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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Y 목적문 청소년Y는 젊은 예수를 본받아 맑은 영과 넘치는 지혜와 건강한 몸을 가꾸는 공동체로서 학교와 가정과 사회에서 사랑과 정의의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어 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
청소년YMCA란 “YMCA목적에 동의하는 회원으로써 생명을 살리며 평화를 실천하는 10대 청소년”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을 중심의 고교Y, 중학Y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면 현재는 학교와는 상관없이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활동할 수 있으며 청소년기에 학생이라는 역할도 있지만 ‘지역사회의 시민’, ‘소비생활의 주체’, ‘문화 생산자’와 같은 다양한 역할과 책임이 있기에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참여하고 운동할 수 있는 곳이기에 ’청소년YMCA‘라고 정의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Y 활동을 통해
1. 자기희생과 헌신을 통하여(젊은 예수) 사랑과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근래 다양한 청소년문제가 일어나고 이러한 가운데 우리 청소년Y회원들은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친구들과의 관계를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친구들 가슴이 평화로워져야겠지요. 가슴 가득히 그리스도의 정신인 사랑 안에서 평화를 일구기 위해 노력하며 생명을 살리는 활동을 행해야 할 것입니다.
1. 평화로운 인간관계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다양한 동아리들이 활동하는 내용은 다르나 Y에 가입하는 순간 추구하는 목적은 같아집니다.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하거나 또는 봉사활동을 하더라도 우리의 목적문에 맞닿아 있게 되는 거랍니다. 그 안에서 다양한 소통이 일어납니다.
1. 생명을 귀하게 여기며 주체성과 창의성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조직이 만들어지게 되면서 자연스레 여러 활동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임원단도 만들어지게 되면서 수평적 관계 안에서 여러 일들을 나누어 맡아 진행하게 됩니다. 각자 역할마다의 특성을 가지고 일을 하게 되면서 그에 따라 자연스레 주체성과 창의성은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와 함께 우리가 추구하는 나라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 바로 생명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입니다.
1. 삶의 목적을 설정해 꿈을 그리며 실천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활동과 관계 속에서 소중한 자신의 꿈을 그리며 실제적으로 노력을 하게 됩니다. 또한 자연스레 민주적 의사수렴이 일어나며 수평적 리더십과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고 다양한 문화와 여러 활동을 통해 지도력이 성장하게 됩니다.
1. 시민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활동 중에서 지역사회 안에서 필요한 캠페인, 실태조사 및 제안 등 청소년의 생각들과 이로운 여러 책임 있는 일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노력하게 됩니다.
□ 부천YMCA 청소년Y 소개 및 주요운동
부천YMCA 고교Y는 1982년 5월 15일 넝쿨(성서연구), 미리내 (음악을 통한 정서함양) 파필(문학세계의 탐구), 횃불(스포츠활동을 통한 체육진흥)로 시작하였습니다. 클럽별 정기집회, 이삭회, 성탄모임, 임원단교육, 청소년상심포지엄, 신입생환영회, 체육대회, 성가경연대회 등의 활동을 하였습니다. 1989년에는 부천공고(모닥불), 부천여고(한빛) 가 활동했고, 이어 하재누리(정명여상), 1990년 북고 고교Y가 합류하여 활동하였습니다. 다른 학교 학생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할 기회가 적었던 시기에 YMCA에 모여 연극, 토론, 공동체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폭넓은 시각을 갖으며 자신의 끼를 발산하고 꿈을 끼워나갈 수 있는 활동들을 하였습니다.
1994년을 기준으로 볼 때 모닥불(정명여상, 부천공고 구성)이 가장 전통있 는 클럽으로 ‘민속부(풍물반)’, ‘연극부’, ‘노·놀·부(노래놀이부)’의 3개 부서로 나뉘어 활동하였습니다. 1994년에 새롭게 조직된 클럽으로는 계남고 고교Y “301쪽”, “사랑나눔” 이 있습니다. 301쪽은 처음에는 토론부 활동을 하였는데 YMCA 클럽으로 바뀌면서 선배들의 정신을 기리고자 마지막 토론서의 페이지를 따서 301쪽이라 칭했습니다. 매주 토요일 정기모임을 통해 봉사활동, 토론활동, 요리페스티벌, 환경탐사, 회지발간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사랑나눔”은 부천고, 부천여고, 소명여고로 구성된 클럽으로 매주 일요일 정기모임을 갖으며 주제토론과 독서토론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습니다. 1995년에는 영·사·모(영화를사랑하는모임) 클럽이 만들어졌으며 매주 토요일 정기모임과 청소년 대상 영화에 대한 설문조사,미니영화만들기, 영화아카데미 등 활동을 하였습니다. 1997년 7월 봉사활동에 참여했던 부명고 청소년 2명은 계남고 고교Y의 조직적인 활동을 보면서 부명고에도 YMCA를 만들어보겠다 계획하여 1998년 부명고Y 수시아를 조직하였습니다. 1998년에는 부천고 GUY가 조직되고 1999년에는 부천여고 달리아, 부천북고, 소사고, 소명여고, 중원고에 고교Y가 조직되었습니다.
2000년대는 학교에서도 동아리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고교Y 역시 인문계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조직화 되었습니다. 2001년 원미고 고교Y T.V.O.L.S가 새롭게 조직, 2002년에는 도당고 고교Y가 조직되면서 10개 고교Y가 활동하였습니다. PC방, 노래방 실태조사, 청소년문화공간실태조사, 자연사랑캠페인 등 지역참여활동, 별자리, 갯벌, 동굴탐사 등 문화활동, 리더십교육 및 캠프, 진로활동 등 다양한 경험의 기회들을 갖게 되었습니다. 2007년도부터는 학교동아리에서 회관동아리 활동으로 바뀌어가게 되었습니다. 2007년 국토대장정 참가자 중심으로 이루어진 환경동아리 “처음처럼”을 조직하였습니다. 2009년에는 청소년기자단 “L.O.N” 조직되었으며 2011년에는 도당고 청소년을 중심으로 시민교육 및 토론 중심의 “원피스”, 중학생 중심의 노작활동과 수확을 통한 봉사동아리 “호시탐탐”, 우리동네이색놀이터 활동을 기획 운영하는 “놀이터기획단”이 조직되었습니다. 2007년 청소년Y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청소년시기에 꼭 하고 싶은 활동으로 무전여행, 도보여행의 아이디어를 모아 청소년국토대장정을 준비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국제와이즈멘 부천클럽과 함께 청소년들이 팀으로 구성하여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청소년의 시각으로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실천함으로써 제안하는 청소년팀프로젝트공모전을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국토대장정과 청소년팀프로젝트공모전을 통해 민주시민으로써 사회성, 책임감, 협동심, 공동체의식을 키우는 청소년중요활동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2012년 현재 학교동아리로는 “부천여고 달리아”, “도당고E.K”, 회관동아리로 “처음처럼”, “LON", "원피스”, “호시탐탐”, “놀이터기획단”, 동아리성격과는 조금 다른 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자치기구 청소년운영위원회 “B.Y" 까지 8개 자지조직이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부천여고 Y의 탄생
부천여고에 YMCA가 상륙한 것은 1999년이다. 처음 계획할 때는 마냥 기쁘기만 했지만 예상외로 넘어야 할 벽이 너무나 높았다. 그중 제일 큰 문제가 냉담한 학교의 반응이었다. 귀찮은 일거리가 생겼다는 듯 우리를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창립멤버는 남모를 눈물을 삼켜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수록 더 열심히 활동했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 결과 당당히 공식 써클이 되었다. 그때의 기쁨이란...! 새학기로 분주할 때 새내기를 뽑고 제대로 된 써클을 이뤘다. 그동안 우리는 부천시 여러 학교와 Y라는 이름으로 같이 활동했다. 소명여고, 부천고, 북고, 계남고, 중흥고, 소사고, 부명고 등과 같이 어깨를 나란히 맞추고 갔다. 여러가지 의미있는 봉사활동도 하고 재미있는 놀이도 했다. 그 중에서 기억나는 것은 역시 "민주학교"가 아닐까(...?) 여름에는 공기 맑고 물 좋은 산골로 수련회를 가서 여러 학교 친구들도 사귀고 즐거운 게임도 하며 모든 스트레스를 다 날리고 왔다. 또 별자리탐사와 신입생환영회, 진달래 축제 또한 잊을 수 없는 좋은 추억이 되었다. 우리는 지금도 달리고 있으며 달려야 한다. 부천여고 Y라는 이름으로... |
Y를 처음 알게 되고부터..
부명고Y 수시아 1기 회장 백근한
97년 8월 한 여름의 더위가 아스팔트를 녹이고 있던 때, 학교의 소개로 YMCA 주최 청소년 봉사활동에 참가하게 되었다. 처음 학교 선생님의 말씀, 거기가면 20시간 봉사는 채울 수 있을거야! 그 말에 완전 넘어가 5명의 친구들과 함께 어렵고 힘들게 Y회관을 찾아갔었다. 지금은 너무나도 익숙한 곳이지만 맨 처음 그곳의 모습은 그리 썩 좋지만은 않았다. 허물어져 가는 건물과 너무도 높은 언덕길, 벽에는 쭈뻣쭈뻣 금이 가 있고...(지금은 많이 좋아졌지....)그 곳 간사님의 너무나도 자상한 지도 아래 봉사활동이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봉사활동을 여러 번 해 왔었고 또 봤었지만 TM레기 봉투 뒤지고, 캡슐 부착하고 하는 그런 식의 봉사활동은 처음 해보았다. 너무도 힘들었지만 다른 것들과는 다른 너무도 새로운 것이었다. 또 우리가 활동하면서 사진 찍고, 기록하고 했던 것이 책으로 나왔을 때, 그리고 내 이름이 책 맨 뒤에 실렸을 때 그 때 정말 내가 저자가 된 듯했고 너무나도 큰 보람을 느꼈었다. 그 날 그 책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기억이 난다. 그곳에서 활동하면서 학교 서클로 YMCA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생각은 없었고 그냥 알아두기만 했다 그렇게 해서 어느덧 9월이 되었고 난 변함없이 열심히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름 모를 조그만 학생이 날 찾아와 “야! 우리 YMCA 만들어볼래? 얼마만에 들어본 YMCA란 말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인정되지 않는 불량서클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너무나도 진실했고 진지했던 그 학생! 양수진! 난 그 학생이 내 초등학생 동창인 걸 알게 되었다. 이런 저런 얘기하다 수진이의 말에 호감이 가고 나도 하고 싶어졌다. 그래! 결심했다! 불량 서클이 아니 아직은 인정받지 않고서 시작하지만 나중은 학교로부터 정식으로 인정받고 부명고의 가장 멋있는 서클이라는 말을 듣게 할 것이라고.. 선배님들은 없이 너무나 앳되었던 1학년 20명이서 여러 활동을 시작해 왔다. 많은 활동은 하지는 못했지만....신입생을 받고 회원의 수가 늘고 이제는 정식서클로 만들어야겠다라고 생각해 여러 방향으로 노력을 했다. 수진이가... 결과, 탄생 1998년 3월 6일 정식서클로 인정을 받고 그 뒤로는 좀 더 적극적으로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었다. 후배들을 받고 서클의 장이 되고부터 책임감 또는 나를 밀고 들어왔다. 이런 저런 계기로 나에게도 변화가 조금씩 생기게 되었다. 많은 사람 앞에 많이 서보지 못했던 나였지만 지난 1년간 수십 차례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좋은 경험으로 이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자신 있는 모습을 보일 수 있게 되었다. Y친구들과 함께하고 친구와 후배들 같이 활동해 오며 기쁘고 힘든 일 모두 함께 겪고...이제는 모두다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다. 같이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우리가 하나가 된 듯하다. 지금까지 활동해 오며 많이 힘들고 어려웠던 때도 많았지만 단 한 번도 내가 Y에 들어온 것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
연극부 황경민이 본 계남고 Y
우리 계남고에는 여러 동아리가 있다. 그리고 아직 공식이 되지 못한 동아리들이 있다. 이 많은 동아리들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인지도가 높은 동아리 중에 YMCA가 있다. 또 YMCA는 동아리를 운영하는데 있어 효율적인 동아리이다. 그래서 YMCA는 우리 학교를 대표하는 동아리에 들어서 있다. 계남YMCA는 모든 학교의 YMCA와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본래 목적은 봉사활동에 기본적인 틀이 있지만 우리학교만의 목적을 가지고 계남YMCA는 존재한다. 계남YMCA 본래의 명칭인 Y-301쪽, 우리 계남인에게 통용되는 이름은 줄여서 Y.Y는 우리 계남인의 애칭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학교에서는 Y의 이야기가 돌고 있다. 그들의 활동들은 항상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한다. YMCA는 글쎄 꼭 권장해주고 싶은 동아리, 정말 좋은 동아리이다. YMCA는 우리 학교에 정말 많은 영향력이 있다.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할 수 있게 학교나 부천YMCA에서 지원이 된다. 또 그들이 주장하는 것이 대부분이 인정되며 여러 동아리의 힘을 뭉치게 하지 않나 싶다. 그런 것들이 YMCA가 가지고 있는 힘이다. 그런 힘들은 동아리 활동에 지대한 영향이 되는데 그들은 그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힘을 가지기 위해 YMCA는 여러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YMCA를 창설하신 YMCA 1기 선배들로부터 지금까지 노력들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Y의 장점으로 역시 신용이 있는 동아리이라는 것이다. 난 2년을 YMCA를 지켜봤는데, 아직까지 Y에서 맡은 일을 처리하지 않은 것을 본적이 없다. 그리고 Y는 자신들이 어렵다고 생각되는 것을 피하지 않는다. Y가 맡은 일은 꼭 해내고 마는 동아리이다. YMCA 동기간의 우정이 좋다. 아직까지 싸운 것을 본 적이 없다. 물론 약간의 의견차가 있는 걸 보았지만 그 또한 그 날 안에 전부 해소됨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타협과 양보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가지기는 매우 힘든 일이다. 하지만 Y는 그걸 가지고 있다. Y는 선후배간의 예의가 정말 잘 지켜진다. 나는 타동아리에 비해 YMCA는 정말 예의가 잘 몸에 배어있는 동아리임을 확신한다. 대부분이 1년이 지나거나 반년만 지나도 풀어지기 쉬운 게 예의다. 근데 YMCA는 그런 적이 본적이 없다. 계속 보면서 느끼는 것인데 YMCA의 법도와 규율로 인해 Y자체의 선후배 릴레이션쉽은 다른 동아리에서 본받아야 한다. Y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본받을만 하다. 각자의 능력에 맞게 배치되는 부서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한다. 그런 점에서 YMCA는 체계적이다. 최대한 그 한사람을 위해 되어 있다고나 할까? 암튼 그런 점은 정말 잘 되어 있다. Y는 가족적인 분위기가 참 좋은 점이다. 어떤 선배님께서 나에게 강조하시는 것이 있다. 우리 Y는 가족이거든. Y의 활동담은 다음날 나에게 Y이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내가 Y였다면... |
□ 우리들의 이야기
1.
우리들의 고교Y
김창환 (1989~1991)
타임머신이 있다면 다시 학창시절로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누구나 한번쯤은 한다. 교복을 다시 입어보고, 친구들과 쉬는 시간 틈틈이 도시락을 까먹고, 아지트라 불리는 장소에서 의리 깊은 친구들과 보냈던 수많은 웃음과 사건 사고는 우리의 뇌 한구석을 자리하고 있는 추억일 것이다. 누구나 아득한 추억이 있듯 우리에게 고교Y는 사회를 바라보는 창과 동시에 우리 마음의 아지트였다.
부천YMCA 고교Y의 시초는 부천공고 “모닥불”에서 시작되었으며, 내가 기억하는 시기는 모닥불 7기의(1989년~1992년) 모습이라 하겠다.
1989년 고교 1학년 이른 봄 햇살이 교정의 벤치를 비치고 선배들이 줄지어 앉아 지나가는 후배들에게 잠시 동안 선배가 다니고 있는 써클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며 불러 세워 말해준 “고교Y” 이성친구도 만날 수 있다는 강력한 꼬임이 고교Y의 시작이었다.
당시 원미구 춘의동 상호신용금고 건물에 위치한 고교Y는 부천공고(모닥불), 부천여고(한빛) 가 활동했고, 이어 하재누리(정명여상), 1990년 북고 고교Y가 합류 했다.
50여명이 넘는 부천공고(모닥불) 고교Y에는 인천교대에 다니시던 함유숙 선생님께서 지도 선생님으로 함께해 주시고 계셨으며, YMCA에서는 담당간사로 윤병국, 이강인 간사님이 서포트 해주셨다.
고교Y 모임은 매주 토요일 각 클럽별로 정기집회를 갖고, 월 1회 연합집회의 형식으로 진행됐다. YMCA하면 레크레이션의 선두주자 였던 만큼 고스란히 우리들도 그러한 혜택을 받아 연합집회 2부 순서로 진행됐던 공동체 놀이 “콩도심고 팥도심고 고구마도 심으련만” , “도깨비 빤스”란 노래와 율동은 아직도 생생하고, 공동체 놀이를 통해 우리들은 어느새 한 가족처럼 친근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학교에서도 항상 뭉쳐 다니는 우리들을 보고 일명“Y”로 불리워졌고, 우리들은 평일에도 YMCA회관을 찾곤 했다.
매주 정기집회가 끝나면 노래놀이부(기타 및 노래), 연극부(연극), 풍물부(사물놀이), 문예부(책읽기) 활동 등으로 우리들의 일상 활동을 해나갔고, 우리들의 활동은 연말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라는 축제마당으로 승화되어 발표되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무대도 직접 꾸미고 주변의 친구들을 초대해 연극 및 꽁트, 노래 및 기타연주, 시낭송 등을 펼쳐 보이며, 맘껏 그 동안의 기량을 발휘했었다.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란 고교 축제마당은 타 학교는 물론 친구들에게 고교Y를 알림과 동시에 회원확대에도 큰 도움이 되었던 우리들의 무대였다.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가요가 아닌 민중가요인 광야에서, 아침이슬, 상록수 등의 노래를 배우고 부르며 자연스레 공동체를 배우고 익혔으며, 시대를 풍자한 꽁트 및 연극도 하고, 지도 교사와 함께 시대의 현장인 10만 노동자대회에 참여해 이 나라 권력과 싸우는 노동자의 삶을 바라보기도 했으며, 5.18민주화운동 비디오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과 동시에 작은 가슴에 분노도 느꼈었던 그러나 당시에 이해할 수 없었던 권력과의 대립, 노사 간의 대립은 큰 의문으로 남았었다. 취업을 앞두고 졸업할 무렵에는 노동조합에 대한 학습과 교육을 받으며, 노동탄압 등 우리 앞에 놓여진 현실을 확인해 가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고교Y는 우리들의 어린시절 각박한 사회의 한줄기 빛처럼 그냥 길을 걷다가 도착한 곳이 YMCA라는 고백을 그 시절 고교Y 친구들은 되새기곤 한다.
그렇듯 부천Y는 30주년을 지나 더욱더 빛과 소금이 되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주실 것을 믿는다.
2.
부천YMCA 30주년을 축하합니다.
양수진 (1997~1999)
제가 YMCA에 발을 들여놓은것이 벌써 10년이 지났네요.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봉사활동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단 한마디의 말만 듣고 들어왔습니다. 여름방학 보충수업 시간이 끝나고 집에 가려던 중 교실 칠판 한켠에 누군가가 봉사활동이라며 적어놓았더군요. 그 당시 학생들한테 필수적으로 봉사활동점수가 필요했습니다. 어린 마음에는 봉사활동의 정확한 의미를 몰랐었고, 단지 대학을 가기위한 하나의 과정에 불과했기에 주저하지 않고 친구와 함께 Y회관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 그곳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고등학생이란 그저 대학입시 준비를 잘하여 대학을 가면 되는 중간단계라 생각했었는제 그곳에 있는 또래의 학생들은 사회문화에 관심이 있고, 본인의 목소리를 내 줄 아는 큰 사람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학생들은 '계남고등학교YMCA 301쪽'이었습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301쪽' 학생들과 함께 여름방학동안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봉사활동은 아니었습니다. 환경오염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었고, 쓰레기 종량제를 시작했던 시기라 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았던 터였습니다. 그것을 우리 청소년이 바로잡아 나가자는 취지로 실태조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심각한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하고, 몸소 실태조사를 하고나니 어린마음에 사회를 내 손으로 바꿀수도 있겠다라는 의지와 자부심, 그리고 용기가 생기더라구요. 활동이 끝난 후 욕심히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301쪽'처럼 멋있는 청소년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하여 결국 그 당시 지도해주시던 간사님과 교장선생님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친구들과 함께 '부명고등학교 YMCA'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함께 활동할 동아리 친구들을 모집하였고,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수시아'라는 이름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동아리의 형태를 갖추고 나니 '301쪽'보다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기존부터 선후배가 있고 많은 활동경험이 있는 타동아리보다 잘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정확하게 청소년 활동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이 없었기에 혼란스럽기까지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걱정도 잠시, 간사님들의 조언도 있었고 '301쪽'의 도움을 받아 정보를 얻어 점차 하나둘씩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주제로 토론을 하고, 요리 festival, 중부지역 고교Y 모임인 하령회, 독서토론, MT, 체육대회, 같은학교 타동아리와의 연계활동, 수능시험응원 등 여러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듬해에는 청소년 문화시설의 부재로 청소년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었기에 청소년의 올바른 문화를 만들고자 노래방, 당구장, 학교 주변시설의 실태를 탐방하고 조사하였고 토론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을 바쁘고 힘차게 지내다 보니 저는 3학년이 되어 입시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열심히 활동하는 후배들을 보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공부했고, 후배들의 응원을 받으며 시험을 치르고 고등학교 생활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한테 있어서 YMCA 활동은 작은 사회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친구들과 함께 동아리라는 공동체를 이루어냈었고, 처음으로 인간에게 있어서 청소년 시기의 중요성을 알 수 있었고, 처음으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졌었고, 처음으로 친구들과 나의 생각을 얘기하면서 토론할 수 있었고, 처음으로 타학교 타지역 학생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고, 저에게 지금까지도 소중한 사람들이 곁에 있을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어른들은 가끔 '어렸을 때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말씀을 하시곤 합니다. 저도 그런마음이 듭니다. 아직은 완전한 어른은 아니지만 고교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좀더 큰 생각을 하고 행동에 옮길 수 있는 그런 고등학생이 되고 싶습니다.
지금 청소년시기를 겪고 있는 후배들은 지금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겨서 나만의 멋있는 청소년기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지금의 제 모습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부천 YMCA 감사합니다.
3.
인연의 소중함을 항상 기억하라
허경무 (2000~2002)
2008년 봄날 고교Y 후배들에게
어느 덧 시간은 흘러가 가슴에 Y라는 큰 알파벳을 품은지도 벌써 9번째 봄을 맞이하려 합니다. 낯선 교복을 입고 고등학교에 들어가 Y로써 인연을 맺은 것은 우연 이였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태어남과 동시에 정해졌었던 같은 사람들이 제게는 비단 가족뿐이 아닌 것 같습니다.
고교Y로써의 순수함을 무장한 상태로 청소년 문화의 집의 높고 높은 3층 계단을 걸어가서 이제는 집보다 더 소중하고 따뜻한 추억들로 충만한 곳에서 내일 만나는 것이 당연시 하며 내려오는 그런 익숙함으로 행복한 고향과 인생 중 가장 길고 가장 소중한 고교시절을 함께 나누고 지켜온 친구들, 그리고 초등학교 4학년 제게 음악을 가르쳐주고 또 악기를 접하게 해준 신미진 선생님 이후로 가장 소중한 그리고 항상 반갑게 맞이해 주신 선생님들. 그리고 후배님들이 그렇게 우연으로 지나칠 수 있었고 그냥 그런 고등학교 시절의 동아리라는, 누구나가 한번쯤은 겪어 보았을 평범한 한때의 추억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는 인연으로 거듭나게 해주었습니다. Y안에서 자랄 수 있었고, Y안에서 공부할 수 있었고 Y와 함께 즐거움을 만끽하며 웃을 수 있었던 지난 9년의 시간동안 저 자신을 뒤돌아보면 항상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주위사람에게 말 할 수 있는 자부심으로 꽉 차 있어 이제 막 눈 뜬 병아리가 크나큰 울타리에서 벗어나 무언가 하려 세상 앞에 한발 한발 나아가다 부딪힐 수밖에 없는 벽들 앞에서 고개를 떨어뜨리며 포기와 좌절하려 할 때 굳건하게 버티고 밟고 나아가고 이겨 낼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지난 한 해, 밖이 환히 보이는 철창 속에서 극도로 제한된 생활 속에서 이제 앞으로 싸워 무찔러야할 사회를 조금이나마 제일 왜소한 아이로써 경험하고, 내 자신의 나약함은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지난일은 추억이 되어 웃을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혼자만의 싸움을 유독 많이 했던 한 해를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이따금씩 들려 마음의 안식을 주었던 청소년문화의집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이제는 아름답지만 상처로 가득한 아이들이 청소년 문화의집의 새로운 가족이 되어 웃음을 찾고 귀여운 악동이 되어 문화의집의 이 곳 저 곳을 온기로 찾아들 때 즈음, 저 또한 아이들에게 배우며 또 작은 한 가지를 가르치며 같이 공유할 때 저에겐 또 문화의 집의 다른 하나의 미소가 생겼습니다. 그 아이들이 인연을 맺고 저와 같이 친구들, 문화의집, 선생님들과의 작은 인연 하나하나를 맺으며 그 아이들도 커서 제 나이 될 때 즈음 작은 풀뿌리에 걸려 넘어져 울고 있을 때에 일어날 수 있게 만들어줄 소중한 재산이 될 것입니다.
4.
청소년Y와의 만남
노진영 (2007~2009)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언니의 권유로 국토대장정에 참가했다가 YMCA와 인연이 되어 고등학교 2007년, 2008년에 청소년 Y활동을 했습니다.
2008년 부천 청소년Y연합은 연합활동보다는 각 동아리만의 특성을 살려서 활동을 하고 연합모임에서는 활동내용을 공유하고자 했습니다. 각 동아리들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 지지 않을 때에는 소통의 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하기도 하였고 서로의 활동을 공유하면서 서로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동티모르커피판매를 통한 모금운동이 작년에 이어서 청와대(전국 청소년 YMCA대표자 회의)의 전국과제로 정해지면서 동티모르커피판매를 했습니다. 그리고 동티모르커피판매 모금운동(이하 Peace coffee)이 저한테 가장 기억에 남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Peace coffee는 다국적 기업으로부터 제3세계 생산자의 착취를 막기 위하여 등장한 공정무역운동의 하나로 동티모르의 커피생산자들은 자연그대로의 커피를 판매하고 소비자는 생산자들의 권익을 지켜주는 건강한 커피입니다. 이러한 건강한 커피를 청소년들이 직접 홍보하고 판매함으로써 공정무역에 앞장서게 되는 것이죠. 그뿐만 아니라 Peace coffee판매 수익금은 기부가 되어 필요한 곳에서 따뜻하게 쓰였습니다.
공부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고등학교 시절, 누군가의 권익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게 느껴졌는지 지금 생각하면 그것 또한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로 작은 움직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공정무역'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제가 건강하고 바른 소비문화에 앞장서서 행동했다는 것에 지금까지도 제 삶에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으로 기억됩니다. 처음만나는 사람들에게 Peace coffee를 설명하고 무관심하게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에 기죽지 않고 다시 다가가서 설명하고... 어쩌면 그 자체가 힘들었을 텐데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저는 굉장히 밝게 웃고 가장 빛나는 눈을 가지고 사람들을 마주했던 것 같습니다. 혼자였으면 알지도 못하고 지나갔을 것이 친구들과 선생님과 Y와 함께였기에 알 수 있었고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앉아서 공부하고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전부였을 지도 모르는 저에게 청소년 Y는 저에게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사람들은 선물해 주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청소년Y를 만나지 못했다면 정말로 저는 제 자신도 모른 채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청소년 Y는 저의 학창시절을 아름답게 해줬고 그러한 기억 덕분에 저는 지금도 행복하고 앞으로 제 삶을 더욱 빛나게 해줄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몇 십 년 전에 청소년Y선배님들을 만나 뵙고 감탄하고 즐겁고 행복했듯이 저도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 후배들에게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날을 기다려봅니다.
5.
청소년국토대장정을 다녀와서
이성덕 (2011~현재)
내일신문 부천사람들 (2011년 8월 24일 인터뷰 내용)
“인내심. 리더십, 자신감 얻어왔습니다.
부천 도당고등학교 2학년 이성덕 군은 이번 여름방학을 맞아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다. 부천YMCA청소년문화의집이 주관한 제7기청소년국토대장정에 참가한 것, 그는 지난 7월 25일부터 30일의 5벅 6일에 걸친 100KM 도보거리를 완주했다. 해남 땅끝 마을을 출발해서 완도와 청산도, 장흥, 보성을 지나 순천까지 걸었던 멀고 먼 여정이었다. ‘아무나 경험할 수 없는 추억을 만들자’고 결심한 뒤 자기 자신을 뛰어 넘은 성덕군은 “이제 나는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 됐다.”고 자신한다. 그런 그를 지난 11일 도당고교 교정에서 만났다.
이것도 못 이기면 어떻게 하려고?
3일째 행군날인 7월 27일은 유난히 햇볕이 따가웠다. 그날은 오전 6시 30분 전라남도 청산도를 출발해서 장흥까지 17km를 걸어야했다. 흐르는 땀으로 범벅이 됐지만 성덕군은 자기 최면을 걸었다. ‘힘들지만 힘들지 않다’고. 거기에 발라드며 록, 댄스곡 등 자신이 아는 노래를 총동원해 덧붙였다. 손에 든 깃발을 더욱 세게 흔들며 앞으로 나아갔다. 옆에 있던 대학생 리더가 “이 지경인데 힘이 넘쳐나느냐”고 말했을 정도로. 그때 그의 마음이 말했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힘들어? 이것도 못 이기면 어떻게 하려고?’
부천 송내동청소년문화의집 봉사동아리 ‘원피스’의 일원이던 성덕군은 어느날 국토대장정에 참가해보지 않겠느냐는 대학생 형의 권유를 받게 된다. 처음엔 별로 관심 없었지만 재미있고, 정말 좋다는 말을 듣고는 가보기로 결정한다. “학업에 지친 심신을 달래는 계기가 될 것이고 100km라는 먼 거리를 이겨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요. 거기서 많은 사람들과 친해보자며 첫 걸음을 떼었습니다.”
평소 고민? 걸으면서 정리했어
어렵다는 국토대장정을 자발적으로 참여한 그는 어떤 생각을 하며 이 길을 걸어왔을까?
“첫 날 걸을 땐 다시는 이런 데 와서 고생 안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마지막 날이 되자 아쉬운 마음이 들면서 무조건 다시 온다는 생각으로 바뀌었지요.” 적극적으로 도전해서 늘 무언가를 얻어내는 것이 특기인 성덕군에게 이번 걷기는 쓴 약과 같았다. 먹을 땐 힘들지만 몸에는 이로운. “요즘 청소년들이 부모에게 떠밀려서 하기 싫어도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실상이라면, 있는 줄도 몰랐고 참여할 줄은 꿈에도 생각못했던 국토대장정은 제게 그 어떤 것보다 값진 경험이 됐죠.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평생 경험하지 못 할 수도 있는 일이잖아요.” 그는 이번 국토대장정을 통해 평소에 고민했던 문제들을 묵묵히 걸으며 정리했다. 인내심과 리더십, 공동체의식, 추억, 자신감 등 무수히 많은 것도 얻어왔다.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성장하면서 영향력을 끼치게 될 그 어떤 것까지도. “무사히 완주했다는 기쁨과 함께 기대 이상으로 좋아Tk는 성취감이 새록새록 생기네요. 앞으로 살아가는데 길에서 배운 인내심이 저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 갈 것이고 리더가 되든 구성원이 되든 공동체 속에서 조화로운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생 리더로 또 참여할 생각
“정직함이 좋아요. 뭐든 해보려는 적극성도 있고요.” 중학교 때까지 ‘놀았다’는 그는 고등학교 입학으로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저서를 읽고 세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비리 없는 정치를 해보자는 꿈을 품게 된다. 그래서 고1때 공부와 학교활동을 열심히 했다. 고2 올라와서 진학을 구체화 시키면서 전교회장에 출마했으나 낙방한다. 그 후로 그는 친구들에게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저는 예전과 똑같다고 생각하는데 친구들은 선거 이후 제게 많은 변화가 있다고 하는 걸요.” 희망은 정치외교학과 진학이다. 대장정 후 제자리로 돌아온 그는 대학 진학을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대학교에 입학하면 또다시 국토대장정에 참여할 것이다. 이번에는 후배를 리드하는 대학생 지도자로! “다녀와서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할 길이 없었는데 인터뷰할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저에게 이런 기회가 왔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송내동청소년문화의집(부천YMCA)에도 고마운 마음을 표하고 싶습니다.”
□ 만남
2011년 9월 3일 토요일 오후6시 부천YMCA 창립 30주년을 준비하며 청소년Y(고교Y) 선후배와의 만남의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자기소개와 함께 어떻게 청소년Y활동을 하게 되었는지, 청소년Y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부천YMCA 창립 30주년을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중심으로 정리해 봅니다.
처음 모인 우리는 자기소개의 시간을 갖았습니다. 언제 청소년Y(고교Y) 활동을 했는지, 현재 어떤 일을 하는지, 청소년Y(고교Y)는 나에게 어떤의미인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양수진 : 1997년도 부명고 고교Y를 시작으로 대학생 때도 자원지도자로 활동하였으며 지금은 간호사로 근무 중입니다.
김은총 : 1997년 계남고 고교Y활동을 하다가 대학교때도 중간 중간 놀다가면서 활동하였습니다. 지금은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김창환 : 1989년에서 1991년까지 고교Y활동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고교Y 선후배들과의 만남은 처음이라 너무 기쁩니다. 부천공고에서 시작된 모닥불이 12기까지 이어져 갔었습니다. 중간쯤 같이 부천 여고의 한빛이라는 클럽이 함께 묶여 활동하게도 했습니다. 정명여상(하재누리 90년도 생겼다 얼마 안 되 없어짐) 부천공고 모닥불은 문제를 일으키다 자체적 해산이 되었고. 그 뒤에 계남고 나머지 학교들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고교Y졸업, 대학 졸업 후 YMCA실무자로 10년 활동하다가 현재는 개인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고교Y때는 연극부로 활동하셨습니다. 오늘 사진도 몇 장 가져와봤습니다.- 연합수련회에서 가져온 사진- 이 사진은 고교Y때 고교Y를 알리기 위한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라는 주제 아래 사람들 앞에 시낭송, 노래, 모의재판, 연극 등의 활동을 하셨었습니다. 저에게 고교Y는 달콤했던 시절. 지나고 나서 보면 제일 좋았던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열심히 즐겁게 재밌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허경무 : 고교Y는 2000년부터 시작했고 대학교 때 아망(대학Y)을 만들었고, 지금까지 계속 활동하고 있습니다. 처음 소사고등학교YMCA동아리에 선배 추천으로 들어가게 되셨고 고2때 회장직을 맡고 그게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오게 되었습니다. 현재 일을 시작하신지 얼마 안 되어서 바쁜데 잠깐 인사하러 오게 되었습니다. 이제 고교Y를 떠나 Y사람이 되는 분들도 있고 앞으로 계속 보게 될 것 같은데 YMCA는 저에게 항상 좋은 사람들이모이는 곳 같아요. 이 인연을 앞으로 계속 이어나가길 바랍니다.
정건우 : 부천북고에서(현재는 없는) YMCA활동을 2004년에서 2006년까지 활동했는데 저는 활동한 게 솔직히 말하면 기억이 잘 안나네요.. 지금은 대학교 다니시면서 아르바이트 하고 있습니다. 항상 고교Y나 YMCA만나는 자리가 생기면 기쁘게 오게 됩니다.
노진영 : Y는 2006년 때 알게 되었지만 2007년도부터 시작하게 되었고 대학교 다니면서 계속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대학교 오면서 활동을 열심히 못했지만 이제는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저에게 고교Y는 제 추억, 과거가 아니라 제 미래 현재가 다 통틀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수인 : 2010년 5월부터 청소년 YMCA동아리 처음처럼을 알게 되어 활동하게 되었구요. 저의 근황은 현재 고등학교 재학중이고 틈만나면 자아성찰을 하며 즐겁게 살기위해 노력합니다. 고교Y는 학교이다. 학교처럼 많은 성격들의 친구들이 있잖아요. 학교 친구들 뿐 아니라 여기서 만나는 친구들도 다양한 성격의 친구들도 접하게 되고 대인관계도 넓어지기 때문에 또 다른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조혜진 :지금 22살이고 2006년 고1부터 학교 동아리 도당고 고교y하고 2007년도 연합회장을 지냈습니다. 제가 있었던 시기가 고교Y가 가장 많이 변화한 것 같은데 그때 남은 게 몇 안되는 학교만 고교Y가 남아있게 되고 현재는 학교보단 회관에서 활동하는 동아리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변화를 보면서 많이 새로움도 있엇고 힘든 점도 있었지만 그렇게 Y시절을 보냈습니다. 저에게 고교Y는 향수병입니다. 집보다 편안함을 느낄 때도 그냥 막연한 그리움이기도 하고, 그때 만나던 친구들이 문득 생각나기도 하고 그런 걸 보면서 향수병이라고 생각합니다.
성희원 : 저는 2007년 방과후아카데미 도담도담으로 활동하다가 2009년에 자연스럽게 청소년운영위원회에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청소년운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저도 고교 2학년이라서 입시준비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고교 Y는 쉼터입니다. 왜냐면 그냥 편안히 올 수 있기 때문에 쉼터라고 생각합니다.
이영호 : 저도 2007년 초등학교 5학년 때 방과후아카데미 도담도담으로 활동하다가 2010년부터 청소년운영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 중학교 3학년입니다. 저에게 청소년Y는 배움터라고 생각합니다. YMCA에서의 활동과 청소년Y활동을 통해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거든요. 오늘 와주셔서 감사하구요. 앞으로 자주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곽동균 : 저는 2000년부터 활동시작 북고 고교Y에서 발을 내딛고 2001년도 회장을 하고 연합회 총무도 하다가 고교 졸업 후 대학Y 아망 만들어 활동하다가 현재는 접고 다른 걸(청년Y 준비 중) 만들 계획입니다. 근황은 8월말에 졸업했는데 추석 지나서 일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저에게 고교Y는 제 길라잡이입니다. 꿈을 갖게 해주고 제 길을 찾게 해주기 때문에 그렇게 얘기하고 싶고요. 후배나 선배에게 하고픈 말은 잘 부탁드립니다.
오승진 : 저는 고2때까지만 활동하다가 20살 때 동균이라는 친구를 만나 다시 활동 시작하여 아망활동도 하게되었습니다. 고교Y는 추억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아리 덕분에 많은 활동을 하고 친구도 만들게 되어 추억이라고 생각하고 후배에게 하고픈 말은 잘 부탁드립니다.
정두혁 : 2001년 부명고등학교 고교Y에서 회장 했었습니다. 수원 이사 갔다가 부천에 다시 오면서 Y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근황은 종로에서 어르신을 보살피는 사회복지사입니다. 고교Y는 제게 등대입니다. YMCA가 제게 영향을 많이 미쳤고, 발걸음을 내딛게 도와주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합니다. 후배들에게는 웃으면서 잘 지내고 싶습니다.
오늘 모인 이야기들을 나누고 30주년 준비에 대한 소개를 한 후 고교Y활동 때 추억들을 나누고 궁금한 사항들을 질문해 보았습니다.
양수진 : 후배들에게 궁금한 것 중에 청소년운영위원회는 어떤 동아리인가요?
성희원 : 청운위는 청소년 자치기구예요. 부천YMCA에서 운영하고 있는 송내동청소년문화의집 활동에 깊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이 시설을 어떻게 하면 청소년들에게 유익한 공간이 될까 저희의 목소리를 내는 자치기구로 다른 청소년Y 동아리랑은 조금 성격이 다릅니다. 시설모니터링해서 개선하고 시설도 저희가 바꾸고 확성기도 저희가 진행하고 네트워크식으로 해서 소통도 하는 활동을 합니다.
양수진 : 깊이 관여한 것 중에 생각나는 건?
성희원 : 확성기, 또 다른 것은 시설에 책방(북카페) 만드는 것도 저희가 했습니다. 원래 안에 있었던 것을 불편해서 의견을 모아 밖으로 옮겼습니다. 그래서 북카페를 조성하였습니다.
성희원: 선배님들은 무슨 활동 하셨나요?
양수진: .저는 처음에 Y들어온 계기가 1997년도 부천 환경감시활동에서 자원봉사자 모집을 했는데 여름방학 때 봉사시간 채우기 위해 학교측으로 연락이왔는데 YMCA에서 왔다는거예요. 그래서 자원봉사 시간도 필요했고 해서 처음에는 오게 되었습니다. 계남고는 이미 Y활동을 하고 있었고 저는 제 친구랑 둘이 왔는데 다른 학교의 조직적인 모습이 인상 깊어서 우리 학교도 한번 자원봉사 활동을 해보자 해서 친구를 모아서 두 학교가 연합을 해서 하게 되었어요. 하던 찰나에 부천 지역을 구역별로 나눠서 쓰레기 봉투를 뒤져서 종량제 봉투에 분리수거가 과연 잘 하고 있는지에 대한 걸 조사도 해보고. 그 당시에는 종량제, 분리수거 인식이 낮아서 그런 걸 얼마나 잘 시행하고 있는지를 까발려냈습니다. 봉투를 뜯어서 잘 되고 있는지를 했었고
부천에 환경오염도는 얼마나 되는지 캡슐 붙여서 오염도 체크도 하고, 그 당시에는 청소년들이 도대체 어디 가서 놀 것이냐가 주된 문제였습니다. 그 당시는 당구장, 노래방은 날라리 애들만 가는 거였는데, 최대한 유해하지 않은 쪽으로 해야되지 않겠냐는 얘기가 나와서 노래방 실태(창문이 다 가려져 있는지, 불건전한 시스템 운영이 되는지, 당구장에서도 마찬가지고 그런 것 등을 간사님들이랑 ) 조사를 하고 다녔습니다. 당시 보고집을 만들어서 시청에 냈던 기억이 나요. 그걸 시작으로 해서 친구랑 같이 YMCA활동을 만들었고 2년 동안 했고 학교에서 인정도 많이 받았고 교장선생님께 표창도 받았습니다. 용돈도 교장선생님께 받았고 그래서 저는 Y를 버팀목이라고 썼는데, 그 당시 비뚤어 나갈 수 있는 시기였는데 그런 활동들을 하면서 다양한 유혹들로부터 꽉 잡아준 곳이 Y였습니다. 대학가서도 그 당시 그렇게 열심히 청소년기를 보냈으니까 지금도 잘 할 수 있다고 다독이면서 보냈기 때문에 그것을 버팀목이라고 적었습니다.
김창환 : 우리 때는 고교Y를 인정해주지 않고 비밀써클같은 시기였어요. 그때가 1989년도 그때가 독재정권하에 있을 때 불법써클로 간주하고 있었을 때였어요. 그래서 굉장히 모집을 하는데 있어서도 선배들이 지나가는 후배들 불러서 잠깐 이리 와봐라 해서 데리고 가서 했는데 하여간 그때 당시 알려지지 않는 상황에서 활동을 많이 했었구요 이성간의 교제는 완전히 단절시켰었고 저희는 4개 부서(문예, 연극, 논월-노래, 기타, 레크레이션) 다 같이 모여 집회를 하게 되면 고교신분이지만 대학 집회도 함께 참여도 해보고 그때 당시는 그게 퀘스쳔(?)이였죠. 왜 이런 최루탄을 던지고 해야 하나. 그런 질문을 대학교 형 누나들에게 질문을 많이 하고 그럼 그 누나들이 노동 삶의 현장에 데리고 가서 상황을 보여주고 인권에 대해 알려주는 활동이 주였어요. 고등학교는 가장 설레이는 건 연합집회였어요. 사실. 하하 저희 때는 남녀공학이라는 것이 없을 시절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고등학생끼리 만난다는 건 쇼킹하고 파격적인 것이었어요. 그럼 그때 옆자리에 여학생이 앉기만 해도 떨리고 그랬었어요. 말도 잘 못하고 그 당시에는 그런 부분들에 더 관심이 많고 했던 시기였어요. 그러나 알게 모르게 교육 속에서 그런 활동들을 하면서 성장했던 기억이 납니다. 근데 너무 멋진 활동을 했네요~ 쓰레기통을 열어보고 하면서 하
김은총 : 현실에 대해 말하면 되지 왜 대단한 것만 얘기해? ~ 하하하
저희는(계남고 고교Y 301쪽) 선후배같은 게 굉장히 엄격했어요. 저희는 고교Y다보니 학교단위로 많이 해서 학교 써클끼리도 가고 학교 써클끼리 독서토론회도 하고 그런 걸 되게 많이 했었어요. 지금보단 규모는 적었지만 그래서 재밌는 걸 많이했어요. 4월이 되면 신입생들을 뽑잖아요. 그럼 3학년 선배들은 고3이니깐 4주 마지막주에는 요리 페스티벌을 해서 3학년 자율학습 끝나면 다 같이 먹으면서 친해지고 도시락 싸서 남산도 하고 하는 식의 소소한 활동을 많이했어요. 현재는 규모가 커서 대외적인 활동을 많이 하는것 같은데 그 때 당시는 소소한 활동을 많이 하고 즐거움이 많았어요. 그래서 그런 것을 지금 살려 봐도 좋을 거 같아요. 체육대회때 계남고는 매점이 없어요. 그래서 축제 때 작은 매점도 해보고 하면서 정말 재밌었는데 지금도 단위를 쪼개서 해보면 재밌는 게 많이 나올 것 같고 소통도 있을꺼 같아요
허경무 : 고교Y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대학Y를 창단할 때 얘기를 해보면 처음 시작은 활동으로 만나서 클럽이나 동아리다 하는 이름보다 Y라는 이름 안에서 만났을 뿐 저희끼리 너무 친해서 어차피 좋은 평생 갈 친구들이면 이렇게 놀꺼면 Y의 이름을 달고 활동을 하면서 건강한 정신 사고를 키우는 활동들을 유지하자 라는 목적으로 대학 Y를 만들었어요. 생각해보면 평소에도 자주 만나고 재밌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커뮤니케이션도 잘 되고 자주 만나면 소통에 중요한 키가 될 것 같아요.
김창환 : 고교Y시절에는 북고 출신의 연예인도 있어요. 친절한 금자씨, 음란서생의 동네 아주머니로도 나오고 ㅎㅎ
곽동균 : 저희 때는 활동할 시기 체험활동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워낙 고등학교도 많고. 그래서 연합으로 다같이 갯벌탐사, 농활, 계절탐사 등의 활동을 많이 했어요. 여고도 두 학교도 있었고 그 당시 부명고 Y학생들이 굉장히 예뻤어요. 그래서 그당시 못 만날 다른 학교 친구들을 Y라는 테두리 안에 만나 친구를 만나서 좋았어요. 지금보면 되게 아쉬워요 예전처럼 활동하고 싶은 생각도 들고 지금 나이가 드니 이제 그런 것도 안되고 아이들과도 놀고 싶은데 공감대 만들기도 어렵고 제가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ㅎㅎ 아 어렵네요. 생각나면 또 얘기할께요.
정두혁 : 공식적인자리가 굉장히 오랜만이라 손에서 땀도 많이 나는데 지금은 어떨지 모르는데 그때는 거의 부천에 있는 고등학교에는 Y가 다 있었어요 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학교간의 라이벌 의식이 굉장히 강했어요. 연합회장은 어디서 먹어야 한다. 우리가 짱먹어야 한다. 그래서 잘 못하면 학교에서 3시에 모여! 해서 기합도 잡고. ㅎㅎ 그런 일 때문에 강당 쓰는 것도 스케줄 많이 잡히고 큰소리도 조금씩 나고 했었죠. 그런 기억이 나요. 아무튼 어느 학교든 다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학교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이 않았나 싶어요.
우리가 Y라는 이름 안에서 만났잖아요. 그런 기회를 발판삼아 함께 만난 것이 의미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발을 빼기가 싫은 그런 울타리죠. 그래요.
(뒤늦게 도착한 선배들의 자기소개가 있었습니다.)
유아현 : 안녕하세요. 직장에서 늦게 끝나서 늦었습니다. 저의 활동시기는 2003년부터 고교Y를 시작해서 대학Y동아리는 아망으로 했고 참 고교Y는 소명여고 Y였습니다. 근황은 일하고 있고 이직하지 얼마 안 되서 바빠요. 후배 선배님들 너무 오랜만이다. 너무 어색해요 자주 봐요. 자주 봤으면 좋겠어요.
(다시 자연스럽게 아래 기수들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조혜진 : 저는 청소년Y하면서 연합회활동도 기억에 남아요. 특히 다른지역의 친구들을 만나서 좋았습니다. 특히 전국고교Y연합회 청와대 활동이 기억에 남습니다. 전국에 있는 같은 활동을 하는 친구들이 모여서 100인 포럼을 진행하기도 했고, 대선에 청소년의 목소리를 내기위해서 의제를 발굴해서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의견을 모았던 활동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Y를 하면서 남는 것은 사람인 것 같아요. 아직까지 함께 활동했던 친구들을 만나고 있고 선배들도 만나고 있으니까요. 학교에 갇혀 있으면 선후배간의 관계를 맺기가 힘들었는데 Y를 통해 맺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은총 : 저희 계남고 301쪽 활동을 시작할 때에도 하령회, 동령회가 시작되면서 다른 지역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창환 : 노래놀이부(기타 및 노래), 연극부(연극), 풍물부(사물놀이), 문예부(책읽기) 로 나누어서 활동하였어요. 3개 학교에서 함께 진행하였습니다. 일주일에 1회씩 만나서 모임을 진행하였고요. 1부에서 마음 나눔을 하고 2부에선 부서모임을 진행했지요. 전통과 만남에 내놓을 작품을 만들었고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집회를 함께 갖았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강당에서 함께 손잡고 뛰어 놀던 기억들. 대학생 지도자들과 노동현장을 많이 방문했습니다. 노동탄압이 강했던 때였기에 함께 이야기 듣고. 실제 상황을 접목시켜서 활동을 많이 했어요. 그런 활동들이 사회가 돌아가는 것에 관심을 갖는데 도움이 되었고 계기가 되었습니다. 졸업 후 대학Y에 편입해서 활동하기도 했지만 활발하지 않아서 청년Y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청년Y는 굉장히 활발하게 진행했어요. 공명선거운동, 담배자판기 철거운동에 참여, 수은 건전지 수거함 전봇대에 설치하기, Y회관 건축 모금활동 등 YMCA 활동을 앞장서서 하게 되었습니다.
노진희 : 저도 늦어 죄송합니다. 저는 2004년도 고교Y 연합회장, 부천북고 출신입니다. 지금은 고양시재활스포츠센터에서 발달장애와 지적장애인 대상 운동 가르치고 있습니다. 특수체육교사를 하게 된 계기가 YMCA 활동을 하면서 그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부천 고교Y 대표로 장애우 친구들과 함께하는 캠프에 가게 되었는데 그 때 그 경험들이 이렇게 저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청소년Y 활동은 그래서 저에게는 앞으로의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입니다.
청소년Y시기 때 이야기와 Y에서의 활동들을 이야기 하면서 부천Y 30주년을 기점으로 계속 이런 자리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청소년Y는 000이다.
▢ 김창환 (1989년~ )
청소년동아리활동은 "솜사탕" 이다.
달콤했던 시절. 지나고 나서 보면 제일 좋았던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 양수진 (1997년~ )
청소년동아리활동은 "버팀목"이다.
저는 Y를 버팀목이라고 썻는데, 그 당시 비뚤어 나갈 수 있는 시기였는데 Y활동들을 하면서 다양한 유혹들로부터 꽉 잡아준 곳이 Y였습니다. 대학가서도 그 당시 그렇게 열심히 청소년기를 보냈으니까 지금도 잘 할 수 있다고 다독이면서 보냈기 때문에 버팀목이라고 적었습니다.
▢ 김은총(1997년~ )
청소년동아리활동은 "즐거움"이다.
사회문제나 큰 연합행사들도 했지만 클럽안에서 독서토론, 체육대회, 요리페스티벌 등 소소한 즐거움, 재미들이 많았던 곳이 Y였습니다. 지금 친구들도 이런 소소한 즐거움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허경무(2000년~ )
청소년동아리활동은 "좋은 사람들"이다.
YMCA는 저에게 항상 좋은 사람들이모이는 곳 같아요. 이 인연을 앞으로 계속 이어나가길 바랍니다.
▢ 곽동균(2000년~ )
청소년동아리활동은 제 "길라잡이"이다.
Y를 통해서 꿈을 갖게 해주고 제 길을 찾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 오승진(2001년~ )
청소년동아리활동은 "추억"이다.
동아리 덕분에 많은 활동을 하고 친구도 만들게 되어 추억이라고 생각합니다.
▢ 정두혁(2000년~ )
청소년동아리활동은 "등대"이다.
YMCA가 제게 진로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영향을 많이 미쳤고, 계속해서 발걸음이 자연스레 오게 되는 곳입니다.
▢ 노진희(2003년~ )
청소년동아리활동은 "꿈을 이루는 곳"이다.
제가 현재 특수체육교사로 근무를 하고 있는데 이 길을 가게 해준 계기가 YMCA 활동이었습니다. Y활동은 제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입니다.
▢ 조혜진(2006년~ )
청소년동아리활동은 "향수병"이다.
집보다 편안함을 느낄 때도 그냥 막연한 그리움이기도 하고, 그때 만나던 친구들이 문득 생각나기도 하고 그런걸 보면서 향수병이라고 생각합니다.
▢ 노진영(2007년~)
청소년동아리활동은 "과거-현재-미래" 이다.
고교Y를 통해서 진로를 정했고 추억들이 있는 곳이며 앞으로의 길도 Y와 함께 미래 현재 다 통틀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 김수인(2010년~현재 고2)
청소년동아리활동은 "학교"이다.
학교처럼 많은 성격들의 친구들이 있잖아요 학교 친구들 뿐 아니라 여기서 만나는 친구들도 다양한 성격의 친구들도 접하게 되고 대인관계도 넓어지기 때문에 또다른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 성희원(2009~현재 고2)
청소년동아리활동 "쉼터"이다.
왜냐면 그냥 편안히 올 수 있기 때문에 쉼터라고 생각합니다.
▢ 이영호(2010~현재 중3)
청소년동아리활동은 "배움터"이다.
도담도담을 시작으로 Y에서 활동하면서 저에게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어요.
그래서 배움터라고 생각합니다.
5. 앞으로 나아가며....
부천YMCA 청소년Y 회원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타인의 가치를 존중하며 나와 타인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청소년입니다.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 최선을 다해 활동하나 마음속은 세계를 넘어서 있는 청소년입니다. 이 나라를 넘어 지구촌의 넓은 세상을 바라보며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며 평화를 이루고자 움직이는 청소년으로 앞으로도 부천YMCA 속에서 성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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