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온 가족이 편히 눕고 쉴 수 있는 집이 있습니까?” “망치 들고 한번 참가해 보십시오. 기술로 짓는 집이 아니라 사랑으로 짓는 집을 찾아 당신 역시 지구촌 곳곳을 헤매게 될 것입니다.” 내가 ‘사랑의집짓기’ 운동을 참여하면서 사람들에게 수없이 해왔던 말이다. 지금도 집짓기 일을 할 때면 가슴 가득 번지는 에너지와 감동, 그리고 뜨거운 사랑이 충만해 옴을 느낀다.
‘해비타트(Habitat;사랑의집짓기운동) 운동’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저소득층 무주택 서민들에게 인종이나 종교를 초월해 안락하고 소박한 집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인간이 살 수 없는 주거환경으로 인해 수많은 가정이 깨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해비타트는 개인, 교회, 기업, 각종 사회단체와 함께 힘을 합쳐 가난한 이웃을 도와 그들의 가정에 희망의 보금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즉, 너무 열악한 주거환경 때문에 행복한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전 세계의 모든 가정을 일으켜 세우는 것, 이것이 해비타트의 꿈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운동이 잘 알려지게 된 계기는 2001년 8월에 전 미국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가 참여하여 일명 ‘지미 카터 프로젝트(Jimmy Carter Work Project)’로 한국에 136채의 집을 지어 주는 대규모 행사를 통해서였다. 그 건축 현장에는 전 세계에서 온 1만 30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망치와 톱을 들었는데, 그 중 외국인 봉사자는 1천여 명이 넘었다. 여름휴가를 봉사활동에 바치겠다는 가족들, 뜻 깊은 일을 하고픈 대학동아리들, 군인들, 주한미군들, 교회봉사자들, 휴가직장인들, 고령의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 등 국내외에서 다양한 자원봉사자들이 일했다. 국적과 생김새가 다르고, 나이도 천차만별인 사람들이었지만 목표는 단 하나였다. 사랑이 넘치는 튼튼한 집을 짓겠다는 것, 그 목표를 위해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그 집을 짓기 위해 봉사자들이 오는데, 그들은 대가를 지불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먹고 자는 경비를 내고 일하러 오는 사람들이다. 당신은 이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가.
한국에서 열린 JCWP2001 기간 동안 우리는 주 건축지 아산을 비롯하여 태백, 진주, 경산, 파주, 군산 등 6개 도시에 총 136세대의 집을 지었다. 물론 집터를 닦는 기초 골조공사는 이미 3월부터 탄탄하게 진행해 준비한 다음, 8월초 한 주간에 수십 명이 벽채와 지붕, 칠, 벽지를 바르고, 문 달고 집안 모든 공사를 한 가구당 맡아 짓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해비타트 운동은 미국인 변호사 밀러드 풀러(Millard Fuller)에 의해 1976년 시작된 사랑의 실천으로서, 30년 동안 전 세계에 20만 채가 넘는 집을 지어주는 일을 해왔다. 벤처기업을 일으켜 20대 후반에 백만장자가 되었던 밀러드 풀러 부부는 가정의 위기를 맞자 하나님 앞에 새로운 삶을 찾았고, 1965년 결국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1973년 아프리카 자이레로 가서 가난한 흑인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기 시작해 1976년에 오늘날의 국제해비타트(Habitat for Humanity International)를 창설했다. 주택의 규모는 각 나라, 각 지역의 특성에 따라 결정되며 수십 세대에서 많게는 수백 세대에 이른다.
해비타트 운동을 처음 시작한 밀러드 풀러와 함께
2001년 한국에서 열린 JCWP프로젝트에 함께 한 지미 카터 부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해비타트에 참여하게 된 시기는 1983년,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 없을까 찾던 중 마침 ‘행동하는 사랑’ 해비타트와 만나 직접 망치를 들고 현장에서 땀 흘리게 되면서다. 그때부터 지미 카터가 직접 참여해 매년 한 나라에서 1주일간 집을 완성하는 ‘번개건축’이라고 불리는 JCWP가 생겼는데, 우여곡절 끝에 2001년도에 한국에서 그 프로젝트를 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해비타트 운동은 1980년도 후반에 시작되었는데 예수원 원장인 대천덕 신부(R.A.Torrey)가 그의 저서에서 해비타트 운동을 처음 소개한 바 있고, 고왕인 박사가 첫 실행위원장으로 많은 헌신을 통해서였다. 내가 해비타트와 인연을 맺은 것은 국내 해비타트 활성화를 위해 애쓰고 있던 고왕인 박사의 요청으로 당시 한국에 파견되었던 릭 해더웨이를 만나 구체적으로 이해를 하면서다. 그리고 과기처장관직에서 물러난 1992년 1월에 이사장으로 추대되어 행동으로 동참하면서 ‘국제해비타트한국운동본부’로 발족해 1994년에 경기도 의정부에 첫 한국해비타트 주택을 건축했다. 다음 해인 1995년에 건교부 산하 비영리공익법인 (사)한국사랑의집짓기운동연합회로 정식 인가를 받아 1996년 필리핀에 5세대의 집을 지어 줌으로써 해외지원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해비타트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작년 2006년까지 국내에선 508세대, 해외에선 필리핀 산사태지역 및 파키스탄 지진피해지역 임시숙소를 포함해 563세대를 지어 준 기록이 있다. 특히 작년 8월 강원도 수재민을 위해 명지대 용인캠퍼스 한쪽에서 봉사자들이 며칠 동안 밤늦게까지 목조 조립식 컨테이너 집을 40채 완성해 인제군과 평창군에 전달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한국해비타트는 현재 서울본부 외에 태백, 진주, 대구/경북, 천안/아산, 군산, 경기북부, 춘천, 전남동부, 삼척, 경기, 대전, 울산, 서울지회 등의 전국 지회가 13개나 구성되어 있어 무주택 서민들을 위한 봉사를 하고 있다.
누군가가 내게 “해비타트 운동의 목표가 무엇인가요?”라고 물으면, 나를 포함한 봉사자들은 “지구상에서 빈민주택을 없애는 것입니다.”라고 서슴없이 답할 것이다.
그런 해비타트 운동의 특징을 이해하기 쉽게 5가지로 설명해보고자 한다.
첫째, 주택공급을 통해 무주택 서민의 가정을 회복시킨다. 입주가정이 집(House) 뿐만 아니라 가정(Home)의 안정과 회복을 누리도록 돕는다.
둘째, 광범위한 자원봉사자를 동원한다. 주택의 설계에서부터 입주가정의 후속 지원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원봉사자들이 돕고 있다.
셋째, 입주 가정의 생산적 자립을 필요로 한다. 입주가정은 주택원가를 15년 동안 무이자 분활 상환해야 한다. 전 가족이 총 500시간 동안 건축공사에 참여해야 한다. 입주자는 건축금을 상환하고 몸으로 참여함으로써 내 손으로 집을 짓는다는 자긍심이 생긴다.
넷째, 계층간 갈등 극복과 협력을 목표로 한다. 돈 있는 사람은 건축 기금과 사업비를 후원하고, 땅이 있는 사람은 집 지을 토지를 기증하며, 건축 자재를 생산하는 기업은 자재를 후원한다. 건강한 사람들은 대가없이 자기 노동력을 제공하며, 입주 가정들은 자신의 미래와 일어서려는 의지를 내놓는다. 이렇게 형성되는 이해 속에 한 채 한 채의 집이 지어질 때마다 계층 간 벽을 허물기 시작한다.
다섯째, 국제적인 협력을 한다. 해비타트 지회는 십일조를 원칙으로 사업비의 10퍼센트를 다른 지회를 돕는데 사용한다. 자국의 집만 짓는 것이 아니라 이웃나라의 무주택자들을 위해서도 자원봉사로 활동하여 사랑을 실천한다.
국제 해비타트가 정한 입주가정의 조건은, 비인간적인 주거환경 속에서 현재 고통을 받고 있고, 둘째 동역할 의지 즉 땀의 분담으로 현장에서 500시간 참여할 의지가 있어야 하고, 주택 건축실비를 매달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한국해비타트에서는 거기에 덧붙여 우리 실정에 맞는 입주 기준을 정하고 있다. 위의 조건 외에도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있어야 하며, 5년 이상 무주택자여야 하고 입주자가 해당지역에 일 년 이상 거주하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이러한 조건을 모두 갖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도시 외곽지역의 열악한 곳에서 살고 있거나 시골에 거주라는 사람들이어서, 입주가정 선정하는 일에 많은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집 몇 채 짓는다고 이 지구촌에서 주거문제가 해결되나요? 그렇다고 빈곤 문제가 해결되나요?” “집이란 게 대체 무엇인가? 왜 집이 중요한가?” 살기가 아주 힘든 가정에서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잘 먹지도 못하는 처지인데 배부른 소리’라고 비난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식주 중에서 ‘주’는 정신적인 부분까지 터치하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버젓한(Decent) 나의 집’이 있다는 건 사회를 구성하는 가정이 버젓하다는 걸 의미한다. 가정이 제 구실을 하면 사회도 바로 설 것이고, 그것은 곧 이 나라가 나아가 세계가 바로 선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집’이 중요한 것이다. 이 집은 부동산으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에겐 아무 의미가 없다.
해비타트는 집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집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살려는 의지는 있는데 혼자의 힘만으로는 안 되는 사람에게 건축비 원가를 다달이 상환하게 함으로써 집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는 운동이니, 결국 자신의 힘으로 집을 갖게 되는 셈이다. 공짜가 아니다. 그러므로 집을 지어준다고 으스댈 것도 없고, 집을 그냥 받는 것도 아니니 기가 죽을 필요도 없다. 다만 나눔과 사랑의 미학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이 일은 절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종교단체와 기업과 개인의 힘이 모이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해비타트 운동은 가장 현실적이고 강력한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행동하는 사랑“의 표본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