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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계문예대학 수필창작반 10기- 1학기-3차시 합평작
1. 별이 빛나는 밤 1 / 우진숙
1. 여고 갓 졸업한 그 시절 나는 ‘별이 빛나는 밤’ 음악 프로그램 애청자였다. 반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은 미술사상 잘 알려진 작품명으로 사람들에게 감성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생각된다.
2. 초저녁에 잠들면 청년이 아니란 듯 늦은 밤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그 시간을 향유하던 때가 있었다.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갖가지 사연에 공감하고 선망하던 이 프로그램은 젊음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부산에서 여고를 졸업하고 울산으로 돌아와 생활한 이후 난 오롯이 울산사람으로 살아왔다.
3. 그 시절 여고 동창들은 부산에 살고 나는 울산에서 외톨이로 지내며 가족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 공백을 음악을 듣는답시고 성남동 DJ가 있는 음악다방엘 자주 들락거렸다. 말 한번 붙여보지도 가까이 얼굴을 본 적 없는 DJ가 얼마나 근사하고 멋져 보였는지 자아도취에 빠져 있었다. 혼자 귀퉁이에 앉아 음악을 신청하고 신청곡이 나오면 흡족해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때는 그것이 내 최고의 즐거움이었다.
3. 그래도 다 채우지 못한 갈증이 남아 ‘별이 빛나는 밤에’ 보내는 음악엽서를 보내기 시작했다.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신청곡에 목메도록 기다리며 날마다 라디오를 옆에 끼고 살았다. 다행히 내가 보낸 음악엽서는 종종 전파를 탔다. 그 프로 진행자인 오인숙 아나운서도 익숙한 듯 내가 보낸 엽서는 사연을 빠뜨리지 않고 읽어 주었기에 더 신바람이 나서 일주일에 한 통씩 엽서를 보내곤 했다. 부산에 있는 친구들은 듣지도 못하는 음악엽서였지만 그게 내 유일한 낙이고 생활의 기쁨이었다.
4. 그 프로 애청자들 가운데서 가끔 편지를 받기도 했고 마음이 내키면 답장도 해주고 나름 소소한 재미도 보았다. 그 당시에는 펜팔이 성행하던 시절이었으므로 오고 가는 편지에 그다지 비중을 두진 않았다. 그중 한 사람이 ‘당신이 뭔데 내 가슴을 이리 흔들어 놓느냐?’며 핀잔 아닌 핀잔을 했고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마음이 쏠리어 답장을 보냈다. 그는 청마 유치환의 행복을 무척 좋아하는 풋풋한 청년이었다. 인생에 대해 고민도 깊고 정신적 차원이 높은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그에게 흡입되듯 자주 편지를 교환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서로가 답장을 기다리지 않고 쓰고 싶을 때 편지를 써서 보내니 일주일에 두세 통의 편지를 받는 게 일상이 되었다. 몇 달의 시간이 흘러갈수록 서로가 궁금해 한번 만나자는 말이 오고 가던 무렵이었다.
5. 그쯤 토요일 오후 울산으로 오겠다는 그의 전보를 받고 가슴이 얼마나 쿵쾅거리며 뛰었는지 모른다. 공무원 새내기 시절 남자와의 첫 데이트 상상만 해도 가슴이 부풀었고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달아오르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청바지에 가죽점퍼를 걸친 키가 훤칠하고 잘생긴 그를 만났을 때 나도 모르게 절로 엷은 미소가 번졌다. 방어진 행 시내버스를 타고 울기등대로 갔다, 버스 안에서 비에 젖은 옷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걸 감추지 못해 그저 멋쩍게 웃으며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
6. 가을비가 내리는 오후 한적하고 호젓한 울기등대는 인적이 드물었다. 등대 주변 넓은 솔밭은 온통 우리 차지였고 여기저기 쏘다녔더니 시간이 깨 흘렀나 보다. 옛 교원연수원 아래 자갈밭을 걸으며 사각사각하는 파도 소리에 흠뻑 취해 있었는데 갑자기 ‘손들어’ 하며 군인 아저씨가 우리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었다. 우리는 깜짝 놀랐으며 영문을 몰라 새파랗게 질려 무조건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었다. 피 끓는 청년인 군인 아저씨의 눈에는 우리가 하는 짓이 얼마나 얄밉고 심통을 부리고 싶었을까. 그곳이 군사작전지역이어서 정해진 시간 외는 민간인 출입금지구역이었던 걸 미처 알지 못해 일어난 불상사였다. 혼쭐이 나서 황급히 그곳을 빠져나왔던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 떠오르니 지워지지 않는 물감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다.
7.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울기등대 갈 때마다 그때의 일이 생생한 기억으로 되살아난다. 그곳 옛 교원연수원이 이전하기 직전 공교롭게도 내 마지막 근무지였음은 참으로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다. 그곳에서 여섯 달 꿈같이 보낸 최후의 직장생활과 그와 첫 데이트 장소는 아련한 추억을 이어주는 오작교와 같다. 별처럼 환했던 그와 별이 빛나는 밤은 내 비망록으로 가끔 아름다운 추억의 여행지로 데려가곤 한다.
2. 비디오 게임기와 아들/신준영1
1. 10여년 전,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를 샀다. 어린 시절 부유한 친구네 집에서 가지고 놀아본 게임기는 나에게 신세계였다. 불량한 아이들만 간다는 동네 오락실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게임을 할 수 있었고, 게임이 끝날 때마다 동전 투입구에 50원씩 넣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만큼 게임을 계속 할 수 있다는 사실은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에 대한 충격과 동경을 심어주었다. 그렇게 비디오 게임기는 어른이 되어 돈을 벌게되면 사고싶은 여러 물건 중에 하나가 되었다.
2. 막상 어른이 되어 돈을 벌어도 당장 게임기를 사지 못했다. 결혼 전에는 동생들이 쓸 데 없이 돈을 쓰는 것을 배울까 겁이 났었고, 결혼 후에는 내 집 마련이 우선이어서 매달 가계부를 쓰며 아끼고, 절약해서 사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에 말도 꺼내지 못했다.
3. 점점 게임기에 대한 생각이 잊혀지는 듯 하다 아들이 태어나자 다시 게임 속 캐릭터들이 나의 욕망을 흔들어 댔다. 아들이 좀 더 크면 둘이 나란히 앉아 TV 화면을 보며 게임하는 상상을 아내에게 설명하며 게임기를 사겠다고 했다. 내 용돈을 모아서 산다고 하니 아내도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검고 작은 직사각형의 게임기가 드디어 내 손에 들어왔다.
4. 처음 게임기를 연결하고, 전원 버튼을 누를 때 너무 행복했다. 드디어 나만의 게임기가 생긴 것이었다. 게임기 주인이었던 친구의 은근한 유세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이라도 더 하고 싶어 비굴하게 웃어주었던 나의 서러운 기억들을 머리 속에서 완전히 지우려는 듯 한동안 퇴근하고 매일 게임을 했다.
5. 아무리 재밌는 것이라도 혼자서 하는 건 오래가지 못했다. 게임기는 2명이 할 수 있지만 아들은 게임을 하기엔 너무 어렸고, 아내는 게임을 즐기지 않았다. 아들이 잠든 후에 게임을 했어야 했기에 밤 늦게까지 하기엔 몸도 피곤했다. 매일 하던 게임은 주말에 한 번, 그러다 한 달에 한두번 하며 먼지가 쌓여갔다. 그래도 TV 밑에 놓여져 있는 게임기만 봐도 기분이 좋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전원 버튼을 누르고 게임을 할 수 있었으니까.
6. 그냥 보기만해도 기분 좋은 장식품이 되어가던 중 초등학생이 된 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스토리가 있는 게임은 연령에 맞지 않고 어려워서 포기하고, 축구 게임은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빠가 게임 조정기를 들고 화면에 집중하고 있으니 아들이 옆에서 관심을 보였다.
“아빠랑 같이 할래?”
“네”
이 한마디와 함께 아들은 나와 게임 메이트가 돠었다.
7. 드리블은 조종기 스틱을 이렇게 움직이고, 패스는 이 버튼, 슛은 저 버튼. 처음이라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주며 게임을 진행했다. 너무 못하면 흥미를 잃을까봐, 일부러 공도 빼앗기고, 골도 먹어주며 아들에게 져주는 게임을 했다. 아빠가 아들에게 고의로 져준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막상막하의 게임을 유지했다. 그렇게 때로는 이기며 때로는 질 때 기쁨과 아쉬움도 연기를 했다. 그게 잘 먹혀 들어갔는지 아들은 자주 게임을 하자고 했다. 그 때마다 적절하게 횟수를 조절하며 기꺼이 응해주었다.
8. 매번 게임을 할 땐 내가 아들을 위해 적당히 난이도를 조절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게임의 승패는 언제나 내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여기던 어느 날 내가 이기려던 경기를 졌다. 분명 초반에는 내가 원하는 대로 이끌고 가고 있었는데, 후반엔 나름 최선을 다 했지만 이길 수 없었다. 바로 이어 한 경기를 더 해서 이기긴 했지만 평소와 다르게 조종기를 움직이는 손가락이 아플정도로 최선을 다해야 했다.
9. 비록 비디오 게임이지만 조정기를 쥔 손에 땀이 나고, 손가락이 아플정도로 진지하게 임했음에도 아들에게 지는 횟수가 늘어났다. 더욱 게임에 질 때, 흥분하는 지점이 아들은 항상 손흥민이 속한 토트넘 팀을 선택해서 하는데, 나는 그 보다 레벨이 높은 팀을 선택하고도 진다는 것이다. 아들의 환심을 끌기 위해 게임 중간 내뱉던 기쁨의 환호성과 안타까운 탄식도 더 이상 연기가 아니라 진정 마음 속에서 우러나와 외치는 나를 발견했다.
10. 일찍 집에 온 날은 아들이 학교간 틈을 이용해 혼자 게임기를 켜고 게임 기술을 익히며 연습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너무 집중해서 연습하다 아들이 온 줄도 몰랐다. 안방 문을 열고 내가 연습하는 모습을 본 아들이,
“아버지, 이렇게 연습하는 건 반칙 아닙니까?”
하는 소리에’
“야, 아빠가 이렇게 안하면 너한테 못 이길거 같아서 그런다.”
하며 멋적게 웃으며 게임기를 끈 적도 있었다.
11. 비록 내가 가지고 싶어서 산 게임기지만, 고3 아들이 늦게까지 공부하고 집에 와서 아빠와 축구 게임 한 판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아 내 것이 아닌 아들을 위한 게임기처럼 느껴진다. 조그만 손으로 내가 하라는대로 따라 했던 꼬맹이가 이젠 나에게 게임 특성과 기술을 가르쳐 준다. 나는 예전 하던 실력 그대로 멈추어 있는데, 아들은 화려한 기술을 사용하며 점점 나보다 앞서 나간다. 일개 게임일 뿐이지만, 일취월장, 청출어람을 보며 아들이 커가는 것을 느낀다.
12. 고3 힘든 시기에, 나와의 게임 한 판이 아들의 쉼터가 되면 좋겠다. 그리고 아들의 기억 속에 아빠와의 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매주 집에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아들과의 일전을 기대한다. 나는 언제든 골을 넣은 후 기쁨의 환호성이든 게임에 져서 아쉬움의 탄성을 지르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 아들아, 너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지?
3. 소금꽃 / 박정애 1
1 비상구 계단에 소금 꽃이 피었다. 여봐란듯이 금지 문구 아래 피었다. 지나는 이웃들 입에도 험한 말이 피었다. 이사 왔을 때부터 아랫집 비상구 벽에는 ‘소금을 뿌리지 마시오.’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계단이 소금을 먹을 리 없으니 누군가 실수로 흘렸겠지 했다. 그런데 마침내 계단에 뿌려진 소금을 직접 본 것이다.
2 한참이 지나도 종이는 그대로였다. 인쇄까지 해서 붙인 것을 보니 상습적으로 소금을 뿌리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였다. 예전에 나쁜 기운을 쫓는다며 소금을 뿌리는 사람을 본 적이 있었지만 무슨 이유로 계단에 소금을 뿌린단 말인가. 그런 사람이 아래층에 산다니 힘든 이웃을 만났다 싶었다.
3 어차피 남편의 직장 때문에 왔으니 잠시 살다 가면 되었다. 아파트는 마음먹기에 따라 서로 상관하지 않고 살기에 편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각자의 공간을 나누는 선을 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4 아래층 집은 잡동사니가 비상문 밖까지 나와 있는 것으로도 아파트 안에서 유명했다. 티브이 모니터에 밥솥까지 군식구인 것을 아는지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아이 만한 장독이었다. 빈 독인지 무엇이 들었는지 호기심이 생겼다가 움츠러들었다. 그 집 물건조차 가까이하면 안 될 것 같았다.
5 비상계단에 물건을 적재하면 보기도 싫지만 위험할 수 있어 입주민의 민원이 잦았다. 관리실에서도 낭패라고 했다. 누군가 소방서에 신고해 단속을 나왔으나 딱히 사람이 지나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어서 법적 처벌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도 경고를 받으면 며칠은 짐을 넣었다가 다시 내곤 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골칫덩어리인 셈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웃에 대한 편견이 나에게 달라붙었다.
6 얼마 후에, 시끄러운 소리가 아래층 계단을 급하게 뛰어 올라왔다. 내려가 보니 아랫집 비상구 앞에 주인 여자와 관리실 직원, 그리고 몇 명의 호기심 가득한 얼굴들이 모여 있었다.
7 발단은 예의 그 집 앞 물건이었다. 관리실 직원이 소방법을 운운하며 들여놓을 것을 요구한 것이다. 주인의 태도는 완강했다. 내 집 앞에 있는 내 물건이니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의 말소리는 점점 커졌다. 누가 더 상처를 많이 내는지 내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진 것일까. 법대로 하라며 소리를 치더니 단지를 열고 한 주먹 가득 소금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향해서 뿌렸다. 사람들은 짧은 비명을 지르거나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볼일이 끝났다는 듯 주인이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사람들이 초인종을 눌렀지만 더는 반응이 없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며 한참이나 그 앞에서 떠들어 댔다.
8 오래전 처음 아파트 생활을 했을 때만 해도 현관문을 열어놓다시피 지냈다. 공동 부엌에 공동 육아가 따로 없었다. 이 집 저 집 드나들며 찬도 나누고 아이들도 함께 돌봤다. 뭐든지 이웃괴 함께 했다. 누군가 이사를 오면 떡을 돌리며 인사했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자라고 이웃 몇이 이사를 나갔다. 언제부턴가 한 집 두 집 문을 닫았다.
9 몇 차례 이사를 다니면서 나도 달라졌다. 익숙한 얼굴이 보이면 고개를 숙이는 정도의 인사가 다였다. 이웃이 달라졌고 시절이 달라지지 않았는가. 예전의 인심 어쩌고 하면 구식이 된다. 그것이 핑계라면 핑계였다. 공동의 삶보다 각각의 삶이 중요한 시대에 선을 넘는 관심은 불편할 뿐이었다. 계단에 핀 소금 꽃은 소통하지 않는 이웃들의 틈새에 뿌리내린 곰팡이 같았다.
10 어느 날, 소금 자물쇠로 단단히 잠겄던 그 집 문이 열렸다. 열쇠는 작고 소소한 관심이었다. 그 일이 있기 얼마 전이었다. 그 집의 위층이자 우리 옆집에 신혼부부가 이사를 왔다. 벨 소리에 나가보니 젊은 새댁이 잘 부탁드린다며 멜론이 든 바구니를 내밀었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이사 치례였다. 아랫집에도 가는 것 같았다. 새댁이 봉변이라도 당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 집에는 가지 말라는 말을 할까 하다가 관두었다.
11 며칠이 지났다. 새댁이 다시 왔다. 아랫집에 초대를 받았는데 같이 가자는 것이 아닌가. 적잖이 놀랐다. 주저하는 한편에 궁금했다. 아랫집 사람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새댁은 어떻게 그 사람의 초대를 받았을까. 알아보고 싶었다.
12 문을 열어주는 집주인의 얼굴에는 옅은 웃음기마저 있었다. 소금을 뿌리며 소리치던 사람이 아니었다. 손님상은 간단했지만 맛깔스러웠다. 새댁이 간수를 뺀 소금으로 간을 한 나물 맛을 칭찬했고, 칭찬을 받은 주인이 신이 나서 갈 때 싸가라고 했다.
13 집은 밖과 마찬가지로 잡동사니로 보이는 물건들이 가득했지만 나름대로 정리되어 있었다. 주인이 내 마음을 읽었는지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지요 라며 입을 뗐다. 사연인즉 그녀의 남편이 그런 것들을 끌어다 모은다는 것이었다. 치매까지 걸려 막무가내라 어쩌지 못한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런 사정을 일일이 말할 수도 없는 마당에 주위에서 뭐라고만 하니 이웃과 절연했다고 했다. 주인의 태도에 진심이 느껴졌다. 이 아파트 최고의 악당으로 여겨지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 나름의 사정이 있는데 이웃이 몰려와 탓만 하니 답답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답답한 마음에 소금을 던졌다고 했다.
14 이야기는 이어졌다. 새댁이 인사를 온 날, 장독에 뭐가 들었느냐 물었단다. 주인이 소금이라고 답했고 새댁이 왜 소금을 거기 두었느냐 물었다. 독 안에 벽돌을 깔고 그 위에 소금 포대를 두면 간수가 흘러내려 쓴맛이 빠진다는 집주인의 대답에 그러면 소금 맛이 달라지느냐, 그 소금으로 만든 음식을 맛보고 싶다고 새댁이 말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날의 자리까지 이어졌다. 사람 사이를 멀게 했던 소금이 사람 사이를 잇는 매개가 된 것이었다. 소금은 죄가 없었다. 사람에 따라 쓰임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 집의 문을 연 것은 단순했다. 편견 없는 새댁의 천진함이었다.
15 이제 그 집 계단에 소금 꽃은 없다. 소금을 뿌리지 말라는 문구도 사라졌다. 하지만 집 앞에 잡동사니는 여전하다. 그녀의 고민이 보여서일까. 그 앞을 지날 때 예전처럼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다.
16 같은 집에 사는 식구끼리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타인으로 만난 이웃이야 오죽하겠는가. 좋은 이웃을 만나지 못했음을 탓하기만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17 소금 자체는 맛이 없다. 입에 들어가야 맛을 피운다. 계단에 뿌려진 소금은 거절의 말이 되었고 음식에 들어간 소금은 화해의 말이 되었다. 소금 꽃은 이제 계단에 피지 않는다. 소금이 원래의 제 쓰임새를 찾았기 때문이다. 아파트 계단에 피었던 소금 꽃 이야기의 결말은 결국 희극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