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 도착해서 친구집에 머무는 1주일간은 정말 세상에 둘도 없는 미아였다.
당시 한국에서 가지 말라는 어학연수를 왜 그랬는지 가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무조건 떠났던 나였다.
밖에 나가면 너무나 낯선 LA의 거리는 왠 한국의 읍내와 면을 보는듯 촌이었다.
간판도 그랬고, 건물도 그래 보였다. 오직 차만 조금 좋은 것들이 굴러갈 뿐이었다.
거리를 다니면 하도 죽는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다니기도 그러했지만 뭐....사람이 그리 쉽게 죽나..
하면서 낮에는 하루종일 걸어 다녔다.
LA에서 버티기 리스트
1) 동양선교교회에 가면 매일 아침 밥을 1불에 준다. 새벽예배후..(체육관에서)
2) 그리고 뒷뜰에 있는 도서관(소규모)에 가면 전날 팔다 남은 빵이 커피와 함께 있다.(공짜)
3) 웨스턴 거리를 쭉 따라 내려가면 8가가 나오는데..거기에서 왼쪽으로 조금 꺾어져서 가다보면
4불 하는 설렁탕이 나온다. LA에서는 제일 싼 곳이다.
4) 지금은 LA에 한국식 빵이 많이 있다. 하지만 비싸다. 빵 하나에 2불 가까이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뉴욕처럼 중국 빵집은 가격도 싸고, 스페니쉬 가게에 가도 빵은 여러가지
종류를 먹을 수 있다.
당시 내가 경험한 바로는 LA는 물가도 뉴욕처럼 다를바 없는 고 물가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말이다.
나는 동양선교교회 도서관에서 하루종일 책을 읽었다. 그동안 공부하느라 읽지 못했던 신앙서적을
읽겠다는 각오로 매일 5권-7권의 책을 읽었다. 할 일이 없으니까 말이다. 아침을 1불에 먹고,
점심도 그곳에서 빵으로 때우고, 저녁까지 읽었던 책은 강준민 목사님의 책들이었으며, 각종
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전병욱 목사님 시리즈 물이었다. 그곳에서 한국에서 OMC에 있는
신학교 학생들을 만났다.
LA에 있는 한국 신학교 실정
1) 각 교단별로 다양한 과정의 신학교들이 있다. 물론 입학허가서(I-20)를 내준다...쉽게.
2) 많은 신학생 뿐만 아니라 일반일들을 위한 과정, 사역자 양성과정도 있으며, ELS 과정도 있다.
3) 우리교회 한 청년은 신학교에 있는 ELS과정으로 들어왔는데 3개월 하다가 학교를 옮겼다.
--> 정말 어학연수는 말려야 한다.
4) 최근에는 쉐퍼드 신학교라는 곳이 LA에 있는 한국 신학교가운데서 상당한 두각을 나타내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얼마전엔 후안카를로스오르띠즈 목사님의 강의도 개설되었다고 한다.
5) Azusa 신학교가 있다. 감리교 계통의 신학교가 있는데 이 학교에는 한국어 병행 과정인
translation course가 있다. -->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미국에까지와서 그래야하는지..생각해보세요.
6) fuller seminary 에도 목회학 박사 과정에 한어 과정이 있는데...나름대로 이 과정도 좋지만
미래에 어떻게 사용될 것인지는 모르죠. 그래서 이왕 fuller seminary에 들어갈 정도로 고민
하신다면, 영어공부를 조금 하셔서 공부를 계획하심이 좋을듯 합니다.
7) 제가 다니고 있는 the school of Talbot 인데요...
그거 아세요? 토플이 없어도 입학이 가능하고, 영어공부 조금 하셨던 분이라면 높은 단계에서
시작해서 1년 정도면 일반 과정으로 공부를 하실 수 있게 됩니다. 음..하지만 많은 분들이 이 과정을
할 수 없어서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많은 돈과 시간을 낭비하기에 추천해 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체계적인 영어수업을 받을수 있죠..
참...탈봇(바이올라)신학교에는 leadership scholarship이란것이 있어서 학비의 절반 가격으로
공부할 수 있다는거? 유학생들에겐 장학금혜택이 의외로 많다는 거 아세요? 머뭇거리지 말고
길을 알아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큰 교회의 많은 사역자들이 현재는 바이올라 탈봇 신학교에 몰리고
있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인맥을 또한 쌓기도 좋겠죠?
하루종일 도서관에 있던중에 잠간 사서로 일하는 분과 아르바이트 누나들과 함께 점심을 먹자는
제안을 했다. 나는 멈칫거리지 않고 따라나섰다. 오랜만에 거한 식사를 했고, 그 자리에서 함께한
사람들에게 나의 소개를 했다. 내가 어떻게 이곳 LA까지 오게 되었는지..말이다. 모두에게 웃음과
천일야화같은 8개월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재미있게 들은 사람들 중에 지금의 담임목사님의
사모님이 계실줄은 몰랐다.
LA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게된 주일...나는 동양선교교회 1부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LA지역의 작은 교회들을 걸어서 방문했다. 5개 교회를 방문하고 그날 예배를 드린것만
3군데에서 예배를 드렸으니 말이다.
LA에 한국일보, 중앙일보에는 '사역자 구함'이라는 광고를 많이 낸다. 나도 처음엔 솔깃하여
전화도 해보고 주일에 방문도 해 보았지만 신문에 난 기사중에서 제대로 된 교회가 없다는 것을
직접방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다들 뭔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그랬다.
그날 저녁 나에게 전화가 왔다.
"헤세드 전도사님..."
"네..누구세요?"
"네..저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는 ***사몬데요"
"네 그런데요?"
"내일 잠간 저의 남편이 전도사님을 뵈었으면 하신다고 해서요?"
"네?..네... 알겠습니다."
나는 이게 뭔가....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예전처럼 들뜨지도 않았고, 덤덤했다.
그리고 다음날 약속장소에 환한 미소를 띤 젊은 목사님이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리고 그곳에서 단 5분의 대화 속에서 사역을 함께 할 결정을 내려 어느새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당시 나는 동역을 제안하는 목사님께 3가지의 제안을 했다.
왜냐하면, 처음 동역을 제안하는 목사님께 제안을하지 못하면 더이상 이러한 기회는 없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꼭 알았으면한다. 교회에서 사역을 하자고 했을때...그때를 놓치지 말고
본인이 원하는 것들을 꼭 확인받아야 한다는 것을....말이다. 가능하면, 다자가 있는 곳에서
아니...서면으로 해도 좋다. 과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3가지를 제안했다. 그리고 흔쾌히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그 약속을 목사님은 그런데로 잘 지켜 주셨다. 여기서 그런데로란 것은 여러분이 나름대로
해석해주기를 바란다. 역시 화장실 들어갈때와 나올때는 조금이라도 차이가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처음 3개월 기간은 500불을 받았다. 프로베이션 기간이란다. 뭔지...?
3개월이 지나자 1500불로 월급이 올랐다. 종교비자 신청을 했다.
6개월이 지났다. 월급이 2000불로 올랐다. 하는 일은 5개 기관을 담당하는 거였다.
잠자는 시간 5-6시간을 제외하고는 눈 뜨고 있는 시간 모두를 일을 하는데 던져야 했다.
나는 아직도 그랜드캐년, 디즈니월드등 LA에 유명한 공원을 가보진 못했다.
언젠가는 가족들과 함께 가겠지...얼마전에 EM의 열린 청년(?--> 남자다)과 함께 라스베가스를
몰래다녀왔을 정도니까 말이다. 5년만에 일이다. ^^
돌아보면 어떻게 했을까 싶지만....다시 하라고 하면 군대생활처럼 하고싶지 않다.
나는 그때 이렇게 생각했었다. '더이상 돌아갈 곳은 없다. 여기에서 배수의 진을 쳐야한다...'
라고 말이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왜 돌아갈 곳이 없었나?
내가 너무 극단적인 생각으로 내 자신을 극한 상황에 몰아넣어야 딴 생각을 하지 않을거란
판단을 했던것 같다. 하지만...그건 큰 오산이다. 돌아갈 곳은 반드시 있고, 내가 자란 고향,
내 조국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용기있게 실수와 실패도 인정하는 사람이 성공을 할 수도 있다는 말처럼..
당시 내가 그냥 한국으로 돌아갔다면...생각해보니 그것도 나쁠것은 없었을 것이란 생각도 해본다.
안수를 받고, 다시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족들과 함께 오는 계획 말이다. 조금은 늦었을지 모르겠지만
전혀 안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은 돌아갈 곳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이곳에서 자살을 한 교회 청년을 2명이나
봤다.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죽음에 대해서 애도를 하거나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왜 젊은 그들이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나는 잘 안다. 나도 그런 생각을 안해본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누구나 힘들고 극한 상황을 경험하게 되면...그럴 수있다는 생각을 또한 해본다.
돌아갈 곳은 반드시 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그동안 잘 견디셨네요! 어서 좋은 소식이 있고 계획된 것이 풀리길 바랍니다. 정말 한국에서 볼 대와는 많이 다른 것이 미국 생활입니다. 그래도 후회는 없죠! 많은 한숨이 있었지만 먼 후날 이 생활도 그리움으로 남는다고 합니다. 건강이 있었고 젊음도 있었고 ... 내일을 생각할 수 있었던 날을... 하여간 즐거운 주일이 되길 바랍니다.
물처럼님...님은 어디에 계신지요? 서로 연락을 할 수는 있는지요? 서로 이메일이라도 했으면 하는데요?
정말 열심히, 그리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달려오신 지난 오년여의 시간이 마음에 닿습니다. 힘겹게 오신 길이지만, 그만큼 값진 길이었음을 믿습니다.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기도 부탁 드립니다. 485 승인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한턱 쏠지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