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나의 일을 바라보며
김재우 집사
- 내가 있는 곳은 연구부서이다. 사업부가 아니다. 사기업의 연구원이기도 하며 공학 연구원이기에 나의 연구결과는 사업화를 목표로 한다. 회사가 새롭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창구가 있다면 이것을 기술로 현실화/구체화 하기 위한 것이 나의 일이다.
- 나는 전기추진시스템을 연구하는 연구원이다. 선박에 탑재되는 전기추진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다. 전기자동차가 점차로 늘어나고 있듯이, 배도 전기추진선이 앞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전기자동차가 시장에 진입하고 점차 시장 점유를 늘려가고 있지만, 이것이 향후 시장 안에 확실하게 안착될지 확신할 수 없다. 배도 마찬가지이다. 현재로서는 오히려 자동차보다도 더 어렵다. 운전 효율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동일한 양의 에너지를 공급하여도 전기모터로 프로펠러를 돌리는 것보다 엔진으로 프로펠러를 돌리는 것이 훨씬 효율이 좋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내가 연구한 결과물을 가지고 정상적으로 사업하여 수익을 낼 수 있게 될지는 아직 나도 모른다.
- 회사에서 일을 한지 6년이 다 되어 간다. 햇수로는 만 5년이다. 내가 입사할 때보다 많이 나아졌나. 생각해본다. 많이는 아니고 조금 그런 것 같다. 겉으로 일하는 모양 자체는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그때도 어렵게 일하고 지금도 어렵게 일한다. 연차가 쌓여간만큼 주어진 일이 더 많아졌다. 그리고 일의 성격도 바뀌었다. 개념적으로 설계하고 가장 기초적인 검증만 하면 되었던 일들이, 개발단계가 진척됨에 따라 실제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일들이 되었다. 나 혼자 수행하거나 약간의 주변 도움만 있으면 되었던 일들이, 지금은 더 많은 사람들이 관여 되어야 하는 일들이 되었고, 주변의 도움없이는 진행 될 수 없는 일들이 되었다. 물론, 혼자서 수행해야 하는 일들의 크기도 저년차보다 더욱 많아졌다.
- 나는 전기추진선에 들어가는 기자재 중 하나인 전기추진제어시스템을 개발한다. 이것은 추진 드라이브-모터-프로펠러 구조의 추진단을 제어하기 위한 상위 제어기이다. 자동차의 운전석에 앉으면, 악셀, 브레이크가 있다. 악셀, 브레이크 조작에 의해 자동차 바퀴가 회전한다. 전기자동차의 바퀴는 모터에 의해 회전한다. 모터는 컨버터가 제어하는데, 회전토크를 제어한다. 어떻게 악셀 신호를 현재의 운전환경에 맞는 모터 회전토크로 바꾸어 주는가? 단지 악셀을 밟은 정도만 고려하면 되는것이 아니라, 구동력제어, ECO/스포츠 모드 등 많은 사용자 선택, 운전 환경 등이 고려된다. 이러한 기능을 선박은 전기추진제어시스템에서 수행한다.
- 나는 전기추진제어시스템을 개발하는 연구원이다. 앞서 선행연구를 진행하였던 분들이 시뮬레이션 모델 검증까지 진행하였던 것을 이어받아 후속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먼저 받았던 시뮬레이션 모델을 응용하여 파일럿 제품(시작품)을 만들었다. 시작품을 전기추진 보트에 연결하여 기본 기능이 동작하는지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자율운항시스템과도 연계하여 개발중인 전기추진제어시스템이 자율운항과 연계되어 움직이는지도 확인해 보았다.
- 그 다음 단계는 양산을 목표로 시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양산에 들어가려면 선급 규정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완성품에 필요한 기능이 무엇인지 전반적으로 검토해 보았다. 이후 다른 회사와의 차별화 요소까지 고려하여 우리가 만들어야 할 기능이 무엇인지 전체적으로 도출하였다. 시작품은 핵심기능 이외 제품운영에 꼭 필요한 다른 기능들은 구현하지 않아도 됐었다. 그러나 시제품은 그러면 안된다. 크지 않은 박스 하나였던 시작품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여러 개별장비들을 모아 시제품을 구성한다. 각 장비들은 제작사와 계약하여 새롭게 개발하는 것들이다. 나는 제품 전체의 운전 로직을 개발한다. 그리고 시제품 제작 중 발생하는 기술 이슈들에 적절한 가이던스를 제시해야 한다. 제품이 나오게 된다면 제품을 검증해야 한다. 제품을 제작한 공장에서는 제대로 된 검증이 불가능하다. 선박의 추진운전에 직접 활용되는 제품인만큼 실제 추진 프로펠러와 유사한 환경에서 안전하게 운전이 가능한지 검증해야 한다.
- 제품을 검증하는 것도 나의 일이다. 그리고 검증을 위한 준비를 하는 것도 나의 일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대형선 회사이다. 대형선에 탑재할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중형선 이상 규모에서의 검증이 필요하다. 바로 바다로 나아가 시험하기에는 위험하며 시험선을 구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육상에서 먼저 검증하는 것이 용이하다. 그렇게 하려면 전기추진선의 추진단을 대체할 수 있을만한 전기추진선 검증베드가 필요하다. 이 검증 베드는 아파트 단지 1개 이상의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정도의 전력크기를 공급받아야 한다. 이러한 검증 베드는 지금까지 우리 회사 안에는 없었다. 없으니 만들어야 한다. 이것에 대한 구축 책임도 나에게 있다. 전력수급 장비, 전기추진시스템의 추진부를 모사할 컨버터-모터-발전기 시스템, 그리고 앞서 말한 것들은 제어하기 위한 제어시스템 등 모든 것들이 준비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후 제품이 제작된 후 검증이 가능하다. 내가 책임지고 구축하지만 나의 연구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센터에서 진행되는 다른 연구들에도 활용되기 때문에 이들의 의견도 반영해 검증베드를 구축해야 한다.
- 회사에서 하는 모든 일이 ‘하자!’ 하면 그냥 되는게 아니다. 모든 과정에는 다른 사람의 도움도 필요하고, 시간도 들고, 비용도 든다. 당연히 개인 연구만 하면 되는 것 아니고, 회사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인적/물적 관리 행위들에 호응하는 것은 의무이며 적지않은 시간을 투자한다. 일을 하는 과정과 결과에 있어서 보고와 자료 만들기는 항상 동반되고, 비용을 사용하지 않고 회사에만 머물지 않는 한 작성해야 할 기안, 품의서들도 많다. 또한 나의 일도 협업을 통해 진행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연락하여야 할 일이 적지 않으며, 다른 사람도 본인 업무 중 나에게 물어오는 일들이 항상 있다. 시간을 아끼고 전략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업무의 주요한 부분들보다 보조 업무에 투자되는 시간이 많아지기도 한다. 유감스럽게도 난 시간을 쪼개어 쓰는 일들은 잘 하지 못한다.
-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일이 많다고 느낀다. 바꾸어 말하면 내 능력에 비해 많고 어려운 일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사실, 지금 하고 있는 정도 규모의 일이면 일의 세부 일정과 각 작업단계에서 역할별로 적절히 분배가 이루어지도록 처음에 일하는 판을 잘 짜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혼자서 너무 다양한 가짓 수의 많은 일을 하는 구조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금 더 어렸을 때, 집중하지 못하고 방황했던 시절에 몸에 배었던 습관들이 여전히 남아있기도 하다. 나의 부족함은 나의 쉽지 않은 상황을 더욱 가중시킨다.
- 나는 중학교시절 이후부터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늦었다. 공부를 더 하려고 늦게 잠자리에 들었는데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신나게 노는 것도 아니었고, 책상에 앉아서도 집중하지 못하다가 자기 직전에야 조금 더 공부하고 겨우 잠들었다. 매일이 오늘도 별로 열심히 공부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는 것을 미루다가 밤늦게 조금 공부하고 자는 생활이 길었다. 대학교 때도 비슷하게 생활했던 때가 많았었다. 당연히 낮에는 항상 기진맥진했다. 마음으로는 내가 나의 육체를 거슬러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을 것처럼 여겼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누구에게나 동일한 24시간 하루를 주시며, 생활하라고 낮을 주시고 쉬라고 밤을 주셨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밤에 쉬지 않았다. 나에게만은 하루가 24시간이 아닌 것처럼 오만하였다.
- 지금은 밤에는 쉬고 싶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밤에는 평안히 쉬고 싶다. 아이들이 어린데, 아내는 힘들어하는데, 최대한 많은 시간 함께하고 싶고 그것이 우리에게도 제일 중요한데… 이미 계획된 것보다 늦어있고 여기서 더 늦어지면 안된다라는 생각, List-up을 보면 당장 필요하나 아직도 남아있는 일들을 보면 집에 일찍 갈 엄두가 나지 않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댄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항상 잠을 주시려고 하는데 나는 그것을 받지 못할 때가 많다.
-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 안에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 안의 견고한 것들은 그 안에서 훈련되어질 수 있는 것임을 믿는다. 무모하고 오만하게 행동하여 무엇인가를 얻어도 그에 대한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것을 보게 된다. 지금의 나도, 아내도, 라엘이도, 시엘이도 커다란 욕심내지 않고 주어진 분복 안에서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혹은 스스로 무엇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무모하게 행동하지 않아도 좋다. 하나님께서 그어주신 경계 안에 머물렀으면 좋겠다. 우리가 서로 필요할 때에 강하게 사랑할 수 있는 힘이 거기에서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