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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子譜(병자보, 고종13, 서기1876) 譯者 金希元 2004. 6. .
金海金氏族譜序(김해김씨 족보서)
夫譜所以著代而收族也上以窮先世之所由始下以至後昆之所自出旁以及宗族之疎且遠
대저 족보는 씨족의 대를 나타내고 위로는 시조를 말미암아 모든 선조와 아래로는 후손들의 두루 출생한 바로부터 종족이 가깝고 또 소원함에 이르는 것을 수록한 것이다.
父之父爲 祖祖之祖爲 高祖推以上之雖百世乃父之父祖之祖也 子之子爲孫孫之孫也
부는 부가되고 조상인 조는 조가 되고 고조 이상은 추앙하여 위로 옮겨서 비록 백세가 되더라도 곧 부는 부의 자리에 조는 조의 자리라야 하며 자식은 자가되고 자손인 손은 손이 되며 현손 이하는 미루어 아래로 옮겨서 비록 백세가 되더라도 역시 자식은 자식의 자리에 손은 손의 자리라야 한다.
一身而爲兄弟 兄弟分而爲族 兄弟推以反之雖百分乃兄之弟 弟之兄也 然而世級遠而子姓繁宗支別昭穆序矣
한 몸이 나누어져 형제가 되고 형제가 나뉘어져 씨족이 되니 형제를 미루어 돌이켜 비록 백 번 나뉘어도 곧 형과 아우이며 아우와 형이니라 그러나 세대가 오래되고 자손들이 번창하면 종지의 구별과 소목의 차례가 생기게 되나니.
若其五世而澤斬親盡服盡情愛衰 則易至於路人可不懼哉
만약 5세에 이르러서 그 윤택함이 끊어지고 친족이 다되고 복이 끝나고 애정이 쇠약해지면 바뀌어서 길가는 사람처럼 될까 두렵지 아니한가?
程子曰 管攝天下人心莫如明譜系無是譜 則無以述家風而陳世德且生卒配墓 若內外族戚 亦無得以記焉
정자 가로되 천하를 지배하더라도 인심은 족보에서 밝혀진 것만 같지 않으며 계통은 이 족보가 아니면 따질 수가 없다. 족보에 기술하지 않으면 가풍과 베푼 세덕과 또 생, 졸, 배위, 묘소, 내외 친척과 인척 같은 것도 역시 기억해 낼 수가 없을 것이다.
此譜所以作也 金之氏金海者 皆以駕洛國首露王鼻祖歷王十世至仇衡王國除有曾孫諡興武諱庾信出將入相爲東京之名臣 又至曾孫諱長淸以下世系無傳焉
이리하여 족보를 마련하게 되는바 김해 김씨는 모두 가락국 수로왕을 시조로 하여 역대 왕으로서 10세 구형왕에 이르러 나라가 없어지고 그 증손에 있어서 시호가 흥무이며 휘 유신은 나가서는 장수이고 그 조정에 들어와서는 제상으로서 동경의 이름난 신하였다. 또 그 증손 휘 장청에 이르러서 세계가 전하지 않았으니
各派自麗季別立中祖 分門分族 各別宗支各序疎穆 有以名公巨卿而踪武者 以文章德行而著世者 以忠孝節義而傳者 以武略勳勞 而封者雲仍克昌 散在八域
각파에서는 고려말부터 중조를 따로 세우고 문중이 나뉘어지고 종족이 나누어져서 각기 따로 종과 지의 소목의 차례를 세워서 명공거경이 있음은 흥무왕의 자취일 것이며 문장과 덕행은 세상에 드러나고 충효의 절의는 대를 이어 전하여 졌으며 군사 책략에도 힘써 공훈을 세워서 봉작을 받은 자손이 구름처럼 매우 성하여 팔도에 흩어져 살고 있다.
其麗不億先系雖中絶後屬雖疏遠旣是同祖 則亦天敍之親也 斯譜之合乃理所固然故忠靖公五世孫龍植慨然有意於廣修敦睦之義與諸宗收議爲此大譜之擧
그 아름다움을 다 헤아릴 수 는 없으나 선계가 비록 중절되고 후세가 비록 소원하다하나 이는 같은 조상으로서 역시 하늘이 매겨놓은 차례의 친함이니라. 이로서 족보를 합치는 것은 진실 된 이치인 바이며 그러한 고로 충정공의 5세손인 용식은 분연히 넓게 돈독하고 화목한 뜻을 가지고 여러 종문과 더불어 의논을 수합해서 이에 대보를 닦아서 일으키고
而屬余爲文以弁之噫 斯譜團圓永修敦睦 則實得蘇氏所謂孝悌油然之意夜 其有補於世敎也 亦大矣 惟金氏勉전哉是爲序
나에게 서문을 부탁하니 아∼잘한 일이다. 이 족보에 수록된 모든 단원은 영원토록 돈독하고 화목함에 힘쓰면 진실로 소씨가 이르는바 효제의 도가 구름처럼 일어난다는 뜻일 것이며 그것은 세상을 교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니 역시 큰 것이다. 오직 김씨들은 여기에 힘쓰기를 격려하면서 이에 서 하노라.
崇禎紀元五丙子孟冬下澣 資憲大夫吏曹判書兼經筵日講官 嘉林趙基應撰
승정 기원 오 병자(서기 1876)년 10월 하순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경연일강관 가림 조기응 짓다.
(丙子譜) 凡例 (병자보)범례(1876) 譯者 金希元 2004. 6. .
一 世代寢遠務在徵信故輿地勝覽所載本貫沿革及各派先祖以下諸位墓道文字 先世文獻之可考者一一收錄 而至於駕洛國記似涉荒誕旣是傳世遠之文字則後孫不知是以弁焉
세대가 점점 오래되어 힘써 믿을 수 있는 증거를 살피고자한 고로 여지승람의 기록된 바의 본관과 연혁과 선조 이하의 제위의 묘도비의 문자와 선대의 여러 문헌을 하나 하나 고찰하여 수록하였으며 가락국기에 이르러서는 황탄(荒誕=荒唐=터무니없고 허황함)함에도 이미 멀고 오랜 세대에 전하여 내려온 기록이라서 자손 된 자는 알지 않으면 아니 되기에 흉내내어 서둘러 실었다.
一 我金肇自駕洛國흘今數千而世代久遠譜牒無徵世系中絶莫知其系於何業故謹按東史所載始祖以下十餘代諱啣載錄於譜第一張以存愼重之義
우리 김씨는 처음 가락국으로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수 천년에 이르렀으며 세대가 오래되고 멀어서 보첩은 없어지고 세계의 기록은 중간에 끊어져서 그 갈래가 어느 갈래인지를 알 수 없다. 그런고로 삼가 동사에 실린 바를 살펴서 시조이하 십 여대의 휘와 함자를 보책의 제일 첫 장에 실은 것은 신중하게 모신다는 뜻이다.
一 每場面以千字文隨次塡書以表其次而各派紙窮更起張或他卷及內外孫重見於他派皆見某字使之開卷易曉
매장의 면에는 천자문의 차례에 따라 그 장마다 차례를 매기고 각파의 지면이 다하면 타 장에 새로 일으켰으며 혹 책을 달리 할 때에나 내외 손이 거듭 나타나는 것이나 타파의 경우라 하더라도 모두 어느 기록을 펴 보라 하여 책을 쉽게 펴보도록 밝혀 두었다.
一 本宗不書姓氏外孫則必書姓字者所以別異姓也
본 종은 성씨를 쓰지 아니하고 외손은 반드시 성자를 쓴 바는 성이 다름을 분별케 함이다.
一 本宗勿限代數書錄 而表德古名職號郎階生卒年月配位四祖墓所坐向該備入錄 而間有不然者依本單也
본 종의 대수는 한이 없이 기록하였으며 덕을 나타내거나 옛 이름과 직호와 관의 계급과 생, 졸, 년, 월과 배위의 사조와 묘소의 좌향은 모두 상세히 갖추어 기록하였으며 그렇지 모하고 틈이 있는 것은 본디 단자에 의한 것이다.
一 異姓只書二世 而間有節孝及 科官顯著者勿拘代數懸註
이성은 다만 2세만 기록하고 그간의 절효와 과거의 급제하거나 벼슬이 드러난 대수에 구애하지 말고 기록하며 주를 달았다.
一 本宗系後子於本生名下書云系某親某后於所後下直書以子者取禮記爲人後子之義也
본 종의 뒤를 이은 자의 본 생가 이름아래 누구의 뒤를 이었다고 쓰고 뒤로 간 곳의 이름 바로 아래에 자라고 직서하는 것은 예기의 남의 자식된 의리를 취한 것이다.
一 外孫出後者只書出系二字入後於女서則書以系子 而生父懸註
외손이 출후한 자는 단지 출계 두자만 쓰고 사위에 입후한 자는 계자라 쓰고 생부의 토를 달아 기록하였다.
一 凡譜中善男後女 而庶子則書於嫡女之後以示尊卑之分
무릇 보책 중에는 남자를 앞세우고 여자를 뒤로하였으며 서자는 적녀 의 뒤에 기록한 것은 존 비의 분수를 구별함이다.
一 每位名下必註幾子女 入后則書云子某子以便考閱
매 위의 이름아래 반드시 자녀의 수를 기록하고 뒤를 세운즉 자는 누구의 자라고 기록하여 펴보기에 편하도록 하였다.
一 前後配則各註生幾子女以明其所自出
전후 배위에는 각기 자녀의 수를 기록하여 그로부터 출생한 바를 명백히 하였다.
一 王后嬪宮 則雖外外源裔必爲載錄 而只作空圈于本行敬書於紙頭者致尊敬也
왕후와 빈궁은 비록 외손의 먼 외손이라도 반드시 기록하되 다만 본행에는 빈 네모 우리만 짓고 서두에 쓴 것은 지극히 존경함에 이른 것이다.
一 壬戌譜世稱大譜然京居金象鉉妄稱京派宗孫做出此譜而各派中許多失系誤錄故國鉉氏以通其嶺營則爲破譜其失系誤錄不筆而糾正者也自後壬戌不準之輪示諸宗
임술보(1802)는 세칭 대보라고 하는데 서울에 사는 김상현이 허망되게 경파 종손이라 말하며 이런 보첩을 지어냈으며 각 파 중에도 계통을 일어버리거나 잘못 기록한 것이 허다하므로 국현씨가 이를 영남감영에 통보하고 즉시 족보를 깨뜨려 버리고 실게 하였거나 잘못 기록한 것을 바로잡고는 붓을 대지 않았다. 그 후로부터는 임술보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뜻을 여러 종문에도 윤시 하였다
一 忠靖公曾孫國鉉氏特書凡例曰 駕洛之金舊無印譜矣
충정공의 증손 국현씨는 범례에 특별히 기록하여 가로되 가락 김씨의 구보는 인쇄된 것은 없었다고 하였다.
一 自金宬甲戌譜淆亂之後種種僞譜愈出愈怪冒系之弊無派無之今雖一一梳節然年代久遠或不無眩眞之慮凡我後屬咸體此意日後修譜之依此譜爲準
김 성의 갑술보(1754)를 뒤섞여 문란하게 한 후로 가지가지의 점점 괴상한 가짜족보가 나돌아서 세계를 가리는 폐단을 없게 하고 파마저 따질 수 없는 지금 비록 하나하나 빗질을 하였으나 연대가 오래되고 멀어서 혹 진실이라도 현혹됨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나의 뒤에 속하는 모두는 다 이 뜻을 본받아서 일 후에 족보를 닦을 때는 이 보첩에 의하여 기준으로 삼게 하라
一.又甲戌年間 湖南井邑地有一譜 此所謂正德譜 自始祖以下六十餘代連係 而此非印本 公籍又多可疑無稽之言矣 丙戌年間井邑人金德埰潛刊此譜 而剽竊傳會己 極荒誕序文未知誰作 而假稱以尤翁丈岩所撰 尤爲駭妄且閱數本互有同異決非信筆 而諸家私諜 或有妄自繼序者 故特書于此以杜後弊
또 갑술년(1754)간에 호남의 정읍 땅에 족보하나가 있었으니 이를 정덕보라 하는데 시조로부터 아래로 육십 여대의 계통을 연이었으나 이는 공인된 보첩으로 인본 되지 않았으며 의문되고 헤아려볼 수 없는 말들이 많은 것을 병술년(1766)간에 정읍에 사는 김덕채가 때마침 전하여진 것을 표절해서 남몰래 이 보첩을 간행하였으니 극히 황탄(荒誕=荒唐=터무니 없고 허황함)하며 서문도 누가 지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가칭 우옹 장암이 지은 바라하여 허망함에 더욱 놀랬고, 또 몇 권의 책을 살펴보니 서로 같고 다름에 있어서 결코 믿을 수 있는 글이 아님에도, 여러 가문의 사첩(私牒)에는 혹 망령되게 스스로 차례를 여기에 따라 이은 이가 있는 것으로서 특별히 이 글을 써서 이후에 이러한 폐단을 막는다.
一 去乙丑年間出松廣譜云而聞此譜僞譜中尤極荒誕者근彼正德僞譜妄系七八十代云此非尤極者也 凡事之前誤後祥理勢固然 而噫此松廣譜染彼井邑僞本寔爲 吾金之大失而終無駕洛之金一人劾論尤極慨歎特以松僞譜糾正之意尤京鄕諸宗以杜後弊
지난 을축(1865)년간에 송광보가 나왔다고 한 것을 들었는데 이 보첩은 위보중에도 더욱 지극히 터무니없고 허황한 것으로써 저 정덕위보의 망령됨의 뒤를 따라서 세계를 칠 팔십대라고 하였으니 이는 황탄(荒誕=荒唐=터무니없고 허황함)하기가 더욱 극심한 것이 아니겠는가? 모든 일은 앞서 잘못된 것은 뒷날에 이치와 형세를 상세히 따지는 보는 것이니 진실로 그러하거늘 아∼슬퍼하노라, 이 송광보는 저 정읍의 가짜족보에 물들여져서 우리 김씨에게 크게 실망케 하고 한 사람의 핵론(劾論=탄핵을 받아 마땅한 논설)으로 마침내 전체 가락 김씨를 업신여기게 하였으니 더욱 지극히 개탄할 일이라서 특별히 송광위보를 바로잡고자 하는 뜻을 경향 여러 종문에 돌려 보여서 이후에는 이런 폐단을 막고자 하노라
一 丙子譜初爲京鄕會同矣 不幸以年無之致各以派分 各派中前代誤錄未可一劾明 故特設此譜者 盖明其許多僞中文字特以松僞譜糾正事印示于 博識諸宗
병자보(1876)는 처음 경향의 여러 종파가 함께 모이기로 하였으나 불행하게도 한해로서는 분파 된 각파가 이룰 수가 없었으며 각파 가운데 전대에 잘못된 기록을 하나하나 따져서 밝혀내지 못하였으므로 여기에 특별히 보소를 마련한 것이다. 대개 허다한 잘못된 기록 가운데에서도 특별히 모든 종중들의 박식한 지식으로 송광위보를 바로잡아서 인쇄해 내는 일이었다.
一 各派碑誌行錄實記略干載錄者以花費不能耳
각파의 비문과 지문, 행실록, 사실기록을 등재하였으나 비용은 마련되지 않았었다.
一 揆正爲本大同爲可以只三派合譜或似草略吾金之稱謂譜牒未免煩數故今此三合莫不爲千載後美事也 則後之覽者詳察焉
극본을 바로잡고자 하여 대동보를 꾀하였으나 단지 삼 파만 합보하여서 혹 우리 김씨 보첩을 간략한 것 같다고 일러 말하나 여러 번잡함을 면치 못한 고로 지금 여기 삼파만이 합보한 것이나, 천년 후에는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일은 없다 할 것이다. 이후에 보는 자는 상세하게 살펴서 보라.
一 配位註或書嫡配庶室或書死配生室者依各家規中本單錄之觀者祥之
배 위의 기록을 혹은 적을 배라하고 서를 실이라 기록하였으며 혹은 죽었으면 배이고 살았으면 실이라 한 것은 각자 집안에 전하여지는 규정의 단자에 의하여 수록하였으니 보는 자는 그것을 상세히 하라.
一 行列則各派自宗及支一一隨行字規正爲可然吾金以先系中絶所致本有族黨行字已無宗案行字或有規正之行而只依族行未隨宗行觀者祥之
항렬은 곧 각파의 종문으로부터 지파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항렬자의 규정에 따름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김씨로서는 선계가 중간에서 끊어진 소치로서 본시 전체 족당(族黨)이 가진 항렬자는 없었다. 종문의 항렬자를 살피건대 혹 항렬자의 규정이 있다 하더라도 단지 파족(派族)에 의한 항렬이지 전 종문이 따를 항렬이 아니니 그 점을 상세히 보라.
一 各派中校正後入單斷當退出 而或有宗派中難恝處雖支派切有難言處 故以疊千字校正之意特書于末
각파 가운데 교정한 후에는 입단한 것은 당연히 끊어서 물치쳐 내쳤으며 혹 종파 중에 괄시하기 어려운 자리나 비록 지파에서 절실히 말하기 어려운 자리가 있음에도 그리하였고 겹쳐진 천자는 교정한 뜻을 특별히 말미에 기록하였다.
一 三賢派三回中黃調陽三字四回中地宿列張寒來暑往霜金生麗十二字都摠公派三回中結爲二字四回中天地玄黃四字五回中致雨露結爲霜金生麗水十字竝疊出觀此譜者祥此勿訝焉
삼현파의 3회중 황, 조, 양 3자와 4회중 지, 숙, 열, 장, 한, 래, 서, 왕, 상, 금, 생, 려, 12자와 도총공파의 3회중 결, 위 2자와 4회중 천, 지, 현, 황, 4자와 5회중 치, 우, 로, 결, 위, 상, 금, 생, 려, 수 10자는 아울러 겹쳐 나왔으니 이 족보 보기를 상세히 하되 이를 의아하게 여기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