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암공원은 허가바위동굴 일대에 조성된 공원입니다. 허가바위는 탑산 아래의 천연적인 바위동굴로 이 바위에서 양천 허씨의 시조인 허선문이 태어났다고도 합니다. 구암공원은 의성이라 불리는 허준 선생 기념공원으로 선생의 호를 따서 붙인 이름이고요. 허가바위동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공원입구입니다.
공원내에는 가족나들이에 알맞게 어린이놀이터와 쉼터가 설치되어 있는데 식수대와 쓰레기통등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산책로도 포장, 비포장이 다 갖추어져 있군요.
언덕에는 장애인을 배려한 시설도 갖추었습니다.
공원을 아름답고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았습니다.
결혼을 앞둔 신혼(?)부부의 야외촬영. 여자분이 외국인 같더군요. 행복하세요.
공원내 호수풍경. 정말 아름다운 곳입니다.
공원내에서는 매주 일요일 오후2시부터 7시까지 건강약초교실이 열리고 있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허준선생이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의 동상.
동상 옆에있는 허준 선생의 일대기.
구암 허준 선생은?
허준(許浚) 선생은 1539년(중종33)에 태어나 1615년(광해군7)에 타계하셨으며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청원(淸源), 호는 구암(龜岩)으로 훈련원정 허곤의 손자, 용천부사 허론의 아들로 경기도 양천현 파릉리 능곡동(현, 서울 강서구 등촌2동 능안마을)에서 출생한 조선 중기의 의학자로 선조 때 내의(內醫)가 되어 왕실의 진료에 공을 세웠으며 <동의보감>을 비롯한 <언해태산집요><언해구급방><언해두창집요><찬도방론맥결집성><벽역신방><신찬벽온방> 등 7종의 저서를 편찬하여 우리나라 의학사에 가장 빛나는 업적을 남겼으며 또한 학자로서 학문에 대한 심오한 연구와 의사로서 인술을 널리 베푼 박애정신이 남다른 분이셨습니다.
허준 선생은 의성으로 불리며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명성에 비해 실제로는 그의 유품이나 역사적인 사료가 거의 없다시피 하며 선생의 탄생, 성장, 가족관계, 과거급제, 출사, 저작 활동 등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학자들간에 이견이 많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 어의(御醫)로서 왕을 호종하여 호성공신(扈聖功臣)이 되었으나, 선조가 죽자 한 때 파직 당했고 업적으로는 1610년(광해군 2) 16년의 연구 끝에 완성한 동의보감(東醫寶鑑)은 조선 한방의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현재까지 여러 나라에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경기 파주시에 허준 선생의 묘가 있으며 경기기념물 제128호입니다.
호수안에 있는 광주바위.
광주바위란?
광주바위는 지금은 육지로 변한 가양동 공암나루 끝 한강변 탑산(塔山) 이라는 작은산 바로 옆 강물 속에 있는 높이 12미터의 두 개의 바위를 말합니다. 지금도 고색이 창연한 채 옛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곳은 옛날 서해로부터 크고 작은 배들이 드나들고 이 곳 경관에 도취한 뱃사람과 선유객들이 노를 멈추고 도원경에 심취하였다는 곳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먼 옛날 경기도 광주에서 큰 홍수가 났을 때 이 바위가 물에 떠내려 왔다고 합니다.
비가 그친 후 광주의 명물인 바위가 없어진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란 광주현감은 바위를 수소문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바위가 양천고을까지 떠내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광주현감은 바위를 제자리로 옮겨 갈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대신 세금을 내라고 요구했답니다.
순박한 양천현감은 이를 거절하지 못하고 바위 주변에서 자라는 싸리나무로 빗자루를 만들어 매년 세 자루씩 바치게 되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억울한 생각이 들어 광주현감에게 바위를 도로 가져가라고 하고는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바위를 가져갈 수 없었던 광주현감은 더 이상 세금을 내라는 요구를 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본래 순박하고 인정 넘치는 양천 고을 사람들의 착한 심성과 멋진 광주바위의 풍광을 잘 나타내는 전설입니다.
우리 민요의 바위타령 중에 광주바위 타령이 유난히 구성져 우리의 심금을 울렸다고 전해지고 있답니다.
호수 안에는 비단잉어도, 오리도 살고 있답니다. 공원을 찾는 이들이 먹이를 주다보니 사람을 무서워 하지 않더군요.
허준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나 그 유명한 동의보감을 저술한 곳이, 허가바위 동굴이라는 곳이며 허가바위 동굴이 있는 곳이 바로 구암공원입니다.
구암공원에는 올림픽대로 건설로 인해 한강의 일부분이 잘려 나와 호수처럼 되었고, 아파트가 하늘 높이 솟아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으며 이 곳에는 의성 허준 선생이 환자를 진료하는 인자한 모습의 동상이 앉아 있습니다. 한편에는 아름다운 호수가 있고 그 호수 속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담겨 있는 고색 창연하고 구멍이 뚫려있는 자색의 광주바위가 있습니다.
양화대교가 놓여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곳은 한강하류를 건너는 공암(孔巖)나루터였으며 광주바위와 그 옆의 허가바위는 이 일대의 역사적 최초의 지명인 "제차파의(齊次巴衣): 한성백제 때 토지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 드리던 바위라는 뜻" 의 진원지이기도 합니다.
다음편에서는 허가바위동굴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