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 몽콘 텝무니의 속명은 솟 미깨우너이(Sodh Mikaewnoi)이며, 1884년 10월 10일 방콕(Bangkok)에서 북서쪽으로 100km 떨어진 수판부리(Suphanburi) 도, 성피넝(Song Phi Nong) 군에서 부유한 상인 가문에 태어났다. 그는 22세였던 1906년 7월 초 고향에 있는 '왓 피넝'(Wat Songpinong) 사찰에서 출가했고, 빨리어(Pāli) 법명은 짠다사로(Candasaro)이다.
2. 불법 공부
학승으로서의 프라 몽콘 텝무니는 자신의 동세대 학승들과는 달리 두 가지 전통을 동시에 공부한 불제자였다. 그는 명상에 관한 구전 전통의 스승들 문하에서 공부하는 동시에, 경전 분석의 전문가들 문하에서도 공부했다.(주1) 그는 스님이 된 직후부터 명상을 공부했고, 첫번째 우기 안거가 끝나자 당대의 유명한 스승들 모두를 찾아다니며 태국 전역을 돌아다녔다.(주2)
(주1) Dhammakaya Foundation (1998) The Life & Times of Luang Phaw Wat Paknam (Dhammakaya Foundation, Bangkok) p.36.
(주2) 앞의 책, p.37.
3. 수행과 득도
이후 그는 경전 공부를 위해 방콕으로 이주했다. 그는 각각의 승원 학교들에서 수행을 했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출가 11년째 되던 해 우기에, 그는 논타부리(Nonthaburi) 도에 있는 '왓 방꾸위엥'(Wat Bangkuvieng) 사원에서 안거에 들어갔다. 이때 그는 독학으로 <청정도론>(Visuddhimagga, 淸淨道論)의 가르침에 따른 수행을 시작했다.
그는 11년이란 긴 세월을 수행으로 보냈지만 아직도 붓다가 가르친 본질적인 지식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스스로를 반추해나갔다. 그러던 중 1917년 9월 보름 날, 그는 '왓 방꾸위엥' 사찰의 본당 안에 앉아 있다 흔들림 없는 좌선 수행에 들었고, 마음의 집중을 흐뜨러뜨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해결했다. 주장에 따르면, 밤까지 이어진 명상에서 그의 마음은 더욱 더 깊은 차원으로 이동해 담마까야(dhammakāya, 法身, 眞我: 참된 자아)를 발견했다고 한다. '담마까야'(태국어: 탐마까이)는 내적 육신의 가장 정련된 부분이며, 때묻음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운 것이라고 한다.
4. 가르침
프라 몽콘 텝무니는 이후 남은 여생을 명상 수행법을 가르치고 그 깊이를 확장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그가 가르친 수행법이 바로 "담마까야 명상법"(Dhammakaya meditation: 즉, '담마까야'를 얻기 위한 명상법)라고 알려진 수행법이다.
1918년, 그는 방콕의 톤부리(Thonburi)에 위치한 사찰 왓 빡남 파시짜른(Wat Paknam Bhasicharoen, วัดปากน้ำภาษีเจริญ)의 주지(=수도원장)로 임명됐고, 그곳에서 담마까야 명상의 통찰을 연구하고, 명상이 공익을 위한 최선의 응용 수단이 될 수 있도록 실험하면서 수행법을 더욱 체계화시키고 세련되게 만드는 데 전념했다. 그는 50년이란 전례없이 긴 승려 생활을 하는 동안, 담마까야 획득의 길을 추구한 모든 이들에게 가르침을 베푸는 데 있어서 매일 매일 지칠 줄 모르는 정열을 보여줬다. 그는 태국 불교에서 체계화되지 못한 채 드물게 존재하던 구전 명상 전통을 다시 주목하여 재개발할 필요성을 인정했다.
그는 수행법 가르침을 통해 명상자들이 직접 체험을 통해 그 수행법의 성공 여부를 스스로 확인할 기회를 제공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만들었더고 주장한 수행 테크닉을 타인들이 확인해보도록 시도하곤 했다. 이러한 필요성에 부응해서 생겨난 것이 '왓 빡남 파시짜른'에서 진행된 '명상 워크샵'이란 혁신적 프로그램이었다. 그는 명상자들이 이 워크샵의 테크닉을 24시간 밤낮으로 수지해야 한다고 선언했고, 자신의 추종자 중 가장 뛰어난 명상가들을 선발했다. 그들의 "직분"은 사회적 공익을 위해 명상 연구에 일생을 바치는 것이었다.
프라 몽콘 텝무니 스님은 태국의 불교 승려로는 최초로 서양인들에게 구족계를 준 스승이기도 하다. 그는 1954년 '왓 빡남 파시짜른'에서 영국인 윌리엄 퍼퍼스트(William Purfurst)에게 수계를 주었는데, '리차드 랜달'(Richard Randall)로도 불린 퍼퍼스트는 '까삘라와도 비쿠'(Kapilavaḍḍho Bhikkhu)라는 법명을 받았다.(주3) 까삘라와도 비쿠는 영국으로 돌아가 1956년에 '영국 승가 후원회'(English Sangha Trust)를 설립했다.(주4)(주5)
(주3) Rawlinson, A. (1994) The Transmission of Theravada Buddhism to the West, in: P. Masefield & D. Wiebe (Eds) Aspects of Religion: Essays in Honour of Ninian Smart (New York, Lang), p.360.
(주4) Oliver, I. (1979) Buddhism in Britain (London, Rider & Company), p.102.
(주5) Snelling, J. (1987) The Buddhist Handbook: A Complete Guide to Buddhist Teaching, Practice, History, and Schools (London, Rider), p.262.
(동영상) 프라 몽콘 텝무니 스님의 생전 설법 모습. '사마타(止)-위빠사나(觀)'를 중심으로 명상에 관해 가르친 내용이다.
5. 사망 (입적)
1956년 프라 몽콘 텝무니는 병에 걸렸다. 그는 가장 헌신적이던 여성 출가수행자(매치[mae chi, Mae ji, แม่ชี]: [역주] 태국 상좌부 불교는 여성에게 비구니계를 주지 않고, 재가자와 출가자의 중간 지위로서 '여성 수행자'를 두고 있음) 4~5명 외에는 모든 제자들을 물러가게 한 후 명상 워크샵을 중단했다. 이들 측근 중에는 짠 콘녹융(Chandra Khonnokyoong, จันทร์ ขนนกยูง, 찬드라 콘녹융: 1909~2000)과 통숙 삼댕판(Thongsuk Samdaengpan: 1900~1963)이 포함됐다. 1959년 그가 향년 75세로 사망(입적)한 후 탐마까이(담마까야) 운동의 구전 전통을 계승해나간 것은 바로 이들 여성 수행자들이었다.
* 출판물
- Phramonkolthepmuni (2006) Visudhivaca: Translation of Morradok Dhamma of Luang Phaw Wat Paknam (Bangkok,60th Dhammachai Education Foundation) ISBN 978-974-94230-3-5
첫댓글 말하자면,
이 양반이 바로 "태국의 성철 스님" 정도 되시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