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한 분이신 하느님을 저는 믿나이다."
위의 두 문장은 각각 사도신경과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의 신경의 첫 부분입니다.
두 신경 중에 어느 것이 더 오래되었을까요? 어느 것이 신학적으로 더 중요할까요?
신경이란 믿을 교리, 즉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반드시 믿어야 하는 교리를 기도문으로 엮은 것입니다.
신경의 기원은 초기 교회 세례식에서 유래합니다.
예수님께서 지상 생활을 마치고 승천하시기 직전에 하신 당부 말씀, 즉 "너희는 가서...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마태 28,19) 주라는 말씀에 따라
초기 교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차츰 성부가 어떤 분이신지 묻기 시작했고, 성자와 성령에 대해서도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신앙의 중요한 내용이 보충되고 보완되어 오늘날의 형태에 이르렀습니다.
사도신경과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 중에 더 오래된 것은 사도신경입니다.
사도라는 말이 들어간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사도신경은 사도 시대인 2세기 때 시작되어, 5세기에 수정되고, 8세기에 오늘날의 형태로 자리 잡았습니다.
사도신경이 몇 줄인지 아시나요? 우리말로는 번역하면서 달라졌지만, 원문에는 12줄입니다.
보나벤투라 성인에 따르면 12사도가 한 줄씩 고백해서 생긴 신경이라 그렇다고 하는데, 이는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라 진위 여부는 알 수는 없습니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은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년)와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의 논의 결과에 따른 신앙고백입니다.
4세기에 신경의 기본 내용이 정해지고, 이후 수정 보완되다가 11세기경에 오늘날과 같은 형대로 완성됩니다.
신경의 중요한 내용
신경은 신앙과 신학의 중요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신경은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리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그리스도교는 누구는 믿는가? 혹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신경의 내용을 이야기하면 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계시와 교리가 신경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둘째, 신경은 그리스도교 신학의 두 가지 기본 입장인 삼위일체적 해석과 그리스도 중심적 해석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신경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에 대한 소개와 한 분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서술합니다.
모든 구원 역사에는 삼위일체 하느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성부에 대한 서술이 가장 짧고, 성령에 대한 서술이 그보다 좀 더 길지만 성자에 대한 서술보다는 짧습니다.
왜냐하면 성부에 대해서 아는 게 가장 적고, 성령에 대해서는 성부보다 많이 알지만, 성자보다는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즉, 하느님에 대해 가장 많은 계시가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가장 정확하게 드러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해서, 그리고 성부와 성령에 대해서 우리에게 가장 분명하고 완벽하게 계시해주는 분은 제2위격인 성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즉 신경은 삼위일체적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 중심적 구조를 통해 하느님을 알려줍니다.
이러한 특징은 그리스도교 신학의 전체적이고 근본적인 특징이자, 가톨릭교회 신학의 기본 특성인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학은 이 두 가지 특성과 본질을 충실하게 따릅니다.
나신 혹은 낳음의 중요성
사도신경과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은 신학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똑같이 중요한 신경입니다.
신경은 이처럼 모든 구절, 모든 단어가 아주 중요한 신앙고백이고, 신학적 논의의 결정체입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단어 또는 구절 하나를 뽑으라면 여러분은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한 분 하느님? 성령으로 잉태? 부활? 심판? 이 선택과 판단은 신학자들마다 다르고, 그 이유도 다릅니다.
그런데, 만일 제게 한 단어를 고르라고 한다면, 저는 과감하게 '나신'을 선택하겠습니다.
나신, 낳음, 이 단어가 왜 중요할까요?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신경이난 그리스도교 하느님에 대한 신앙고백문입니다.
그런데, 초기 교회 때 수많은 이단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오직 성부만이 진짜 하느님이시다, 예수는 제2의 신이다. 예수는 성부가 잠시 역활 바꿈을 한 것일 뿐이다.
예수는 반신반인이다, 예수는 그저 한 인간이었다 등 수많은 주장이 난무했습니다.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 즉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고백하고 신앙의 핵심으로 결론짓기까지,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과 학자들은
이단들의 주장에 논박해야 했고, 그들과의 투쟁과 논쟁을 통해 얻은 결과를 보편 공의회를 통해서 확정하였습니다.
물론 이 고단한 과정을 통해서 교회는 성장하고, 신학 이론들은 더 단단해졌습니다.
양화가 악화를 구축한 셈이지요. 초기 그리스도교 신학은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참하느님이심을 설명하기 위해 성부로부터 탄생하셨다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즉 세상 만물은 하느님에 의해서 창조된 피조물이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느님에 의해서 낳음을 받으신 분이라는 결론이었습니다.
한처음에 하느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바로 그 하느님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신 분이 예수님인데, 그분은 하느님의 독생 성자이시고, 오직 이분만이 성부로 낳음을 받으셨다는 것이 초기 교회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계시를 통해 알게 된 성자의 신성에 대한 신앙을, 니케아-콘스탄트노플 신경은 참하느님에게서 나신 참 하느님이라는 말로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의 3대 신경
사도신경과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 외에 아타나시우스 신경도 있는데, 이 셋을 그리스도교에서는 3대 신경이라고 부릅니다.
아타나시우스 성인은 예수의 신성을 거부한 아리우스 이단에 맞서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역시 참하느님이심을 믿고,
그래서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은 성부, 성자, 성령이 삼위일체임을 논학적으로 논증하고 해석하면서 신경을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대부부 사람이 이 신경을 모르는 이유는 그 내용이 너무 길기 때문입니다.
이단들의 주장에 대해 자세하고 정확하게 반박하며 설명하다 보니, 신경이 너무 길어져서 전례 중에는 사용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점차 잊혔습니다.
고대 교부들이 설명한 믿음의 3단계
신경이란 믿음의 내용이고, 믿는다는 것은 내 몸과 마음이 하느님께 향하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고대 교부들은 다음과 같은 3단계로 믿음을 설명했습니다.
1) credere Deum - 하느님이 존재하심을 믿는 단계입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의 이치와 변화를 통해 하느님의 뜻, 섭리, 은총을 믿고 깨닫게 되는 단계입니다.
2) credere Deo -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말씀, 계시를 믿는 단계, 신앙의 첫 단계를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신앙인이 속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credere in Deum - 하느님 안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는 단계입니다.
앞의 두 단계를 포함하는 이 단계는 신앙이란 결국 하느님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신앙의 행위와 내용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한 개인이 하느님의 계시는 받아들이고 해석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게다가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몸을 받아 들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회의 성사가 필요합니다.
꼭 교회의 성사가 아니더라도, 특정한 상황에서 누군가 하느님을 체험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온전히 알고 그분과 일치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할때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성사적으로 즉 직접적이고 가시적으로 전달하는 역활은 오직 그리스도의 교회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신앙의 전부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분께 희마을 두고,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