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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모음 스크랩 [쓴소리 단소리] 전력주권-6 / 프랑스에 당한 씻지 못할 국가치욕
가리산신령 추천 0 조회 20 08.12.14 16:4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한전의 발전소사고 / 프랑스에 당한 씻지 못할

잊어서는 안 되는 국가치욕들 / 전력주권-6

 

 

   한전역사상 발전소에 관한 기술이 없어서 수많은 수모를 당했다고 전 한전사장 박정기 회장님은 필자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 박정기 한·미친선군민협의회장          최근 이슈 보기
  • 출생 : 1935년 12월 19일
  • 학력 : 일본 호세대학교 사회학부
  • 경력 : (전) 한전사장, (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2005), (현) 아시아육상연맹 종신명예 부회장(2000), (현) 대한육상경기연맹 명예회장(1996)

 

    ‘박춘근 박사, 당신같이 세계적으로 훌륭한 발전소공학 박사가 단 한명이라도 한전사장 재직시절에 있었더라면, 기술이전국가들의 회사들로부터 그 많은 수모를 당하지 않았을 것일세! 그리고 내가 남몰래 그 많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 것일세!” 라고 필자가 귀국해서 인사차 방문 했을 때 귀국환영사로 해주신 말씀입니다. 

   계속!

   “한 사람의 발전소전문가가 있었다면 수십조 원을 절약할 수 있었으며, 수모까지 당할 필요는 없었을 것일세! 나라에는 훌륭한 지도자가 필요한 것처럼 한전에는 훌륭한 발전소공학 전문가가 필요하다네!  열심히 조국을 위해서 일해 주게”라고 말씀하신 것을 오늘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1991년부터 지금까지 17년간 가슴 알이 하며 책속에 묻어 두었던 프랑스에 당한 치욕, 프랑스는 한전뿐만 아니라, TGV 고속전철 사업에서 ‘프랑스 해군이 강화도에서 약탈해간 규장각의 보물(책)들을 돌려준다는 약속까지하고 지키지 않았으며, 수 없이 많은 사기들을 치면서, 대한민국에도 엄청난 치욕을 안겨 주었다.

 

   로마의 영웅 율리우스 카이사르 (참조: 로마인의 이야기 4권 +5권 / 시오노 나나미 / 한길사)가 지금의 프랑스 ’갈리아‘를 정복하면서 적장들을 모두 죽이면서 하던 말, ’나는 갈리아(프랑스)의 적장들을 정말로 죽이고 싶지 않다.  그리고 지금 까지 승리하고 나서 적군의 장수를 죽이지 않고 굴복시켜 속주로 만들었다. 그러나 갈리아의 적장들을 죽여야 하는 것이 너무나 슬프다. 

   그 이유는 “갈리아 장수들은 항복문서의 잉크가 마르기 전에 나의 등에 칼을 꽂는 신뢰를 모르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로마가 살기 위해서는 갈리아인의 장수들과 엘리트들은 모두 죽일 수밖에 없다.”

   필자는 항상 이 구절의 말을 기억하고 있으며 간교하고 신뢰가 없는 프랑스인(갈리아 민족)과 협상을 할 때는 아주 각별한 주의를 한다.  독일 유학시에도 유럽역사를 통해서 갈리아를 알고 있다. 

   프랑스 군대가 아프리카에 있는 식민지를 떠날 때 착취하기위해 설치했던 SOC를 그 민족에게 그냥 넘겨주고 조용히 떠난 것이 아니라 철도, 도로, 항만, 공장 등 모두 폭파하고 떠난 아주 간악한 갈리아 인들이다!  가장 큰 피해국인 나라는 기니아(Guinea)로 아직도 국토의 SOC 전체가 파괴된 채로 있다. 그 곳에는 지금도 고철사업이 흥행하고 있다.

 

   갈리아(프랑스)인들이 한전에 저질은 비신사적인 내용의 일부를 박춘근 '박사의 나라 사랑 이야기 부국론 (정책백서 / 도서출판 삶과꿈 / 초판:1997년11월15일)' 책속에 묻어 두었던 내용들을 이재 일인신문이 가능한  IT-시대가 도래되어 블로그 [쓴소리 단소리]를 방문하시는 귀빈님들이신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려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대한민국에서 '기술'때문에 치욕을 당하는 나쁜 선례가 재현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써 내려 갑니다.   참고로  부구론인 이 책(정책서)에는 모든 173개의 사항들의 현실을 기록하고 정책에서 해법을 찾아놓은 책입니다. 그 중에서 현실 두개를 언급 합니다!

 

  '박사의 나라 사랑 이야기 부국론

 

 

 

울진 발전소 터빈사고와 프랑스에 당한 국가치욕

[출처] 박춘근 박사의 ‘나라 사랑 이야기’ 부국론 / 도서출판 삶과꿈 /

초판:1997년11월15 / 266면~274면 내용!

 

  현실: 필자가 1991년 귀국해서 '프란츠 박 과학기술연구소'를 창립하고 얼마 되지 않았다.  집안의 친분으로 그 당시 '한국 중공업 부사장님'으로 계시는 서석천 부사장님을 소개 받고, 국내에서 유일하게 증기터빈을 생산 하는 한국중공업 창원 공장을 일박 이일로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셨으므로 한국의 터빈 생산 수준을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특히 임원 한분이 배석 되어서 속속들이 증기터빈의 전 생산과정을 점검할 수 있었다. 필자는 독일유학중 여러 터빈제작회사들과 각종 발전소들을 10년간 매년 견학한 적이 있어서 확실한 비교를 할 수가 있었다. 

   생산 설비는 단 한대의 기계 “신시네티 회사의 터빈익 가공기계” 를 제외하고는 전부 독일 기계로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생산중인 증기터빈모델은 약 30년(1991년 기준)에 GE사에서 설계되었고 적어도 독일 수준에 비해서 3%-5% 정도 효율이 저조한 아직도 터빈익의 해드 부분을 밴드와 레벳을 하는 구형 터빈을 제작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화력발전소 효율은 36%로 독일의 42%에 비하면 6%이상이나 차이가 난다.

   이것이 기술의 차이다.

   각종발전소와 터빈에 관해서 공부하고 박사학위 논문역시 '터빈익의 진동에 관한 내용'을 주제로 했다.  발전소공학 공부 후 5년간 터빈연구에 세월을 보낸 필자는 모델을 바꾸어야 할 필요성을 제안하기도 했다.  한국중공업의 안천학 사장님은 새로운 발전용 증기터빈설계를 필자가 주도해 줄것을 부탁 받았으나 정치 및 외교적인 말 못할 사항 때문에 안타깝게 유산되고 말았다.

 

   서울에 돌아온 필자는 서석천 부사장님을 뵙게 되었는데, 서석천 부사장님께서 한국전력에 계실 때 발전처장님 이셨으며, 그 당시 엄청난 사고가 '울진 원자력발전소 증기터빈'에서 터졌었다고 하신다.  

   울진 원자력발전소의 대형 증기터빈익이 파손된 것이다.  증기터빈을 납품한 회사는 프랑스의 ‘알스톰(ALSTOM)’사였다.  발전소를 시험가동하는 시운전 중에 증기터빈의 고정익 5단이 용접 잘못으로 전부 파괴 되었던 것이다.

 

   발전소의 사고나 고장은 그이 약 80%가 터빈부분에서 일어나며 터빈의 부분 중 약 80%가 터빈익의 손상이다.  터빈익의 고장 중에 약 95%가 회전익에서 고장이나 사고가 나게 된다.  그른데 울진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한 사고는 회전익 이 아니라 고정익에서 발생한 거이라 상식이하의 사고였다.  터빈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은 고정익이 파괴되는 일은 근간에 찾아보기 힘든 사고이기 때문이다. 

   통계학적으로 전 세계에 2년에 한 대꼴로 터빈이 폭발하게 되는데 이 폭발사고는 회전익의 파열로 일어나는 사고가 95%로 대부분이다.  그른데 울진 원전에서는 근래에 볼 수 없는 일로 고정익이 5단이나 파괴되었다.  그것도 시험가동 중에 풀가동의 상태가 지속도 되기 전에 파괴 되었다.

   파손된 실물을 보지 않고도 필자의 지혜로 판명하면, "이는 한전 잘못이 아니다!"

   알스톰회사가 제작한 터빈?  

   고정익을 용접하고 나서 용접부의의 후 열처리가 되지 않아 사고가 난 것을 필자는 안보고 감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이도 이 사고는 시운전 잘못이라고 프랑스의 알스톰사가 오히려 한국을 얕잡아 보고 한전에 모든 책임을 증가시켰다.  

   사고난지 3년이 지나도 고처줄 의향 조차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대한민국 국회에서 여야가 이문제로 야단법석 떠들기 까지 했다한다.

   ALSTOM 사는 콧방귀만 끼고 우리나라와 한전을 더욱 우습게보고 뒷짐만 지고 있었다.

   ALSTOM 사는 이미 ‘한국에는 발전소 분야를 정식으로 공부한, 세계가 인정하는 발전소공학 분야의 공학박사가 없다는 정보를 쉽게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일본, 미국 대학에는 아예 발전소공학과가 생긴 적이 없다.

 

   우리나라 한전에는 각 분야별로 공부한 전문가는 많이 있으나 발전소 전체를 아는, ‘즉 나무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 국가 에너지 공급과 발전소란 큰 숲을 이해하는 세계적인 전문가는 전무하다는 내용’을 ALSTOM 사는 먼저 알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우리나라는 필자가 귀국하기 전까지 이 문제를 풀기에는 그야말로 소수무책 이였다.

 

   설산에 가산으로 프랑스 ALSTOM사의 기를 더욱 거세게 올려준 사건이 발생했다.  다름 아니라 울진 발전소 터빈고정익 파손사건의 감정서를 김종호 박사라는 분이 작성한 것이다.  미국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한 이 사람이 터빈을 아는 체하고 감정서를 쓴 내용이 프랑스 ALSTOM 사의 사기를 하늘까지 치솟게 했다.  그 연유는 김종호 박사라는 분은 약1000 페이지가 넘는 감정서에 터빈익(Turbine-blade)에 관한 핵심 내용은 몇 장으로 스쳐지나가 본질내용이 전무 했으며 터빈주변 부속품 ‘파이프나 벨브’ 등의 재료 테스트등 사고와 전혀 관계없는 전혀 무관한 내용물을 검사하여 나열했었다.  호랑이 없는 곳에 토끼가 왕질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셈이다. 무려 3억이란 거액을 챙기고 검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호 박사라는 분은 터빈을 전연 모르는 분 이였다. 터빈에 무식한자가 설치고 다녀서 전기요금만 올리게 만든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국가위상이 개인의 영리 때문에 자초되었으니 한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김종호 박사의 감정서를 읽어 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것은 터빈사고의 감정서라 볼 수 없었다.

   어차피 한전 발전처직원들은 모르니 적당히 건사하게 꾸며서 형식을 같춘다음 돈이나 챙겼던 것 이였다.

 

   프랑스는 한국 전문가라고 자칭하는 자의 수준이 아주 형편없다는 내용을 알고, 더욱 기고만장하여 더욱 더 강력히 한전 측에 책임추궁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3년 동안, 한전에서 적당히 수리하여 90만 KW 용 터빈에 50% 안 되는 부하를 걸어서 울분을 터트리면서  울며 겨자 먹는식으로 근근이 가동하고 있었다.

   한전의 잘못이 없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은 했지만, 그 당시 서석천 발전처장님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고 하신다.  그 당시 그 누구도 울진원전사고에 대해서 정답을 줄 수 없었다고 하신다.  그 져 ALSTOM 사의 행동과 멸시에 분을 삭이며 통탄하시기만 했다고 하시는 한 맺힌 말씀만 하신다.  그리고 이문제의 해결을 보지 못한 체 한국중공업 부사장님으로 영전 하시게 되었다고 하신다. 그분의 심정은 분함과 전문가가 없는 무기력함이 한이 맺혀 있었다.

 

   필자가 1991년 3월 3일 입국 했을 때 독일은 각종 공산품은 물론, ICE 고속전철 까지 전시 하는 ‘독일하이택박람회’를 대대적으로 무역센터전시관 전체를 전세 내어서 전시하고, 독일 대통령 ‘리하더 바이츠에거 (Prof. Dr. Richerd von Weiz?cher)’ 박사님이 방문하는 등 대대적인, 건국 이래 가장 큰 규모의 행사가 독일 측에서 개최 했다.  ICE 와 TGV 의 수주 경쟁은 정치가들에게 비상한 관심사로 대두되었다.

 

   ICE 는 SIEMENS 에서 130개 회사의 콘소릅시음을 구성, TGV는 70개 회사만의 콘소릅시음을 구성할 수밖에 없는 ALSTOM 사와 수십조의 수주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되던 때였다.  프랑스의 ALSTOM 사는 60개회사의 첨단기술이 독일 보다 부족한 수주의 불리한 현실이었다.  왜냐 하면 60개회사로 부터 첨단핵심부품을 독일 스위스 등에서 공급받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자기 기술이라는 것은 이미 우리나라에도 그 정도 수준에 도달한 것들이었다.

   ASTOM 사는 울진 원자력발전소 터빈사고에 대해서 한국을 무시하고 책임전가하고 한국을 얕잡아 보았으며,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 하여 수주경쟁을 할 때, 울진 원자력발전소 터빈사고가 언론에 다시 떠오르면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게 있었다.

     

      

 

   서석천 부사장님은 한전발전처의 최양우 부처장님을 소개하여 주시면서, 본인이 한전에 있을 때 마무리 짓지 못했던 울진터빈사고를, 필자의 힘을 빌려서 수습하여 줄 것을 최 부처장님에게 부탁 드렸다. 

   아직도 해결 되지 않고 있는 고장사건을 다시 전문 감정하여, 프랑스 ALSTOM 사로 부터 받은 굴욕을 깨끗이 씻어 줄것을 필자에게 간곡히 부탁 하셨다.

   필자는 흔쾌히 승락했다.

   지금 까지 배운 지식과 지혜를 십분 발휘할 수 있게되어 정말로 기뻣으며, 확실하게 해결할 수 있는 사항이라 더욱 자신을 갖고 만반의 준비를 철저하게 했다.

 

   독일로 출국하기 전에 최양우 부처장님으로 부터 '울진 원전의 사고 시 파괴된 고정익'을 하나 감정증거품으로 받게 되었다.  받은 즉시 필자는 첫 눈에 ALSTOM 사의 터빈제작헛점을 알 수 있었다.  용접 부위의 용접 후 열처리가 전여 되어 있지 않아서 용접으로 가열되었다가 급히 식혀져 열영향부분에서 시험가동 때 크랙이 발생한 사고임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특히 필자는 판금 용접 부분에 1969년 벨기에 '국제기능올림픽 대회 한국대표선수' 이었으니 실기를 많이 연마한 현장출신으로 더욱더 확실하게 프랑스 ALSTOM사의 제작 오류를 명확하게 감정할 수 있었다.  필자의 전문 감정 후 세계적인 발전소관련 독일 전문지인 ‘Großkraftwerkbeteiber’ 와 'Waerme'지에 감정한 진상인 '파손원인'을 찾아서 논문으로 발표할 세밀한 계획을 세웠다.

 

   이때까지 ALSTOM 사는 한국에 정식으로 독일에서 발전소공학을 공부하고 입국한 필자에 대해서 전연 모르고 있었다.  서석천 부사장님은 이번 기회에 프랑스의 ALSTOM 사의 코를 납작하게 하여 그동안 대한민국 국회 까지 야단법석 떠들었어도 찾지 못했던 국가위상을 제대로 찾을 수 있게 필자가 심혈을 기울려 줄 것을 부탁하셨다.

   물론 프랑스 측의 보상과 사고를 충분히 받아 낼 수가 있는 상태였다.

   우선 최양우 부처장에게 필자의 세심한 계획을 설명하고 필자는 감정료 1억 원을 제한하게 이르렀다. 

   최양우 부처장님은 필자의 감정료 제안에 전적으로 흔쾌히 동의 했다.

 

   우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감정서(Gutachten)를 쓰기로 했다. 

   왜냐 하면 필자의 국적이 한국이라 프랑스의 트집을 아예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자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터빈전공 독일 교수님들과 협의하기로 했다.

   필자는 우선 개인경비로 독일을 방문하여, 뮌휀 공대(TUM, Techniche Universitaet Muenchen)의 열기계 및 열병합발전연구소 (Institut fuer Thermische Kraftanlagen und Heizkraftwerke) 연구소장님 이시고 필자의 박사학위 지도교수이신 토마스 교수님 (Prof. Dr.-Ing. Hans-Joachim Thomas), 그리고 터빈제작회사의 MAN 증기터빈전문가 이시고 부사장님이신 마르틴 교수님 (Prof. Dr.-Ing. Peter Martin)과 셋이서 울진 원전문제를 상의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Prof. Hans-Joachim Thomas  독일 뮌헨공대  발전소공학과 정교수 / 에너지 및 발전소공학 연구소장 역임

     Hans-Joachim Thomas - 85 Jahre    Am 24. Oktober 2005 feiert Prof. Hans-Joachim Thomas, emeritierter Ordinarius fuer  

     Thermische Kraftanlagen mit Heizkraftwerk der TU Muenchen, seinen 85. Geburtstag. Mehr Kontakt: presse@tum.de

 

   마르틴 부사장님은 매주 월요일 TUM(뮌헨공대)에서 강의가 있어셔서 MAN(Maschinenbau Augsburg und Nuernberg) 터빈공장이 있는 Nuernberg 라는 도시에서 오시기 때문이다.

   세 사람의 터빈전문가들은 토의 끝에, 세계적인 보험 회사 Alianz 사의 증기터빈보험담당 전문 감정사인 본스테트 박사님 (Dr.-Ing. Jochen Bonstedt) 과 필자가 같이 전문 감정서를 쓰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고 결론 내리게 되었다.  그 이유는 MAN 터빈제작회사의 부사장이라 객관성이 문제되어서 합류 할 수는 없지만 조언을 아끼지 않기로 했다.  지도 교수님은 학문적인 뒷받침(감정보고서 감수)을 하시기로 약속 하셨다.

   그야 말로 완벽한 준비가 된 셈이다.

 

   필자는 알리안츠(Alianz)보험회사의 본스테트 박사님 (Dr.-Ing. Jochen Bonstedt)과 우선 예비감정을 하여 우선 한전내부 결제용으로 쓸 수 있게 하기로 했다.  이틀에 걸쳐 필자가 한전으로 부터 받아서 같고 간 파괴된 울진 원자력발전소의 증기터빈고정익을 공동으로 감정한 후 예비 감정서를 작성 할 수 있었다.  이 예비감정서에는, 한전 측의 최양우 발전부처장님이 내부결제용으로 요구 하셨으며 이 비밀문서는 절대적으로 프랑스의 알스톰(ALSTOM) 사가 알아서는 안 되는 내용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인식시켰다.  이 요약 감정서에는 프랑스가 터빈제작 시 오류(용접과 열처리 잘못)를 범한 사실을 확인하는 내용으로 정밀 감정의 결과를 예측하는 결정적인 서류로 프랑스 ALSTOM사가 알면 기절할 내용이라는 사실을 서석천 부사장님과 함께 최양우 부처장님에게 여러번 숙지시켰다.

 

   예비감정서의 내용만으로도 국제법상으로 한전이 당당하게 이길 수 있는 내용이다.

   세부적인 전문 감정이 끝나서 감정사실이 세계적인 전문지에 발표되면, 프랑스의 ALSTOM 사는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는 것은 물론 악질회사라는 소문과 함께 신용을 잃게 되어, 치명적으로 TGV 수주경쟁에서 탈락 당하게 될 수 있었다.

   당시 ICE와 TGV 간에 경부고속전철 수주경쟁이 치열할 되로 치열 했었다.

   수십 조원 규모의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ALSTOM 사는 한전에 울진원전사고 책임을 적반하장('도둑이 매를 든다 라는 뜻')으로 덤벼든 사실  때문에 3년간 생산 못한 전기 때문에 발생한 수천억 원의 전기요금 일체를 배상해야 한다.  필자와 지도교수, 마르틴교수 와 본스테트 박사의 의견을 조합하니 100% 승산이 확실했으며 지금도 확신한다.  세계적인 독일 최고의 Alianz 보험회사는 일반보험은 물론, 터빈전문 보험회사로  유명하며, 파손된 터빈을 검사하여 감정 할 수 있는 특수감정시설을 갖춘 터빈연구소를 뮌헨 시 외곽에 두고 있다.

 

   프랑스 ALSTOM 사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것을 생각 하니 힘이 절로 나왔다.

   드디어 대한민국을 무시한 프랑스를 국제적으로 망신시킬 기회가 온 것이다.

   결국 프랑스가 저질은 죄의 대가를 밭을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 했다.

   기쁜 마음으로 입국한 즉시 서석천 부사장님을 뵙고 한전의 최양우 발전부처장님을 만나서 한국어로 번역한 예비 전문감정서와 공동 작성한 원본을 첨부하여 전달하고 프랑스에는 극비로 해줄 것을 또다시 굳게 다짐 시켰다.  일주일 내에 그 당시 안병화 사장님 결제가 나는 즉시 필자와 정식계약 하기로 약속 했다. 

   감정료 총액은 10만$ 로 하기로 했다.

   물론 감정료의 1/2은 독일 측에 지불하기로 약속한 금액 이었다.

 

    

  • 최양우 (전) 한국수력원자력 대표이사 사장          최근 이슈 보기
  • 출생 : 1943년 04월 15일
  • 학력 : 연세대학교 전기공학과  
  • 경력 : 한국수력원자력발전 대표이사 사장(2001), 한국전력공사 원자력사업단 단장 (이사대우)(1999), 한국전력공사 원자력건설처 처장(1998)

    최양우 부처장님은 일주일 아니, 한 달이 지나도록 연락을 주지 않았다.

   한 달 후쯤 필자가 작성한 용역계약서를 같고 최양우 부처장님을 찾았다.

   그때 최양우 부처장님은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예비감정서를 프랑스 ALSTOM사와 워크숍을 할 때 제시했더니, 당장 다음날 프랑스에서 와서 지금 터빈을 고치고 있으니 박사님과 계약 할 필요가 없다 ‘라고 했다.  물론 예비감정료에 대해서도 아무 말이 없었다. 죽 쑤어 놓았더니, 최양우 부처장님 이라는 개가 혼자 먹어 치운 셈이 되고 말았다.

 

   필자의 감정서를 본 프랑스 ALSTOM 사는 ICE 와 TGV 수주 경쟁중이라 3년이나 발 빼고 있던 울진 원전터빈사고를 무마하기위해서 단숨에 수리를 해준 것이다.  필자는 최양우 부처장님에게 그동안 전기요금과 비용일체를 프랑스의 ALSTOM 사로 부터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되었느냐 물었다.  그때 최양우 부처장님은 필자에게 ‘박사님’ 프랑스가 3년을 부인 하던 일을 해주었으니 박사님께서 양보를 하시지요!“ 하였다.

   "안 됩니다!"라고 대답했다.

   울화통이 머리끝까지 터질 지경 이였다.

   서석천 부사장님과 필자는 최양우 부처장님과 한전 측의 행동에 개탄하면서 국가위상을 바로 세울 기회를 묵살해버린 사건에 대해서 언젠가 '최양우 부처장님'의 매국행위와 배신행위의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을 가슴속에 담고, 필자가 힘이 있을 때 까지 기다리기로 어금니를 깨물면서 부정부패의 시대를 잊지 않기로 결심하고 일단 주저 앉았었다.

 

   독일에서 15년에 가까운 세월을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공부한 ‘에너지와 발전소 공학박사‘가 된 필자가 한전의 무능과 부조리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하고 농락당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고 분했다.

   서석천 부사장님은 ’박사님‘ 어쩝니까? 하시면서 한 숨을 크게 쉬시면서 필자를 위로했다.

   최양우 부처장님이란 사람 때문에 필자는 시간과 돈 그동안 독일서 쌓아놓은 신뢰 그리고 명예까지 잃는 어처구니없는 험악한 일을 당한 것이다.

 

   서석천 한국중공업 부사장님은 그 후 한전기공 사장님을 거처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오늘날 까지 필자의 고행을 위로해주시고 정성 것 후원하심에 필자는 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필자는 이 일을 참고 경험삼아 더욱더 큰일을 할 수 있게, 보람된 일을 스스로 찾아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책: 우리 정부는 우수한 인재를 과감히 등용하여 활용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비전문인이 전문인 행세를 하며 일거리만 저질러 놓는 즉 무식한자가 설치는 사회, 전문지식과 관계없이 진급되는 사회에는 이와 같은 엄청나고 우매한 일이 자주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전문가의 등용 정책을 구현해야 한다.

 

 

  결론: 만약 최양우 부처장님이 일신의 욕심을 위해서 배신하지 않고, 필자의 제안 되로 계약하여 한독-국제 감정내용을 전문잡지 ‘Großkraftwerkbeteiber’ 와 'Waerme'지에 실었다면, 국제적 체면상 알스톰사로부터 공식적인 사과를 정중하게 받고, 울진 원자력 발전소의 증기터빈 수리는 물론 3년 동안 수리지연으로 생산하지 못한 전기요금을 환산하여 수천억 원의 보상을 의연하고 당당하게 받을 수 있었으며, 한국의 발전소공학 기술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훌륭한 게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프랑스(갈리아)정부는 아직도 규장각의 책들을 돌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최양우 부처장님의 매국배신행위가 없었으면 규장각을 돌려 받을 수 있는 국제적 힘이 더 많이 생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사건 이후 최양우 부처장님은 승승장구 하여 '한국수력원자력발전 대표이사 사장'까지 지내시고 은퇴한 것을 인터넷에서 알 수 있습니다. 

   국가위상을 떨어뜨린 최양우님은 지체 없이 자신의 잘 못을 뉘우치고 한전직원들에게는 물론 국민들에게 석고대죄하시고 새사람이 되는 것이 수순이 아닌지요?  

 

 

내 밑에 박사가 120명 이나 있는데

[출처] 박춘근 박사의 ‘나라 사랑 이야기’ 부국론 / 도서출판 삶과꿈 /

초판:1997년11월15 / 274면~276면 내용!

 

  현실: 필자는 한전을 위한 공부를 약 15년간 독일에서 희망과 대망을 품고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하루 4시간 만 잠자고 지혜롭게 남보다 빨리 학업을 마치게 되었다.  단시간에 그 많은 발전소공학 공부와 연구를 하여 어지럽기로 소문난 독일 TUM 뮌헨공대에서 박사학위 까지 마쳤습니다.

   한국인으로는 15년간의 그 어렵고 힘든 발전소공학 전공을 한 최초의 한국인 공학박사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미국대학도 학과가 없고 일본대학에도 학과가 없으며 우리나라 에도 아직 발전소공학과가 없습니다.

 

   필자가 귀국하기 전까지 한전을 전문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전문기술경영자는 아예 생산 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한전에 오래근무 했다는 사실만으로 승진이 되는 관료회사가 되어버린 것입이다.

국민을 위한 서비스는 그야 말로 야만인 수준이다. 선진국에는 금지된 단전을 밥 먹듯이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종훈 한전사장 때문에 웃지 못 할 일이 벌어 졌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동서이고 기산그룹의 회장이시며, 한전사장과는 절실한 친구라는 도재영 회장님이 필자와 기아산업에 같은 적을 둔적이 있고 고향도 같아서 서로 여러 방면에 의견을 허심탄회 하게 나눌 수 있는 처지였다. 

   하루는 필자에게 한 가지 제의를 해왔다.

   “친구인 이종훈 한전사장과 자리를 마련해서, 내가 술을 살터이니 동석하여 이번에 역사적 내부 승진이된 이종훈 사장에게 전문적으로 많은 조언을 해주게 하였다.”

   그때 한 여름인 피크타임이라 전력부족이 심각하다고 전국이 야단 이였다.

   필자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 하면 전기시설용량은 남아돌아가는데 송전정책이 잘못되어서 피크타임에 적어도 15%의 전력을 필요이상으로 발전해 송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한 번에 해결법을 알고 있었다.

   이 해법을 이종훈 사장에게 가르쳐 주기로 했다.

   야!  야!  ok!  ok!  박박사!

   도재영 회장님이 신이 났었다.

 

       이종훈 / 한전사장 역임

  • 이종훈  한전 전우회 회장         
  • 출생 : 1935년 경북 안동 출생
  • 학력 : 서울대학교 전기공학과
  • 경력 : (전)한국전력공사 사장(1993), (전)한국전력기술(주) 사장(1990)

    며칠 후 도재영 회장님이 화가 잔득 나서 씩씩 거리시며 이종훈 사장님께 욕을 하시는 것이다.

   도재영 회장님이 필자와 만남을 마련하기 위해 필자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이종훈 사장님의 답은 “내 밑에 박사가 120면이나 있는데, 미쳤다고 왜 독일서 공부한 박춘근 박사를 만나” 하며 오만방자하게 필자와의 동석을 거절 해버렸다고 한다.

   필자는 이런 사실이 현실이 아니길! 

   아니길!

 

 

  정책: 한전사장님이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라면 도재영 회장님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드려졌을 것이다. 

   그르나 왜 문전박두 했을가?

   필자는 단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지혜를 빌려주려고 한 것뿐인데?

   무사안일이 상책으로 생각 한 것은 아닌지?

   독일의 경우 전력회사 사장이 전문가를 찾아다니면서 조언을 구하는 것에 비하면 오만방자하고 거만하기 짝이 없는 현실이 아닌가?

   독점기업이고 또 국영기업인 한전!

   이 회사는 국민들의 진정한 반려자가 되지 못하고 집단이기주의관료들이 똘똘 뭉친 불순단체는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결론: 이런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보령화력에 큰 일이 터졌다.

   최첨단 화력발전소인 ‘보령복합화력 발전블록’에서 프랑스(갈리아)인에게 그것도 또 그렇게 많이 당한 프랑스 알스톰(ALSTOM)에게 또 크게 당하는 사고가 터졌다.

   이번에는 복합화력 발전소의 가스터빈(Gas-turbine)들의 냉각장치가 파손된 것이라 한다.

   신문에 나고 매스컴이 떠들고 야단법석 이었다.

   터진 이유는 아마도 가스터빈을 새로 설계하여 2년 이상 상용운영에서 안전성이 입증되면, 제작을 계약하는 것이 필자가 발전소공학시간에 배운 내용의 FM이다.

   그런데 상용운영도 하지 않은 안전성도 입증이 안 된, 대 용량의 새 가스터빈들을 프랑스 ALSTOM의 유혹에 넘어가서 구입한 것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가스터빈 파손사고는 예측되어 있었다.

   한전을 모르모트(프랑스어 marmotte)로 이용한 것이다!

   울진 원전터빈파손사고에 그렇게 당하고 또 당한 것이다.

   가스터빈 매입당시 필자의 조언을 들었다면, 그런 국가적인 치욕, 국제적인 망신살은 미연에 충분히 방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술 한 잔 같이 배려하지 못한 속 좁은 처사 때문에 한국의 위상이 또 다시 곤두박질 친 것이다.

   전문가에게 의견을 묻지 않고 사실은 어처구니없이 무지한 자신을 과대평가한 나머지 알스톰사의 덜 익고 불안한 인증되지 않는 시험용 '모르모트 가스터빈'들을 보령 복합화력발전소 상용터빈으로 선정하는  아둔함은 최양우 부처장님에 이어 또 다시 수천억 원의 손해와 손실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입히는 어리석음을 초래한 것입니다.

   그 때 한전에 근무하시는 이종훈 사장님 밑에 있었던 120명의 박사님님들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120명이나 되는 한전소속 박사님들 중에 '발전소공학 박사'는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을 아셨는지요!

   박사에도 전공이 있고, 박사학위를 어느 나라의 대학에서 받았느냐에 따라 엄연히 세계석학들은

차별하여 처우와 대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박사에도 마치 밤나무도 있고 너도밤나무도 있는 것과 같이 진과 부가 있고 등급이 있는 법입니다! 

   그 중에 한국처럼 짜깁기 논문으로 받은 가짜박사나 돈 주고 사는 엉터리 박사들은 등급 안에  있지 않습니다!

   도재영 회장님께서 성화를 잔득 낼만하시지 않습니까?

   훌륭한 인재가 있어도 대통령 각하께서 발견하지 못하면 그 나라는 망하는 길이 열리게 되는 법이다!

   세종대왕님은 지방에 꼭꼭 숨은 인재들을 열심히 찾으셔서 적재적소에 등용하셨으므로 성군이 될 수 있었지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귀빈 그리고 국민 여러분 !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블로그[쓴소리 단소리]를 사랑해 주시길 바랍니다!

   정독하여 주셔서 대단히 감사 합니다!

 

 

 

   [참고자료] 然空無情 朴春根 博士를  잘 키워주신 指導敎授님

     Doktorvater Hans-Joachim Thomas-85 Jahre 생신 / TUM

        Prof. Hans-Joachim Thomas

    24.10.2005, Pressemitteilungen

    Am 24. Oktober 2005 feiert Prof. Hans-Joachim Thomas, emeritierter Ordinarius fuer Thermische Kraftanlagen mit Heizkraftwerk  

    der TU Muenchen, seinen 85. Geburtstag.

    Der gebuertige Berliner studierte zunaechst Luftfahrttechnik, wechselte nach 1945 aber in das Fach Maschinenbau und 

    promovierte darin 1955 an der damaligen Technischen Hochschule Muenchen. Hans-Joachim Thomas ist ein Experte auf dem

    Gebiet der Energietechnik. Als Berechnungsingenieur bei der AEG-Turbinenfabrik in Berlin (1948), Leiter der Abteilung

    Technische Berechnung (1954) und Leiter des Bereichs Entwicklung mit Versuchsanstalt, des Materiallabors und der

    Abteilungen Waermetechnik und Technische Berechnung (1958) machte er sich hierin schon fruehzeitig einen Namen.

    1960 uebernahm Thomas in der zentralen Entwicklungsleitung der AEG das Ressort Stroemungsmaschinen. Nach seiner

    Ernennung zum Direktor der AEG-Fabrik Essen (1961) zeichnete er verantwortlich fuer die Entwicklung und den Bau der

    Dampf- und Gasturbinen, der Turbokompressoren sowie den Vertrieb kompletter Gasturbinenkraftwerke. Wissenschaftlich

    verbunden ist sein Name vor allem mit dem Phaenomen fuer Spalterregung“, der Beschreibung selbsterregter Schwingungen

    von Turbinenlaeufern als ein Problem der Grenzleistung. 1966 folgte Hans-Joachim Thomas dem Ruf an das Institut fuer

    Dampfkraftmaschinen der TH Muenchen. Aufgrund der damaligen rasanten Kraftwerksentwicklung und den Erfahrungen aus

    seiner Industrietaetigkeit wurde der Lehrstuhl in Thermische Kraftanlagen mit Heizkraftwerk umbenannt und ausgebaut - dem

    heutigen Lehrstuhl fuer Energiesysteme der Technischen Universitaet Muenchen in Garching. Kontakt: presse@tum.de

 

    

    檀紀 4341年/西紀 2008年 7月 9日 水曜日

   은행정에서

   工學博士 然空無情 朴春根 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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