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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호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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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공부방 스크랩 미술과 일상
ĿØvЁЯу모모 추천 0 조회 26 11.08.14 17:2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미술과 일상

 

이 시간에 우리가 함께 감상할 내용은 1950~6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성행했던 "팝아트(pop art)"입니다. 추상표현주의, 앵포르멜 등 추상미술이 주름잡고 있던 당시 미술계의 일각에선 이와는 전혀 다른 미술이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즉 팝아트, 앗상블라쥬, 환경조각(environments), 신사실주의(Nouveau Realisme), 네오다다 등의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우던 비추상 계열의 미술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미술들의 성격과 경계를 정확히 규정짓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미술을 했던 사람들은 한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그들은 지각가능한 세계, 즉 일상적 사물들과 사건들의 세계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형태의 추상미술에 대한 강력한 대응으로 간주되었습니다. 60년대에 들어서도 추상의 반대 경향에 선 일련의 미술들에 대한 통일된 명칭이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작가들마다 너무나 상이한 경향을 보였을 뿐아니라, 한 작가도 너무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하나의 용어로 그들을 모두 통칭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추상미술에 대응하여 강력하게 부상하는 미술들에 대한 일반적 명칭이 요구되었는데, 통상 대중매체에서 유래한 이미지를 이용하는 미술을 의미하는 "팝아트"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팝아트 작품들을 감상하기에 앞서 팝아트에 길을 제시해준 선구자격 미술가 두명의 작품들을 감상하겠습니다.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와 재스퍼 존스(Jasper Johns)는 추상표현주의와 팝아트의 주요 어법들을 자유자재로 다룸으로써 미술의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하였던 주목할만한 미술가들입니다.

 



[로버트 라우센버그, <침대> 1955]

 

라우센버그의 <침대>라는 작품을 봅시다. 베개와 퀼트천으로 된 이불, 그리고 그 위에 가해진 표현주의적인 붓질... 매우 파격적인 방법으로 제작된 작품입니다. 통상 라우센버그의 제작 기법을 "앗상블라쥬(Assemblage)" 혹은 "컴바인 페인팅(combine painting)"이라고 합니다. "앗상블라쥬"란 말그대로 여러가지를 모아서 만든다는 의미이고, 라우센버그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 주조한 용어인 "컴바인 페인팅" 역시 여러가지 상이한 재료들을 결합시킨 회화라는 뜻입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앗상블라쥬(혹은 라우센버그의 컴바인 페인팅)는 첫째, 칠하거나 그리거나 설계하거나 조각하는 방법 대신 모으는 방법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둘째, 원래 예술적 재료가 아닌 자연적 재료나 대량생산된 재료로 이루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예컨대 이불, 신문조각, 잡지, 타이어 등 일상용품들이 소위 앗상블라쥬에서 흔히 사용됩니다. 침대를 구성하는 세속적 소재들을 순수 미술의 영역에 끌어들이는 행위는 추상미술, 즉 엄숙한 고급미술에 대한 허무주의적 도전이요, 그런 의미에서 다분히 다다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쓰레기처럼 보이는 일상용품들을 끌어모아 예술작품을 만들었던 예를 다다이스트 슈비터스에게서 보았습니다. 그의 <메르츠 바우>를 기억해 보십시오. 라우센버그가 꼴라쥬의 대가 슈비터스에게서 영향을 받았으리란 건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겁니다. 미국에서 특히 팝아트가 성행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유력한 원인들이 많이 있겠지만, 뒤샹이 상당기간 미국에 머물면서 젊은 미술가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데서도 그 원인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자연히 그들은 슈비터스를 비롯한 다다이스트들의 활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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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라우센버그, <추적자(tracer)> 1963]

 

1963년 이후 라우센버그는 실크스크린 기법을 이용한 회화를 다수 제작합니다. 실크스크린은 색상이 선명하고 시각적 효과가 좋기 때문에 일찍부터 포스터나 광고전단 등 상업미술에 사용되던 인쇄기법입니다. 그런데 팝아트 작가들은 이 상업적인 판화기법을 아주 적극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라우센버그는 신문이나 영화 혹은 복제된 명화 등의 이미지들을 꼴라쥬하여 실크스크린으로 찍은 다음 그 위에 표현적인 붓질을 하였습니다. 그의 화면에 모아진 이미지들은 아주 상이한 원천으로부터 나온 것들이지만 모두가 우리의 일상 생활의 경험을 환기시키는 재료들입니다. <추적자>는 60대의 민감한 사안이었던 베트남 전쟁을 암시하는 요소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무장한 헬리콥터나 대머리 독수리 같이 미국인들의 애국심과 전쟁의 상징을 화면에 포함시키고 있는 걸 볼 수 있죠. 또한 이 그림에는 거리에서 흔히 볼수 있는 광경과 더불어 미와 사랑에 대한 고전적인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루벤스의 <화장하고 있는 비너스>가 복제되어 있는 것도 보이죠. 이 모든 요소들이 하나의 화면안에 조화롭게 통합되어 있는데요, 라우센버그는 아마도 이것을 우리 현대인들의 일상적 삶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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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퍼 존스, <깃발(Flag)> 1954-55]

라우센버그와 함께 팝아트의 선구자라고 불리울 수 있는 재스퍼 존스의 작품입니다. 존스는 1955년경부터 깃발과 과녘 연작을 하였습니다. 그는 왁스에 안료를 녹여서 그리는 납화법(encaustic)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뜨거운 납에 안료를 섞어 그리는 방법으로 고대의 미술가들이 사용하던 것입니다. 어쩌면 존스의 방법은 다른 미술가들이 사용하던 뿌리는 기법이나 염색기법에 비할 때 매우 전통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958년 뉴욕의 레오카스텔리 화랑에서 이 그림이 처음 전시되었을 때 사람들은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성조기를 그대로 그려놓은 - 사실 이 그림은 너무 두꺼웠기 때문에 그림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사물처럼 보였습니다 - 존스의 <깃발>은 마치 국기를 모독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지금의 시각으로 볼때 이 그림은 별로 충격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동서진영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던 냉전시대였음을 기억합시다. 존스가 국기와 애국심에 대해 조소하고자 했던 의도가 있었는지에 대해선 알 수 없지만, 깃발 연작은 부정성(negativity)을 지향하는 다다적인 제스츄어로 받아들여 질 수 있습니다.

그런 한편 <깃발>은 모네의 <짚더미>와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짚더미와 마찬가지로 깃발은 미술가에게 하나의 제재일 뿐입니다. 어떤 사물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려는 화가에게 있어서 그것이 짚더미이든, 깃발이든, 건물이든, 나무든 혹은 과녘이든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들은 단지 몇번씩 다시 그려지고, 새롭게 보아지는 시각적 형태들일 뿐입니다. 그러나 존스는 모네의 맥락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그림에 대한 지극히 객관적이고 중성적인 태도를 견지합니다. 그는 그림 자체를 하나의 사물 즉 오브제로 취급할 뿐 그 이상의 의미부여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깃발>은 무언가 - 즉 국기 - 의 재현이라기 보다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오브제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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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퍼 존스, <채색된 브론즈(Painted Bronze)> 1960]

존스는 이제 정말로 오브제를 제시하고 있군요. 그런데 이 맥주캔들은 레디메이드가 아니라 존스가 맥주캔을 청동으로 뜬 후 색칠한 일종의 조각입니다. 뒤샹과 똑같은 작업을 한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뒤샹의 레디메이드를 연상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즉 존스는 맥주캔과 같이 평범한 사물을 선택하여 그것을 청동 주조함으로써 일상적인 것을 불멸의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라우센버그와 존스는 본격적인 팝아트가 시작되기 이전에 중요한 선례를 보여준 미술가들로 파악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은 단지 우리가 일반적으로 "팝아트"라고 알고 있는 미술보다 광범위한 의미영역에서 파악되어야 할 것들로 보입니다. 그들에게선 표현주의적 측면도 보이고 다다적인 측면도 보입니다. 그런가 하면 이 작가들은 행위미술에도 관여했었고, 팝아트적인 요소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작품에서는 복잡한 의미의 층위를 읽을 수 있으며, 그러하기에 그들은 이후의 미술들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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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 <마릴린 먼로 2면화(Marilyn Monroe diptych)> 1962]

자, 그럼 본격적으로 "팝아트"란 명칭하에 분류도고 있는 작품들을 감상하도록 할까요? 아마도 팝아트 작가로 가장 유명한 사람이 앤디 워홀(Andy Warhol)이 아닐까 싶습니다. 팝작가들은 비교적 대중적 인지도가 높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이나 사물들을 사용하고 있기때문에 왠지 더 친숙하고 쉬워 보입니다. 워홀은 미국인들에게 혹은 세계인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대중적 스타들을 조악한 판화기법으로 재현해 낸 작품을 다수 제작하였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 말론 브랜도, 마오쩌뚱....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마릴린 먼로일 겁니다.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지구상에 몇이나 될까요? 그녀가 죽은지도 벌써 몇십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그녀는 유명인사(celebrity)입니다. 워홀은 우리에게 지겨우리만큼 익숙한 유명인사들의 형상을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방법으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워홀은 원래 광고물제작같은 일들을 하던 상업미술가였습니다. 그는 유명한 패션지 <보그>나 <하퍼스 바자>같은 회사에서 일했었습니다. 워홀의 판화들은 모두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제작되었는데, 실크스크린은 통상 광고전단 등을 제작하는 인쇄기법으로 상업미술에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워홀의 많은 그림들에선 이미지들이 기계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이것 역시 순수미술에서 사용하는 방법이라기 보다는 상업적인 인쇄물을 연상시키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비개성적이고 기계적인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워홀은 자신이 작품에 대해 지극히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하는데, 이러한 태도는 워홀뿐 아니라 기타 다른 팝작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입니다.

2면화로 제작된 마릴린 먼로들을 봅시다. 원래 2면화 혹은 3면화는 중세때부터 제단화의 일반적인 형식으로 사용되던 것입니다. 2면화는 책처럼 접을 수 있고요, 3면화는 마치 병풍처럼 접혀집니다. 이 작품은 성상(icon)을 제작하던 전통적인 방식으로 마릴린 먼로의 초상화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릴린 먼로라는 대중적 스타는 현대의 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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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 <브릴로 박스> 1964]

이번엔 세탁용 비누가 워홀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지난 시간에 보았던 재스퍼 존스의 <채색되 브론즈>를 거의 그대로 따라서 만든 겁니다. 워홀은 박스를 만들로 흰색으로 채색한 후, 시중에서 판매되는 비누의 박스 디자인을 그대로 그려넣었습니다. 한편으론 뒤샹의 변기가 연상되는 작품입니다만, 워홀의 다다적 행위는 뒤샹보다는 존스에 훨씬 가깝습니다. 존스와 마찬가지로 워홀은 브릴로 박스가 일상인의 필수품인 유명브랜드이기 때문에 선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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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리히텐슈타인, <Whaam!> 1963]

워홀 못지않게 대중적 이미지를 매우 적극적으로 사용했던 화가가 리히텐슈타인(Lichtenstein)입니다. 리히텐슈타인은 주로 만화의 형식, 주제, 기법을 거의 그대로 차용하였습니다. 그는 애정, 폭력, 전쟁 등 만화의 통속적 주제들을 선택하여 사이즈만 크게 확대해서 보여주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얼핏 보면 리히텐슈타인은 아주 손쉽게 그림의 소재를 얻은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아주 신중하게 소재를 선별했습니다. 그는 최근의 세련된 만화 대신에 오래된 만화, 그래서 누구나가 다 알고, 지겨우리만차 사람들에게 익숙한 소재를 선택했습니다. 워홀과 마찬가지로 대중에게 얼마나 익숙한 이미지인가가 리히텐슈타인에게도 중요했던 것입니다. 리히텐슈타인이 만화에서 가져온 주제들은 주로 격렬한 액션이나, 폭발장면, 센티멘탈한 로멘스 등 아주 진부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러한 통속적인 주제들을 원본보다 더 단순화시켜 대형으로 그려 놓고 있죠. 대형으로 확대된 리히텐슈타인의 통속적 이미지들은 그 스케일때문에 오히려 장엄한 효과를 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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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리히텐슈타인,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그 멜로디...> 1965]

 

리히텐슈타인의 양식은 아주 간결합니다. 단순하고 평면적인 색채와 형태를 하고 있죠. 특징적인 것은 선명한 검은색 테두리와 형태들을 메우고 있는 점들입니다. 멜랑꼴리한 표정을 하고 노래하고 있는 가수의 얼굴을 보십시오. 마치 신문에 실리는 사진처럼 작은 점들로 채워져 있죠. 리히텐슈타인은 일률적으로 구멍이 뚫어져 있는 판을 사용하여 색점들을 만들어내는 독특한 방법을 사용했는데, 이를 일명 "Ben Day Dot"라고 부릅니다. 화가가 직접 드로잉하고 채색하는 대신 구멍을 채우는 방식으로 제작하는 방법은 매우 기계적으로 보입니다. 워홀에서와 마찬가지로 리히텐슈타인에게서도 작품에 대한 중립적인 태도가 엿보입니다. 추상표현주의가 작가의 개성과 독창성을 과장된 제스츄어로 드러내고 있다면, 팝아티스트들의 중립적인 냉정함은 추상표현주자들의 태도와 매우 대조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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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스 올덴버그, <모든 것이 들어있는 두개의 치즈버거> 1962]

한편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사물들을 조각으로 형상화했던 미술가가 있습니다. 초기의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는 아이스크림 콘, 햄버거처럼 미국인들이 흔히 즐겨 먹는 음식을 거대하게 제작하곤 했습니다. 이 치즈버거들의 크기도 7 x 14 3/4 x 8 5/8 inch로 실제의 햄버거보다 아주 큽니다. 올덴버그는 1962년 9월의 전시회에서는 대형조각물을 방불케하는 거대한 햄버거와 아이스크림콘, 케? 등을 전시했습니다. 사람들이 평소에 아무 생각도 없이 먹던 음식물들이 그들을 압도할 정도의 크기로 제시되자, 그 평범한 음식들이 평소와는 달리 보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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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스 올덴버그, <부드러운 타자기(soft typewriter)> 1963]

 

올덴버그는 사물의 크기를 비정상적으로 확대시켰을 뿐아니라, 사물의 소재의 속성을 바꾸어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타자기, 변기, 공중전화 같은 일상적 용품들을 부드럽고 유동적인 소재로 제작하곤했습니다. 원래 딱딱한 사물이 부드러운 소재로 표현되었을 때엔 사물의 크기가 변형되었을 때 만큼이나 낯설고 당혹스러운 느낌을 받게 됩니다. 올덴버그의 작품에는 이렇듯 해학과 즐거움이 초현실주의적 마술적 효과와 병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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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스 올덴버그, <빨래집개> 1976]

올덴버그는 다수의 공공 조각을 제작했습니다. 그는 실외의 대형 조각물 역시 일상적 소품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필라델피아 시청 건물 앞에 서 있는 거대한 빨래집개를 봅시다. 배경의 건물과 비교되어 그 크기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올덴버그는 야구 글러브, 호미, 플러그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우리가 항상 사용하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사물들을 대형조각물로 제작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무가치한 대상들에 기념비성(monumentality)을 부여하였습니다. 통상 기념비라는 것은 어떤 상징성을 띠는 중요한 대상이라 하겠는데, 올덴버그의 대형조각들은 그러한 상징성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 시간엔 앤디 워홀, 리히텐슈타인, 올덴버그 세 팝아티스트들의 작품을 감상했습니다. 이외에도 다수의 팝아티스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공히 추상미술의 공허한 순수성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갖고,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 환경에로 눈을 돌린 사람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팝아티스트들은 미술이 그것자체만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영역을 갖고 있다는 모더니즘의 신념에 일격을 가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겐 소재가 세속적이면 세속적일수록 더 흥미로운 것이었습니다.

* The above pictures were captured from the websites of Mark Harden"s Artchive, National Museum of American Art, PBS online the Slate Magazine, the Nelson-Atkins Mueum of Art, Museum of Modern Art and Benedict Public School.

 

출처:강미정교수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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