나오며 입맛도 없었다. 그렇게 정상이 아닌 듯한 몸을 끌고 그 드높은 마차푸차레 베이스켐프에 도착했다. 몇 시간의 자유시간으로 나는 호전되었고, 다음 날 안나푸르나에 오르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아침 일찍 일어나 안나푸르나까지 올라갔지만 시간이 지체되어 해는 떠버렸다. 이때, 내 손이 얼어서 너무 찢어지는 듯 아팠다. 핀죠 형이 손을 주물러 줘서 아픔이 점점 나아졌다. 아쉽게도 일출은 보지 못했지만 형들과 재미있는 포즈로 사진도 찍으며 다시 내려왔다. 이제 그동안 힘들게 올라왔던 곳을 내려가 함께 올라가지 못했던 대원들과 합류를 하니 다시 힘이 생겨나는 듯하였다. 촘롱에서 더 내려가 뉴 브릿지 롯지에 도착해 7일만에 상쾌하게 핫 샤워를 하고 다시 원래의 내 모습으로 단장하였다. 이제 트레킹이 끝나 편하게 내려와 버스를 타고 바라부리에 갔다. 도착해서는 바로 짐을 옮기고, 텐트를 치며, 춤 연습도 하여 지쳤다. 이때 마을 아이들과 춤 추며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인상 깊었다. 그날 밤, 홈스테이를 했는데 여자아이 집에 가게 되어서 너무 어색했지만 현지인들과 함께 이야기를 해보니 새로운 경험이었다. 현지인들은 이런 곳에서 사는데 나는 축복받은 아이라고 생각을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바라부리 학교에서 춤도 추고, 선물로 불상도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미빅과 아니스카가 배웅해줄 때가 잊을 수가 없다. 이제는 산에서 벗어나 포카라로 내려왔다. 포카라에서 조별로 자유시간을 받아 배도 타고, 베라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옷 쇼핑을 하며 사진도 엄청 찍고, 자전거도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날 저녁 피자만 7조각, 파스타 1접시를 먹어 정말 배가 불렀다. 그 다음날 아침에 전날에 먹은 저녁이 체했는지 토하며 설사도 엄청 하였다. 결국 소화제를 먹었고, 손가락도 땄다. 카트만두에 도착해 자유시간을 얻어 기념품을 왕창 샀다. 기다리는 동안 태욱이 형과 볼 꼬집기 게임을 했는데 멍이 들었는지 볼이 너무 아팠다. 형은 그 때 악마처럼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 공식일정의 마지막, 바니빌라스 학교에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출발했다. 그렇게 열심히 연습했던 붐바스틱과 질풍가도 공연도 무사하게 마무리하고 선물도 잘 전달했다. 오늘은 사원에 가기로 했는데 파슈파티 사원에서 시체를 불태운 장면이 너무 소름 끼친다. 저렇게 공개적으로 장례를 치러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사원 관광을 마치고 마지막 저녁인 만큼 방 파트너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마지막 밤을 흘러보냈다. 그 다음날 방콕 공항에서 그동안 찍었던 사진을 보며 그동안의 추억을 되새겨 보니 피식 웃음이 나오는 사진들도 많았다. 그리고 드디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 할 때 공항에서 보성이 형, 지응이 형, 영현이 형, 은서 누나, 서영이 누나, 준석이 형, 강은 쌤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머지 대원들은 버스를 타고 충주로 돌아왔다. 충주에서 다한이 형, 준섭이 형, 도원이, 제이 형, 준우, 태욱이 형, 준영이 형, 대장님, 부대장님 등의 다른 선생님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이제서야 내 원래 일상으로 되돌아 온 기분이 든다. 17일간의 힘든 여정은 결코 힘들지만은 않았다. 웃기도, 즐기기도, 혼나기도, 울기도 하며 함께 했던 그날들이 절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지금도, 부대장님의 썰렁 개그가, 준영이 형의 멋진 댄스가, 아침에 문 두드리며 들어오던 생강차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이제는 만나기 힘들다는 건 알지만 언젠가는 다시 만나겠지라고 생각한다. 계속 연락을 주고 받으며 남은 인생도 열심히 살아보자. 대원들 모두 건강하고 만날 기회가 주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잘 지내길 바란다.
첫댓글 태봉, 잘 지냈지? 김태봉=축복받은 아이. 스스로를 존중할 줄 안다는 사실과 현재의 감사할 줄 아는 너의 마음이 고맙다. 애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