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매거진 월간조선/김신묵의 해피투어>
섬진강(蟾津江)은 우리나라에서 아홉 번째, 남한에서는 네번째로 큰 강이다.
덕유산과 지리산 계곡의 맑은 물이 모여 만든 강이다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발원하여 곡성 - 구례 - 하동 - 광양으로 흘러가는 섬진강은 구례에서 지리산 피아골 계곡물과 합쳐지면서 비로소 강물이 깊어지고 푸르러지며, 경남 하동까지 하얀 백사장 모래길 80리를 내려가다가 쌍계사 계곡에서 내려온 화개천과 만나는 화개장터를 지나 광양만에 이르러 마침내 남해바다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원래 섬진강은 가람 사수강·사천·두치강 등으로 불렀는데, 고려 우왕 11년(1385)에 왜구가 섬진강 하구에 침입했을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쪽으로 피해갔다는 전설이 있어, 이때부터 강 이름에 두꺼비 ‘섬(蟾)’, 나루 '진(津)'자를 붙여 섬진강이 되었다고 한다.
이 섬진강변에 봄이 오면 4가지 꽃 소식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이어지는데 그 첫째는 광양의 매화요, 둘째는 구례의 산수유, 셋째는 하동포구 80리 벚꽃과 네번째로 배꽃을 들 수 있으니 각각 그 꽃이 피는 시기에 맞추어 지역축제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11일부터 19일까지는 광양시 매화축제가 있었으며 3월 25일부터 4월 2일까지 구례군 산수유마을의 산수유 축제가 현재 진행중이며 3월 31일부터 4월 2일까지는 하동 벚꽃축제가 이어지는 곳이 바로 이 섬진강변이다.
그리고 끝이 아니라 하동일대 강변을 하얗게 뒤덮을 배꽃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섬진강을 일러 꽃강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무겁고 칙칙한 겨울을 벗어난 3월... 소위 말하는 春三月이 아닌가?
어느새 벌써 봄이라 하여 남녘으로 봄을 만나러 나선 길...
주저없이 섬진강으로 향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섬진강 꽃 소식 ① '매화(梅花)'
진득허니 기다리면 꽃 소식은 조금씩 조금씩 北上하여 나에게 닥쳐 올테지만
도대체 그 봄이 어디까지 왔는지 궁금하여 참을 길이 없어 나선 남행길....
봄비가 촉촉히 내리던 지난 3월 16일과 19일, 25일.... 열흘만에 세번이나 섬진강을 만나고 왔다.
팔십리 하동포구길에 가장 먼저 피는 꽃이 광양 매화마을의 매화꽃인데
정작 매화축제 기간 (3월 11일 ~ 19일)중에는 상기 아니 피었더니 축제가 끝난 25일에는 그야말로 흐드러지게 피었더라~
백운산 자락이 섬진강으로 잠겨드는 광양시 다압면의 매화마을은 해마다 3월이면 주변 밭과 산 능선등에 가득한 매화나무가 꽃을 터트리기 시작하면서 온 동네가 흰색의 꽃 대궐속에 자리잡게 되는데 이 매화마을은 원래 섬진나루가 있어 섬진마을로 불리웠지만 최근 매화를 보러 오는 관광객들이 넘쳐나면서 '매화마을'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오래전 이 마을사람들은 '토지'의 무대였던 강건너 북쪽의 악양땅 사람들이 평사리 너른 들판에 농사짓는 모습을 부럽게 바라만 보면서 척박한 내 땅엔 심을것이 없어 한숨 짓고 있을때 1930년경 율산 김오천선생(지금 청매실농원의 홍쌍리 여사 시아버지)이 일본에서 매화를 들여와 심기 시작하였으며 며느리가 유업을 이어 돌산을 일구며 전국 최고의 매화 농원으로 만들어 냈다고 한다.
그리고 주변 마을 이집 저집이 모두 매화를 심다보니 지금의 매화마을이 된것이며 최근 10년래에 이르러 해마다 3월이면 매화축제를 벌이면서 인산인해를 이루게 된것이다.
매화마을의 중심에 서있는 청매실농원은 이렇게 하여 전국에서 유명한 명소가 되었으며 작고한 시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원을 지키는 홍쌍리여사는 신문, 잡지, 방송등 매스컴에 수없이 오르내리면서 '매실박사'로 칭송받고 있다.
이제는 70년이 넘은 고목이 된 수백그루의 초기 매실나무를 비롯한 매화나무 단지가 잘 조성된 청매실농원에는 왕대숲과 함께 전통옹기 수백개가 놓여있고 영화촬영 세트장도 있어 한껏 분위기를 돋구기도 하지만, 어느새 숱한 판매시설과 음식 매점등이 전체적으로 아름다워야 할 서정적인 그림을 망가뜨리고 있는것이 현재의 모습이기도 하다.
<매화 향에 취한 벌 한마리가 카메라를 들이대도 알지 못한다....>
<꽃대궐이라 불러도 어울릴 풍경이다.... 섬진강이 멀리 내려다보인다.>
<청매실 농원 전체가 매화빛으로 하얗게 빛난다>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을 찍는 세트장이 준비에 분주하다...>
<매화 터널...>
<농장 한가운데 자리잡은 왕대나무 숲....>
<왕대나무숲 아래로 수백개의 전통 항아리 수백개가 늘어선 커다란 장독대(?)가 놓여있다>
<농장내 몽마르뜨 언덕.... 무명화가들이 상춘객들을 그려주고 있다>
이렇게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매화의 대부분이 일본산 개량종인데 그 이유는 꽃이 많이 피고 열매(매실)이 많이 열리기 때문이란다.
그러다보니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우리네 토종 매화는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반론이며 작지만 옹골찬 토종매화는 육질이나 맛에 있어 일본종에 비할바가 아니라는 예찬으로 이어진다.
꽃놀이 하듯이 몰려다니는 상춘객속에는 주인 몰래 매화 몽우리를 슬쩍슬쩍 따내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는데, 이들은 매화차의 진수를 아는 스님들이거나 매화차 매니아들인데 덜 핀 꽃망울을 그늘에 말려서 매화차를 만들기 때문이란다.
강 건너 화개 일대는 야생차밭이 지천일 정도로 녹차로 유명한 곳인데 여러 잔의 녹차를 마시다가 마지막 잔에 말려놓은 매화꽃 하나를 슬며시 띄우노라면 다섯장 매화꽃잎이 활짝 열리면서 감춰졌던 매화향이 찻잔에 가득차게 되니 이것이 茶香과 梅香의 만남으로 그만큼 매화향이 강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千理를 거스리는 자연은 없는 법
매화는 봄꽃의 대표 자격을 이내 구례의 산수유에게, 다시 하동의 벚꽃과 배꽃에게 넘겨주면서 사라지는것이니
하얗게 바다를 이룬 저 매화꽃이 지고 초여름이 시작되면 바로 그 자리에 매실이 열리게 되는것이다.
첫댓글 植梅畜鶴하여 梅매妻처鶴학子자 하던 이가 생각나네요. 사진을 보니 나도 시인 林임浦포 흉내내며 살았으면..........봄을 심어주어 고맙습니다. 동옥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